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0여 일 전이다. 내가 갓 복귀한 지 얼마 안 돼서 재무장에 허덕이고 있을 때다. 

아포칼립스 보급소 왔다 가는 길에, 패키지/스킨 상점으로 가기 위해 주화에서 일단 커서를 멈춰야 했다. 

세리나 맞은편 코너에 앉아서 젖탱이를 깎아 파는 금태가 있었다. 

젖탱이를 한 쌍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쿼츠로 좀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젖탱이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대표였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주물러 보고 저리 주물러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꼴리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건포 차는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다듬을 만큼 다듬어야 꼴리지, 생젖이 재촉한다고 스파인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유저가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대표님, 외고집이시구먼. 건틀렛 하러 가야 된다니까요."


금태는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건포 충전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어색하고 노꼴이 된다니까. 젖탱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말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스파인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한 프레임씩 재생시켜 보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젖탱이를 들고 이리저리 주물러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젖탱이다.



건틀렛 포인트가 꽉 차서 시간이 낭비된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유저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대표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금태는 태연히 허리를 펴고 스튜디오비사이드 로고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대표다워 보였다. 

오랜 개발에 삭은 몰골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대표에 대한 애증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사장실에 와서 젖탱이를 내놨더니 시그마는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슴부먼트의 질이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기본 스킨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시그마의 설명을 들어 보니, 젖이 너무 크면 젖겜과 경쟁해야 하니 껄끄러우며, 젖이 너무 작으면 페도들이 날뛴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쥬지가 확 꼴렸다. 그리고 대표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