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카운터사이드 cs10.2 - Luppykiy의 일러스트 - pix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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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인도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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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심판.

정법의 수레바퀴는 그 사명을 품고 굴러간다.

정의로 삼라만상을 밝히고, 모든 악을 평정하기 위해.


그것은 구원.

고고한 순례자는 그 숙명을 품고 수레바퀴를 굴린다.

순례길을 뒤따르는 모든 이들을 인도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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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갑다. 대지를 물들인 피의 강에서는 생명의 뜨거움이 아닌 냉기가 느껴졌다.


차갑다. 무색의 세계를 감싼 대기에는 공허함만이 감돌았다.


그럼에도 눈을 감으면 등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이상하기도 하지. 모든 생명이 사라지고 홀로 남은 이 세계 속에서 다른 소리가 들린다니.


들릴 리가 없음에도, 웃음소리는 들으면 들을수록 선명해져간다.


주시윤은 이 웃음이 무엇인지, 왜 들려오는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자신이 듣고자 하는 한 이 웃음이 절대로 잊혀지지 않으리라는 것.


주시윤은 고개를 등 뒤로 돌렸다. 대지를 뒤덮고 있던 시체들 대신 낯익은 얼굴들이 그의 바로 뒤에 서 있었다.


주한과 연화, 구도자와 자신의 조상이었던 자들.


저들은 널 모른다, 너는 저들과 관계없다, 다 죽은 자들일 뿐이다. 권능에 가려진 마음은 계속해서 부정하려 들었다.


하지만 권능으로 영혼을 속여도, 그 결속된 의지를 속일 수는 없는 법.



여전히 거기에 계셨던 거군요.

그래. 언제나.



입으로 생각을 전하지 않아도, 주시윤과 조상들은 눈빛만으로도 대화를 끝마쳤다. 주시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주한과 연화가 걸어와 주시윤의 어깨에 손을 강하게 얹었다. 두 사람이 무언가를 말했지만 목소리는 노이즈가 껴서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주시윤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잊는다 할지라도 굴하지 않는다. 설령 이 세계 전체가 거짓이라 한들, 조상들이 날 기억해준다면 나 역시 그들을 기억할 것이기에.


그저 굳게 믿는다. 조상들이 지키고자 했던 모든 것을 위해 싸운다면, 그들 역시 나를 위해 싸워줄 것이라고.




'시윤아. 힘내렴.'







(브금반복)



듣기만 해도 마음이 뜨거워지는 말들이, 함박눈처럼 쌓여간다.


주시윤은 두 손을 꼭 모았다. 무릎이 꿇려진다.


마치 신께 기도하는 것 같은 경건한 자세를 하고, 주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눈을 감았다.


그저 가만히, 조용하게.


세계로부터 들려오는 모든 거짓된 감각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마음 너머에서 들려오는 진실의 빛을 마주한다.



"......"



그래. 이거다. 뱀은 한껏 고양된 기분을 감추지 못하며 기뻐했다.


이 죽음의 세계는 주시윤의 마음을 수렁으로 끌어내릴 것이다.


저 우주의 별들처럼 많은 세계들 사이에서, 자신이 고전할 만큼 강한 적을 상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딱 그 정도일 뿐.


세계마저도 속여낼 정도로 정교한 환상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 나의 사랑스런 아이야. 대답을-"


"아니."


"....뭐?"



당황한 나머지 뱀은 맥 빠지는 소리를 내었다. 뱀이 기대한 것과는 완전히 반대의 대답이 들려왔다.


황폐해진 땅에서도 생명이 피어나듯, 주시윤은 고개를 서서히 들어올렸다.



"미안해서 어쩌죠? 당신이 원하는 대답은 해주고 싶지 않은데."



모든 의지를 하나로 이은 자, 만물의 이치에 통달한 자가, 거짓된 세계에 고한다.


주시윤이 입에 담는 모든 말은 법정에 선 피고에게 고해지는 엄숙한 판결선언과도 같이 세계를 쥐고 뒤흔들었다.


산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천지를 가득 메웠다. 땅이 갈라지고, 널려있던 시체들은 그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언제 있었냐는 듯 스러져갔다.


그를 둘러싼 이 죽음의 세계가 스스로 무너져가고 있었다.



" 당신이 나를, 우리들을 어떤 의도로 만들었건-"



청명한 하늘과도 같은 눈동자가 핏빛 하늘을 한가득 담는다. 악을 향한 분노로 청색 눈동자가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주시윤은 구멍이 뚫린 하늘 저 너머로, 마치 뱀더러 들으라는 듯 무엇보다도 강하게 소리친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은, 우리가 정해! 네놈 따위가 아니야!!"



왼쪽 어깨의 헤일로가 금색의 성광을 흩뿌리며 회전한다.


주시윤은 왼손의 주먹을 쥐더니 격렬한 기세로 땅에 내리꽂았다. 땅이 조각나며 거대한 지진이 일어났다.


갈라진 대지로부터 빛이 흘러나왔다. 연분홍빛의 연꽃이 대지의 틈에서 그 수려함을 소박하게 피어냈다.


한 번, 두 번, 땅을 향해 주먹이 내리꽂히고, 세계가 무너지기 직전의 건물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한 송이, 두 송이, 땅에 상흔이 생겨날수록 더 많은 연꽃이 피어나 피투성이의 대지를 생명으로 물들였다.


연꽃 하나가 피어날 때마다 주시윤의 영혼에 드리워져 있던 거짓된 권능은 새벽의 안개처럼 희미해져갔다. 모든 것들이 분명하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무너져라. 무너져.


이런 거짓 투성이 환상 따위에, 무릎꿇을까보냐.


분노어린 기합소리가 하늘을 갈라 찢고, 그 주먹은 대지를 뒤틀어 새로운 세계의 밑바탕을 만들었다.


이 거짓된 세계를 부수겠다는 다짐을 주먹에 담아, 주시윤은 마지막으로 주먹을 땅에 꽂아넣었다.


뱀이 만들어낸 세계는 더 이상 그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산산조각났다. 연꽃들을 기폭제 삼은 것처럼 빛의 폭발이 일어났다.


세계를 구성하고 있던 껍데기클리포트의 파편이 난반사되는 빛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피어났던 연꽃의 꽃잎도 함께 어지러이 흩날렸다.


빛의 파도가 주시윤을 덮쳤다. 주시윤은 그저 가만히 서서 양팔을 넓게 벌렸다.


커튼에 새겨지는 파장과도 같이 몇 번의 일렁임이 일었다.


그 직후, 주시윤과 뱀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구도 그대로 세계가 다시 돌아왔다. 뱀의 클리파 차원이 두 존재를 다시 둘러쌌다.



"...말도 안돼....!! 어째서...."



아니다. 뱀은 단정지어 부정했다.


불가능하다. 그럴 리가 없다. 영혼을 빼앗아 굴복시키기 위해 '육신으로 만들어진' 주시윤을 그림자 미궁에 가둔 것은 분명 타당한 판단이었다.


그런데 그 그림자 미궁을 자력으로 찢고 나왔다? 그것도 용혈조차 깨우지 못한 애송이가?


게다가 이번에는 자신의 권능으로 만들어낸 환상마저 스스로 부숴버렸다. 아무리 주시윤이 특별하다고는 하나, 이런 성장속도는 지극히 규격 외였다.


누군가가 마치 위기 때마다 그를 옆에서 도와주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다.


위기 때마다, 도와주지 않고서야.


아니. 설마? 등골을 꿰뚫는 오싹한 예감에 뱀은 황급히 주시윤의 영혼을 꿰뚫어보았다. 그리고 뼈가 시리도록 깨달았다.


주시윤이 날뛰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창조주로서 피조물을 벌해야 한다는 권위의식 때문이었다.


그 생각 자체가 틀려먹은 것이었다. 자신이 지나치게 오만했었다.


위험하다고 생각할게 아니라, 어떻게 이렇게 강해졌는지 의문을 품었어야 했다.



"그럴수가.... 너희들이 어떻게....!?"



뱀의 시야 가운데 수천 수만명의 존재가 느껴졌다.


전사, 왕, 수도승, 학자, 용병, 노동자, 마법사, 화가, 장군, 추기경....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이자, 아이들이었던 수많은 영혼들. 철저히 도구로서 농락당하고 죽어서까지 안식을 허락받지 못한 도구들.


그들의 중심에는 주시윤의 부모였던 주한과 연화, 그리고 구도자까지. 그들 모두가 함께 뱀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떻게 너희들이, 그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이냐고. 마저 이어지지 못한 말들이 뱀의 안에서 맴돌았다.



"내가 미궁 속에서 조상들의 기억을 엿보는 동안 깨달은게 있지. 우리는 결코 잘못된 길을 걸은 것이 아니었음을.


당신이 정한 계획 안에서 스러져갔지만, 그들의 모든 선택이 전부 모여 지금의 현실을 만들어냈음을."



설마 '만들어진' 육신이 그 잠시 동안의 숙성 과정을 통해 다른 것들을 담고 있었다고?


그저 '육신으로 만들어졌을 뿐인' 주시윤에게, 숱한 죽음에도 쇠하지 않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고?


도대체 어떻게? 무엇 때문에?



"...이런 불경한 피조&#물이!! 용도를 ㄷㅏ한 쓰레기들 주제에 너희@^가-!! "



마魔의 극에 이른 자가 일갈했다. 자신의 선택이 이런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을 뱀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그랬다. 벌레처럼 들러붙는 인간들에 의해 꼴사납게 봉인당하고, 마왕들의 질서에 반기를 드는 가증스러운 이들에게 방해받았다.


이제는 자신을 위해 만들어둔 육신이 스스로의 의지를 갖고 자신의 명령에 반항하기까지 했다.


이건 신성모독이었다. 용납할 수 없다. 벌이, 아주 잔혹한 징벌이 필요했다.


세상 모든 종류의 죽음과 저주로, 존재조차 남지 않을 만큼 철저하게 말살해야만 했다.


공기가 급격하게 무거워졌다. 온갖 저주의 속삭임과 원한이 서린 독기가 한데 엉켜들어 검은 빛깔의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뱀의 대가리 위에 드리워진 광륜이 불길한 빛을 내뿜었다. 클리포트 인자의 세례를 입은 그림자는 뒤이어 한 사람의 형태를 이루어갔다.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주시윤 자신의 모습이었다. 눈은 귀기어린 붉은 빛을 띄었고, 몸은 드문드문 뱀의 비늘이 덮여 있었다.


마치 게임의 캐릭터를 조종하는 사람처럼 뱀은 또 다른 주시윤의 육체를 수호신처럼 둘러쌌다.


주시윤은 눈 앞의 자신에게서 어떠한 인간적인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뱀에게 온전히 먹히고 말았다면, 분명 저런 모습을 하고 있었으리라.


저런 것을 만들어 두고 있었으면서 자신까지 육신으로 삼으려 했단 말인가. 악신이라고 표현하기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추악함에 주시윤은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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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부속%@품들 따위가 내게 반ㄱㅣ를 들어? 너희의 창^조주에게!!!"



뱀은 그림자 육신을 움직여 주시윤에게 달려들었다. 공기가 찢어질 정도로 폭발적인 속도로 죽음이 그를 덮쳐온다.


양자간의 붉은 장검이 서로 부딪힌다. 클리포트 인자가 폭발하며, 검 끼리의 충돌음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거대한 소음이 일어났다.


멈추지 않고 둘 다 재차 검을 휘두른다. 주시윤은 횡베기로, 뱀 역시 주시윤의 맞방향에서 횡베기로 맞선다. 다시 한 번 굉음이 일었다.


베고, 찌르고, 막고, 다시 막힌다. 이번엔 오른쪽에서, 이번엔 왼쪽에서, 변주를 줘서 살짝 느리게, 다시 빠르게.


눈으로 다 따라가기조차 힘든 검무가 대기를 찢어발기는 폭풍이 된다. 두 존재가 가진 클리포트 인자의 힘은 부딪힐 때마다 상쇄되며 격렬한 융해 반응을 일으켰다.


주시윤과 뱀의 공방은 어느 한 쪽의 우세로 기울지 않았다.


그림자로 이뤄진 가짜라곤 하나, 뱀이 만든 육신 역시 주시윤이다. 둘은 검을 부딪히는 순간에조차 서로를 향한 수읽기에 들어갔다.


주시윤이 펜릴 소대의 검술을 사용하면 뱀 역시 펜릴의 검술로 응했다. 블러핑으로 반격을 노리면 그 반격을 역이용하여 반격을 노렸다.


블러핑이 통하지 않는다면, 통할 수 밖에 없는 구도를 만들 수 밖에.


다시 한 번 검이 교차되었다. 주시윤은 재빨리 손에 힘을 살짝 풀며 검을 맞댄 채 몸을 오른쪽으로 틀었다.


관성에 의해 뱀의 몸이 앞으로 살짝 쏠린다. 그 틈을 노려 주시윤은 손목에 스냅을 가해 아래에서 위로 검을 쳐올린다.


공격이 먹혀 들어간다면 뱀에게는 치명타가 될 터였다.


하지만 뱀은, 그림자 주시윤의 몸은 소름끼치는 미소를 띄고 있었다.



"-?!"



뱀은 균형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보이는 척 했을 뿐. 오히려 핏빛의 아우라가 얽힌 장검이 자신의 몸 근처까지 접근해있었다.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주시윤은 찰나의 순간, 판단을 바꾸어 뱀의 일격을 가까스로 쳐내었다. 격렬한 폭발이 일으며 주시윤은 종이인형처럼 날아가고 말았다.



"아차차....!?"


"죽어라!! 죽@어! 죽ㅇㅓ!!!"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했지만 안도할 수는 없다. 기다릴 시간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 뱀은 공세를 이어나갔다.


이번에 날아드는 것은 펜릴의 검술이었다. 수세에 몰린 주시윤은 지지 않겠다는 듯 뱀의 공세를 읽어내는 족족 즉각적으로 대응했다.


최속의 검술에는 핀포인트 공격으로, 힘으로 짓이기려 하면 똑같이 힘으로 응수했다. 합을 주고받을 때마다 스치기만 해도 죽음을 가져다줄 힘의 격류가 공간을 으스러뜨렸다.


기술도, 사고도 똑같다. 차이가 있다면 놈은 한계가 없고, 자신은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



"네 모습을 취하고 있는 지금, 너의 사고를 읽지 못할 것 같더냐?"



놈은 어디까지 읽을 수 있는 것일까. 주시윤의 그런 생각을 마치 눈에 훤히 보인다는 듯 뱀은 오만하게 내뱉었다.


그림자라지만 자신의 얼굴에 드리운 인외의 미소에서 광기가 슬금슬금 흘러나오는 것이 보기조차 거북했다.


그것은 환상과 거짓, 모방과 분석의 신.


만물을 부식시키는 아드라멜렉과 달리 뱀이 가진 것은 영혼을 부식시키는 힘과 더불어 만물을 꿰뚫어보는 전지의 힘이다.


그 무엇보다도 영민하게 상대를 속이고, 정신을 타락시키고, 철저한 분석으로 미래를 읽어낸다.


정신을 집어삼키기에 인간은 놈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조차 없다. 그런 괴물이 전략에서마저 신의 영역에 닿아있다.


아마 자신도 수 싸움으로는 놈에게서 단 한 차례도 이길 수 없을 터. 이기는 것처럼 보여도, 어느 순간 우세는 열세로 뒤바뀐다.



"난 널 원래 그랬ㅇㅓ야 할 모습으로 되돌^@려 놓겠다! 이미 패배*$한 너희들 따위가 날 이길 방법 같은 것은 없다!!!!"



뱀이 만들어낸 육신으로부터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클리포트 인자의 힘이 느껴졌다. 아니, 이 클리파 차원 전체가 뱀과 그 육신을 대표했다.


한 세계를 등에 업은 신을 정면으로 맞아 싸워야 한다. 인간 한 명에게는 너무나도 과분하다.


그래. '평범한' 인간 한 명이라면 말이다.


그는 거듭난 자, 구원으로 이끄는 인도자.


지금의 주시윤은 혼자가 아니다. 조상들의 의지를 한데 이어 하나된 구원의 길을 벼려낸 그에게 있어 이 싸움은 모두와 함께 하는 전쟁이었다.


저 베어 마땅한 악은 자신의 진정한 힘을 알지 못한다. 죽음마저도 극복하며 모든 영혼을 결속시킨, 진정 올바른 형태의 용혈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거대한 악을 눈 앞에 마주하고도 전혀 두려움에 떨지 않는다. 전륜성왕에게 악은 사멸할 대상일 뿐, 두려워해야 할 개념이 아니다.


그러니, 나에게 힘을.


어깨 위의 헤일로가 어둠 속에서 그 위광을 내비추며, 수레바퀴처럼 빠르게 회전한다. 주시윤은 장검을 양 손으로 고쳐잡고 위로 치켜들었다.


검으로부터 금색의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반딧불과도 같이 빛이 모여들며 이 붉고 어두운 클리파 차원에 한 줄기 희망을 선고했다.


뱀은 자신과 항상 같은 기술로 맞대응하며, 기술 사이에 다른 수를 미리 끼워넣고 교묘하게 공세를 유지해온다.


저 그림자 육신이 갖지 못한 '주시윤만의' 힘이라면 놈이 읽어내지 못할 터.



늑대검

무영 無影



아미타 팔상검 阿彌陀 八相劍

도솔래의상 兜率來儀相



뱀이 든 검에서 용혈이 개화하며 붉은 빛의 파도가 격류를 일으킨다. 물기둥이 쪼개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뱀의 검이 기묘한 각도로 휘둘러진다.


그에 맞서는 단 한 발의 일격으로 공간을 갈라낸다.


빛의 군세와 피의 군세가 명백한 살의를 품고 서로 격돌했다.


들리는 것은 귀를 멀게 할 정도의 파열음, 보이는 것은 공간에 상처가 남을 정도로 격렬히 일어나는 분열 반응.


두 검격이 부딪힌 자리를 중심으로 거센 에너지 폭풍이 이 차원을 통째로 짓이겨버릴 기세로 몰아쳤다.


핏빛의 기운과 신성한 빛무리가 서로 상쇄되어 아지랑이처럼 사라졌다.


힘의 우위는 주시윤 쪽으로 기울었다. 주시윤의 장검이 뱀의 검술을 파훼하고 그대로 내리쳐졌다.


뱀은 주시윤의 검을 막아낸 채로 몸에 힘을 싣고 검을 뒤틀어 그대로 반격했다.


핏빛의 힘이 화산처럼 폭발하며 주시윤을 덮친다. 갑작스럽게 들어온 맹공에 공격을 받아친 주시윤의 무릎이 꿇려졌다.



"큭!?"



역시 클리파 차원으로부터 힘을 공급받는 그림자 육신이라 이건가. 조금이라도 긴장을 놓는다면 시체가 되는 것은 뱀이 아니라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


새빨간 핏빛의 눈을 부라리며 뱀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그것의 일갈에 맞춰 그림자 주시윤의 육체도 함께 소리쳤다.



"이 신성모독자들이! 어찌하여 너희는 한 명도 빠짐없이 저항하는 것이냐! 왜 무의미함을 깨닫고도 쓰러지지 않는거야!!"



솔직히, 마냥 유리하다고는 할 수 없는 국면이다.


조상들의 힘을 한데 모았다지만, 수 만의 일생을 모아봐야 하나의 거대한 세계이자 신위에 비하면 얼마나 초라한가.


상쇄가 가능할 정도로 힘의 상성이 좋을 뿐 절대치는 뱀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 아마 측정조차 불가능하다.


정신간섭을 극복했다지만 클리파 차원의 지원을 받는 그림자 육신 앞에서 주시윤은 여전히 연약한 필멸자에 불과했다.


뱀의 말대로였다. 용혈을 이은 그 어떤 인간도 뱀이 정해놓은 운명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들의 저항은 전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끝났다. 주시윤이 가진 힘의 시조가 되는 구도자조차도 뱀에게 철저하게 유린당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자유를 위한 싸움을 그만둘 이유는 되지 못한다. 



"무의미하다고? 아니!!"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은 뱀의 공격에 정면으로 맞대응하며 주시윤 역시 지지 않고 소리쳤다.


힘에 부친 채로 핏빛의 검격을 받아내지만, 하늘처럼 맑은 눈동자 속 투쟁의 불꽃이 어느 때보다 밝게 타올랐다.


모든 희망을 이어받은 소년이, 청년으로 성장하여 거대한 악을 향해 일갈한다.



"나는, 당신이 만든 피조물 따위가, 아니야...!!!!"



구원의 수레바퀴가, 헤일로가 움직인다. 클리포트 인자를 빛의 형태로 발산하며 주시윤은 뱀의 공격을 역으로 분쇄했다.


눈 앞에 드리운 것이 절망 뿐이라 할지라도.


그럼에도 내가 저항하는 것은,


내가 당신이 희생시켜온 이들을 대신해 울부짖는 분노요,


내가 당신에게 자유를 빼앗긴 이들을 대변하는 날개이기 때문에.



"그 입 닥쳐라!!"



검붉은 피가 만들어낸 뱀의 아가리가 주시윤을 덮쳤다. 핏빛의 격류가 분쇄기처럼 소용돌이치며 공기를 오싹하게 달구었다.


덮쳐오는 격류를 향해 주시윤의 검이 한 차례 빛났다.


땅으로부터 힘을 끌어 주먹으로 내지르는 발경과도 같이, 별도의 준비 자세 없이 적을 격퇴하는 즉격의 송곳니.



늑대검

은랑 銀狼



클리포트 인자를 잔뜩 머금고 휘둘러진 검이 광선 한 줄기가 되어 하늘을 꿰뚫었고, 경로상의 모든 용혈의 힘을 종잇장처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아직이다. 뱀은 이를 악물고 주시윤의 뒤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림자 육신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인지하기조차 힘든 초속의 죽음이 주시윤의 뒷통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주시윤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저 살기와 전투 본능만으로 다음 움직임을 읽어낸다.


아마 다음 공격은 앞을 향한 공격처럼 보이지만 진짜 노리는 것은 뒤. 여유롭게 흘려내고 역공한다.


주시윤은 검으로 공격을 흘러내려고 들었지만 뱀에게 그런 움직임 정도는 다 예상된 수순이었다. 오히려 주시윤의 예상을 뛰어넘은 맹격이 그를 덮쳤다.


광기에 절은 눈동자가 악독한 증오를 머금고, 그 감정을 반영이라도 하듯 용혈이 폭발하며 분노를 검에 담아 흩뿌린다.


팔이 부러지는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거센 일격이 풍압을 일으켰다. 핏빛의 힘이 지나간 자리의 모든 것을 사멸시킬 기세로 타올랐다.


공격의 여파로 주시윤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졌다. 단번에 밀어붙이는 것이 제대로 막아내기엔 무리가 있었는지, 몸 곳곳이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그 뒤를 쏜살같이 쫓아가 뱀은 계속 피바다를 일으켜 주시윤에게 쏟아부었다.



"내가 널 만들었다! 구도자의 찌꺼기로부터! 너의 몸 속에 있는 용혈과, 널 낳고 기른 부모와, 그 부모의 부모, 대를 이어온 너의 모든 조상들까지, 전부 다 나의 작품이란 말이다!!


넌 나의 소유야! 너희 전부가 날 위해 만들어진 나만의 소유물이다!!"



그래. 뱀의 말대로, 그렇게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날 것 그대로의 진실 앞에서 주시윤은 자신이 계획의 한 부분임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면에 가려진 '의미'를 보게 되고, 그를 여전히 지켜보는 이들이 있음을 알기 전까지는.


이제는 안다. 창조물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뜻한 바를 실현할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고, 자신의 조상들은 그 자유를 위해 죽어갔다는 것을.


거듭난 자가, 자신이 아는 바를 세상을 향해 선포했다.



"네가 만들어낸 것은, 세상을 파멸시키려는 피에 미친 괴물. 그딴건 내가 아니야. 나의 이름은-"



나는 스러져간 별들의 업業을 품고 모든 마魔를 끊어내는 자.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 땅에 빚어낸 기적. 스승님의 애제자. 펜릴 소대의 일원.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자.


나의 이름.


주시윤.



클리포트 인자의 힘이, 신성한 빛이 주시윤의 몸으로부터 용솟음친다.


전륜성왕이란, 만상의 구원을 이룰 때까지 수레바퀴를 굴리는 자. 그의 구원을 향한 여정은 끝이 없고, 그의 악을 향한 정복은 끝이 없나니.


모든 저주와 멸망의 순환 속에서도 불자는 그 숭고한 의지를 품은 채 세상 가운데 피어난다.


그 장엄한 자태는 오만가지 오탁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과도 같이 단아하며, 단아한 검으로 자아내는 검격은 어둠을 비추는 빛과도 같이 장엄했다.


정갈하고 군더더기 없는 자세로 주시윤은 뱀의 그림자 육신의 팔을 향해 검으로 선을 그었다.


세계에 널리 퍼진 악을 마땅히 평정하기 위한 지고의 빛이, 주시윤이라는 존재를 촉매 삼아 클리파 차원을 불태운다.


나, 여기에 새로 피어나니.



아미타 팔상검 阿彌陀 八相劍

비람강생상 毘藍降生相



빛이 있으라, 하는 검의 궤적과 함께 깨끗하게 무언가가 잘려나가는 소리가 났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검이 직접적으로 닿지도 않았다. 공간을 뛰어넘어 접다시피 이뤄진 일격에 그림자 육신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 뒤에서 아우라처럼 감돌고 있던 뱀 역시 몸체가 크게 젖혀지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처음으로 들어보는 뱀의 고통어린 신음소리가 클리파 차원을 절규하게 만들었다.


잘려나간 그림자 육신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새 다시 재생되었지만 서슬퍼런 고통은 여전히 뱀을 괴로움에 떨게 만들었다.



"크아아, 아아ㅇㅏ아&#아악!!! 아아아*(아아%!아-!!!!"



이 내가 고통을 느껴? 봉인되었다지만 본거지와도 같은 이 클리파 차원 안에서? 그런 건 있을 수 없었다.


아니, 이 싸움 자체가 애초에 성립되면 안되는 싸움이다.


이 곳은 자신의 권능이 최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이다.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정신을 물들이는 권능에 저항할 수 없는 것이 자명한 진리.


그것이 주시윤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세계를 통째로 덮어씌우는 권능마저 깨부쉈다.


다쳐서 피를 볼 일조차 없어야 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보란 듯이 주시윤의 공격은 뱀의 영혼마저 고통에 몸서리치게 할 정도였다.



"크으으, 커억.... 이, 이 잡것들이! 되다 만 피조물들 따위가! 주제를 모르고 창조주에게 감히, 감ㅎㅣ, 감히감히감히감히감히!!!!!!!!


살려보%@내지 않겠다!! 네놈을 죽^여 그  육체는 조각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찢%#고 또 찢어, 정신은 영원*한 악&$몽 속에 쳐박아 파멸시킬 것이다!!


내게 덤빈 네놈%*들 전부, 똑>%같은 결말을 맞게 해주$#겠다!!!!!"



악에 받혀 모독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뱀을 보며, 주시윤은 두 가지 생각을 마음 속에 품었다.


하나는 측은함. 클리포트의 마왕이라는 것은 어떤 존재이기에 저리도 맹목적이며 추악한 것인지.


다른 하나는 측은함으로부터 비롯된 성스러운 분노. 셀 수조차 없을 만큼 많은 세계를 불태워온 악을 정화하고자 하는 계도의 마음.



"네가 잡것이라 부르는 내 조상들은, 타인을 불행하게 만들기 위해 살아가지 않았어.


그들은 저주받은 운명을 타고났음에도, 자신의 자식들마저 그 운명에 묶여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과 그 아이들의 인생이 세상을 빛나게 만들길 바랬어.


그들의 모든 선택이 매 순간 옳았던 것은 아닐지라도, 결코 후회하거나 자포자기하지 않았어."


그 말과 함께 기다렸다는 듯 조상들의 영혼이 주시윤의 뒤에서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입을 연 것은 주시윤의 부모인 주한과 연화였다. 그 다음은 구도자였다. 화가, 선생, 왕, 성직자, 마법사, 모든 이들이 입을 열어 주시윤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


시윤아, 시윤아, 하고 외쳐지는 이름에는 마치 어떤 신비한 힘이라도 있는 것처럼 이 클리파 차원을 뒤흔드는 성가가 되어 울려퍼졌다.


시윤아, 시윤아, 시윤아, 소년이여, 힘센 전사여, 구원자여, 희망이여, 어둠을 비추는 빛이여, 위대한 자여, 후손이여, 우리 아들,




우리 사랑하는 아이야.




주한과 연화를 비롯한 영혼들은 손을 뻗어 주시윤의 등에 손을 얹었다. 영혼에서 영혼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동앗줄이 주시윤을 어느 때보다도 단단하게 결속시켰다.


묶여 있던 이들의 소망이 그들을 이끄는 청년에게로 이어졌다. 조상들의 손이 주시윤을 앞으로 떠민다. 새롭게 연 지평 가운데 서 있는 운명은 새로운 시대를 향해 그 위대한 첫걸음을 앞으로 내딛었다.


용혈을 가졌던 이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입을 모아 말했다.





네가 원하는 바를 이루거라.





"그런 그들의 삶과 내가 살아온 나날은, 네놈이 논할 만큼 하찮은게 아니야!!"


"찢어%@죽여도 시원!^찮을 폐*#기물들이!!! 난 너의 조상이요, 너의 창조&@주다!!!!"

"그런 추악한 모습을 흉내내어 내 앞에 선 것을 넌 후회하게 될 거야."



조상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전부 기억한다.


주한과 연화가 뱀에게 먹히기 직전의 자신을 위해 희생하며 보여준 미소를 기억한다.


누군가의 죽음에 슬퍼하며 괴로워해왔던 힐데의 얼굴을, 그 슬픔을 기억한다.


기억하는 한 이 길은 순례의 여정이니. 마를 굴복시키기 위해 기억들을 검에 벼려내어, 뱀과 맞선다.


검과 검이 살의를 품고 서로를 부술 듯이 부딪힌다. 빛무리와 피바람이 다시 격돌한다. 클리포트 인자간의 충돌은 굶주림에 미친 아귀와도 같이 서로를 잡아먹으며 바스라진다.


용혈이 빛을 잡아먹고, 빛이 용혈을 찢어발겼다. 거대한 두 힘의 충돌 여파가 땅을 박살내고, 대기를 뒤틀고, 공간을 짓이겼다.


천지가 무너지고 흔들렸다. 폭풍이 공진하며 오싹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인간의 싸움이 과연 맞는 것일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두 검이 기묘한 각도로 휘어진다. 서로 똑같은 기술. 궤도를 예측할 수 없는 펜릴 소대 최속의 암살검. 필살의 어금니.



늑대검

잔월 殘月



검이 맞부딪히고 엇갈린다. 그 여파로 클리파 차원에 폭풍이 몰아친다.


싸우면 싸울수록 뱀이 뿜어내는 클리포트 인자의 농도가 무서울 정도로 짙어졌다. 공격을 막아냈는데도 거기서 흘러나오는 용혈의 저주 때문에 몸이 점점 붕괴되어간다.


새로운 힘을 각성했다 한들 주시윤은 신이 아닌 인간. 상성의 우위가 있을 뿐, 그 한계는 명확하다.


상대는 악신. 무한한 힘의 상징. 모든 순례길에 나타나 순례자의 마음을 꺾는 존재. 


하지만 주시윤은 포기하지 않는다. 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힐데가 항상 말해왔던 것처럼, 무너지고 쓰러지더라도 그저 앞으로.


어머니와 아버지, 조상들이 맡긴 소망을 따라 그저 앞으로.


역경을 뚫고 저 별을 향하여.



"같잖은 쓰레기가!! 너 역시 네 조상 놈들과 똑같은 최후를 맡게 해주마!! 내가 널 죽일 것이다! 이 세계가 널 심판할 것이다!!"



어느 때보다도 격렬하게 뱀의 주변에서 용혈이 휘몰아친다. 클리포트 인자의 농도가 크게 짙어지며 대기를 탁하게 만든다. 클리파 차원이, 세계가 주인의 살의에 공명한다.


좋다. 마라 파피야스여. 네가 세계를 부딪히겠다면, 나 역시 모든 것을 부딪힐 수 밖에.


그간 몸에 내제되어 있던 '오염된 용혈', 그리고 새롭게 깨워낸 '변종 클리포트 인자로써의 용혈'. 양 극단의 힘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두 힘이 몸을 구성하는 혈관처럼 서로 얽힌다. 한번이라도 실패하면 그대로 내부에서 터져버릴 폭탄을, 옷감을 만들듯이 재단해낸다.


헤일로의 법륜이 자리한 왼손에는 구원의 황금빛, 오른손에는 선혈의 붉은 빛. 양 손으로 검을 잡자 칼날에 두 색이 어우러진다.


금색과 적색이 섞인 빛은 만물을 품어주는 태양과도 같이 불타오르며, 클리파 차원에 그 따스하고 자애로운 영광을 흩뿌린다.


검을 들은 주시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분했다. 그대로 자신에게 덮쳐오는 용혈의 악의를 향해, 그 태양빛을 단 한 번에 쏟아붓는다.


마음 내키는대로 검을 휘두르며.





아미타 팔상검 阿彌陀 八相劍




그는 세상을 살아가며 수많은 난관을 마주하고

四門遊觀相


가려진 답을 찾기 위해 보호자의 품을 벗어났으며,

踰城出家相


숱한 고통과 절망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끝에,

雪山修道相


가르침을 받아 모든 진실을 깨우쳤으니,

鹿苑轉法相




부딪힌다. 상쇄한다. 파훼한다. 꿰뚫는다. 베어낸다. 자신의 마음이 가는 곳에 검을 휘두르며 오염된 사악을 남김없이 격멸한다.


악신의 시험에 그가 내린 답은 주시윤이라는 한 인간이 살아온 일생의 총체.


나아가 용혈을 이은 모든 인간의 염원을 응집한 결정체.


그들의 삶을 향해 바치는 경외의 찬사이자, 해방의 검무. 그 모든 것들을 일거에 쏟아낸다.


클리파 차원이 둘로 쪼개지는게 아닐까 싶은 힘의 격류가 그 여파를 남긴 채 사라져간다. 모든 저주와 죽음의 힘이 유리처럼 깨지고 바스라져 흩어진다.


그 너머로 자유가, 성스러운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른다.


뱀의 힘을 전부 소멸시킨 주시윤은 뱀에게 검을 들이밀었다. 아연실색하여 뱀은 어딘가 엇나간 듯이 입을 열었다.


이 적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내가 만들어낸 '육신' 은 이런 힘 같은건 갖고 있지 않을 텐데.


난 무엇을 만들어낸 거지?



"넌, 대체 뭐냐....?!"


"난 네놈을 파멸로 인도하고, 남겨진 이들의 운명을 구원으로 이끌 구도자다."








그러니, 마침내 열반에 이르렀도다.

雙林涅槃




새벽의 태양빛이 더욱 강하게 타오르며 타락한 세계를 비추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밝은 생명의 은혜가 주시윤과 뱀의 몸을 뒤덮어갔다.


주시윤의 검이 뱀의 영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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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슬럼프는 창작자를 죽인다....


전륜성왕 주시윤이 사용하는 검술은 부처의 일생을 그린 팔상도에서 따옴. 27 28화에 나눠서 8가지를 전부 적어봤는데 실력이 모잘라서 제대로 표현하질 못했음 ㅎㅎㅈㅅ;;


이제 봉인 너머에서 뱀술 담궜으니 현실에서도 뱀술 담궈야겠지? 그말은? 여신님이? 활약해야 한다는? 것?


이미 잊혀졌겠지만 아직 봐주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나 감사하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