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글보고 생각나서 써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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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실에서 다리를 꼬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관리자.

오늘도 농땡이를 피우고 있으면 죽일 각오로 감시하러온 이수연도

보기 드물게 생각에 잠긴 진지한 표정의 관리자를 마주하고는

괜시리 헛기침만 두어번. 좀 쉬시면서 하라는 맘에도 없는 말과

함께 살짝 붉어진 얼굴을 숨기며 커피 한 잔을 놓고 사라졌다.

그가 하는 고민과 궁리가 업무에 관련이 일절 없다는 것을 

알았더라도 그녀가 같은 반응을 보였을까에는 의문부호가 

붙겠지만, 그만큼 관리자는 진지했다. 

남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그에게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궁금증이 있었다.


똑똑똑.


"사장님, 금일의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의 눈 앞에 화사하게 미소짓는 아름다운 묘령의 여인 관리부장

김하나가 어째서 맞선마다 퇴짜를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이다.


"오늘도 고맙군. 하나 양. 들어가 보게."

"네, 사장님.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생글생글 미소지으며 가볍게 목례후 사장실을 나서는 김하나가

지나간 자리에는 은은하고 향긋한 향수냄새만이 남아있었다.

이해할 수가 없군.

외모 출중. 안정된 직업(사장인 그가 그녀를 해고할 계획이 전혀 없었다), 몸매 우수..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그녀는

맞선에서의 성과가 없는 것일까. 대체 술버릇이 어떻기에?

관리자는 문득 주시윤과 김하나 간 꽤나 접점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사장실로 그를 호출했다.


"네, 사장님. 무슨 일이시죠?"

"거두절미하고 묻겠네. 김하나 양과 꽤 친분이 있지 않나?"

"하하.. 네. 제가 어릴 땐 제법 있었지만 요즘도 그렇게까지 친밀한

지는 잘 모르겠네요. 제가 워낙에 사고를 많이 쳐서요."


머리를 긁적이는 주시윤.


"혹시 그녀의 술버릇을 알고 있나?"

"글쎄요, 관리부장님이 술 마실때 옆에 있었던 기억은 없는 것 같은데요. 도움이 못 되어드려서 죄송합니다."

"음, 아닐세. 부탁인데 내가 이런 걸 물은 건 비밀로 해주겠나?"

"하하. 벌써 잊었는걸요."


눈치가 빠른 사원이다. 관리자는 제법 믿음직스러워진 주시윤의

등을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그건 그렇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미스테리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똑,똑,똑.

기계처럼 일정한 주기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관리자는 고개를

돌렸다. 이 다음 일정이 뭐였더라? 김하나의 술버릇에 관해 

생각하느라 정작 그녀의 일정브리핑에 집중하지 못한 탓에 지금

방문자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크흠. 누구인가?"

"예정을 잡은 걸로 알고 있는데, 호라이즌 투자기금의 사장

호라이즌입니다. 휴먼.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 호라이즌 양인가. 들어와도 되고말고."


문이 열리고 예쁘장하지만 표정이 떠오르지 않는, 차가운 이미지의

작은 체구의 미소녀가 들어왔다. 

돈을 빌린 기억은 없는데. 관리자는 이 미팅의 의도가 궁금해졌다.


"감사인사를 전하러 왔습니다. 휴먼 덕분에 사적인 용무를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하하, 경우를 아는 기계로군. 별거 아닐세. 아군을 하나 늘리는데

그정도면 싼 값에 먹힌 거지."

"그리고 이걸 전해주러 왔습니다. 윌버가 쓰던 물건인데, 사람의

외모를 다른 사람에게 다르게 보이게하는 물건으로 보였습니다.

값어치가 나갈 것 같아서 주웠는데 감사의 표시로 받아두시죠."


호라이즌이 내민 것은 왠 마스크였다. 

사람의 외모를 다르게 보이게 한다라..? 

관리자의 뇌리에 상당히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스쳐지나갔다.


***


"관리부장님, 굉장히 들떠있으신 게 느껴집니다. 과한 의욕은 일을 

그르칩니다. 지금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부적이 단돈..."

"클로에는 정말 기승전장사라니까. 못 말려 정말."

"레나 양! 이건 장사가 아니라 포교활동이에요!"


오늘도 관리부는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김하나는 아웅다웅하는

오퍼레이터들을 바라보면서도 한숨대신 미소가 절로 나왔다.

간만에 괜찮은 만남이 기대되기 때문이었다. 


"클로에 양. 부적 하나만 주시겠어요? 연애운을 높여주는걸로."

"앗, 부장님! 늘 사셨지만 소용 없었잖아요!"

"레나 양은 조용히 하세요! 여기 부적이랑 아티팩트..."


김하나는 노란 종이 위에 빨간 잉크로 조악하게 하트가 여러개 

그려진 부적과 애정운을 부르는 아티팩트(라고 클로에가 주장하는)인 

가죽끈이 돌돌 매여진 분홍색막대기를 건네받고 들뜬 마음으로 

퇴근을 서둘렀다. 


만남 어플에서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후, 김하나에겐 이렇다할

인연이 없었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 여자에게까지 손을

뻗치는 남자는 다 나름대로의 꿍꿍이가 있거나, 질이 떨어지는

남자들 뿐. 건전한 만남 후에 결혼까지 골인하고픈 그녀에게

그런 만남은 시간낭비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접근을 제외하면 새로운 만남도 전혀 없고, 맞선마다

퇴짜맞기를 반복하다보니 자존감마저 떨어지던 와중 만나게 된

근사한 남자. 

길거리에서 번호를 따간 그 남자와의 첫 식사 약속이 바로 오늘이었다.

말투는 조금 나이든 듯 했으나 워낙에 잘 생겼고 몸도 좋아보여

중후한 매력으로 넘어가 줄만 했다. 김하나는 상점가 유리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너무 들떠보여 표정관리에 신경을 쓰기로 했지만,

회복되기 시작한 자존감만큼이나 설레는 마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비사고 여신 김하나, 아직 안 죽었다 이거야!

김하나는 내적뿌듯함을 만끽하며 약속장소에서 두리번두리번

만나기로 한 그를 찾았다.


"아, 하나 양, 여길세."


조각같은 외모와 매력적인 중저음의 목소리. 하얀 건치를 뽐내며

인사를 건네는 그를 보자 하루의 피로가 눈녹듯이 사라져갔다.


"앗, 오빠. 오래 기다리셨어요?"

"음, 아닐세. 별로 기다리지 않았어."


물론 이 조각미남은 윌버의 마스크를 쓴 관리자였다. 그는 김하나가 대체 왜 번번이 퇴짜를 맞는지 궁금해서 오랜 시간을 들여 

그녀에게 접근하고, 결국 만남까지 갖게 되었고 오늘이 결전의

날이었다.

꿈에도 그가 관리자인줄 모르는 김하나와 관리자는 로맨틱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대화 중간중간 술잔이 오가기 시작했고, 김하나는 점점 취해갔다.


"우우웅, 나만 취하는 것 같은데에.."

"하나 양은 흐트러진 모습도 아름답군."

"아앙, 오빠 그러기에요..? 에헤헤.."


그냥 평범하게 귀여웠다. 관리자의 눈에도 보호본능과 번식욕구를

자극하는 예쁜 여자로만 보였다. 술버릇이라 할 만한 것도 말투가

귀엽게 어눌해진다거나 흐트러진 모습, 꾸벅꾸벅 조는 모습등

애교가 많아진다는 것을 포함해 특별할 것이 없었다. 아니, 

특별하게 예뻐보였다. 젠장, 예쁘잖아!

여전히 미스테리는 풀리지 않은 채 였다. 어느새 정상적인 대화를

주고받기 힘들 정도로 취해버린 김하나를 업고 나온 관리자.

축 늘어진 무게감이 기분좋게 다가왔다. 등에 와 닿는 말캉한 촉감,

귓가에서 쌕쌕대는 숨소리까지. 관리부장은 잠도 예쁘게 자는군.

관리자는 비록 미스테리는 풀지 못했으나 이렇게 예쁜 관리부장이

언젠간 좋은 인연을 어련히 만나겠지, 하고 생각하며 달밤을 걸었다. 


"...오빠..."

"으응?"

"어지러운데 좀만 쉬었다 가면 안돼요오..?"


공교롭게도 김하나가 정신을 차린 곳은 모텔촌이었다.

관리자에겐 전혀, 손톱만큼도 소중한 사원을 건드릴 꿍꿍이따윈 없었다. 

하지만 첫 만남부터 이렇게 급전개를 한다면, 지금까지

그녀를 퇴짜놓은 남자들은 먹버라도 했다는 걸까? 한 번 코풀었으니

매력이 떨어진다는 걸까? 아니면 모텔에서 씻고나오니 아예

다른 인물이 나온다거나.. 관리자에겐 순수한 궁금증이 앞섰고,

결코 유혹에 넘어간 것이 아니라며 합리화한 후 모텔에 들어섰다.

그는 김하나를 침대에 바르게 눕힌 뒤 화장실에서 찬물로 세수를 했다.


철컥.


"음?"


제 몸도 못가눌 것 같던 김하나가 모텔 방문을 잠갔다. 

그녀는 왠지, 전혀 어지럽거나 하지 않아 보였다. 


"..하나 양? 좀 괜찮은가?"

"아, 물론 괜찮죠. 오빠.."


얼굴이 붉고 초점이 흐릿한 걸 보니 취한 건 연기가 아니었다.

다만, 어쩐지 그녀를 휘감고 있는 것은 취기라기보다...

광기에 가까워보여 관리자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어디가아..?"


김하나는 핸드백에서 클로에가 준 아티팩트를 꺼냈다. 

그리고는 그 아티팩트를 어떻게 어떻게 재구성하더니, 

자신의 가랑이에 착용을 완료했다.

그것은 소위 말해.. 페니스 밴드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하나 양..?"

"이리 와요, 오빠. 내가 오빠한테 암컷절정이 뭔지 알게 해줄게.. 츄릅."

"노,농담이지..? 여자는 자넨데 왜 박히는게 아니라 박으려고.."

"나는 공격이 더 좋으니까.. 흐흐흐.."


관리자는 공포에 질려 도망치려했다. 하지만 알콜이 지배하는

김하나의 완력과 순발력은 상상이상이었고, 관리자는 곧바로

제압당해버렸다.


"하나 양, 이러지 말게! 정신 차려!"

"아잉, 오빠.. 나 좋아 한다며? 이런 내 모습도 좋아해줘..뿅가게 해줄게.."

"안 돼, 안 돼..!"

"...돼!"


관리자는 세상을 저주했다.

위험한 궁금증을 갖게 된 자신을 저주하고,

윌버의 마스크를 자신에게 가져온 호라이즌을 저주하고, 

김하나에게 저런 술버릇을 갖게 만든 세상을 저주하고 또 저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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