
Happen Ending
1편 https://arca.live/b/counterside/33010323
2편 https://arca.live/b/counterside/33038064
3편 https://arca.live/b/counterside/33069223
4편 https://arca.live/b/counterside/33109871
"카린양. 저 왔어요. 오늘은 깨어있..."
"히익!"
병실 문을 열었더니 카린양이 문을 등지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놀라서 비명을 지르더니 바닥에 떨어뜨린다.
"저 몰래 뭐 먹기라도 하고 있었어요? 왜 이렇게 놀래요?"
"아.. 그... 제가 줍겠습니다!!"
"됐어요. 뭐 어려운거라고 주워드릴... 엥?"
그녀가 떨어뜨린 것은 어제 내가 빌려주었던 후드티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주워서 옷에 붙은 먼지를 턴다.
"제 옷가지고 뭐하고 있었길래 그래요? 남의 옷 냄새 맡는 취미라도 있으신가~"
"오해입니다! 깨끗하게 개어서 드릴려고 하는데 노크도 없이 들어오신거에요!"
"흐응~ 그러시구나. 깨끗하다고 하기엔 어제 닦은 눈물 자국이 소매에 그대로 있는데요?"
"그...그건 어쩔 수 없었어요!"
"알아요. 알아- 어이쿠~"
또 주먹이 날아온다. 컨디션이 어제보단 나아보인다. 그래도 피하는 건 가뿐하지만. 새벽에 몇몇 붕대는 푼 모양이다. 일반인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그랬는데. 카운터는 역시 카운터다.
"진짜... 머리 아프니까 그만 놀리세요!"
"하하하- 팔팔하신 모습을 보니 보기 좋네요. 일단 걸으실 수 있겠어요?"
"걸을 수 있습니다. 또 시윤씨가 변태스토커 마냥 지켜보시기 전에 일어나서 세안을 마쳤습니다."
"... 변태스토커라뇨 저 상처받아요~"
"흥. 그보다 그건 왜 물어보신거죠?"
"당연히 회사 안 보다는 밖이죠!"
카린양이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밖에 나가는게 별론가?
"그래도 일단은 아직 환자니까 휠체어 끌어드릴게요~ 오늘 날씨가 좋던데 하늘보러가면 좋지 않겠어요?"
"... ..."
"가기 싫으면 어쩔 수 없구요~ 회사에 있으면 오늘은 대기 중인 제 스승님이 카린양을 마주칠 때마다 노려볼지도 몰라요?"
"... 제가 직접 가서 앉을게요."
반응이 예상대로 흘러가는게 참 재미있는 분이다. 걸을 수 있다더니 그냥 다리에 힘만 들어가지 영 어기적거리는게 불안하다.
"부축해드릴까요?"
"제, 제가 갈 수 있습니다."
"아닌 것 같은데요? 업어드릴까요~"
"진짜..! 꺅?!"
"이크- 그러게 진작 도움 받으라니까요."
말 한번 걸었을 뿐인데 앞으로 꼬꾸라지는 걸 잡았다. 완전 나이스 캐치.
다시 일으켜 세워주며 본 카린양의 얼굴은 홍당무마냥 빨개져있었다.
"잠깐 서있을 수 있어요? 아니면 제가 부축해서 휠체어까지 데려다 드릴까요-"
"서, 서있겠습니다..."
"...? 괜찮아요?"
"괜찮다니까요!!"
"아~ 귀청나가요~"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귀가 먹먹해졌다. 그러곤 후드를 푹 뒤집어쓴다. 딱히 내가 뭐 실례한 건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그나저나 휠체어를 왜 이렇게 멀리 두는건지. 혼자 휠체어로 옮겨 탈 수 있게 되면 곤란해서 인가?
나라면 사방팔방에서 오는 경계심에 숨도 못쉴것같다.
단순히 엑자일러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붙여놓을만큼 압박받아야 하는지는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애초에 뭐 제대로 설명도 안 해주는걸. 스승님이 늘 그렇지.
아무튼 멸망한 세계의 딱딱한 군인 치고는 내가 보기엔-
"갈까요?"
"오늘은 어디 가는거에요?"
"음, 아이쇼핑?"
"아이쇼핑..?"
그저 이젠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한 인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
제일 큰 번화가로 나왔다. 평일 낮인데도 거리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나도 이 시간대에 거리를 활보하는 건 오랜만이다.
"카린양. 저 없을 땐 어떻게 있나요?"
"네? 시윤군이 없을 땐... 제가 잠들기 전까지만 메이드복을 입으신 분이 도와주십니다."
"엥?"
"대신에 저는 한마디도 하지 말라고..."
"거참... 제가 아는 그 분인가 보네요. 친절하시죠?"
"네. 그래서 말하지 못하는 거 자체는 불편하지 않아요."
"비밀 엄수라더니... 그럴거면 저보다 그냥 메이드가 봐주는게 낫지않겠어요?"
"...꼭 그렇진 않아요."
"제가 그렇게 맘에 드시나요- 이거 곤란한데요?"
"부사장님도 같이 계시거든요."
"...역시 제가 훨씬 낫죠?"
카린양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런 부분은 누구나 통하는 것 같다. 내가 당한다고 생각하면 무리해서라도 탈출하고 싶어질 것 같다...
걸으면서 주변을 살펴보다가 카린양을 내려다 보았다. 어딘가에 시선이 고정되어있다. 시선을 따라가니 아기자기하게 생긴 가게가 있다.
"귀여운 거 좋아하시나봐요?"
"그, 그냥 본겁니다!"
"그래요? 흐응-"
가게엔 작은 인형들과 키링, 머리띠, 리본...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다. 그냥 본 거라는 대답이 나왔지만 어째 본심은 그게 아닌 것 같다.
"구경 가볼까요?"
"... ..."
"카린양~?"
"구, 구경만 하는거라면..."
나도 모르게 풉하고 웃음이 새어나가자 카린양이 얼굴이 빨개진 채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이내 시선을 거두곤 빨리 가보자고 나를 재촉했다.
솔직하지 못 한게 귀엽다.
가게 안에는 밖에서 보여진 것 보다 더 아기자기했다. 보통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나는 천천히 휠체어를 밀면서 가게 안을 돌았다. 돌다 보니 눈에 머리띠가 하나 들어왔다. 노란색의 심플한 머리띠다.
"카린양. 원래 쓰던 리본은 어디 있죠?"
"눈에 띄지 말라고 하셔서 제 환자복 주머니에 넣어두고 있어요. 갑자기 그건 왜 찾으시는건가요?"
"음. 이 머리띠는 어때요?"
내가 가리킨 머리띠에 카린양의 시선이 꽂혔다.
"머리띠?"
"델타세븐의 상징 대신에 이걸 쓰는 건 어떤가 싶어서요. 별로면 그냥 가구요~"
"... ..."
나의 말에 생각에 잠긴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머리띠에서 시선을 떼지 못 했다.
"잊거나 버리라는게 아니에요.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고 기억하자는거죠."
"...!"
카린양이 놀란 토끼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 표정을 보고 나도 모르게 씨익 웃어보였다.
"사드릴게요."
"아..! 그, 그러지 않으셔도..."
"카린양은 여기 무일푼으로 낙오되셨는데 제가 사드려야죠~"
"무..무슨 소리에요! !"
"제가 틀린 말 했나요? 마음에 드시면 얼른 집어주세요. 아니면 제가 집어드릴까요?"
"..흥."
소심하게 손을 뻗어 올려진 머리띠를 집어 들었다. 무늬도 묘하게 그 리본을 닮아 있었다. 가까운 거울로 휠체어를 옮겨주었다.
잠깐은 괜찮겠지.
"아무도 없을 때 한 번 써봐요."
"그래도 돼요?"
"물론이죠."
후드를 벗고 머리카락을 정리하더니 조심스럽게 머리띠를 썼다. 상상한 것 보다 잘 어울린다.
"잘 어울리시는데요? 역시 미인이시라서 그런가 봐요~"
"또 이상한 소리를..!"
"하하하. 이리주세요. 계산하고 다시 쓰게 해드릴게요."
얼굴을 붉히며 머리에 쓴 머리띠를 빼고 나에게 건네주더니 후드를 푹 눌러 썼다. 정말 칭찬에 약하신 것 같다.
계산을 마치고 나는 머리띠를 손에 쥐어주었다. 돌아가는 길 그녀는 한참 동안 머리띠를 바라보았다.
"머리띠 닳아 없어지겠어요-"
"그, 그냥 멍때린겁니다!"
"카린양이 멍을 때리다니 의외인데요? 항상 뭔가 생각하는 줄 알았어요~"
"으, 그만 놀리세요!"
"알았어요. 알았어~"
그렇게 말해도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카린양은 머리띠를 만지작거리며 눈을 떼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뭐, 마음에 들고 조금이나마 기운이 난다면 그걸로 되는거겠지.
-
어제와 비슷한 일과로 흘러간 오늘. 어김없이 시간에 맞춰 퇴근 준비를 했다.
"옷 돌려주세요. 눈물 자국 없애야죠~"
"으으.. 그냥 조용히 가져가시면 안되는거에요?"
"이야, 얼마나 울었으면 까만옷이 이렇게... 읏챠!"
이젠 주먹이 언제쯤 날아올지 예상이 가는 지경이 되었다. 분에 차서 쳐다보는 카린양의 표정이 재밌다.
"시영씨 판박이 아니랄까봐..."
"어허, 그 사람이 저를 닮은거에요. 그리고 머리띠 역시 제가 잘 고른 것 같네요. 어울려요."
"그..래요?"
"빈말같나요?"
"... ..."
받은 옷을 개어서 가방에 넣었다. 넣고 돌아보니 묘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카린양과 눈이 마주쳤다. 마주치자마자 카린양이 먼저 눈을 피했다.
"왜 그렇게 쳐다봐요. 저 닳겠어요."
"그, 그렇다고 허공을 볼 순 없잖아요?"
"카린양이 그렇다면야 그런거겠죠~ 그럼 이제 저는 퇴근해볼게요. 푹 쉬고 내일 봐요. 카린양."
"... ... 안녕히가세요."
뒤를 돌아 나는 병실 밖으로 나갔다.
항상 칼퇴 할 때가 좋았던 것 같은데, 묘한기분이 들었다.
'정 붙이지마.'
갑자기 스승님의 말이 떠올랐다.
정은 무슨. 그냥 반응이 재밌으니까. 일이니까 할 뿐이다. 열심히 할 거 였으면 돌아다니는게 아니라 심리상담 같은 걸 했을거다. 내가 심리상담 같은 걸 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리고 어쩌면 사라질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내가 정을 붙일 이유는 없었다. 자기합리화 같은게 아니다. 난 사실 만을 생각하고 있다.
... ... 집에 더 작은 후드티를 찾아볼까.
-
아무래도 같은 옷을 여러 벌 사두다보니 더 작은 후드는 없고 다른 같은 후드를 가져왔다. 뭐 어차피 얼굴 가리기만 하면 되니까.
정시 출근보다 10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했다. 합법 땡땡이(?) 좋겠다는 미나양. 보자마자 한숨 쉬고 발길질을 하는 스승님.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 서윤양을 지나 카린양이 있는 병실 앞에 도착했다. 어제 노크 안 했다고 큰 소리를 치던게 생각나서 노크를 먼저 했다.
똑똑-
"카린양. 들어갈게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다시한번 두드려 보지만 안에선 아무 말이 없다. 묘한 적막함에 순간 불안이 엄습했고, 문을 열려고 하니 열리지가 않았다. 뭐지? 이게 무슨 상황....
"시윤군! 비켜보세요!"
멀리서 부사장님이 급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손에 들고 오는 물건을 보고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뒤로 물러서자 부사장님이 마스터키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펼쳐진 광경은
"카린양?!"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칼이 바닥에 나 뒹굴고, 차가운 바닥에 쓰러진 채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다른 사람의 짓...?"
"본인 스스로 했을겁니다. 애초에 문이 잠긴 밀실이니까요. 이럴까봐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데 결국 일이 터지네요."
본래 우울과 트라우마는 보이지 않는 듯 하지만, 갑작스럽게 사람을 잡아먹곤 한다.
사람이라는 것이 그렇다. 혼자 남겨지면 그렇게 우울이라는 괴물이 자각도 하지 못한 채 잡아 먹혀간다.
... ...
내 옆을 지나쳐 누군가 더 들어와 부사장님을 도운다. 나는 복잡한 마음으로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 읽어줘서 고마워! 이제 좀 빨리 진행해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