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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우스 오른쪽 버튼 눌러서 반복 켜주세요 --


 ● (음악 꼭 틀어주세요.)


 ○ (내용에 어울린다고 생각함.)


 ○ (일단 나는 좋아서 올렸는데 켜지 않아도 좋을 거 같음.)


 ○ (별로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음…. 찾기 쉽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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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다른 시각, 다른 공간….


 고풍스러운 황금색 메노라의 촛불이 신비롭고 고요히 가라앉은 어둠 속에서 춤추고 있다. 빛과 그림자의 조화를 이뤄내는 이곳 흡혈귀의 성엔 암적색의 커튼과 카펫이 놓여있었고, 바깥에는 맹수의 울음과 혹은 박쥐가 퍼드덕거리며 날개를 젓는 소리가 들렸었다. 의자에 앉아서 조용히 우주의 공허와 같은 어둠을 지켜보던 로자리아.


 그녀가 마주 앉은 세라펠에게 말했다. "흥… 리플레이서 킹이라고 했었던가? 치천사, 너는 그 남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리고 사과를 한 손으로 집곤 위로 살짝 던지고, 다시 잡고서, 다시 던지며, 건방진 태도로 물었다.


 "관심없다… 그도 다른 자들과 똑같아. 심판의 날을 막으려고 노력할 뿐이지만, 누구보다도 두려워하고 있지."

 "나한텐 왠지 모르게 그 이상으로 보였는데?"

 "정확하게 그가 말했었던 신인류란 무엇이지? 그는 자신들이 아마겟돈 이후에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했었지만, 저들 리플레이서를 봐라. 애초부터 원죄에 더럽혀진 육신을 더욱 타락시켰다."


 그러나 로자리아는 사과를 씹어먹으며 말했다. "하, 지금의 패배는 딱히 그들이 약하다는 증거라곤 하지 못할텐데…. 우리는 대적자의 제안을 받아서 리플레이서들과 동맹을 파기하고 급습했잖느냐? 그것은 공평한 전쟁이 아니지, 그렇지 않느냐? 너는 제대로 된 평가를 하고 있지는 않구나."


 "……."

 "게다가 타락한 치천사인 네가 원죄를 다시 들먹일 줄이야! 그것도 이상하지 않느냐?"

 "……."

 "너도 딱히 본성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아… 너를 오래동안 지켜봤던 나는 그렇게 느낀다. 뭐,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우린 마왕이잖느냐. 우리와 같은 존재가 본성대로 살지 못한다면 그것도 이상하겠지."


 안대를 차고 있었던 세라펠은 기묘하게 입술을 움직이더니 그대로 중얼거렸다. "변함없이 낙천적이로군…."


 "응? 뭐라고 했느냐?"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이제 가보도록 하지… 하늘에 닿기를 원했던 인류의 오만함, 그것이 그들의 파멸의 원인이 될지니… 후후후, 후후후후후…."


 세라펠은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는, 그대로 불길한 자주빛 성소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타천사의 깃털은 그곳에 흩날렸다. 로자리아는 사과를 집고는 그대로 주먹을 쥐면서 부숴버렸다. 그리고 말했다.


 "원죄… 하찮구나. 하지만 저 녀석도 뭔가 시적인 분위기를 즐길 줄 아는 여자니까. 흐음…."


 "시종." 로자리아가 그늘진 구석을 보면서 조용히 불렀다. 그러자, 두 마왕의 회화에 끼어 방해하지 않으려고 숨어 있던 도마가 코트를 온몸을 두르듯 잡으며 나타나고는, 무릎을 꿇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것인지요, 주인님?"

 "네 여동생은 어떻더냐?"


 도마는 눈을 감으며 조용히 말을 골랐다. 귀찮아진 로자리아가 혼잣말을 했다.


 "순혈 흡혈귀인 너의 여동생은 혼혈인 너보다 몸이 약했지. 참 기묘한 일이야. 일족에게 첩의 자식이라 얕잡아보였던 도마가 결국 그들의 구원자가 되었다니."


 "…그것은 저의 운명도, 그들의 운명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주인님의 힘이 저희를 바꾸신 겁니다."

 "아첨하지 마라, 시종."

 "……."


 로자리아는 의자에 내려서, 공중에 뜬 채 말했다. "가자, 네 동생 얼굴이나 보고 싶더구나."


 마물과 해골이 배회하는 회랑을 지나서, 나선으로 길게 뻗은 계단들을 내려가며 저 밑 지하실에 도착했다. 일반적인 성이라면 감옥 같은 분위기를 낼지 모르지만, 로자리아가 도마에게 선물했었던 이 성채는 흡혈귀의 요새라 여러 안틱한 느낌의 조각상과 보물들로 장식되진 홀과 같다.


 땀을 흘리며 자고 있었던 유마. 도마가 여동생을 흔들며 불렀다. 그리고 눈을 뜨며 소녀가 말했다. "아… 오빠? 마왕님도…." 몸을 일으키려는 소녀.


 "됬어, 누워있거라."

 "죄송해요…."


 밤의 제왕이라 불리는 흡혈귀족 순혈. 다만 소녀는 마치 연약한 인간 소녀와 다를 것도 없었다.


 로자리아는 한숨을 쉬고는, 자신의 검지를 살짝 물고는, 붉은 피를 유마의 입술에 떨어트렸다. 그리고 곧 아파하던 소녀의 표정이 피어졌다. 하지만 현기증을 느끼는지 이마에 손을 대고는 그대로 누워버리는 유마.


 "저… 로자리아님, 항상 감사드려요."

 "잠이나 자거라. 네 오빠를 항상 부려먹으니까 굳이 미안해 하지 않아도 돼."


 로자리아가 물었다.


 "…많이 아파보이는데 상태가 별로 안 좋지?"

 "그렇습니다만."


 굳이 아무런 말도 하진 않았지만, 도마의 눈에는 근심이 보였다.


 '녀석….'


 출전을 앞둔 주군을 방해할 순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결국 어쩔 수 없나.


 이 아이의 생명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의존하는 상황이다. 만일 자신이 떠난 사이에 상태가 악화되면 죽을 수도 있는 거다. 로자리아는 고민하더니 손가락을 탁 튕기었다.


 그곳에 생겨난 건, 자신과 똑 닮은 분신.


 ""감자칩이나 가져오거라.""


 "즉시 대령하겠습니다, 나의 주인이시여."


 창백한 피부에 살짝 안도의 미소가 지어진 것처럼 보인 것은 기분 탓일까, 어쨌건 도마는 박쥐들로 변해 바로 날아갔다. 소녀를 지켜보기 위해서 자리에 앉은 마왕과, 동시에 공간 자체에 꿀렁거리는 균열을 만들어내곤 휘몰아치는 어둠을 타고 차원의 밖으로 나가는 분신.


 초월의 마왕 네헤모트가 쓰던 테크닉이나, 어쨌건 로자리아도 자신의 의식을 공명시키는 분신을 만들 순 있다.


 아공간을 넘어가는 도중, 의자에 앉아서 턱을 괴고 있던 분신은 혼자 생각에 빠졌다.


 '리플레이서라 했던가… 침식파 발생기를 대지에 꽂아놓고서 기다리면 되지 않았었나? 어차피 몇 달 지나면, 지금 지상에 있는 인간 녀석들은 아예 저항할 방법이 없어. 어째서 굳이 병력을 소모해가며 전면전을 걸고 있는 거지?'


 '또한 걔들이 지구 위에다가 띄워놓은 오비탈 베이스…. 아무리 땅에선 내가 악마들을 보내었고, 하늘에선 세라펠 녀석의 타천사들이 날아왔지만, 너무나도 쉽게 빼앗겼어. 마치 처음부터 그냥 포기한 것처럼. …무슨 생각이지?'


 '인간들이 하는 생각은 정말 모르겠어. 어쩌면, 치천사가 말했던대로 부족했던 남자였는지도 모르겠고. 흠… 상관없지. 이걸로 체스판의 준비는 끝났다. 그… 엘리시움인가? 걔들하고, 타기리온 부활의 의식을 위해서 아이들을 제물로 바치는 솔리키타티오…. 에델하고 세라펠은 서로 싸우려고 하는 것을 조율하느라 힘들었는데.'


 '후후후후… 관리자여. 어디 한 번, 내게 걸맞는 남자인지 보겠어.'


 세계를 취한다, 그런 것에 흥미가 있진 않다.


 어차피 자신에게도 신과 같은 힘과 거대한 왕국이 있었다. 모든 것은 단지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망했었던 게임을 살리려고 엄청 애쓰는 모습을 봤고, 자신도 왠지 겨루고 싶어졌던 것이니까.


 그렇지만 어쨌거나….


 클리포트 게임이 존재하지 않는 이 세계에, 마왕들이 급히 침식체를 불러 현실세계를 공격하려는 지금의 구도는 클리포트 게임과도 비슷했다.


 리플레이서와 인류가 서로 싸우던 중, 이렇게 기습적으로 끼어든다는 재밌는 상황에….


 뭔가, 로자리아에겐 무언가 끊이지 않는 물음이 있었다.


 '리플레이서 킹이라고 했었던 그 녀석은… 여태까지 직접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없었어. 하지만 그 남자의 힘은…. 녀석 또한 우리들과 비슷하게 단신으로 차원들을 넘나들 수 있었어. 대체 무슨 카운터 능력을 갖고 있길래?'


 대적자도 아닌 일개 카운터인 그 녀석은, 자신과 견주는 힘을 가졌다.


 대체 뭐지?


 그러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로자리아는 차원의 틈을 찢으며 별들이 오색으로 빛나는 이 세계에 도착하였다. 풀어놓은 악마들은 전략적 목표인 이온 캐논을 지키게 했었지만, 어째선지 엘리시움의 셰나하고 카르멘이 적과 교전하고 있는 것을 멀리서 보았다.


 셰나도 카르멘도 딱히 공중에서 기민한 침식체들은 아니었었다. 기이하게도 개조형 스포츠카에 타서 엄청나게 빨리 움직이며 라이플을 쏴갈기는, 카운터도 아닌 인간 셋에 매우 고전하며, 계속해서 라이플과 저격총에 맞고 있었었다.


 그것은 화염방사기로 무장한 토미와, 도저히 인간의 솜씨라 생각할 수 없을 정확도의 사격술을 가진 제리와, 저격총을 장비했던 초인적인 미키였다. 토미가 예측하지도 못할 드라이빙을 보이며, 셰나가 던지는 분홍색 기운을 전부다 피했다. 또한, 카르멘이 계속해서 광시곡을 연주했었지만 어째선지 이들의 정신은 멀쩡했다.


 제리가 외쳤다. "가소롭다, 침식체들!"


 그것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랩소디, 보통 이것을 들은 필멸자들은 흉폭함과 잔혹함에 망가져버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거나 혹은 미친듯이 날뛰면서 고함을 치거나, 환상과 망상에 빠져버려 피아를 구별하질 못하고, 구토를 하면서 자해를 하거나, 대부분은 마지막에 스스로를 쏘며 자살했다.


 하지만 이 세계의 인간은 달랐다. 아니, 저들이 달랐다.


 토미 또한 굵은 목소리로 위를 향해 외쳤었다. "멍청한 능력이군, 이딴 것으로 우리의 우정을 시험하려고 하는가!"

 미키가 스코프로 보지도 않고 위를 향해 저격총을 쏘며 일갈했다. "이거나 처먹고 뒈져버려라!!!!!"


 놀랍게도 그것은 그대로 셰나의 눈을 뚫었다!


 하지만 그녀 또한 사종 침식체. 셰나는 비명을 지르며 검은 피가 흐르는 왼쪽 눈을 만지작거렸다. 그것은 이내 완전히 수복됬다. 그래도 그녀는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중얼거렸다. "크, 크아아악… 성가시네, 이 쓰레기들이…!"


 "셰나, 괜찮니? 앗… 칫…!"


 "너희들은 인간의 정신을 너무나도 얕봤어! 그래서 지금 지고 있는 것이다, 한낱 침식체 따위가!!!" 제리는 겁도 없이 카르멘을, 증오와 격노와 적대에 휩싸인 눈으로 노려보면서 라이플을 쏴갈겼다.


 미쳤다. 계속해서 미친듯이 달리는 차량으로부터 반동이 심한 총을 그렇게나 난사하는데도, 무슨 총알에 운명이나 숙명이 있는지 날라가는 총알들은 모두 정확히 카르멘을 맞췄었다!


 "박살내주지, 인간의 손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마!!!!" 그러고선 미키가 소형 핵탄두 런쳐를 들고, 그대로 쏘았다! 그것은 공중에서 터졌고, 셰나하고 카르멘은 동시에 핵폭발에 휘말렸다….


 일단 그것으로 죽진 않았지만, 둘은 엄청난 부상을 입었다. 셰나는 오른쪽 다리와 왼쪽 팔이 더이상 움직이지도 않았고, 카르멘은 아예 몸에 힘이 들어오질 않아, 날 수 없어 떨어졌다. 무엇보다, 둘의 악기도 핵폭발에 휘말려 터져버렸다.


 "한 발 정도로는 죽지 않으리라 생각했지. 걱정마라, 핵탄두가 이십 개는 넘게 있으니까!" 어느새 미키가 다음 핵탄두를 겨누며 말했었다. 사실, 두 개의 런쳐를 차에 싣고서, 미키가 쏘면 제리가 다시 장전하고, 미키는 두번째 런쳐를 들어서 바로 쏘는 방법을 취했던 것이다.


 "아… 으… 으!!"


 입과 목이 망가져버려 아예 말조차 제대로 못하는 카르멘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였다. 분신이 날라오면서 카르멘을 낚아채고, 로켓처럼 급상승을 하며 셰나도 잡고서 그대로 멀리 떨어졌다. 그리고 곧 거대한 핵폭발이 암청색 하늘을 번쩍하고 뒤덮었다….


 "도망치는 거냐! 인간을 가소롭다고 무시했었던 너희가!!! 돌아와라, 우리의 힘에 맞서라!!!" 그렇게 외치는 토미를 뒤로하며, 델타세븐의 이온 캐논을 향해 날면서 분신이 카르멘에게 물었다.


 "저 녀석들… 대체 뭐냐? 아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냐. 너, 엘리시움의 카르멘이란 이름이었지? 대체 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느냐?"

 "으… 으으… 읍!"


 무언가 말을 하려는 것인지 바둥거리긴 했지만, 이미 핵을 맞고서 온몸이 망가진 카르멘은 어떻게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분신은 한숨을 쉬고는, 검지와 중지를 펴서 호 불었다.


 본체가 치유계 능력을 쓸 수 있듯이, 분신도 쓸 수 있는 것이다.


 손가락 끝에 걸려진 검은 오라. 분신은 그걸 카르멘에게 문질러줬다.


 "후… 내 시종인 도마보다도 허약하구나. 아니… 도마 녀석이 강한 편이었던가?"


 그리고 똑같이 셰나에게도 발라줄 때, 카르멘이 놀라하며 중얼거렸다. "거, 거짓말…. 그렇게 큰 상처를… 어떻게…?" 분신은 그제야 카르멘을 놓으며 말했다. "돌아간 입은 괜찮냐? 빨리 상황을 말해."


 "지시한 대로 이온 캐논을 제압하고 지키려고 했습니다. 정오 때에 뉴 오하이오를 격퇴했어요. 하지만…."


 "하지만?"


 "저녁, 갑자기 코핀에서 거대한 로봇이 나타나더니… 멀리서 장거리 저격과 포격을 하길래 나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랬더니, 이온 캐논 측면에서 다른 전함이 은폐장을 풀고는 나타나며 별동대를 침투시켜…."


 "…뭐?!"


 카르멘의 말을 듣고 분신은 화냈다.


 "갑자기 왜 나간 거야?! 애초에 우리는 저 캐논을 쓰지도 못 해! 아니, 아무도 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지키라고 명령했던 거였어! 쟤들이 포격하건 말건 지들이 부수게 놔두면 되잖아!"


 카르멘은 움츠리며 아무 말도 못하였다.


 옆에 있던 셰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저… 용서해 주세요, 로자리아 님."


 "……."


 "갑자기… 이온 캐논 지하에서 시큐리티 로봇들이 가동하며 올라오곤, 또한 기관총과 미사일과 화염방사 터렛들이 건물 내부에서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안에 있어봤자 어쩔 수도 없었어요…. 저흰 처음부터 녀석들의 손에 놀아났던 거예요…!"


 분신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탁 쳤다.


 그제야 뭐가 일어난 건지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관리자 녀석이 알비온을 먼저 은신시켜 놓고 이온 캐논 뒤에 놓아두고, 자신은 멀리서 사격진을 짜고 포격과 저격을 할 준비를 마친 뒤에, 이미 건물 안에 있던 트랩들을 모두 작동시켜 나오도록 했단 거지?'


 '어차피 거기에 있어도 천천히 죽었을 것이고, 밖으로 나오면 그냥 죽는 거고.'


 당했다.


 깔끔하게 한 방 먹은 거다.


 마왕 아스모데우스는 전술 싸움에서 관리국의 관리자에게 패배했다. 그렇게 불러도 되겠지.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전 관리자는 너무나도 쉬웠기에 살짝 얕보아서 그랬었던 것이 아닐런지.


 "후우…."


 '그래, 그래야지 나의 관리자야. 평범한 남자면 재미가 없겠지. 이번 게임은 그냥 너에게 주겠노라. 하지만….'


 분신은 멀리에 있는 이온 캐논을 희번뜩하게 보며, 섬뜩한 웃음을 지었다. "파티에 늦었긴 했지만, 나도 즐겨도 되지? 걱정 마, 너무 치사하게 굴진 않을테니."


 그리고 분신은 셰나하고 카르멘을 돌아봤다. "날 따라와라."


 ""……네?""


 "여기 왔던 목적이 네퀴티아라고 말하지 않았었느냐? 도와주겠다. 다만, 다른 애들은 죽이지 말고 기절만 시켜."


 이 정도면 사실 정말로 선심쓰는 것이다.


 셰나하고 카르멘이 동시에 대답했다. 


 ""네!""


 그리고 분신은 셋과 함께 하늘을 날았다.


 뭔가 계속 곱씹으며 생각하던 분신은 상황이 이상하단 것을 느끼면서, 카르멘에게 물었다. "카르멘, 너는 싸울 때 어디에 있었나?"


 "로자리아 님의 악마들과 나가서… 그 검은색 로봇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혹시 묻는데 오로치는 봤느냐? 흰 뱀에 타고 있는 여자 애."

 "아니요, 전혀 보질 못했습니다."


 분신은 다음에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셰나에게 물었다. "셰나, 넌 싸울 때 어디에 있었나?"


 "이온 캐논 쪽에서 적 전함이 은폐장을 풀고서 나타날 때, 병력의 일부를 맡아 그쪽으로 막으러 갔습니다."

 "그래서? 백사의 성수는 봤느냐?"

 "죄송하지만 그런 것은 전혀 보질 못했습니다."


 …뭐지?


 '이런 중요한 전투에 성수 본인이 나타나지도 않았었다고?'


 뭔가 심상치 않았다.


 어쨌건 그녀들은 도착했다.


 이온 캐논의 바로 위에, 천공에 떠있던 마왕 로자리아의 분신. 그녀는 턱을 괴면서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마왕의 권능으로서 큰 소리가 그 지역 전체에 걸쳐 천둥처럼 울리었다.


 "최강의 마왕인 나 로자리아가 여기에 강림했도다."


 대놓고 거만하지만 무언가 존엄과 위압이 없잖아 있는 음색에, 땅 전체가 그녀에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겟돈은 시작되었다. 리플레이서들이 버려둔 오비탈 베이스는 지구에 떨어질 것이니라."


 "하지만 묻고 싶구나, 관리자와 그의 충성스런 부하들아. 나는 너희들을 아낀단다. 이것이 그대들의 파멸이 되긴 너무나도 이르다고 느낀단다."


 그리고 분신이 손가락을 튕기면서 말했다. "그래…. 나의 것이 되어다오. 목숨만은 살려주지. 다른 마왕들과 달리 나는 온유하며 자비롭다. 어떻게 하고 싶느냐?" 깔보는 듯한 웃음을 지으면서, 분신은 밑을 보았다.


 사실 이 말은, 카운터와 인간만이 아닌 관리자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밑에서 존이 나오며 말했다. "자, 잠깐! 진짜야? 항복하면 살려준다고 말했었지?!" 그러자, 레지나도 총을 들고 나오면서 말했다. "메이슨 씨, 위험하게 뛰쳐나와서 뭐하는 거예요?!"


 '응…?'


 '저건 가아그셰블라가 제일 좋아하던 여자애 아니었나? 이름이 레지나 맥도날드였던가…? 얼음을 쓴다고 했는데 왜 총을 들고 있지?'


 사실 이상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로자리아는 몰랐었지만, 메이슨이 평소에 같이 다니던 이안 주니어란 드론도 보이지 않았다.


 어쨌건, 분신은 기세좋게 내려가서 얼굴을 존의 코 앞에 대고서 물었다.


 "흠… 하지만 질문을 좀 하겠다. 너, 왜 마지막까지 싸우려고 하나?"

 "자, 잠깐! 난 승산이 없는 싸움은 싫다고! 여기선 현명하게 당신과 협상하는 것도…!"


 분신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면서 메이슨의 명치를 발로 찼다.


 "넌 자신이 마왕과 대등한 존재라고 생각하나? 협상이라?" 그러자 존은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로자리아는 중얼거렸다. "괜찮아, 죽일 기세로 친 건 아니다. 뭣보다 너 같은 자코들을 생각없이 죽여대면 걔가 날 엄청 미워하겠지."


 그리고 로자리아는 레지나를 보면서 말하였다. "너, 에델의 공주님… 잠깐, 뭐야? 왠지 차갑지 않네?"


 "저를 잘 알고 있군요… 그렇다면!" 레지나는 총을 그대로 겨누고 로자리아를 향해 쐈다.


 옆에 서있던 카르멘과 셰나가 대신 막아주려 했었지만, 로자리아가 귀찮다는 듯이 의자로 둘을 밀치면서 맞아주었다. 그리고, 그대로 그냥 다가가 검지로 쿡 눌렀다.


 "…에, 에델…." 그렇게 중얼거리던 레지나는 쓰러졌다.


 "레지나 맥도날드…. 카운터가 왜 총 따위를 쓰는 것이냐. 이해가 되질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흔들던 분신이 셰나에게 물었다.


 "너희는 차갑지 않느냐? 쟤는 원래 냉기를 다루는 능력이 있는데…. 내가 너무 강해서 그런가?"

 "아뇨, 저희도 그런 것은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분신을 보냈기에 한기를 예민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저들도 제4종 정도는 되기에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분신은 그냥 고개를 털고 말했다.


 "아무튼, 안으로 돌입한다! 따라오너라!"


 ""네!""


 분신은 손가락에 번개가 지직이듯 휘감아오른 검은 구체를 만들고 그걸 이온 캐논에 던졌다.


 데스볼은 그대로 이온 캐논의 외벽을 뚫어, 그 안으로 셋은 빠르게 들어갔다. 그러다 갑자기 밑에서 날라온 총알에 뺨을 맞았다. 당연히도 어떤 상처조차 내질 못했지만, 관심을 끌긴 했다.


 밑엔 치후유와 미나토와 마사키가 총을 들고 있었었다. 분신이 물었다. "너희는 어째서 싸우는 것이지? 항복하면 살려준다 했었는데?"


 "훗, 우린 오오가미 흑막조! 우리야말로 최종보스기 때문이지!"

 "나는 그냥 나 뿐만이 아닌 모두의 일상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지만 말야…."

 "마왕 따위에게 항복하겠나! 나는 악을 베는 검! 만일 베질 못하면 부숴질 뿐이다, 그것이 나의 무사로서의 인생!"


 분신은 매우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이 녀석…? 무사라고 자칭하고 있는데 검은 어디에 있지? 왜 총을 들고 베겠다고 말해?'


 어쨌거나 분신은 귀찮다는 듯이, 총알을 맞으면서 그들을 한 손으로 기절시켰다….


 "무, 무념…."


 그렇게 쓰러진 치후유들을 보면서, 갑자기 저기서부터 대시가 달려오면서 외쳤다. "치후유 씨! 미나토 씨, 마사키 씨!" 그리고 리타도 얼굴을 찡그리면서 중얼거렸다. "칫… 늦었나?! 각오해라, 마왕!"


 이상했다. 대시는 덩실이라 불리는 낫도 쥐고 있지 않고, 리타도 오메르타를 쓰지 않았다. 어쨌건 로자리아는 그대로 날라가서 물었다. "너희는 왜 싸우지?"


 대시가 말했다. "저희는… 저희는, 시간의 저편으로 운명을 바꾸러, 어둠의 저편으로 미래를 바꾸러, 그리고 모두와 나눌 수 있는 행복을 찾으려고 싸우는 거예요!" 리타도 말했다. "한 번 구원 받았으면 그 빚은 갚아야지, 응? 그리고 날 구해준 것은 마왕 따위가 아니라 그런 거다!"


 "잘 말했구나." 그러면서 분신은 양쪽 발로 둘을 동시에 걷어찼다. 총을 쥔 채 그대로 기절한 리타 그리고 대시.


 그리고 이온 캐논의 건물 승강기로 들어가려던 분신.


 곧, 자길 향해 달려오는 메이드를 보았다. "호오… 관리자 녀석은 저런 것이 취향인가? 나도 하나 성에 둬도 괜찮겠어." 그것을 들었는지 베로니카와 릴리와 리코리스가 총을 쏘면서 외쳤다.


 "저희의 주인님은 오직 한 분입니다!"

 "주인님께는 손 하나 대지 못합니다! 상대가 마왕이라고 하더라도…!"

 "아… 뭐, 난… 그 사장을 주인님이라고 말하진 않겠지만 말야… 어쨌든."


 분신은 휘파람을 불더니 그대로 의자를 날리듯 몸을 들이받으며 셋을 쓰러트렸다. 마치 볼링처럼. 그리고 중얼거렸다. "안심하거라. 내가 관리자를 가진다면 자연스레 걔의 소유물인 너희들도 내 것이 될 테니."


 그때였다. 분신의 뒤에서 권총이 철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레버넌트였다. 강적을 앞에 두고 있는데… 그녀는 손을 떨지도 않고 노려보면서 조준하였다.


 "호오… 과연 네퀴티아. 기백이 좋구나."


 찾았다.


 분신이 셰나하고 카르멘을 보면서 말했다. "쟤가 목적이지? 너흰 이제 따라오지 않아도 좋으니까."


 "로자리아 님, 저나 카르멘이 계속 따라가도 좋지 않겠나요?"

 "두 말 하게 하지 마라, 너희들도 나름대로 할 게 있지 않냐? 그만 가 보거라."

 "……."


 분신은 그대로 승강기의 문을 부수고서 그냥 밑을 향해 내려갔다.


 레버넌트가 총을 겨누는 것을 보고선, 뭔가 씁쓸한 표정을 짓는 셰나와 카르멘. 그리고 카르멘이 물었다. "지휘자님… 혹시 저희를 기억하지 못하시는 건가요?"


 "누가, 너희 같은 침식체 괴물딱지들을 안다고?"


 그러자 셰나가 말했다. "아아… 너무 슬프네요, 여태까지 열심히 찾으면서 이 날을 이렇게 기다려 왔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다니." 하지만 표정을 피면서 말했다. "그래도 지금은 제정신이 아니니까 용서해 드릴게요."


 카르멘이 말했다. "도미닉이라고 불리는 리플레이서의 수장… 그 사람이 만든 인공침식파로 지휘자님을 쉽게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지 몰라요. 그러니까 저희와 함께…"


 그렇게 말하는 둘에게, 총을 쏘면서 입을 다물게 했던 레버넌트.


 하지만 총알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 그녀가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대며 말했다. "괴물이 되느니… 차라리 여기서 죽고 말겠어. 엄마를 다치게 할 수 없으니까…!"


 "저런, 그건 안 되죠." 셰나가 자살하려는 레아보다 빨리 달려가서 배를 차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쓰러지며 권총을 놓친 레아.


 셰나가 말했다. "어마… 죄송해요. 모르고 너무 쌔게 때렸네요. 그래도 아까 저보고 침식체 괴물딱지라 했으니… 쌤쌤이죠? 그쵸?"


 "…드디어. 이걸로, 지휘자님이 말씀한 계획에 한 걸음 가까워졌네요."


 카르멘은 조심스럽게 레아를 양팔로 들었다. 둘은, 왔던 길로 다시 날아 돌아갔다.


 한편, 승강기 밑으로 내려간 분신은 어두운 지하까지 돌입했다. 중간에 라이언과 모건을 발견했다. 질리지 않는지 똑같이 묻는 분신. "너희는 멸망의 날까지 뭐하러 계속 싸우나? 애초에 이게 바꾸지 못할 운명인 것은 아느냐?"


 "허허… 마왕에겐 모르겠죠, 인생은 끝이 있기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마왕한테 고개 숙이면서 짧게 더 살다 부끄러운 죽음을 맞이하긴 싫군."


 그리고 총을 쏘는 둘을 주먹으로 치며 기절시킨 분신. "잘 들었다."


 그때….


 선글라스를 끼고 로이가 달려오며 총을 난사했다. "치잇… 영감탱이, 무턱대고 달려가면 어쩌자는 거야?!"


 "호오…?"


 분신이 다가와 물었다. "너는… 기억났어, 프리드웬 소속 아니더냐? 어이, 꼬마. 방패는 어디로 갔지?"


 "…앗."


 "……?"


 총을 쏘다 잠시 멈춘 로이. 하지만 고개를 젓고선, 다급하게 방아쇠를 당기면서 외치었다. "모, 몰라! 죽어!"


 "너나 죽어." 그렇게 말하며 분신은 그대로 손으로부터 빔을 쐈다. 그렇게 로이도 쓰러졌다.


 사령실의 바로 앞에 도착하는 분신.


 린과 아키와 루시드와 도로시와 허수아와 리온이 컨테이너 뒤에 숨어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을 보았다. 분신은 양손을 들어올리며, 염동력으로 상자를 위로 날렸다. 그리고 물었다. "소녀들이여, 너희는 왜 나를 거부하는가?"


 아키가 솔직히 말했다.


 "우우… 우우… 어차피 마왕님 밑에 들어가도 게임도 휴식도 없고 실컷 부려먹을 거잖아요! 그냥 날 죽여요!"


 리온 또한 토토 없이 총만 쏘면서 말했다. "우리는… 우리는…! 여태까지 우리가 구해냈던 다른 애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지아 누나와, 사장님과, 한솔 씨와, 다른 모두를 위해서 끝까지 같이 싸우고 싶으니까…!"


 "그래, 맞아! 우리를 믿어주는 다른 애들이 있어! 게다가, 너 같은 침식체 대장 따위는 전혀 무섭지도 않아!"

 "…모두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루시드도 결심을 마친 눈을 뜨면서 총을 쏘았다. "이것은… 올인이예요. 모두와 함께 정말로 완벽한 평화에 도달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아닐까… 누군가한테 억눌리면서 산다는 것은 크나큰 고통이예요!"


 린도 피식 웃으면서 방아쇠를 당기었다. "후우… 돈이 전부이자 목적이던 용병 생활과는 달리, 싸움에 신의와 희망을 가진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소. 마지막까지 함께하리다."


 총알을 맞으면서도 눈을 감고는 흐음흐음 거리면서 뭔가 생각하던 분신이 눈을 뜨면서 말했다. "뭐… 그런 대답인가. 인간답고 순진해서 좋구나."


 그리고 분신은, 힘조절을 하면서 컨테이너를 모두에게 떨어트렸다.


 쓰러져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 모두를 보곤, 분신은 한숨을 쉬었다.


 "하아… 사령실은 대체 어디있지?"


 그러자 문이 열리며 바로 총알을 맞는 분신.


 지겹다.


 제시카가 총을 쏘면서 물었다. "왜, 우리에게도 멸망의 날인데 마지막까지 싸우는 이유가 뭔지 물어보려고?"


 분신은 손가락으로 제시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니… 너희들 대체 왜 총만 쓰고 있냐?" 그러자 옆에서 같이 쏘던 찰리가 말했다. "우리에겐 이것 밖에 없으니까 쓰는 거지! 왜, 아파?!"


 그러자 분신은 귀찮다는 듯이 손가락을 찰리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아니." 곧 제시카의 몸이 염동력에 의해 찰리 쪽으로 엄청 쌔게 날라가더니, 둘은 서로의 몸에 부딪쳐 버렸다. 에디가 그것을 보고는 총을 계속 쏘면서 말했다. "칫… 정말 무지막지하군!"


 그러자 분신은 한심한듯이 바라보면서 말했다. "무지막지한 걸 알면, 왜 총이 통하질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쏘는 거냐?" 그리고는 허공에 딱밤을 쳤었더니, 에디의 몸이 갑자기 쾅 소리를 내며 뒤로 날라갔다….


 "아아아, 진짜 지치네 이거!"


 그러면서 분신은 마치 액셀을 밟듯 허공을 발로 누르곤, 엄청 빠르게 다음 공간을 향해 달려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진짜 마침내, 사령실에 도착하게 된 분신. 문을 열었더니, 뭔가 실이 툭툭 끊기는 느낌을 받으며… 앞에 관리자의 검은 타이탄과, 양 옆에 선 에이미와 지수가 보였다.


 근데 그것만이 아니었다… 올림피안 기체 자체는 뭔가 튜브들에 연결된 채 움직일 수 없었다. 분신이 그걸 보고서 물었다. "뭐야…? 대체 여기서 뭐하냐?"


 관리자가 올림피안을 통해서 말했다.


 "결국 여기까지 왔군, 로자리아. 밖에서 계속 면접 놀이를 하더군.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밖에서 내가 했던 얘기는 못 들었나?"


 "재밌군. 나에게도 네 것이 되라고 물을 생각인가?"


 "물어? 착각하나 본데… 네가 뭐라 답하던지, 힘으로 억지로 데려갈 생각이었는데?"


 "……."


 관리자는 한심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농담이 늘었군, 로자리아. 쓸데없게…."


 "못 믿는 것 같은데… 애초에 처음부터 이렇게 할 생각이었다. 내게도 나만의 왕국이 있으며, 나를 떠받드는 수하들과 신하들이 있다. 뭐를 원하기에 굳이 여기까지 몸소 행차했다고 생각하느냐?"


 "흥…."


 "너다." 분신이 악의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를 굴복시켜서 나의 시종으로 쓰는 것도 재밌겠지. 그래서 왔던 거니까 말야. 전략 놀이고 전술 놀이고 꽤나 능숙하게 하더구나? 하지만 말이다…."


 분신이 손을 튕겼다. 고오오오, 일어나는 오라.


 "전쟁의 기본 단위는 결국 전투다. 날 막을 수 있겠나? 응? 너는 이제 끝난 거야. 이 세계 따위 부숴버리고, 널 짓밟힌 자존심하고 함께 전리품으로 갖겠다."


 분신은 팔짱을 끼곤 말했다. "뭐 어쨌건… 마지막으로 너희 둘에게도 물어보는 것이 좋겠지. 대답해라. 왜 아직도 싸우지? 애초에 멸망이 예정된 세계와 그런 운명에 대해, 뭐하러 이렇게까지 저항하느냐?"


 분홍색 자켓에 손을 넣고서 풍선껌을 불고 있었던 에이미가, 훅 크게 불었다가 다시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꽤나 철학적인 거 좋아하네, 마왕님? 그냥 힘으로 모두 짓눌러 버리는 성격인 줄 알았어."


 "고작 이런 것을 철학이라… 흥, 대답이나 해보거라."

 "음… 나는… 음… 뭐라고 부르지?"


 그러자 옆에 서있던 지수가 머리를 넘기며 말했다.


 "…쾌락주의자." 그러자 풍선껌을 불던 에이미가 갑자기 얼굴에 팡 터트리곤, 왠지 웃으며 말했다. "자, 잠깐! 나 그런 거 아냐! 그렇게 헤픈 여자가 아니라구!"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인생에서 힘들고 괴로운 일을 피하면서 즐기며 사는 게 좋다 생각하는 사람이다… 너는 머리속까지 원숭이였냐."


 "아니, 엄청 야하잖아! 엄청 에로틱한 설명 아냐! 지수 넌 나를 대체 뭘로 보는 거야아아!"


 웃듯이 울듯이 눈물을 한 방울 찔끔 흘리며 지수에게 항의하는 에이미.


 그걸 바보 같다는 눈으로 보고 있던 분신은 손가락을 툭툭 의자의 팔에 치더니, 이내에 물었다.


 "너, 안대 낀 녀석. 너의 대답은 뭐냐?"


 그러자 지수는 칼을 뽑으며 말했다. "멸망이 운명인 세계면… 그것에 저항하는 것이 숙명이기 때문에."


 그것을 듣고서, 분신은 허리를 펴고는 손뼉을 짝짝 치면서 말했다. "오, 괜찮은데? 뭐야, 여기 오면서 전부 바보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있는 녀석도 있었네!"


 그러자 관리자의 타이탄은 움직이질 못하는 상태에서 렌즈만 돌리며 물었다. "…다들 그렇게 엉망이었나?"


 "그래, 진짜! 다들 이상했다니까? 아니, 대답만이 아니었어. 왜 카운터 녀석들이 전부다 총만 쓰고 있었지? 관리자, 네가 그런 명령을 내렸나? 특히 에델의 장난감인 레지나 맥도날드 그 녀석도 카운터 능력은 쓰지도 않았고…."


 "……."

 "어쨌거나… 이제 끝낼 시간이다."


 관리자가 대답했다. "…돌아가라, 로자리아. 오늘 너는 졌다. 그냥 그뿐이다."


 "흥… 졌다고? 이 상황에?"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뭐가 부끄럽지? 나도 졌을 때는 졌다고 말한다."

 "그럼 지금 그렇게 말해. 너 졌잖아?"


 그러자 관리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 끝에, 분신은 왼쪽 손으로 턱을 괴고는, 오른쪽 손을 펴서 관리자의 타이탄을 향한 뒤에, 손가락을 천천히 구부리기 시작했다. 과연, 마왕의 염동력을 어느정도 버티긴 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압박이 가중된다면 부숴질지도 모른다.


 분신은 목소리를 낮게 바꾸며 말했다. "진 건 네놈이다, 허세만 가득한 남자여. 자신과 상대의 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느냐? 너한테 반했단 말도 취소할지도 몰라."


 "…뭐? 언제 그런 말을 나한테 했었나?"

 "지금 하잖아, 바보야."


 관리자는 타이탄을 통해 조용히 말했다. "나는 굳이 널 죽이고 싶지 않아. 이 세계의 넌 왠지 성격도 나쁘지 않고, 자신만의 긍지라는 것이 있어."


 "음…? 뭐냐, 날 그렇게 보고 있었냐? 왠지 나쁘진 않은 평가로구나."


 "여태까지 나는 많은 세계에서 다른 로자리아들을 봤지. 지나치게 강한 힘을 추구하며 괴물들의 유전자를 스스로에 주사해서 키메라가 됬던 로자리아, 계속된 투쟁과 학살을 갈구해 피에 미쳐버린 로자리아, 심연의 끝에서 자신을 잃어버려 붕괴된 정신에 형체를 유지하지도 못하고 악 그 자체가 되어버린 로자리아…."


 뭐…?


 "자, 잠깐?! 걔들은 다 누구야?!"


 "이곳의 너는 어쩌면 친구로서 괜찮을지 모른다. 그건 진심이야. 그러니까 물러나라, 리플레이서 사태를 마치고나면 너랑 천천히 얘기해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지."


 얼굴을 붉히며 좋아했다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이젠 짜증난다는 듯이 얼굴을 구기는 로자리아.


 "뭐야, 결국 그냥 가라는 거 아니야! 갈 거 같냐?!"

 "계속 싸운다면, 다쳐도 모른다!"

 "도대체 뭘로 날 죽일 수 있냐고! 응? 이거 결국 그냥 블러핑 아니야?!"

 "이게…! 난 분명히 경고 했었다!"


 분신은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이 외치면서 손가락을 더욱 구기려고 했다. "너야말로 네 장난감을 내가 부쉈다고 짜증내지 마라! 소심하다고 놀릴거니까!" 하지만, 바로 그때….


 "지금, 검귀풍보를 끊어버린다!" 지수가 말하며 칼을 허공에 베었다. 그리고, 동시에 에이미가 허공에서 손가락을 당겼다.


 그와 동시, 분신의 오른쪽 어깨로부터 배를 지나 왼쪽 허벅지까지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칼날에 깊숙히 베어갈렸다. "큿…!" 분신은 짧게 신음소리를 흘리며, 올림피안을 향해 염동력으로 잡고 있었던 손을 놓쳐버렸다.


 쿵!


 땅이 흔들렸다.


 천장에서 툭툭 떨어지는 부적들… 그리고 마치 거대한 철덩어리가 떨어진 것처럼 울리는 대지.


 그림자 속에서 한 거인이 나타났다.


 평범한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커 보이는 신체. 그가 쥔 검도, 또한 양쪽 눈동자도, 유달리 이질적으로 보이는 초록색 불길을 크게 태우고 있었다.


 한솔처럼 보였지만… 무언가가 심각하게 뒤틀리듯 변해 있다. 마치 존재해선 안 될 괴인처럼.


 게다가 그것만이 아니다.


 너무나도 과격하고 극단적인 적의가 뿜어졌기에 몰랐었지만, 그의 카운터 워치가 부숴져… 미친듯이 빙빙 돌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껏 그런 존재는 본 적조차 없다.


 애초에 카운터가 타락하면 데몬 타입 침식체로 변해진다. 저건 대체….


 '…뭐지…?'


 저건 설마… 아니. 그럴리가 없다. 하지만 분명히 분신도 느낄 수 있다. 그것의 몸으로부터 침식파 자체와 상반되는 무언가가 뿜어져 나왔다. 지나칠 정도로 정신에 새겨지는 불쾌감. 불편함. 의식이 미칠 것 같은 무언가.


 "반침식파…? 설마, 반침식체…?! 이게 너의 숨겨진 패였나…!"


 이것만이 아니겠지. 분신은 도대체 관리자가 무엇을 계획했는지 눈을 찡그리며 관찰했다. 어둠과도 같이 가려졌던 건물 천장, 검귀풍보라고 써진 떨어지는 부적들과, 이지수의 칼과, 에이미의 실들.


 '아… 그렇군. 안대 쓴 애가 부적을 통해서 저 괴물에게 투명주술을 걸어줬군. 그리고 금발이 실을 통해서 저 괴물이 천장에 붙어 있도록 고정시켜둔 거였어.'


 '내가 관리자의 올림피안을 공격하며 집중하고 있을 때에 천장에서 암습하라 명령했던 것이었나….'


 과연 마왕답게, 로자리아는 정확히 상황을 이해했었다. 그리고, 분신의 몸 전체가 존재 자체를 갉아먹듯 불타오르며 일그러져, 붕괴되는 형상조차, 과격하고 극단적인 기세로 타오르는 초록빛에 뒤삼켜졌었다.


 "이건… 이거, 정말…!"


 분신과 의식의 동화가 유지하기 힘든 정도였다. 아니, 일개 분신이라 할지 모르지만: 로자리아의 분신이라도 이길 수 있는 카운터건 마왕이건 손에 꼽을 정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압도적인 힘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것이다.


 분신이 무심결에 손으로 털어낼려고 했었지마는, 불길은 마치 망각의 밑으로 끌고가려는 타르타로스의 손아귀처럼 전신에 붙어버렸다.


 하지만, 곧 분체도 본신도 눈을 크게 뜨며 놀라게 되었다. 절대로 여기에 있어선 안 될 사람을 보았다. 사실 그 말은 틀렸다. 오히려, 원래 여기에 있어야만 했었던 사람들이라 말해져야만 했다.


 마왕의 앞으로, 이안 주니어를 팔로 안고 있는 존이 나타났다. 존 뿐만이 아니라, 얼음을 주위에 휘감은 레지나, 추운지 팔을 잡으며 떠는 도로시, 허수아, 리온. 오메르타를 몸에 펫처럼 두른 리타, 덩실이를 들고 있는 대시, 쥐고 있는 총을 어깨에 툭툭 두드리는 모건, 턱수염을 쓰다듬는 라이언과, 검은 방패를 꽉 잡고 서있는 로이.

 그리고 공손하게 서있는 베로니카와 릴리와 리코리스, 제대로 칼을 허리에 차고 있는 치후유나, 활과 화살을 부드러운 손으로 쥐고 있는 미나토, 그리고 재밌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화염을 과시하는 마사키, 팔짱을 끼고 서있는 에디나 그의 옆에서 총을 들고 쳐다보는 찰리와 제시카, 대검을 우산처럼 쥐고 우물쭈물 주위를 쳐다보는 아키, 선글라스를 쓰면서 팔짱을 낀 린, 그리고 조용히 불안한 눈으로 한솔을 쳐다보는 루시드.


 심지어는… 분명히 잡았다 생각한 네퀴티아, 아니, 레버넌트도 거기에 있었다.


 그건, 진짜 레아였다. 말도 안 돼. 설마, 카르멘과 셰나가 놓쳤었나? 아무리 걔네들이 무능해도….


 "이… 이게 다 뭐야? 이게 뭔데? 잠깐, 뭐가 일어나고 있는 거야?"


 상황이 전혀 이해가 되질 않았던 분신은 진짜로 궁금하다는 듯이 관리자에게 물었다.


 "잠깐, 알려줘! 알려줘! 이대로 그냥 간다면 억울해! 뭔진 알아야 패배를 인정할 거 아니야?!"


 그러자, 관리자가 타이탄을 통해서 말했다. "네가 처음 나타났을 때에, 토미와 제리와 미키의 연락을 받았다."


 "잠깐, 그 핵 날리던 세 명?"

 "맞아. 그리고… 너는 마왕이라 누구도 이길 수 없다 생각해, 모두를 여기로 불렀지."


 타들어가는 분신이 이해가 되질 않는듯 물었다.


 "아니, 밖에 있던 녀석들은 전부다 뭐였는데?"

 "……."


 향후에 전술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트릭. 딱히 로자리아가 싫진 않았지만 일단 그녀는 적이었고 이걸 굳이 설명해야 하는가 망설였다. 하지만 관리자의 타이탄을 제치며, 지아가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제가 했던 거예요, 마왕 로자리아."

 "뭐?!"

 "저는 홀로그램에 질량을 부여하는 능력을 쓸 수 있어요. 사실 현실개변력 자체이지만…."


 관리자는 지아의 선택을 존중하며, 타이탄의 홀로그램 발생장치를 작동시켰다. 모두의 홀로그램이 나타나, 지아가 손을 튕기며 그 홀로그램에 질량을 부여했었다.

 그리고, 지아가 올림피안 기체에 달린 장치에 입을 대고서 말했다. "어때요, 당신이 아까 전에 봤었던 사람들이랑 똑같죠?" 소리는 홀로그램에서도 나왔다.


 타이탄이 치후유를 향해 렌즈를 돌리며 말했다. "치후유 양, 자네의 환상을 베어주지 않겠나?" 그러자 치후유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섬으로 가만히 서있던 환상을 잘라냈다. 홀로그램은 갈려나가며 피를 바닥에다 흩뿌렸다. 일격에 즉사한 홀로그램은 이내 증발. 지나칠 정도로 정교한 환상이었다.


 모두를 죽이건, 죽이지 않았건, 무지막지한 힘에 비해 주의력과 관찰력은 깊지 않던 로자리아는 결국 속았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성에 남았던 본체는 뭔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런 것이었나… 녀석.'


 그것은 더이상 감응을 유지하기도 힘든 분신에게도 반영되었다.


 '확실히, 내가 기대를 걸 만큼의 남잔 맞구나.'


 "흐음…." 분신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증오어린 불길은 그녀의 손가락을 이미 집어삼켰다. "훌륭했다. 관리자와… 이 검, 뭐라 불리던가? 어쨌거나 이 저주받은 검의 주인이여."


 자신이 쥔 검과도 같이 무한히 불타오르는 과격하고 극단적인 녹빛의 안광을 뿜어내는 거대한 남자는 자신을 내려봤다. 너무나도 냉혈하고 삭막하여 주위의 모든 것을 무채색의 질서로 덮어버리는 반침식파는 더욱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근데 말야…." 분신이 관리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사실 이거, 분신이거든?! 난 진 거 아냐, 절대 아냐! 그러니까 전혀 분하지도 않단다! 아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타이탄이 말했다. "…뭐야?"


 "최강의 마왕인 이 내가 그렇게 쉽게 당해줄리가 없지?! 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 그렇게 약올리려고 했었던 분신의 웃음은, 관리자의 다음 말에 끊겨졌다.


 "…뭐,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자신이 아는 로자리아는 분신 종류의 테크닉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진짜로 죽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했던 것이다.


 녀석, 왠지 밉진 않았는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관리자의 진심을 꿰뚫어본 로자리아는 진지한 표정을 짓고선 분신을 통해서 마지막으로 말했다.


 "오늘 나를 이긴 것은 용서해 주겠다."

 "……."

 "하지만, 세라펠 따위에게 진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니까 말야."


 그렇게 말하고, 분신은 손가락을 탁 튕겨냈다. 그리고는 형상이 스스로 분해됬다. 바로 어둠에 삼켜지듯이 사라지는 형체들은 퀴에투스의 불꽃을 허공 한 가운데에 불태우며, 그녀의 존재감마저 거짓인듯 없애 버렸다.


 관리국 타이탄은 그대로 멈춰서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지아가 옆에서 물었다. "저기, 관리자님…."


 "뭔가?"

 "만일 저것이 고작 분신이라면, 진짜 로자리아는 얼마나 강한 걸까요?"


 관리자가 대답했다. "저런 마왕에 대항할 방법은 몇 개 되질 않아. 반물질계통 화기를 사용하거나, 차원을 뒤틀어 없애거나… 위상을 다른 물질에 겹쳐서 붕괴시키거나. 전부다 그들의 정신 자체를 육체로부터 직접적으로 끊어낼 걸로 고려할 수 있겠지."


 "그런 방법을 쓰면 사실 물질로 몸이 구성된 누구라도 죽을텐데요."


 "당연하네. 반대로 말하면 그 정도로 확정적인 수단을 써야만 한단 거니까. 그렇지 않으면…." 타이탄이 렌즈를 돌리었다. "한솔의 저 검처럼 괴팍한 아티팩트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마왕 로자리아 대 반침식체 한솔.


 지금은 동료들의 도움과 관리자의 지휘에 의해서 격퇴했지만, 사실 둘이 서로 조건 없이 싸운다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더이상 침식파에 의해서 정신과 육체가 오염되는 기존 인류와는 달리, 침식체의 안티테제로서 존재부터 반침식파를 뿜어내는 신인류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 험난한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하여 외지를 정복하는; 역사부터 정의됬던 인류 스스로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남자가 바로 그였다.


 로자리아의 모든 공격은 실상 반침식파에 막혀질 것이며, 설령 그냥 맞아준다 해도 이미 카운터를 초월하는 이 존재에겐 어떤 데미지도 없을 거다. 문제라면, 그의 검은 원거리에선 투사체만 던지기에 로자리아의 공중 기동력으론 쉽게 피할 수 있을 거다. 결국, 절대로 죽을 수 없는 남자와 절대로 죽일 수 없는 여자의 무승부가 될 것이다.


 '…….'


 "한솔. 이 전투가 끝나면 바로 나에게 오게나. 자네에게 줄 갑옷이 있다네."


 아머 오브 더 파이어 나이트.


 침묵의 회색으로 전신이 덮어졌었던 그 신성한 갑옷은 아무나 취할 수 있는 무구가 아니다. 망토를 비롯해, 다이아몬드 헬름, 브레스트플레이트, 암즈, 레깅스, 부츠.


 원래는 장비가 너무나도 크기에 적합한 사용자를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반침식체 한솔의 신장은 이 미터를 살짝 넘는 상태. 관리자는 직감적으로 이 아티팩트가 어울리는 기사를 드디어 찾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더이상 인간 같지도 않은 한솔이 날카롭고 공격적인 격노의 눈동자를 마주치곤 침묵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며, 관리자는 이온 캐논의 포탑에 있는 도미닉에게 회선을 연결하였다.


 "그쪽은 어떻게 되가고 있지, 도미닉 준장?" 수동으로 이온 캐논을 조작을 하기 위해서 그곳에 대기한 도미닉은 스크린을 통해 코핀 함의 브릿지에 있는 관리자와 세실리아를 쳐다봤다.


 "문제없다. 내가 원래 있던 세계하고 구조가 똑같아. 시스템의 이상인지 오토락온 기능은 사용하질 못하나, 직접 조준하면 어떤 문제도 없이 쏠 수 있겠어. 흠… 당신의 올림피안을 제네레이터 대용으로 쓴다는 발상이 말이야, 처음엔 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결국 먹히는군."

 "혹시, 쏴서 빗나갈 확률은?"


 도미닉은 어이없는지 피식거리곤 대답했다. "난 지금 거대한 오비탈 베이스를 목표로 겨누고 있다, 사장. 이걸 빗맞출리가 없지 않나."


 관리자는 웃으며 말했다. "농담일세. 그것보다… 이번 작전에서 정말 큰 역할을 했었군. 오직 자네만이 건물 내부에 있었던 트랩하고 로봇들을 작동시킬 수 있었다니."


 "델타세븐의 기밀보안은 철저하지. 애초에 이온 캐논의 권한도 우리에게 있었고…. 그렇지만, 카린 준장은 어째서 그걸 몰랐던 것이지? 이제는 그녀가 총책임자인데."

 "…이곳의 델타세븐을 지휘한 마리아 안토노프 중장은 리플레이서 공격작전을 수행하던 중에 전사했네. 카린 양은 홀로 생환했던 것이니까… 뭔가 인계 받지 못한 것도 많았겠지."

 "……."


 도미닉은 침묵하다가 이내에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사장 당신이 원할 때 이 녀석을 쏘도록 하지."


 관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세실리아에게 물었다. "세실리아, 호라이즌들은 지금 뭘 하고 있나?"


 전투 직전,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관리자는 카린하고 전략적인 부분에서 논의했다. 리플레이서들의 오비탈 베이스가 지상에 낙하하는 도중에, 이것을 저지할 작전으로서 이온 캐논을 탈환해 오비탈 베이스를 향해서 발사하는 지상팀, 아예 우주까지 상승하여 오비탈 베이스에 침입해서 내부에서 폭발시킬 우주팀. 둘로 인원들을 나누기로.


 당연히 우주까지 자력으로 날아갈 수 있는 인원은 몇 없었고, 우주팀은 호라이즌, 나유빈, 엘리자베스, 치나츠, 그리고 카린이 되었다. 호라이즌은 애초 우주에서도 활동이 가능했었고, 엘리자베스와 치나츠는 각기 신성이란 힘을 취했었기에 어떻게든 우주에서도 기동할 수 있었다. 또한, 전례없이 강력한 카운터 워치를 가졌었던 나유빈도 에테리얼 오버드라이브를 통해 다른 둘과 비슷한 수준의 움직임은 낼 수 있다.


 카린은 자력으로 우주에 올라가지 못하며, 우주에서도 활동이 어려웠지만, 대신 오비탈 베이스 내부로 침입해 직접 해킹을 해서 구조물을 직접 폭발시키려고 했다. 그래서 우주복을 입고서, 치나츠와 오로치의 뱀에 올라타기로 한 것.


 "상황이 딱히 좋지 않단다. 호라이즌은 이모탈 모드를 작동해 세라펠과 타천사들의 공격을 계속해서 피하고 있지만… 유의미한 반격은 하지 못하는 상태구나."

 "나유빈이나 엘리자베스, 치나츠나 카린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은… 오비탈 베이스 내부로 들어간 것 같구나."

 "……."


 관리자는 깍지를 끼면서 모니터를 진지하고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봤다. 마왕이 나타난 이후로 계속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킬 수 없었던 세실리아는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관리자의 올림피안 옆에 서있던 지아가 물었다.


 "고모님, 왜 그러세요?"

 "아니… 그냥. 지아는 어떠니? 나는 함교에서 안전하게 앉아 있지만…. 현장에 서니 무섭지 않니?"

 "모두랑 같이 있으니 무섭지 않아요."

 "그래…."


 긴장이 풀렸는지 세실리아는 기지개를 피고는, 모자를 고쳐쓰면서 장난스럽게 말했다.


 "정말… 삼류 태스크 포스의 사장이 베타트릭스의 회장을 오퍼레이터로 쓴다니…."


 지아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저는 현장에서 직접 모두와 싸울 수 있어 기뻐요."


 어쨌거나, 관리자는 호라이즌을 통해 전송되어진 세라펠의 전투방식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마왕들이 야망을 드러내며 전쟁에 끼어든 지금,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선 이들 모두와 싸워 이겨야만 한다. 그것이 호라이즌을 비롯한 관리자의 아군에 의해서건, 아니면 관리자 자신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올림피안에 의해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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