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리처드라고 소개한 남성이 목소리를 낮춰 이어 말했다.

 

소속은 밝힐 수 없지만난 상부의 지시로 이 배를 통해 아티팩트를 운반하고 있었네저놈들은 그 물건을 노리고 습격해온 게 분명해.”

 

리브가 화들짝 놀라 몸을 기울이며 끼어들었다.

 

크루즈 선에 아티팩트요?”

 

근처에 있던 단원들의 시선이 에스테로사에게 모였다.

 

일부는 고개를 끄덕이고또 다른 이들은 천천히 내젓는다.

 

아직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

 

그녀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우선자세히 설명부터 해주시겠습니까?”

 

설명이라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어오는 리처드.

 

저 해적들의 목적이 아티팩트라 짐작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보통제로 민간에 공개되진 않았지만 얼마 전부터 조직적으로 관리국을 적대하는 단체가 있어요인 암살부터 아티팩트의 탈취까지다양한 방식으로 테러를 감행하고 있지.”

 

저들이 그 단체의 일원이라 생각하시는 거군요.”

 

리처드가 에스테로사가 질문하는 의도를 알아차리고 그녀를 째려보았다.

 

자네내가 저들과 한패는 아닌지 의심하고 있군승객 사이에 심어둔 내통자라고그렇지?”

 

인질을 감시하는 상투적인 수법이니까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에스테로사가 대답했다.

 

자신은 한 단체의 수장.

 

확신 없이 단원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다.

 

리처드는 곧 무언가를 결심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움을 청하려면 먼저 이쪽에서 믿음을 줘야겠지저들이 쓰는 장비는 모두 시중에선 구할 수 없는 물건이야어느 비밀조직이 사용하던 것들이지그게 내가 저 테러리스트들의 정체를 알아차린 이유일세.”

 

테러범들의 시선이 자신들을 향하고 있진 않은지 곁눈질로 살핀 리처드가 얘기를 계속했다.

 

얼마 전 놈들이 우리가 수송 중인 아티팩트를 노리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어섣불리 병력을 동원했다간 도리어 목표물의 위치를 알려주는 꼴이 되니 비밀리에 민간 선박을 이용한 이송 작전을 계획했네연막용으로 가짜 작전도 여러 번 펼쳤었는데이미 관리국 내부에도 첩자가 있었군그래.”

 

어떤 아티팩트이길래 저들이 민간인 습격까지 감수하는 겁니까후환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대답을 재촉하는 에스테로사의 눈빛에 리처드는 마지 못해 입을 열었다.

 

“‘수조라는 물건이야.”

 

 

 

이면세계의 환경은 예측할 수 없다.

 

어디는 지평선 가득 모래가 수북이 깔린 사막이또 다른 곳은 폐허가 된 도시가 방문객들을 기다린다.

 

하루 내내 찌는 듯한 더위가 온몸의 수분을 빼앗아가는가 하면 극야기간의 극지방에 맞먹는 살인적인 추위가 모든 것을 얼려버리기도 한다.

 

숙련된 카운터와 용병이라면 이 모든 변수를 철저히 고려하여 작전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그런 베테랑들도 절대로 가까이하지 않는 지형이 하나 있다.

 

바로 이면세계의 바다다.

 

차원 전함은 명칭은 함선이지만 기본적인 골자는 공중전함으로 다이브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바다 위에서의 전투는 일반적 의미의 함선과 비교하자면 크게 뒤처진다.

 

병력을 태우고 싸우는 전함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베테랑 태스크포스가 바다를 멀리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환경적 불리함을 뛰어넘는바다 그 자체의 위험성이 그 이유였다.

 

온 사방에 깔린 이터니움은 쉴새 없이 침식파를 내뿜어 이면세계의 대지를 오염시킨다.

 

그렇게 오염된 토양은 비바람에 풍화되어 근처 강과 시내로 흘러 들어가고 모든 물길은 종국에는 바다와 연결된다.

 

이면세계의 바다란 오랜 시간 동안 오염이 쌓이고 쌓인 위험지대이며 오염을 먹고 자라난 침식체와 그 침식체를 먹이로 삼는 또 다른 괴물이 가득한 곳이다.

 

동급이라고 해도 해양 침식체는 다른 놈과 비교하면 몇 배는 더 위협적이라는 것이 태스크포스 사이의 중론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바다 위에서 평소보다 수 배는 강한 적과 맞서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

 

관리국에서 신규 태스크포스에게 배부하는 교범에서도 이면세계의 바다는 반드시 피할 것을 명시하고 있었다.

 

들어본 적 있습니다대정화전쟁 당시 프론트 베이 인근에서 활동했던 태스크포스의 피해는 다른 이들보다 현저히 컸다고.”

 

그래관리국에서 주관하는 소집 교육에서도 항상 강조하는 부분이지.”

 

바다 위에서의 전투는지상에서의 그것과 다르다.’

 

수조는바로 그 이면세계의 바다와 연결되는 통로야.”

 

 

 

프론트 베이 최외곽의 한 해안 도시.

 

이 도시에는 오래전부터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마을 바깥에 있는 해안 동굴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산다고.

 

아이들은 어른들이 으레 그렇듯 위험한 곳이니 가까이하지 말라고 겁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 낸 헛소문이라 치부했지만근거가 전혀 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침식지대와 인접한 다른 도시들에 비교해도 이 마을의 실종사건 숫자는 현격히 많은 것이다.

 

관광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도시는 마을을 찾아온 관광객들마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자 도시관리국에 조사를 요청하였고 프론트 베이 관리국은 산하 태스크포스를 파견하였다.

 

현장에 도착한 태스크포스가 해안 동굴 깊숙한 곳에서 마주친 것은침식체를 뱉어내는 투명한 수조였다.

 

성인 남성 열댓 명은 너끈히 들어갈 만한 부피의 커다란 수조에는 고심도 이면세계에서나 볼 법한 오염된 검은 물이 가득 차고위 침식체가 꾸역꾸역 기어 나오고 있었다.

 

최초 진입했던 태스크포스가 큰 피해를 보고 간신히 빠져 나와 이 사실을 보고하자 도시관리국은 인근 태스크포스를 모두 소집해 대대적인 진압 작전을 펼쳤다.

 

동굴 가득 쏟아져나오는 침식체와의 사투 끝에 관리국은 아티팩트를 회수하였고 연구소로 보내 본격적인 분석에 착수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수조는 자체적으로 차원 변곡점을 만들어 이면세계와의 통로를 형성유지한다.

 

지금까지 이면세계와 현실세계 사이의 직접적인 연결점은 없었다.

 

둘 사이를 오가는 수단이란 간간이 자연적으로 열리는 차원 통로를 이용하거나 다이브를 통해 인위적으로 차원 계면을 통과하는 방법뿐.

 

하지만 이 아티팩트는 다르다.

 

단지 열어두는 것만으로고심도 이면세계와의 통할 수 있다.

 

그 위험성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이에 분석 결과를 전해 들은 상층부에서는 아티팩트의 영구적인 봉인을 명령했네블루 로즈 섬 인근의 기밀 보관시설로 수조를 옮기기로 했지.”

 

그다음은 에스테로사도 겪은 대로였다.

 

얘기를 모두 들은 단원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고위 침식체가 제약 없이 쏟아져나오는 아티팩트.

 

그런 물건이 테러단체의 손에 넘어간다면.

 

그리고 그 아티팩트를 이용해 사람들을 습격한다면.

 

바다와 맞닿은 도시는 모두 끝장이다.

 

 

 

막아야 합니다단장님.”

 

조용히 얘기를 듣던 한 기사가 단호히 말했다.

 

주위를 둘러보자 다른 기사단원들 역시 마찬가지.

 

표정에서 굳은 의지가 느껴진다.

 

에스테로사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도와드릴 겁니다그런데 관리국의 지원은 없는 겁니까?”

 

연락은 진즉 취했네그렇지만 병력을 파견하기까지는 아무래도 시간이.”

 

그때 리처드의 주머니에서 휴대전화 알람이 울렸다.

 

자연스레 모두의 이목이 군중 한가운데로 모여든다.

 

멀리 서 있던 병사 하나가 고압적인 태도로 물어왔다.

 

거기 너그거 뭐야?”

 

아하하거래처에서 연락이 온 것 같습니다휴양지에서 직원들과 미팅을 하기로 했거든요.”

 

그딴 건 관심 없고여긴 지금 전파가 차단된 상태인데 전화가 어떻게 오냐고.”

 

그게제가 좋은 휴대전화를 써서이거 알파트릭스제 제품이거든요들어 본 적 없으십니까?”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리처드는 어색한 변명을 주워 삼켰다.

 

누가 봐도 수상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먼저 말을 꺼낸 병사가 다른 이들과 눈빛을 교환하고 터벅터벅 걸어왔다.

 

그거 이리 내.”

 

겁에 질린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좌중에 자그마한 공터가 만들어졌다.

 

코앞까지 다가온 병사가 리처드의 이마에 총부리를 갖다 댔다.

 

천천히 휴대전화만 꺼내허튼짓하지 말고.”

 

에스테로사가 조심스레 팔을 뻗어 리브의 옆구리를 찔렀다.

 

리브 역시 눈동자만 굴려 에스테로사를 보더니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비밀번호 뭐야잠금 풀어.”

 

홍채 인식이라서요풀려면 일단 돌려주셔야 하는데.”

 

잠금을 풀자마자 병사가 휴대전화를 낚아채 갔다.

 

관리국?!”

 

깜짝 놀란 그가 소리를 지르는 것과 동시에 리브가 쏜살같이 일어나 병사의 팔을 꺾었다.

 

에스테로사 역시 다른 병사들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갔다.

 

젠장뭐야!”

 

제압해!”

 

에스테로사는 양팔을 가로로 들어 머리를 보호했다.

 

순식간에 홀을 가로지른 그녀는 바로 앞 병사의 복부에 정권을 먹이곤 바닥에 있던 철봉을 반대편으로 걷어찼다.

 

리브 경!”

 

사람들 사이에서 뛰어나온 리브가 날아오는 봉을 받았다.

 

좋아이쪽은 맡겨두라고!”

 

리브가 자세를 낮춰 총격을 피하며 지그재그로 달려갔다.

 

그대로 병사들 한가운데에 파고들어서 텅 빈틈에 봉을 집어넣고 크게 휘두른다.

 

강화복을 입은 병사들이 종잇장처럼 펑펑 날아가 기둥과 벽에 처박혔다.

 

에스테로사도 버고 소드를 휘둘러 나머지를 차곡차곡 제압해나갔다.

 

아직 쓰러지지 않은 병사가 악에 받쳐 외쳤다.

 

인질인질들을 노려!”

 

무방비한 시민들에게 향하는 총구.

 

그러나 에스테로사도리브도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자리를 지키던 다른 기사들이 쓰러진 병사들의 방패를 가져와 사람들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도탄이 사방으로 튀었지만 다친 이는 없었다.

 

곧 홀 안을 완전히 제압한 에스테로사가 다시 단원들에게 돌아왔다.

 

피해는?”

 

시민들은 모두 무사합니다저희도 마찬가지이고요단장님.”

 

좋아리브 경자네는 단원들과 함께 위층으로 가서 병사들을 제압하고 승객을 구출하도록나는 아티팩트를 찾으러 가겠다.”

 

혼자서 괜찮겠어단장?”

 

아니그게 무슨 말인가!”

 

리처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 반발했다.

 

방금 내가 한 말을 듣지 못했나아티팩트가 놈들의 손에 넘어가면 수많은 사람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똑똑히 들었습니다.”

 

에스테로사는 다가온 리처드의 눈을 피하지 않고 응시했다.

 

하지만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이지금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리처드의 말문이 턱 막혔다.

 

아직도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나지 못하는 노인.

 

엄마의 품에 꼭 안겨 숨죽여 울고 있는 아이.

 

서로 부둥켜안고 벌벌 떨고 있는 연인.

 

주위 사람들이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직도 망설이는 리처드에게 에스테로사가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십시오기사의 명예를 걸고아티팩트가 그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지키겠습니다.”

 

이리되자 그도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리처드가 한 발 물러섰다.

 

방금 한 말은 사과하겠네도움을 받는 쪽에서 이 이상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도 우습겠지.”

 

괜찮습니다수조는 어디에 있습니까?”

 

지하 화물칸에 있네관리국 로고가 박힌 금고가 하나 놓여있을 거야.”

 

알겠습니다그럼.”

 

에스테로사는 가볍게 목례(目禮)를 하고 층계참으로 발길을 옮겼다.

------------------------------------------------------------------------------------------------------------------------------------------------------------------

쓴 글 모음


1화

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