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평화롭다. 나이트와 유진에게 한 설득이 먹힌 것인지 나에게 쏟아지던 서류 더미들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나이트의 기물 파손 유진의 발작이 줄어든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나이트야 작전 중이니 그렇다 치고서라도 유진은 정말로 눈에 띄게 조용해졌다. 오래간만에 정시 퇴근이 가능해질 것 같아 기분 좋게 서류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 연구원들이 사무실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

 

스테일 님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아. 무슨 일이야?”

 

평소였으면 시답지 않은 일로 날 귀찮게 하지 말라면서 쫓아버렸겠지만, 지금의 나는 매우 기분이 좋다. 그러니 어지간한 일들은 웃으며 넘겨줄 수 있다.

 

서류 작업을 하느라 쓰고 있던 안경을 벗자 연구원은 내 눈치를 살피며 종이 한 장을 건넸다. 그건 요근래 연구와 실험 성과서였다. 당연하겠지만 유지의 치료로 인해 실험은 밀리게 되었고 내 멋대로 한동안 실험을 막아버렸으니 성과는 뚝 떨어져 있었다.

 

괜찮을까요? 퀸께서 아신다면...”

 

괜찮아 가서 일 봐. , 나는 오늘 일 끝나면 잠깐 나갔다 올 거니까 그리 알고.”

 

... 알겠습니다.”

 

연구원은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는 사무실을 나섰지만,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리플레이서의 최종 계획에 있어서 이 실험은 분명 중요하긴 하지만 솔직한 말로는 있으면 좋고, 없으면 다른 걸 찾으면 되니까.

 

좋아... 그럼 상태를 확인하러 가볼까?”

 

키보드를 두들기던 손가락을 털어내며 나는 실험체들이 있을 연구 병동으로 향했다. 병동 입구에서부터 풍겨오는 약품 냄새는 조금 거슬렸지만, 간만의 여유 덕분에 나는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실험실을 지나고, 연구 자료들이 보관된 자료실을 지나 두꺼운 철판과 여러 잠금장치들로 잠겨있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하얀 환자복을 입은 여자 세 명이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좋아... 잘들 있었나?”

 

“...”

 

“...”

 

“...”

 

어디 보자... 생필품은 아직 충분하고... 침구류도... 음 아직은 멀쩡하네.”

 

그녀들이 나를 경계하며 한쪽 벽면으로 등을 기댄 채 있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방안을 검사했다. 그녀들이 사용하는 생필품은 내가 들여온 것이고, 침구류 또한 연구원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바꾸라고 명령해서인지 쓰레기만 치우면 될 절도로 상태는 양호했다.

 

좋아 깨끗하군. 무기 될 만한 것도 없고.”

 

내 시선을 느낀 것인지 윤서가 움찔했지만, 딱히 자신들에게 해가 될만한 짓은 하지 않는 다는 걸 알고 있는지 대놓고 경계하지는 않았다.

 

좋아 건의 및 특이사항?”

 

“...”

 

“...”

 

...”

 

응 안경.”

 

유진이는 지금 어떤... 가요?”

 

겁먹은 와중에도 자기 친구는 걱정되는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물어오는 김소빈. 사실 이들에게 악감정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한 짓들이 있으니 무리도 아니다.

 

멀쩡하지는 않아, 전처럼 움직이려면 적어도 2주 동안은 치료에 집중해야 하니까. 그밖에 궁금하거나 건의 한 건 있나?”

 

... 없어요.”

 

좋아. 건의 밑 이상이 있으면 연구원한테 바로 말하고, 나는 이틀 뒤에 다시 검사하러 올 거야. 그럼 이만.”

 

사실 안 해도 된다. 안 해도 되는 일을 굳이 만들고 굳이 내가 처리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없어도 좋다고 했지만 있으면 좋기 때문이다. 나이트야 모르고 있지만, 이들 역시 리플레이서의 최종 계획에 필요할지도 모를 부품이다. 두 번째 일단 나는 얘들이 잘못돼서 내가 처리할 일이 늘어나는 게 싫다.

.

.

.

.

 

 

 

 

 

 

그런고로 예산을 좀만 더 주심이...”

 

진심으로 말하는 소리인가요?”

 

.”

 

리플레이서가 돈이 모자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쓸데없는데 예산을 주는 것도 아니다. 예산의 대부분은 테라사이드 계획을 위해 사용되며, 그 외 부가적인 비용들은 퀸의 심사 아래 떨어진다.

 

스테일... 킹깨서는 어지간해서는 당신의 요구를 들어주라고는 했지만, 어째서 그런 쓸데없는 일을 하는 거죠? 당신이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면 더 빨리 결과가 나와 계획을 앞당길 수도 있었을 텐데요?

 

아시지 않습니까. 연구원들도 병사들도 심지어 나이트도 그 재료들을 조금은 살살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그녀들은 떨어트린다고 해서 깨지는 도자기가 아니야. 너도 알고 있잖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공손했던 말투는 사라지고 고압적인 말투로 입을 여는 퀸. 평범한 리플레이서 단원이었다면 거품 물고 쓰러졌겠지만, 스테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 부러지지 않는 강철도 아닙니다. 지금은 그저 휴식기일 뿐입니다. 어차피 유진의 부상이 치료되는 대로 실험은 다시 재개될 겁니다.”

 

스테일... 너는 정말로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인지 모르겠어. 시종일관 진지하면서도 나이트에게는 한없이 다정하고, 부하들에게도 평판이 조금 안 좋을 뿐이지 함께 일하는 병사들에게는 존경받고 있잖아?”

 

“...”

 

대체 이런 식으로 해서 너에게 이득이 되는 부분은 뭐야?”

 

그냥 제가 편하기에 이러는 겁니다.”

 

내가 보기엔 네 시간도 예산도 쓸데없이 낭비하는 거로 보이는데?”

 

아 리플레이서 처럼 말입니까?”

 

한마디를 안 지는 군...”

 

그럼 이참에 한번은 져주십시오.”

 

추가예산 지금을 약속받고 스테일은 퀸의 방에서 나서려 하자 퀸이 그를 불러 세웠다.

 

잠깐.”

 

?”

 

그런데 조금은 궁금하네. 그렇게 나이트 뒷바라지 해주는 이유가 뭐야?”

 

뒷바라지 라뇨...”

 

내가 모를 줄 알아? 나이트의 기물 파손, 작전 실패에 따른 뒷수습, 그녀에게 해가 될만한 일들은 네가 먼저 처리해 버리잖아.”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정말로? 너희 둘은 함께 교육받고 함께 훈련받았잖아.”

 

... 따지고 보면... 저는 정상적인 인간관계는 나이트 한 명뿐이군요.”

 

“...”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귀중하신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

.

.

 

 

 

후으...”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밤바람을 맞고 있으니 그분이 참 묘해진다. 아까 전 퀸이 한 말을 몇 번이고 곱씹어 보았다.

 

그렇게 나이트 뒷바라지 해주는 이유가 뭐야?’

 

사실 인제 와서는 이유가 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나에게 있어서 나이트는 한 명뿐인 동등한 존재였다. 리플레이서 연구원들과 병사들은 나의 부하들이었고 퀸과 킹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위에 군림하는 자들이다. 간부라고는 나와 나이트 그리고 동면 되어 있는 룩이 전부인데...

 

띠리리-

 

핸드폰이 울리자 나는 담배를 담뱃갑에 넣어 으깨고 전화를 받았다.

 

어디냐?”

 

[크하하하! 이번 용병 놈들 왜 이렇게 물러 터진 거야!?]

 

전투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았는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나이트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다.

 

일은 잘 마무리한 거야?”

 

[날 뭘로 보는 거야, 당연히 완벽하게 끝냈지.]

 

그래... 잘했어. 어디야? 데리러 갈게.”

 

[? 내가 네 자식이냐 뭘 데리러 와... 아니지 작전도 끝났는데 어때 이참에 뭐라도 먹으러 갈까?]

 

너 돈도 없잖아.”

 

[네가 있잖아?]

 

이 자식 뭘 그렇게 당당하게... 뭐가 먹고 싶은데?”

 

[오래간만에 술 어때!]

 

그건 안돼.”

 

[아 왜!!]

 

이렇게 얘기하고 있을 때면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죽고 싶지 않았다.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너무 무서워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때 그녀가 나타나 주었다.

 

너 말이야 이름이 뭐냐?’

 

... 몰라 33번이라고 불리고 있어....’

 

! 멍청한 새기 자기 이름도 모르냐?’

 

... 그럼 네 이름을 알려줘.’

 

이름? 난 이름 없어.’

 

... 너도 모르잖아.’

 

멍청아, 너는 모르는 거고 나는 없는 거야!’

 

지금 생각해도 정말 유치한 대화가 아닐 수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말로 그녀가 멋있어 보였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나이트.”

 

[?]

 

보고 싶어...”

 

[... 뭐야 갑자기.]

 

지금 보러 갈게.”

 

밤거리를 혼자 걸으며 그녀에게로 향하는 길은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또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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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R 처음 떴던 게 나이트여서 억지로 키웠지만, 지금은 미운 정 빡치는 정 들어서 좋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