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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내 말을 들어줄 마음이 생긴 건가?"


"그래."


처음 관리자(였던 것)를 가격할 때야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느낌이었지만 그것도 잠시,

어차피 이 모든 게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하니 급격하게 허무해졌다.



"그래서? 날 왜 부른거지?"


"말했잖나. 문제가 일어나고 해결하기보다는 문제의 기미가 보일 때 바로 해결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오,그거 참 잘됐네! 드디어 죽어도 되는 건가?"


"안타깝게도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네. 자네도 알다시피 관리자라는 '나'의 자아는 확실하게 소멸했네."


"도움이 안 되는군."


"대신이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어째서 자네가 '관리자'로 선택됐는지 정도는 이야기해줄 수 있네."


"이유가 있었다고?"


"그래.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또 다시 실패했고 마지막 희망으로 자네를 끌어들인 걸세."


"또 실패했다고? 하지만 넌 언제나-"



아니다. 어감이 이상하다.

그나 나나 관리자라는 이가 실패를 거듭해왔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굳이 또 라는 말을 붙이는 것을 보면....




"Cot가 실패했다는 건가."


"역시. 이해가 빨라서 편하군. 자네 말대로 Cot를 실행한 저번 세계도 결론만 말하자면 실패였다네. 아마 자네가 알고 있는 세계의 기억은 그 때의 기억이겠지."


"아니, 이상하잖아. 아무리 안에 든 존재가 나라고 하더라도 Cot를 쓴 이상 세계선을 바꾸는 건 불가능할텐데?"


"얼터니움이라네."


"뭐?"


"본래는 그런 용도로 쓰여서는 안 될 물건이지만....가공을 하면 Cow를 실행할 정도의 에너지는 충분히 얻어낼 수 있다네."


"그래서,세계를 또 한 번 망치고 나서 내가 그 희생양으로 끌려왔다?"


"자네가 이 세계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알기에 내린 결정이었네. 자네라면 분명-"


"젠장, 닥쳐!"


"......."




나는 관리자에게 삿대질했다.




"만약 정말 네가 내 또 다른 자아라면 너도 봤을 거 아냐."



수많은 파괴. 막을 수 있는 죽음과 예상치 못한 이별.
앞으로 있을 모든 일도.

게임에서의 일이 내게 현실로 다가오며 나는 그 무게감을 계속해서 자각할 수 밖에 없었다.



"때려칠래."


"불가능하다네."


"그래,그렇겠지. 그 잘난 세계를 구해야 하니까. 그럼 나는? 나는 누가 구해주는 거지?"



"......"



"이딴 거 불공평하잖아!!!!"


"그 이야기를 할 것 같았네. 그렇기에 해결책도 준비해왔고."



"뭐?"




관리자는 어디선가 나타난 물건을 손에 집고 나한테 내밀었다.

크고 빨간 버튼.




"클래식하지만 또 그만큼 임팩트있는게 없지."


"누르면....어떻게 되지?"


"자네라는 자아는 소멸하고 내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겠지. 대신 나는 말했다시피 찌꺼기같은 것. 처음 몇 개월간 활동하고 이후부터는 기계적으로 변할걸세."


"누르지 않으면?"


"알면서 묻지 말게나."


"인과율은 어떻게 되지? 그냥 넘어갈 리 없을텐데."


"간단한 이야기 아니겠나. 자네가 구한 이들이 죽을걸세."


"뭐?"


"수많은 이들을 구했지만 그 중에서도 인과율이 가장 강하게 적용되는 이들,리타와 대시.
그들이 죽을걸세."



".....씨발."



나는 손에 쥐여진 버튼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나 스스로 주박에서 벗어나 리타와 대시를 희생양으로 삼을 것인가,세계를 위해 나를 희생양으로 삼을 것인가.




"씨발! 씨발! 씨발!!!!!!!!"




욕이 계속 튀어나왔다. 관리자는 그런 나를 보고 차갑게 웃었다.




"역시,자네는 내가 생각한 대로의 인간일세."



"뭐?"



"비겁한 겁쟁이라는 말일세. 그것도 아주 악질적인."



"너....너 지금 뭐라고...네가 감히 나한테 그런 말을 해?"



관리자의 그 말에 나는 화라는 감정보다 어안이 벙벙해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했다.

내가 비겁하다고? 이 세계에서 그 누구보다도 가장 많이 희생한 것은 다름아닌 나다.

내가 겁쟁이다? 나는 항상 죽음의 바로 옆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관리자의 다음 말은 내 생각을 완전히 멈춰버렸다.



"그래. 책임을 지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는 그런 겁쟁이지."


"......"


"희생을 했다? 외줄타기를 해? 틀리지. 자네는 그저 자기합리화를 했을 뿐일세. 나는 이렇게 이타적인 삶을 사는 불쌍한 남자라고."



관리자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자네가 구하지 못한 이들만 해도 그렇지. 그건 까놓고 말해서,자네의 책임이 아니잖나?"


".....!!"


"그들은 그저 자네의 선행의 나비효과에 휘말린 이들일 뿐이었지. 그리고 자네는 이렇게 생각했겠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모두를 구할 수 없었기에 잘못 또한 없다'고.

그런데 지금 자네는 자네의 손으로 직접 류드밀라 전대장을 처형하려하고 있네.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닌, 자네의 의지로.

그리고 자네는 그녀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지기를 두려워하고 있지."




"나,나는...."




"만성적인 피로감 또한 그렇지. 나는 이렇게 열심히 일한다,그러니 나는 최선을 다했다는 면죄부를 만드는 것 아닌가?"



".............."




"지금 자네가 선택을 앞두고 격한 반응을 하는 것도 그 일환일 것이고. 반박이 있다면 듣도록 하겠네."




".......하.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인형놀음이었다 이건가. 그래. 다 네 말대로야."



"지금이라도 알게 됐으니 다행이군. 자,그럼 이제부터는 관리자로서 전력을 다해-"


"아니."


"음?"


"네 말대로 나는 겁쟁이에 내가 책임지는 것은 끔찍이도 싫어하는 비겁한 사람이지. 그러면 내가 반대로 묻겠는데 넌 그런 사람이 세계를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당연하지."




즉답이었다.




"적어도 자네는 자네의 치부를 그대로 받아들였지. 타인에게 자신의 정체가 이토록 낱낱이 까발려져도 그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네.
그렇기에 난 그대가 변화할 것이라 믿고 있지."



"아니. 난 이제 지쳤어. 네 말을 듣고 나서 다 확실해졌어. 난 그저 너를 흉내내는,아니 흉내조차 내지 못한 열등품에 불과하니까.
포기할래. 이 세계에 난 더 이상 필요없으니."




"자네는 자네만의 역할이 있지."




"내 역할? 주변을 둘러봐. 영웅은 썩어날 정도로 많고 이 이야기의 주인공조차 내가 아니지. 그럼 난 뭘 할까?"




자포자기의 질문. 그 대답에 관리자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자네가 지금 이 순간까지 항상 해오던 일. '관리자'가 되게."



"뭐?"



"자네말대로 영웅은 많고 주인공 또한 우리가 아니라네.
하지만 영웅들이 쓰러지거나 갈등하거나 무너질 수도 있을걸세.
주인공도 상처입거나 때로는 포기하려 할 때도 있겠지.

그러니 그런 그들을 '관리'해주게. 엇나가지 않도록. 포기하지 않도록."



".....비겁한 겁쟁이한테 과도한 걸 요구하시는군 그래."



"비겁한 겁쟁이인 자네이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걸세. 자네는 결코 책임을 지고 싶어하지 않으니. 타인에게 비난을 받느니 자신이 상처입을 사람이니까."



"하."



"자네는 나보다 부족한 관리자일세. 하지만 자네는 나보다 더욱 나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겠지."


"아부는 됐어. 이대로면 리타와 대시는 살아남을 수 있는 건가?"


"그것까지야 나도 모르지. 다 자네가 인과율을 어떻게 쌓는지 나름아니겠나?"



그 말을 듣고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나 하기 나름이지."




중요한 점:나는 나가는 법을 모른다.



"어떻게 나가는 거지?"


"이 심상세계의 지금 주인은 나라네. 그러니 주인인 나를 쓰러뜨려야 하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없이 나가게 해주겠-"





퍽!




나는 말이 끝나기 전에 관리자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심상세계속이라고 해도 물리법칙은 적용되는지 그의 몸은 허공을 날아 바닥에 죽 미끄러졌다.



"하....또 보자고. '선배'님."



관리자는 바닥에 누운 채로 내게 손을 흔들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웃고 있겠지.


그리고 내 의식은 다시 한 번 끊어졌다.
















"....."

"....... 안 돼!"

".................뜻이다."

"......주십쇼!"



"가만히 있지만 말고 뭐라도 말 좀 해 달라고!"



알렉스의 절규와 함께 나는 눈을 떴다.

내 눈앞에는 류드밀라가 자신의 심장부에서 뽑아낸 듯한 보랏빛 얼터니움을 들고 있었다.


알렉스와 이수연은 류드밀라가 염동력으로 제지하고 있는 듯 보였다.

둘의 실력이라면 쉽사리 저항할 수 있겠지만 그랬다간 그 반동의 여파로 류드밀라가 죽을 까 걱정하고 있는 것이겠지.

심상세계에서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건 거짓말이었나.




"마지막으로 말하겠습니다.
받아주십시오. 관리자님. 저는 괴물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죽고 싶습니다."




류드밀라는 결의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의 책임을 짊어지겠다는 인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그녀의 의지에 대한 내 대답은 정해져있었다.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말이기도 했고.




"아니,오늘은 아무도 안 죽는 날이다. 왜냐하면.....내가 그렇게 결정했기 때문이지."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

그 말대로다.

나는 나를 누군가 비난하는 것이 무섭고 누군가가 나 때문에 죽는 것이 그 무엇보다 두렵다.



그러니 책임따위는 지지 않겠다.

누군가에게 상처입는 대신 다른 누군가의 상처 또한 내가 대신 입으리라.


실로 이기적인 자기희생.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세계를 구할 것이다.




난 얼터니움을 낚아채 그대로 내 가슴팍에 박아넣었다.

















이제야 프롤로그 끝인 것 같네. 관남충 캐릭이 워낙 주인공으로 쓰면 개노잼이라 메인 시작전에  적당히 조미료넣어서 성격체인지좀 시도햇는데 어쩔련지 모르겠다.

응애 봐주는 챈럼들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