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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밤은 춥고 길었다. 마크 핀리가 페넥폭스 시리아 지부와 함께 시리아 락까 인근에 도착한 지도 벌써 사흘 가까이 지났지만 사막에서의 야영이란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페넥폭스 부대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시리아 무슬림들은 그들이 매일 주문처럼 외우는 알라의 가호가 정말 있기라도 한 것 마냥 이런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나갔다.
하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합중국에서 건너 온 마크 핀리가 하루아침에 사막 유목민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살만하지 않나요?”
“당신들이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잘 알겠소. 그나저나 상황이 많이 어려운 모양이오.”
“그야... 우리가 엄청나게 지고 있으니까 그렇겠죠?”
“페넥폭스답지 않게 자신감이 없는 말씀을 하시는군. 자기들 구역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들이 지킨다는게 그쪽 신조 아니었소?”
“그럴 수 있다면이라는 단서조항도 좀 붙여주셨으면 좋겠네요.”
세상이 이 꼴이 되고 난 이후, 수많은 민간군사기업들이 생겨났지만 페넥폭스는 그 중에서도 매우 특이한 케이스에 속했다. 다이브 활동과 그에 수반된 이터니움 채굴을 중시하는 다른 PMC들과는 달리 근거지 방위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사실 PMC라기보다는 군벌조직연합이라고 정의하는 편이 더 페넥폭스의 실체에 가까울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폭력을 휘두르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용병들에게 선악을 따지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은 없다지만 그래도 페넥폭스 정도면 이렇게 망가져버린 세상에서 매우 선량한 조직에 속했다.
그러나 그것이 성공적인 용병조직의 활동인가 하면 고개가 절로 갸웃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고 중동이나 아프리카, 카프카스 등의 오지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지키는 일이 가치가 있냐고 물어본다면 거의 모든 사람이 가치가 있다고 대답하겠지만 기부금의 이야기를 꺼내면 얼굴이 싹 굳어버리기 마련이다.
조직에게 있어서도 도덕과 법인통장의 잔고는 저울의 양면과 같아서 오직 어느 한 쪽에만 무게를 실을 수 없는 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가난과 투쟁하며 살아가는 이 조직은 삶의 터전을 지킨다는 뿌듯함을 원동력으로 삼아 오늘도 어떻게든 굴러가고 있었다.
그런 독특한 성격 때문에 권력자들에게 있어서 페넥폭스는 아주 이용하기 까다로운 조직이면서 동시에 아주 이용하기 쉬운 조직에 속했다. 마크 핀리가 이역만리 시리아까지 날아온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솔직하게 인정하죠. 우리 힘으로는 무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폭격기 몇 소티만 지원해주시면...”
“요청은 했지만 중동 지역에 전개한 항공전력이 부족해서 대규모 지원은 쉽지 않을 거요.”
마크 핀리는 눈앞에 서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턱이 살짝 튀어나온 점을 제외하면 제법 괜찮은 미인이었다.
하나로 묶은 갈색머리가 잘 어울리는 여자의 이름은 에스라 알 호라니,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시리아 사람들이 여자라는 성별과 비교적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만장일치로 추대한 페넥폭스 시리아 지부장이다.
조악한 미국제 구식 대전차무기 하나로 15년을 넘게 침식체와 싸우면서 살아남은 전설적인 전쟁 베테랑이자, 대정화전쟁으로 와해된 자유시리아군을 재건하여 지금의 페넥폭스 시리아 지부에 이르게 만든 입지전적인 리더였다.
“리플레이서 신디케이트는 어디서 잘도 무기를 공수해오던데 천하의 미국이 이미 망해버린 조직의 잔당만큼도 못해주나요?”
“미안하게 되었지만 요즘 무기 달라는 곳이 워낙 많아서 말이오. 나름대로 급하게 재블린을 공수해서 보내줬는데 그렇게 말하면 좀 섭섭하군.”
“만든 지 50년은 된 것 같은 미사일을 보내주고 생색내는 건 좀 양심이 없지 않은가 싶네요. 그게 당신들 대신에 흘리는 피값이라면 더욱 그렇죠.”
“그 점은 참으로 유감이외다.”
일주일 전, 시리아 락까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봉기했다.
리플레이서 사태가 종결된 이후에도 끝까지 킹의 의지를 계승하기로 한 리플레이서 신디케이트의 잔당들은 시리아 현지의 테러조직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규합하여 오래 전에 역사책 속으로 사라진 IS 군대를 다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오직 정신력만을 강조하던 과거의 지하드에서 한 단계 나아가 육체적으로도 정말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게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지하드 군대는 빠르게 락까를 장악했다.
테러리스트들은 수십 년 만에 돌아온 영광스러운 승리에 도취되어 알라를 찬양하며 도시 한가운데에 제단을 쌓고 성대한 제사를 시작했다. 사람의 생명을 바쳐 그 대가로 불멸의 육신을 받는 축복, 서방에서는 리플레이서 시술이라고 부르는 인신공양의 제사였다.
제의를 통해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젊은 지원자들은 얼마든지 있었고 리플레이서 군대는 빠르게 늘어났다.
IS전쟁이 끝난 지도 벌써 20년을 훌쩍 넘겼지만 참담한 현실에 절망한 무슬림들의 분노가 만들어낸 이슬람 극단주의는 사라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이들리브의 페넥폭스 부대원들이 락까로 출동했을 때는 이미 모든 전쟁준비가 끝난 뒤였다.
심각성을 모른 채로 락까에 도착한 페넥폭스의 부대는 리플레이서 신디케이트에게서 제공받은 다양한 무기들로 중무장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게 흠신 두들겨 맞았고 간신히 사막 한 귀퉁이로 도망칠 수 있었다.
사정을 파악한 정보부가 마크 핀리 요원을 급하게 시리아로 파견했지만 마크 핀리가 아니라 제임스 본드를 보낸들 안 될 일이 될 리는 없었다.
“그래서 지원군은 보내준다고는 하오?”
“본부 말인가요? 아니면 아사드 말인가요?”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 않소.”
“카림이 다마스커스에서 사막의매 여단을 파견해주기로 했어요. 유감스럽게도 미국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지금으로썬 유일한 희망이겠네요.”
“아사드가? 사이가 별로 좋지는 않은 걸로 아는데?”
“이 바닥이 다 그런 거죠.”
물론 페넥폭스와 사이가 좋은 지역 군벌을 찾는 것은 바늘구멍을 통과한 낙타를 찾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지만 시리아 정부와 페넥폭스 시리아 지부의 관계는 유독 끔찍한 편에 속했다. 페넥폭스 시리아 지부의 실질적인 전신이 FSA(자유시리아군)이기 때문이다.
물론 십수년도 전에 끝이 나버린 내전의 이야기이긴 했다.
어쨌거나 페넥폭스와 시리아 정부의 사이는 유쾌하기 힘들었고 최근 3대 세습에 간신히 성공하여 내부적으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일 필요가 있던 시리아의 젊은 독재자 카림 알 아사드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양쪽의 부정적인 관계에도 불구하고 젊은 아사드는 페넥폭스의 위기를 좌시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FSA가 설치는 것보다 ISIL이 발호하는 상황이 더 끔찍했기 때문이다.
젊은 독재자에게 은근한 대립각을 세우던 시리아군의 원로 지휘관들조차 오래 전에 잊혔으리라 생각한 IS의 이름이 다시 들려오자 주저 없이 지원군 편성에 동의했다.
시리아 내전과 이어진 대정화전쟁에서 큰 활약을 보인 시리아군 최정예 부대인 사막의매 여단이 즉시 다마스커스에서 락까를 향해 출발했다.
하지만 아무리 시리아 정부군의 최정예부대와 역전의 페넥폭스라고 한들 전력이 너무 부족한 감이 있었다.
호라니 지부장이 지푸라기라도 붙잡겠다는 심정으로 사막 한구석에서 밥이나 축내던 마크 핀리를 만난 이유였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사드가 별 일이군... 그나저나 젊은 아사드를 이름으로 부르는걸 보니 사적으로도 각별한 사이인가 보오?”
“정보부는 친한 독재자가 없나보죠?”
“안타깝게도 독재자들은 우리와 친하게 지낼 생각이 없는 것 같더군,”
적당히 얼버무리는 그녀의 태도에 마크 핀리는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독재자와 구 반군 지도자 사이의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질척질척한 히스토리들을 그가 굳이 알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항공지원도 못주고 지원병력은 다마스커스나 로터스에서 알아서 구해오라 그딴 소리나 하고 있을 거면 고명하신 요원님은 뭐 하러 온 거죠?”
“항공 지원이 없다고는 안했는데?”
“제가 요원님 평상시부터 존경하고 있던 거 아시죠? 폭격기 보내주시는 거 맞죠?”
빠르게 태세를 전환한 호라니 지부장의 모습에 마크 핀리는 영업 미소를 지었다.
예로부터 정보요원이 미소를 짓는다는 것은 일이 아주 고약한 상황에 놓였음을 의미했는데 페넥폭스에게는 안타깝게도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에 속했다.
“아랍에미리트의 기지에서 드론으로 정밀한 정찰지원을 해줄 예정이오.”
“폭격기는요?”
“리플레이서 사태 때 입은 손실이 워낙 커서 집중적인 지원은 힘들고 썬더볼트 1개 비행대 정도가 작전에 투입될 것 같소. 저쪽이 운용하는 싸구려 드론 정도는 싹 쓸어버릴 수 있지”
“폭격기는요?”
“유감스럽지만 그 정도가 가능한 최대한의 지원일 것 같소.”
중동 지역 최대의 미군기지였던 카타르의 알 우데이드 공군기지가 최근 벌어진 리플레이서 사태로 쑥대밭이 된 이후, 이 지역에 투사 가능한 미국의 전력은 대폭 감소했다.
지상 전력들은 사태가 터지자마자 본토 방위를 위해 귀국하였고 그나마 남아 있는 항공 전력들도 리플레이서 사태 이후 갑자기 증가하기 시작한 침식재난에 대응하기 위하여 중동 전역에 흩어진 상태였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항공모함 함대들은 최근 들어 갑자기 다시 출몰하기 시작한 거대 해양 침식체들을 소탕하기 위해 호주 프론트베이를 향해 항해하고 있었다. 지금 뱃머리를 돌린들 단시일 내에 페르시아만으로 전개하기는 어려웠다.
이런 작전에 은밀하게 투입 가능한 전력인 델타세븐은 최근 관리국에서 빼돌린 정보를 바탕으로 극비리에 개발한 최신형 장비의 테스트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 실전 투입이 어려웠다.
애초에 시리아 촌구석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까지 미국보고 감당하라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주장이었다. 아무리 미국이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국가라고 하지만 대정화전쟁 이후 엉망진창이 된 세계 전체를 지켜낼 능력이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국가들은 미국에게 그 역할을 요구했다. 아마 관리국이라는 수상하기 짝이 없는 조직과 난립하는 PMC들에게로 힘이 기울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상작전에는 별로 쓸데도 없는 썬더볼트 조금 받고 떨어지라고 할 거면 요원님은 도대체 여기 왜 오신 거죠?”
“응원?”
“그딴 거 필요 없으니까 제발 나가서 죽어버리세요.”
“뭐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나가서 죽지 못할 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도움이 되니까 여기 붙어있지 않겠소?”
마크 핀리는 노골적으로 자신을 경멸하고 있는 호라니 지부장을 보고 실실 웃었다.
참을성이 많은 베테랑 투사의 속을 벅벅 긁는 것이 즐겁기도 했지만 슬슬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우리가 다른 건 몰라도 돈 하나만큼은 많아서 말이오. 지금 상황에서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을 대신 불러왔거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텅 빈 사막에서 바닥이 잠시 일렁거리더니 거대한 함선 하나가 튀어 올라왔다.
시리아 시골 구석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평생에 한 번 보기도 힘든 차원함선이었다.
“당신 지금 엄청 멋있어 보이는 거 알아요?”
“빈 말이라도 고맙소. 예산이 제법 들어갔으니 활약을 기대해보는 수밖에.”
다이브 아웃한 차원함선이 당당한 풍채를 드러내자 오늘도 메마른 밤을 보내던 페넥폭스 대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지원군은 아무리 미약해도 환영할 입장인데 하물며 차원함선이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설사 안에 아무도 타고 있지 않더라도 차원함선은 그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
“당신들이 페넥폭스인가? 늦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무사한가보군. 내 이름은 에스타로사 드 슈발리에, 조디악 나이츠 블루시프트의 단장이다. 위험에 처한 시리아 시민들을 구하러 왔다.”
그 안에 광대들이 타고 있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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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지도임
노란 네모칸으로 표시한 곳이 각각 다마스커스 / 이들리브 / 락까임
유독 턱이 매력적인 페넥폭스 시리아 지부장 에스라 알 호라니는 대전차보병 와꾸를 생각하면 될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