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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 꼭 틀어주세요.)


 ● (내용에 어울린다고 생각함.)


 ○ (일단 나는 좋아서 올렸는데 켜지 않아도 좋을 거 같음.)


 ○ (별로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음…. 찾기 쉽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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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캘리포니아, 미국.


 어느새 석양이 지기 시작하는 시간. 거대한 태양이 가라앉듯 하늘을 붉은 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뉴 오하이오와 블루 브릿지 MK-II 두 함선이 미속으로 이동하고 있었고, 지상엔 리플레이서들의 시체와 그들이 운용했었던 기체의 잔해가 깔려있었다. 관리국이 기능을 상실한 상황에, 리플레이서 킹은 미국만 무너트리면 된다고 판단했었고 병력들을 보내서 공격했던 것.


 하지만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그들은 전투 중간에 손실을 감수하면서 급하게 후퇴했었다.


 기잉하고 문이 열리면서 뉴 오하이오 브릿지로 들어오는 에드먼드 장군.


 들어오며 크루들을 보고는 "델타세븐의 복장상태는 완전히 엉망이군." 혹은 "너희들은 옛날 방식대로 기합을 받아야 돼." 그렇게 투덜거리던 그는 경례하는 카린을 보고서 대충 인사를 받고는 짜증난단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장군이 된지 십오년이 됬지… 이젠 하룻강아지가 명령을 하는 꼴을 보게 됬군."


 '군밤머리 늙은이가….'


 그리고 함교를 대충 훑어본 에드먼드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말했다. "사람이 아무리 없다지만… 이렇게 새파랗게 젊은 소녀를 준장으로 진급시킨 것에는 뭐라 할 말이 없군."


 "……."


 "어쨌던간, 카린 준장. 어떻게 생각하는가?"


 카린은 불쾌한 표정을 숨기면서 말했다. "리플레이서들이 물러난 이유는 지금 조사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현재로서는 불명입니다… 어쩌면 지휘부가 공격을 받게 됬다거나…?"


 "그렇다면 대체 누구한테?"


 '아니, 그걸 내가 알겠나요? 네?'


 꼿꼿이 서있는 카린을 보고서 에드먼드 장군이 말했다. "관리국은 지금 시체랑 다를 게 없어! 우리 때문에 연명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누가 공격했다고 생각하는가? 응? 이런 상황에 리플레이서 놈들을 누가 공격했다는 거지? 생각은 하고 말하나?"


 "…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그것 말고는 다른 가능성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왜 저들은 자신들이 궤도에 위치시킨 오비탈 베이스에서 후퇴했었던 것이지? 리플레이서들은 테러리스트 아니었던가? 어차피 리플레이서 킹만 살아있다면 활동을 멈추지 않을 녀석들이 지금 상황에서 궤도기지를 포기한다는 결정을 선택할 메리트가 있겠나?"

 "그건…."


 로스트 쉽들을 지구 각지에 꽂았던 테라사이드 사태 초기에 리플레이서는 오비탈 베이스를 띄워놓곤 작전지휘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거기서 모두 물러났다고 들은 것이다. 즉, 리플레이서들은 이후의 전쟁 자체를 포기한 것과처럼 보였다.


 그래서 문제였던 것이다.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흥… 내가 모르는 어떤 숨겨진 재능이 있는지 봤더니…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여자애였군."


 '아니 이 녀석이…?! 자기도 모르면서?'


 카린은 발끈하며 짜증나는 표정을 지었지만, 어쨌건 에드먼드 장군은 대충 몸을 돌리며 말했다.


 "어쨌거나 수고했네, 카린 준장. 경계를 늦추지 말도록."

 "네!"


 에드먼드가 나가는 모습을 보고는, 카린은 땅을 쾅 발로 찼었다. 그리고 함선의 바닥이 찌그러졌다….


 "아… 저… 준장님?" 오퍼레이터가 머뭇거리며 카린을 불렀다.


 "뭐죠?"

 "그… 아까전부터 이온 캐논에서 어떤 연락조차 없습니다… 이상하네요."

 "리플레이서는 모두 후퇴했었는데…?"


 무언가 불길한 느낌을 받으며, 카린은 왠지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질 못했다.


 몇 시간 전….


 모두와 함께 저녁을 먹고서 코핀 컴퍼니의 쉘터에 있는 자신의 방까지 돌아온 한솔.


 목욕을 끝내고 주스를 까서 왼손으로 잡고 마시면서, 오른손으로는 책상에 놓은 책을 넘기며 읽고 있었다. 몇 번이나 읽었던 아서리안 테일. 책상 옆에는 플란타게넷과 앙쥬 가문의 문양이 그려진 방패를 들고 있는 기사의 피규어가 몇 개 있었고, 책장 위에는 역사서가 몇 개 꽂혀 있다. 몇 일 전에 관리자가 선물해준 것이었다.


 그렇게 침묵하며 한동안 책을 읽던 청년은, 내용에 집중이 되질 않아 다른 생각만을 했다.


 '나는 애초에 뭐가 되고 싶었던 거지?'


 어렸을 때엔 단지 갑옷을 입고 긴 망토를 두른 그것이, 마치 강철인간처럼 보여 멋지다고 생각했다.


 어떤 약점조차 없어, 단지 막을 수 없는 힘의 화신처럼 적을 부수고 죽이는 그런 냉철한 이성의 역신. 다만 기사라는 것의 정의는 기사도를 지키는 걸로 부여되는 정체성이 아니던가?


 에딜 테오도르 레온 고티어에 의해 정의되진 기사도의 십계명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교회의 가르침을 존중할 것.

 둘째, 교회를 보호할 것.

 셋째, 약자에게 존중과 보호를 베풀 것.

 넷째, 모국을 사랑할 것.

 다섯째, 적에게 등을 보이지 말 것.

 여섯째, 이교도와 무자비한 전쟁을 벌여야만 할 것.

 일곱째, 봉건적 의무를 지킬 것.

 아홉째, 재물을 타인에 베풀 것.

 열째, 선의 수호자가 되어 부정한 악과 싸울 것.


 하지만 이 목록은 이미 기사가 멸종한 십구 세기 말에 쓰여졌던 것이었다. 중세 시대에는 딱히 이런 규율조차 있지 않았으며, 한 술 더 떠, 이것이 토마스 말로리가 썼었던 원탁의 기사에 대한 정의다: Also Merlin made the Round Table in tokening of roundness of the world, for by the Round Table is the world signified by right, for all the world, Christian and heathen, repair unto the Round Table.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은: 애초 종교에 대한 제한이 없었다.

 전에 읽었지만 기억나지 않아, 다시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한솔이었다.


 애초 기사라는 것은 무엇인가?


 자비를 베푸는 존재인가, 자비가 없이 싸우는 존재인가?

 교회에 헌신하는 존재인가, 교회에 헌신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인가?

 이교도를 적대하는 존재인가, 이교도와 함께 적에 대항하는 존재인가?


 책을 덮으면서, 한솔은 갑자기 화난 눈빛을 지었다.


 '이딴 것이 지금 중요한가?'


 그는 자신의 눈에서 이미 초록색 격노의 불길이 퍼지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애초에 이 세계에 기사로서 존재하기 위해선, 그는 살아있는 이상 싸움의 역할을 맡아야 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기사에게 부여되는 기대가 아니던가.'


 '잘 싸우지도 못할 기사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기사라는 정체성은 애초 살해자를 포함하여 완성되는 거다. 그게 아니라면, 애초에 그 정체성이 사회에서 성립되질 않는다는 것. 반면, 이건 달리 생각하면 무언가를 죽임으로 자신 스스로가 증명되는 그런 자아였다.


 예로: 과거 나는 기사였다; 지금 나는 기사이다. 이런 정체성을 얻기 위해서는, 기사에 걸맞는 업적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마치….


 용을 죽이듯이.


 다만 이미 펜드래건 귀부인이 자길 한솔 경이라며 기사라고 불러주는 와중, 진짜 기사가 되고 싶다면서 굳이 죽일 괴물들을 쫓을 이유가 있겠나? 마치 아이 같다, 허례허식에 매달리고는. 진짜 중요한 것은….


 절대 아군 말고, 오직 적들만 전부 죽여버리는 것이 아니던가.


 "…모두 죽여버린다면, 그걸로 평화가 오겠지."


 퀴에투스를 든 뒤, 한솔은 뭔가가… 바뀌었다. 이상하게 변하였다.


 "또한 얼마나 강한 적이 오건, 죽여야만 한다. 뭐가 나타나도…!"


 질서는 힘으로부터. 그리고 평화는 오직 강자가 부정을 하지 않을 때에 발생한다. 그렇다면 정의라는 것은 무엇인가? 선은 실용적인 의미에서 남을 돕는 것이었고, 그에 의해 정확하게 전문적인 기술과 이해가 요구된다. 사람들에 먹을 것과 재울 곳을 주기 위해서는 농사일을 알고, 건축일을 알아야만 진정으로 선을 베풀 수가 있듯.


 그것이 바로 사회다. 그것이 바로 국가다. 사람들이 서로 돕는 집단이자 형태이다.


 그렇다면 악은? 그의 반대이다. 악이 애초 선의 반대로서 정의됬듯. 마치 침식체와 같은….


 …존재 자체부터 없어져야 하는 대상이다.


 "……."


 남자의 심장엔, 오직 반발심과 적대감이 매우 거센 불길처럼 몰아쳤다.


 검은 악마를 보고 두려움을 억지로 참으면서 스스로를 격려하는 용기를 품은 게 아닌….


 보다 과격하고 극단적인, 지나칠 정도로 공격적인 무언가가 거기에 있었다. 마치, 화신적 존재의 의지가 물질적인 인간의 신체를 물리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직접적인 도구처럼 취급하듯.


 캔을 그냥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리고 본 거울엔….


 "……?"


 자신도 몰랐다.


 인간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녹빛의 증오에 무한히 불타오르는 눈빛에.


 한솔은 고개를 털었다.


 "잘못 본 건가…?"


 평소대로의 자신으로 돌아와있다.


 "……." 한솔은 침묵하더니 책을 덮어서 책장에 넣곤 중얼거렸다. "피곤해서 그런 거야."


 그리고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얼마나 지난 것일까.


 갑자기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아, 네!" 그렇게 말하며 방문을 여는 한솔.


 치나츠가, 아니, 치나츠가 아닌 머리칼이 하얀 오로치가 비스듬히 서서 머리장식을 고치다 자신을 보았다.


 "잠시 괜찮겠느냐?"


 "어… 치나츠 씨가 아니라, 오로치 님이죠? 무슨 일이신지…."

 "펜드래건의 어린 딸이 말하더구나. 네녀석이 그 검을 쓸 수 있다."


 그녀는 벽에 기대어 둔 퀴에투스를 힐긋 보곤 말하였다. "따라오너라. 네녀석도 들어야만 할 이야기가 있어."


 오로치는 손을 잡고서 그냥 끌고갔다….


 거대한 책장에 각 문화권의 언어로 적혀졌던 책들이 빼곡히 놓인 어두컴컴한 방에, 낡은 전구는 미약한 불빛을 비추고 있다. 방의 분위기 때문인 걸까, 왠지 한솔은 취조 받는 인상을 느꼈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차를 엘리자베스가 눈을 감으며 음미하고 있었고, 호라이즌 또한 뚱한 표정으로 와인잔에 윤활유를 담아놓고 마시고 있다.


 "이 방은 대체?"


 이미 오래동안 코핀 컴퍼니의 지하 쉘터에서 지낸 한솔이었지만, 이런 서재가 있는지도 몰랐다. 오로치가 대답했다. "네녀석의 사장에게 부탁했지. 그러더니 흔쾌히 들어줬다."


 "저…" 엘리자베스가 물었다. "혹시 치나츠 씨는…?"


 "그 아이는 지금 잠들어 있어. 무언가 할 말이 있느냐?"

 "아닙니다, 단지…."


 오로치가 한솔에게 말하였다. "어쨌건, 저쪽에 앉거라."


 그리고 한솔은 호라이즌의 옆 자리에 어색하게 앉았다. 그녀는 지루한지 턱을 괴면서 한솔을 보다 와인잔을 잡고는 부드럽게 향하며 물었다. "마시겠습니까?"


 "아, 아뇨…. 사람은 그런 거 마실 수 없어요."

 "농담입니다, 휴먼."


 그리고는 쭉 들이키는 호라이즌.


 오로치가 말하였다. "너희 사장이라 불린 남자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더구나, 음."


 그리곤 길다란 하얀 손가락을 뻗어 주르륵 책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런 고서들은 대체 어디서 모은 건지? 어쨌거나 첩은 과거 마왕들과 함께 싸웠던 고대종들의 근황을 찾으려고 하였다."


 리사가 슬픈 눈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젠 당신 빼고 아무도 없습니다, 오로치."


 "시무르그도 남았다고 할 수 있잖느냐?"


 호라이즌이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요괴, 안타깝지만 저는 당신이 알고 지내던 것이 아닙니다."


 "정신은 달라도, 네녀석에겐 힘이 깃들어 있어."


 오로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렇지, 시무르그는 혼자서 힘들었겠지."


 "……."

 "모두 타락하고, 사라지고, 죽어버릴 때에… 그 녀석은 혼자 최초의 대마왕인 앙골모아와 싸우면서 끝내 스스로를 희생했어."


 숙연한 침묵의 가운데, 그녀가 크흠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렇지만 첩도 다시 한 번 인간들하고 싸울 것을 다짐하였다."


 "네녀석이 말한 대로 남은 고대종은 첩 뿐….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 현세의 인간들은 강대한 힘을 갖고 있지 않느냐?"


 옛날과 다르게, 그녀는 인간들의 힘을 인정했던 것이다.


 어쩌면 단순히 그들의 힘 뿐만이 아니라, 지혜와 용기도.


 엘리자베스가 마시던 차를 놓았다. "마왕들을 막기에는 부족할지 모릅니다."


 "호오?"

 "게다가 급한 것은 마왕이 아닌 리플레이서라고 생각해요. 우릴 언제 공격할지 모릅니다."


 오로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마왕 녀석들이 더욱 빠르게 움직이겠지."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첩도, 나나하라의 당주도 바람에게서 운명을 들을 수 있다. 마왕들은 곧 움직인다… 아주 빨리."


 "설마… 가아그셰블라가?"


 오로치는 고개를 저었다.


 "혼돈의 마왕 뿐만이 아니다. 옥좌에 앉은 지옥의 어린 마왕과, 순백의 타천사 둘도 동맹을 맺었지."


 "옥좌에 앉았던…? 순백의 타천사? 설마…?"


 엘리자베스도 지난 번에 둘을 봤다. 관리자의 타이탄과 대화하던 의자에 앉은 아이와.


 …무시무시한 가아그셰블라조차 말로 협박하여 쫓은, 광기의 치천사.


 호라이즌이 물었다. "우릴 부른 이유가 정확히 뭡니까, 요괴?"


 "물어보자, 마왕들이 나선다면 누가 그들을 막을 수 있을까?"


 "그야, 관리자와 당신, 유빈이란 휴먼하고, 펜드래건… 방금 불러왔던 한솔. 마지막엔 제가 되겠군요."


 "오야?" 의외란 듯한 표정의 오로치. "녀석들은 일반 침식체와 달라. 실제로는 여기에 있는 꼬마애 뿐일테다."


 '…….'


 호라이즌이 말했다. "의외군요. 성수라고 불린 당신 자신조차 마왕하고 비등한 수준으로 치지 않는 것입니까?"


 "과거, 첩은 용과 함께 주술하고 마법으로 그녀들에 맞섰단다. 지금 펜드래건은 꽤나 잘 날 수 있긴 해도: 그 녀석 정도의 힘이 없다. 무슨 말인지 아느냐?"


 "결국 힘이 부족하단 말이군요."


 "그러하다! 애초 죽이지를 못한다면 무슨 공격이 의미가 있느냐? 사장이란 남자가 명령하는 철덩이도 지금 상태로는 마왕들을 막지 못해!"


 신성을 취했던 고대종들의 무리에서도, 오로치는 테크니션에 가까웠다. 그나마 에델이나 세라펠은 순탄히 상대할 수 있을지 몰라도, 몸만 무식하게 강한 로자리아 같은 마왕을 상대론 상성이 맞질 않는 것이다.


 하지만 대항할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에델이 톡 쳤더니 몸의 일부가 녹을 정도의 괴랄한 힘을 가지는 장검 퀴에투스가 있었으니까.


 "……." 한솔은 조용히 얘기를 들으며 모두를 둘러봤다.


 당연히, 자신이 모두의 창인 것이다.


 리사하고 호라이즌, 오로치와 눈을 마주치면 그녀들도 전부 그걸 눈빛으로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로치가 말하였다. "첩이 설명하겠다. 잘 듣는 게 좋아. 네녀석들이 앞으로 싸울 상대다."


 그녀는 과거의 경험을 더듬으면서 말했다.


 "첫째로 아스모데우스다. 녀석은 강대한 화염 마법과 함께 검술에 능하지. 옥좌에서 일어나며 본심을 다할 때에는 이길 수 없을 터이니 주의하는 것이 좋아."


 "둘째로 가아그셰블라다. 셋 중에서 힘은 제일 약하나, 간사하고 교활하여 항상 몇 수 앞을 보는 녀석이다. 이겼다고 생각되면 절대 방심하지 마라."


 "셋째로 치천사 세라펠이다. 로자리아 녀석처럼 단순하지만 반대로 기술의 종류는 많으며 예측도 어렵지. 녀석이 지옥을 다룰 때는 주의하는 것이 좋아."


 '…지옥을 다룬다?' 한솔은 그때 그 말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질 못하였다.


 "펜드래건의 어린 딸아."

 "네?"


 "네녀석이 신성을 계승했다 쳐도, 저 마왕들 중 하나라도 이길 수 있어 보이느냐?"

 "……."


 잠시 침묵하던 엘리자베스가 답하였다. "모릅니다."


 "힘을 갈고 닦는다면, 지식의 마왕 정도는 처치할 수 있겠지."

 "…그런가요?"


 예상했던 것과 달리 높은 평가였다. 오로치가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로자리아와 싸우면 도망쳐라."


 "그 여자애가 그렇게나 강한가요?"

 "그래. 전성기의 첩과 용이 함께 덤볐어도 겨우 막아내는 정도였으니까. 다만…" 오로치가 힐긋 한솔을 봤다. "저 남자가 널 도운다면 이길지 모르지."


 그녀가 말했다. "한솔."


 "네?"


 "이쪽 세계에는 클리포트 게임이란 것이 없다. 그럼에도 숱한 마왕들을 처치하고 쫓아냈지. 바로 과거에도 첩과 같은 고대종과 네녀석이 가진 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란다."


 '…클리포트 게임?'


 오로치는 관리자의 고서들을 보고 다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했었지만, 한솔은 아직 알지 못했다.


 그리고 오로치는 한솔의 어깨를 꽉 쥐었다. "부탁한다." 진지한 표정으로 눈동자를 마주치는 그녀의 모습은 일본의 여신처럼 느껴졌다.


 "……."


 한솔은 날카로운 눈빛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좋은 눈빛이야. 마치 걔가 떠오르는구나." 오로치는 피식 웃곤, 옆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말하였다. "좋다, 가도 좋아. 자고 있었는데 억지로 깨워서 미안하다."


 "후우…."


 한숨을 쉬면서 일어나는 호라이즌, 또한 자신.


 호라이즌이 말했다. "방금 얻은 정보들은 사고처리 기관에다 반영하죠. 그럼." 그리고 그녀의 뒤를 따라 조용히 가려는 한솔.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할 때, 오로치가 다시 말하였다. "소년."


 "네?"


 "아니… 아무것도 아냐. 돌아가 보거라."


 한솔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럼, 좋은 밤 되세요." 오로치가 대답했다. "네녀석도."


 리사는 오로치와 무언가 더 말해야 할 게 있는지, 그대로 앉아 차를 따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고개를 살짝 숙이며 문을 닫는 한솔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마왕들. 고대종. 역사 이전부터 싸워왔던 그들, 또한 다시 반복되는 위기. 그 중심에 자기가 서있단 게 자각된다.


 다음 날.


 대충 씻고서 안경을 쓰며 방문을 열었던 한솔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미나토와 마사키를 보았다.


 지루한 표정을 지으며 서있던 마사키. 한솔을 보고 손을 들면서 인사했다. "요."


 "어… 안녕."

 "사내식당에서 아침 같이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늦게 나오더군."


 "문 밖에서 부르지 그랬어? 그냥 평소처럼 천천히 하고 있었지."


 마사키는 옆의 미나토를 엄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얘가 자는지도 모르는데 깨우면 민폐라고 하잖아."


 "그럼, 가자."


 그렇게 말하고 등을 휙 돌리며 걷는 마사키. 미나토가 옆에서 물었다.


 "저, 혹시 한솔 씨는 혼자 드시고 싶으셨나요?"


 "아냐. 미나토 씨랑 쟤랑 같이 먹어도 좋아."


 "그렇군요. 그럼 가죠. 카레 나온다길래 엄청 기대해서요."


 그러자 한솔은 팔짱을 끼면서 생각햇다. '사실 코핀은 카레만 엄청 나오는데… 맛도 그냥 평범한 편이고.'


 셋은 대충 레나가 떠주는 카레를 받고 앉아서 먹으려고 했었는데, 구석에 혼자 앉아서 먹던 아키가 보였다. 한솔이 물었다. "우리 저기에 앉아서 같이 먹을까?"


 "그러죠, 뭐."

 "상관없어."


 그리고 아키와 맞은 편에 한솔이 먼저 앉았고, 한솔의 옆에 미나토가, 마사키는 슬쩍 보더니 미나토의 옆에 앉았었다. 미나토가 팔꿈치로 마사키를 툭 치면서 속삭이듯 말했다. "야, 왜 여기 앉아? 아키 옆에 앉아." 그러자 마사키가 말했다. "네가 가서 앉아. 내가 옆에 앉으면 부담스러워할 걸."


 미나토는 말없이 조용히 일어나서 아키의 옆에 앉았고, 마사키는 다시 일어나서 한솔의 옆에 앉았다.


 '…….'


 혼자서 어색하게 우물거리며 카레밥을 씹던 아키는 그대로 한숨을 쉬었다.


 '후우… 아침부터.'


 그런 아키를 보고 쓴웃음을 지으면서 한솔이 물었다. "아, 아하하… 아침부터 카레 먹는 건 역시 뭔가 별로지?"


 그러자 맞은 편에 앉았던 미나토가 말했다. "어… 아뇨, 괜찮네요. 한국에서 만든 카레는 뭔가 특이한 맛이 있네요. 나쁘진 않아요."


 "…아, 그래? 다행이네."


 아키한테 말했는데.


 뭐 괜찮은가.


 어쨌건 아키에게 다시 물어보는 한솔. "저기, 아키… 요즘 어때? 표정이 어두워보이는데."


 "네? 그렇게 보여요?"

 "아… 응. 아니라면 미안."

 "……."


 아키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물었다. "저기 혹시… 한솔 선배. 혹시 이 민서란 아이 아세요?"


 "민서라고?"

 "네. 저와 같은 카운터고… 보라색 트윈테일 머리를 했고, 고딕 느낌으로 옷을 입고 다닌 애였는데…."

 "…그렇게 특이한 애라면 한 번 보고 잊을 수도 없을텐데…."


 한솔은 잠시 팔짱을 끼며 생각을 하다가 대답했다. "미안, 전혀 모르겠어."


 "역시…."


 그러자 옆에 앉았던 미나토가 말했다. "그러고보니 아키 너, 지난 번에 그 민서 씨를 찾겠다며 한국까지 가겠다고 했었잖아? 만나지 못한 거였어?"


 "응…."


 마사키는 다리를 꼬면서 말했다. "뭐야, 연락처가 아예 끊긴 거야?"


 "전화해도 받질 않았어요. 옛날에 살고 있던 집조차… 가봤더니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거, 그냥 죽은 거 아냐?' 시니컬한 성격인 마사키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굳이 입으로 뱉진 않았다.


 결국 카레를 먹다 말고 숟갈을 그냥 놓으면서, 눈길을 밑으로 깔고 말하는 아키. "저… 마사키 씨는 오오가미 흑막조를 만들었잖아요?"


 "그게 뭐가?"


 "어렸을 때부터 그걸 보고 정말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어느날 제가 카운터가 되었을때… 저도 왠지 비밀결사 같은 것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바보 같아."


 미나토가 주의를 주었다. "야!"


 아키는 어쨌건 말을 이었다. "아, 아하하… 어쨌건, 프리덤 라이더즈라고…."


 "……."


 "저도 카운터가 됬으니까 이제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얼마나 슬프거나 힘들어도 힘을 주면 좋겠다고… 힘내서 살다보면 언젠가 할 수 있다고…. 그래서, 민서에게 그런 것을 해보지는 않겠냐고 얘기를 했어요."


 "호오…."


 "하지만 민서는 바로 사라졌어요. 집에 무슨 일이 생겼다고… 제가 전화로 프리덤 라이더즈 얘기를 꺼낼 때마다 피했어요. 말을 돌리거나, 그 얘기는 하지 말자고… 그러다 어느날 전화도 되지 않고… 완전히 사라졌어요."


 한솔이 요구르트를 까면서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게다가 민서란 애가 살던 집에는 더이상 아무도 없다고 했었잖아? 그게 무슨 말이야? 거기에 민서의 가족이라던가 없었어?"


 "…네. 정말로 아무도 없었어요."

 "흐음…."


 밥을 다 먹은 한솔은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사장님께 여쭤보는 것이 어때? 뭐든 아시니까. 혹시라도 물어보는 것이 낫지 않나?"


 "네?"

 "이런 삼류 회사 사장치곤 수상할 정도로 정보력이 넓지 않아? 지난 번에 극비로 움직이던 카린이란 사람의 계획도 알고서 바로 출동한 적도 있었고. 거기다가 좋은 분이니까, 나중에 시간 난다면 알아봐 주실지도 모르지."


 한솔은 다른 둘을 힐긋 보았다. 자신들이 얘기하는 사이에 둘도 다먹은 것 같았다. 한솔은 대충 일어나며 말했다. "어쨌건, 내가 대신 사장님께 민서라는 애가 어딨는지 물어볼께."


 아키는 머뭇거리며 한솔을 보았지만, 오른쪽 어깨 위로 손을 올리며 흔드는 그의 뒷모습을 보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단지 밥을 먹고 난 뒤에도 우두커니 자리에 앉아 고민하고 있을 뿐이었다.


 밥을 다 먹은 한솔은 게임을 같이 하지 않겠냐는 마사키의 권유에, 자신은 아침마다 검을 휘두르는 연습을 한다면서 사양했다. 그리고 자신이 맨날 죽도를 휘두르던 곳으로 가던 한솔은, 계단을 밟아 올라갈 때마다 탁탁치는 소리가 크게 울리는 것을 들었다.


 치후유가 안쪽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다.


 '어? 치후유 씨… 잠깐….'


 힐데의 제자인 한솔은 보는 것만으로 상대를 가늠할 정도의 실력은 있었다.


 소리를 내지 않고 가만히 멈춰서, 치후유의 동작과 그녀의 칼날이 향하는 부분을 보던 그는 팔짱을 끼면서 눈을 날카롭게 뜨곤 집중했다.


 '흐음… 목을 그렇게 치나? 투박한 움직임이지만 안정적인 자세라고 할 수 있어.'


 '저렇게 크게 휘두르는데 손목만을 사용하다니? 혹시 특정 침식체를 상대로 쓰는 것인가?'


 '오, 저건 확실히 좋은 찌르기야. 눈으로 보지도 않고서 상대의 심장이 위치한 곳에 정확히 찌르고 있어. 대단한데….'


 땀을 흘리며 계속 검을 휘두르던 치후유는 한솔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몸을 멈췄다. 그리고 손등으로 이마를 닦으면서 한솔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거기 계셨습니까?"

 "응? 아, 방금 전부터?"


 치후유는 왠지 장난기어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조용히 저의 미숙한 실력을 엿보시다니… 매우 부끄럽군요."


 "아, 아냐! 딱히 그런 의도는 없었어. 기분 나빴다면 미안!"


 눈을 감고 가만히 심호흡을 하던 치후유가 말했다. "한솔 공, 혹시 대련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한솔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무 죽도나 쥐었다.


 한솔은 죽도를 휘둘러보곤 말했다. "좋아… 이걸로 대충 괜찮을 것 같군."


 치후유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때 이후, 한 번 싸워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한솔 공의 검술을 저에게 보여주시길."


 둘은 죽도를 들며 서로를 마주보고 원을 그리듯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다가, 치후유가 먼저 뛰쳐나가듯 발을 내딛고선, 죽도로 베어가르듯 휘둘러냈다. 한솔은 검을 세워서 잡고 있었던 오른손을 위쪽으로 올리며 거꾸로 밑을 향하게 하여 검을 검으로 막았다.


 '뭐지 이거… 발도술?'


 한솔의 몸에 흔들림이 있었던 것을 보았던 치후유는, 빠르게 왼팔을 품으로 넣으며 검과 그것을 쥔 오른손을 그대로 당겼다가 밀어내듯 찔렀다.


 '치, 칫!'


 그리고 또 막았다.


 그것은 감이 아니라, 방금 전에 심장을 정확히 찔렀던 치후유의 움직임을 관찰했기에 예측할 수 있었던 행동이었다. 자신의 심장을 향해서 찔러넣은 칼끝을 칼날을 세워서 똑같이 쳐내었던 것.


 '……!' 치후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후 날카롭게 한솔을 노려봤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검의 길만 걸어왔었던 그녀. 어느 순간부터 그녀 본인조차 자기 자신이 휘두르는 검격을 눈으로 쫓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절대로 자만하지 않았다.


 '미약했던 내가 이 정도나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더욱 빠르고 강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


 그녀는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였다. 계속된 연습을 통해서 완벽한 움직임을 갈고 닦아, 상대가 방해할 빈틈이 없도록 연계하며, 그리고 자신의 흐름에 따라올 수 없는 적을… 주의 깊게 보면서 마무리를 짓는다.


 하지만 이 남자는… 방금 자신의 찌르기를 정확히 막은 것이다.


 공격이 막혔던 치후유는 생각했다. '역시… 이 남자는 강하다!'


 한솔은 뒤로 발을 떼면서 떨쳐내듯 칼날을 휘둘렀다. 치후유는 굳이 몸을 넣으려고 하지 않고, 납도하듯 허리춤에 놓으면서 몸을 뒤로 뺐다. 다시 서로를 보는 두 사람. 치후유는 몸을 숙이며 들이밀다가 갑자기 발로 한솔을 찼다. 그걸 보고서 급히 종아리를 올려 막은 한솔.


 "잠깐, 우리 발 써도 되는 거였어?"

 "침식체를 상대하듯 진심으로 상대해 주십시오, 한솔 공."


 '그렇단 것이지…!'


 한솔은 그대로 몸 자체를 아예 돌렸다.


 그것은 신체를 태풍처럼 회전해 침식체들을 베었던, 스승 힐데가 쓰던 블레이드 스톰하고 비슷했었지만, 실질적인 기술보단 기본적인 움직임에 지나지 않았다.


 어쨌거나 준비동작이 엄청나게 컸고, 치후유는 그 틈을 봐 빠르게 왼쪽 허리로부터 검을 뽑아내듯 한솔의 허리를 베어내려 했었다. 이미 납도하듯 검의 끝을 뒤쪽으로 향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기에 찌를 수 없는 상태였다.


 사실, 그녀의 그런 동작을 관찰했기에 한솔 또한 몸을 팽이처럼 돌리는 리스크를 감수했던 것이지만….


 팍, 하고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지금 공격도 서로의 칼날에 부딪쳐 막혀지긴 했지만, 문제는… 한솔은 몸을 돌리며 힘을 싣어서 검을 내리쳤었다. 한 손으로 쥔 죽도로는 그걸 받아내질 못했던 치후유.


 한솔은 검을 쥔 손을 가슴에 대고서, 몸을 던지듯 숄더 태클을 날렸다!


 그리고 바로 쫓아가 양손을 올리며 내리치려고 했었던 한솔이었지만, 바닥에 쓰러지듯 밀려나는 치후유는 오히려 검을 놓치지 않은 채, 몸을 뒤로 구르고는 다시 일어서서 자세를 고쳤다.


 "…굉장히 묵직한 공격이군요, 다시 봤습니다."

 "아직 서로 본 실력은 내지 않은 것 같은데…."


 한솔은 그렇게 말하며 다리 사이의 간격을 만들곤, 게처럼 빠르게 발로 스텝을 밟으며 펜싱을 하듯이 치후유를 향해서 칼끝을 찔러냈다. 아니, 사실 그게 아니었다. 치후유를 맞추려는 것보다도, 치후유 바로 앞의 공간을 향해 거리를 조절하며 압박을 하는 듯이 보였다.


 '뭐지…? 한솔 공은 어디를 노리고 있는 건가?'


 가슴? 배? 어깨? 아니면 팔? 아니면 단순히 거리를 벌려내려고 하는 건가? 하지만 그럴 필요가…?


 어쨌건 힘에서 밀렸다.


 그게 중요한 거다. 한솔은 최소 A 급의 카운터다. D 급 카운터인 자신과는, 기술에선 그렇다고 쳐도 힘에서는 매우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당연히, 한솔의 찌르기를 받아쳐낼 자신이 없었던 치후유.


 단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었다.


 그런데도 계속 거리를 서서히 좁히는 한솔. 치후유는 검을 비스듬히 잡은 오른손을 허리에 대고는, 동시에 왼손을 교차하여 시선의 앞으로 대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것이 당신의 전력입니까, 한솔 공?"


 "……."


 한솔은 단지 치후유의 눈을 노려보며 아무런 말도 하질 않았다. 단지 벌처럼 계속 위협하듯 찔렀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문답무용!'


 사실 지금 한솔이 쓰는 기술은, 얼핏 보기에는 위협적이지만 실제로는 헛점투성이다. 상대를 압박하며 부담감을 가한다는 방법이나, 첫째로 팔을 쓸데없이 휘두르며 힘을 지나치게 소모하고, 둘째로….

 이런 동작에서 실질적인 공격은, 단지 팔을 밀어넣는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찌르기 위해 검을 몸으로 당기는 그 순간은 아니다. 만일 그때에 상대의 검을 쳐낸다면 공격을 멈추거나, 자세를 무너트리거나 심지어 무기를 놓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치후유는 한솔의 미묘한 패턴을 읽어냈다.


 '둘, 둘, 셋. 둘, 둘, 셋…!' 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찔러내는 검격을 소리로서, 몸으로서 느꼈었던 치후유는, 눈을 빛내며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뭐?!"


 한솔은 그때 찌르지 않았다!


 그리고, 치후유의 칼날이 빗나가 몸통이 비었을 때, 한솔은 발로 그녀의 배를 차버렸다.


 치후유는 입술을 꽉 물고서 어떤 소리도 내질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고통으로 인해 눈을 찡그리며 상대를 보질 못하는 와중에도, 치후유는 직감으로 한솔이 무슨 동작을 취할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한솔이 머리 위로 검을 들어서 내려치려고 할 때, 치후유는 왼손으로 죽도의 칼날 부분을,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고서 한솔의 공격을 받아내며 막아냈다. 그리고 외쳤다. "으아아!" 짧고 굵은, 강한 음성. 그녀가 일어나면서 한솔을 뒤로 밀었다.


 털어내듯 죽도를 돌리다가 한솔을 향해 비스듬이 세우는 치후유. 그리고 물었다. "한솔 공은 어떻게 제 반격을 읽었던 겁니까?" 그리고 한솔이 대답했다. "눈빛을 읽었지. 사실 그냥 감이었어."


 "…한솔 공은 원래 그렇게 싸우는 겁니까?"

 "아니, 치후유 씨라면 왠지 나를 읽으려고 할 것 같아서 한 번 해봤던 거야."

 "그렇군요. 후훗…. 이런 싸움도 나쁘진 않습니다."


 잠시 눈을 감았던 치후유가 다시 뜨면서 말했다. "당신에겐 나의 오의… 시험해봐도 괜찮겠군요."


 "……."

 "외람되오나 한솔 공과 저는 호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통하지 않으면 저는 아직도 미숙하다는 증거겠지요."


 그러자, 한솔은 안경을 벗어서 던져버렸다.


 그리고 말했다. "진지하게 받아주지."


 안경을 벗어서 던진 그의 눈은 더욱 날카롭게 변했었다.


 마치 녹빛 불길이 일렁거리는 것처럼.


 목소리마저 다르게 느껴졌었던 것은 착각일까? 치후유는 그 모습을 보고선 훗 웃으며, 왼쪽 무릎을 앞으로 내밀어 오른손으로 죽도의 손잡이를 꽉 쥐면서 외쳤다. "갑니다! 절기, 화권도…" 하지만 그때 그녀의 말이 막혔다. 갑자기 관리자가 마이크로 건물 전체에 들리게 명령을 했기 때문에.


 "미국의 델타세븐이 지원을 요청해왔다. 모든 전투원은 장비를 갖추고 비행장으로 오도록."


 그 소리를 듣고 한솔도 치후유도 멈췄다. 한솔은 어색하게 자기가 던졌던 안경을 주워 쓰고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쩔 수 없죠, 치후유 씨. 이번은 그냥 무승부로 할 수 밖에 없겠네요."

 치후유는 한솔을 미묘한 눈빛으로 보더니, 이내 죽도를 놓으며 말했다. "…후, 이 승부는 미뤄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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