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 갑판에도 소수의 병력이 남아있었지만, 에스테로사의 적수가 되지는 못했다.

 

종전과 같이 인질을 잡히는 걸 우려했는데 마침 자리에 있던 에리어스가 자신의 능력으로 시민들을 보호한 덕분에 무사히 제압할 수 있었다.

 

에스테로사는 에리어스와 양한솔을 위로 올려보내고 걸음을 재촉했다.

 

목적을 달성한 이들이 남은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모를 일.

 

차원 함선을 동원할 세력과 관리국의 기밀을 알아낼 정보력이 있는 자들이다.

 

물건을 챙기고 그대로 잠적해버린다면 찾을 방법이 없다.

 

지하로 내려오자 통로 끝에 커다란 철문이 보였다.

 

여기저기 찌그러지고 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뚫린 문.

 

폭탄 같은 걸 터트린 건지 구멍 주변의 철판은 문 안쪽으로 구부러진 상태였다.

 

문 안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수레를 끌고 나왔다.

 

수레 위에는 검은 물이 들어찬 커다란 유리 상자가 실려 있었다.

 

아마 저것이 수조이겠지.

 

병사들 가운데 검붉은 제복을 입은 남자를 발견한 에스테로사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서 검을 겨눴다.

 

이 테러의 주모자로 보이는데, 맞나?”

 

문밖에 있던 에스테로사를 발견한 병사들이 흠칫 놀라 소총을 겨눴다.

 

손을 들어 올려 그들을 제지하고 태연히 입을 여는 해리스.

 

그러는 넌 누구지?”

 

난 조디악 나이츠의 단장, 에스테로사 드 슈발리에다.”

 

관리국 직할 태스크포스 리스트에선 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관리국의 끄나풀은 아닌가.

 

승객 중 태스크포스가 있었나 보군.

 

흥미가 사라진 해리스는 덤덤히 명령했다.

 

사살해.”

 

에스테로사가 두 손으로 검 손잡이를 쥐고 가슴께로 들어 올렸다.

 

별이여.”

 

버고 소드에서 나온 빛이 그녀를 휘감았다.

 

그대로 사격을 무시하고 통로를 내달린다.

 

순식간에 십여 미터를 주파한 에스테로사가 가장 앞에 선 병사의 어깨를 노렸다.

 

베기 직전에 손목을 비틀어 검 면으로 타격하려던 때.

 

둘 사이에 끼어든 해리스가 한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 멈췄다.

 

전대장님!”

 

수조 챙겨서 옆으로 빠져. 너희가 감당할 상대가 아니다.”

 

해리스의 손을 뿌리친 에스테로사가 몇 걸음 뒤로 물러나 다시 자세를 잡았다.

 

검을 몸 앞에 세워 공격과 방어. 어느 쪽으로든 반응할 수 있도록 대비한다.

 

의식하진 않고 있었지만, 전혀 안 보였다.

 

고등급 카운터다.

 

한솔 경에게 듣기론 청각을 망가뜨리는 능력을 사용한다고 하던데.’

 

해리스는 천천히 가죽장갑을 벗어 등 뒤로 던졌다.

 

전투를 앞두고 오히려 장갑을 벗었다.

 

맨피부로 접촉해야 발동하는 능력인가?’

 

고민이 많군.”

 

해리스가 왼발에 무게를 실어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자세를 낮췄다.

 

전신의 근육이 활처럼 팽팽히 당겨진다.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리고 예고 없이 해리스가 바닥을 밀어내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수평으로 베어 적의 접근을 차단하려 했지만, 해리스는 에스테로사에게 다가가지 않고 오른쪽 벽을 차고 올라 등 뒤로 넘어갔다.

 

반동을 따라 몸을 회전시키며 이번엔 사선으로 베어간다.

 

종이 한 장 차이로 공격을 피한 해리스는 에스테로사가 검을 회수하기 전에 간격 안으로 파고들어 왼쪽 허벅지에 로우킥을 날렸다.

 

퍼억!

 

크게 아프진 않아도 순간적으로 움직임이 멈춘다.

 

에스테로사는 살짝 뒤로 물러나며 반원을 그리며 검을 올려 베어 적의 턱을 노렸다.

 

이번엔 그녀를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돌아 공격을 피해낸 해리스가 백스핀 엘보로 에스테로사의 관자놀이를 찍었다.

 

!”

 

타격 직전 손을 팔꿈치와 머리 사이에 끼워 넣어 급소를 방어해냈지만, 충격 때문에 몸이 밀린다.

 

이어서 벽에 꽂히는 뒤돌려차기.

 

에스테로사는 망설이지 않고 옆 통로로 몸을 던졌다.

 

강철로 만들어진 벽이 움푹 우그러들었다.

 

또다시 달려와 거리를 좁히며 쉴 틈 없이 공격을 쏟아내는 해리스.

 

검이 최고의 위력을 발휘하는 간격은 약 1m 전후.

 

그는 그 간격을 파악하고 에스테로사가 무기를 활용하지 못하도록 꾸준히 달라붙었다.

 

그렇다고 출력으로 밀어붙일 수도 없어.’

 

물론 버고 소드의 힘을 끌어낸다면 단숨에 상대를 찍어 누를 수 있겠지만.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은 크루즈 선 지하의 화물칸이다.

 

섣불리 출력을 높였다간 그대로 배가 가라앉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능력을 쓰지 않는 거지? 뭔가 다른 조건이 더 있나?’

 

이미 여러 차례 공격을 받고 상대와 접촉했지만, 귀에 문제가 생긴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한 번 쓴 뒤엔 다음 사용까지 시간이 필요할 부류일지도.

 

다행히 상대의 기술은 뛰어나지만, 결정타가 없어.’

 

이대로 방어를 굳히고 빈틈을 노리면 된다!

 

잽을 날려 에스테로사를 견제하던 해리스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막다 보면 기회가 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지?”

 

날아드는 검 면을 비스듬히 쳐낸 그가 번개처럼 팔을 뻗어 에스테로사의 팔뚝을 붙잡았다.

 

 

 

한편 리브 쪽은 파죽지세로 병사들을 몰아내고 있었다.

 

인질의 안전 문제는 에리어스가 합류한 이상 아무런 장해물도 되지 못했다.

 

성수의 힘으로 사람들을 감싸 갈라놓은 뒤, 리브가 앞장서서 단숨에 적들을 제압해나갔다.

 

각 층에서 합류한 단원들과 피오네의 활약에 힘입어 그들은 금세 5, 크루즈 선의 꼭대기까지 진입했다.

 

계단을 올라오자마자 기사단원들의 눈에 보인 것은 일렬로 늘어서 방어선을 형성한 병사들이었다.

 

일제 사격!”

 

피오네가 단원들 앞으로 나서 방패를 높이 들자 투명한 황금빛 장벽이 총알을 모두 튕겨냈다.

 

리브 경!”

 

갑니다, 가요!”

 

장벽을 앞세워 돌진하는 피오네의 뒤로 리브가 따라붙었다.

 

그대로 병사들 틈에 파고든 두 사람.

 

흡사 양 떼 사이에서 날뛰는 늑대가 생각나는 꼴이었다.

 

잘 훈련된 군대라 해도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카운터를 상대하기란 요원한 일.

 

여기저기 병사들이 쓰러져 기절해갔다.

 

그중 한 명이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퇴각 신호를 보냈다.

 

후퇴! 뒤로 빠져 대열을 정비한다! 후퇴해!”

 

뒤쪽에 있던 한 병사가 섬광탄을 터뜨리자 피오네가 리브의 팔을 잡아당기고 방패를 들었다.

 

빛이 꺼지자 조금 떨어진 맞은편에 남은 병사들이 뭉쳐있었다.

 

처음에 비하면 눈에 띄게 줄어든 숫자.

 

이대로 한 번만 더 밀어붙이면 끝이라 생각하니 복도 끝 골목에서 대여섯 정도 되는 병사가 더 나타났다.

 

필립은 품을 뒤적거리며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다들 뒤로 물러나라.”

 

부전대장님, 혼자서는 위험합니다.”

 

괜찮아. 모두 몸 좀 추스르고 있어.”

 

필립이 연막탄을 꺼내 앞으로 던졌다.

 

순식간에 복도 가득 자욱한 연기가 차오른다.

 

부단장!”

 

숨 참으세요, 리브 경!”

 

피오네가 창을 내려놓고 소매로 코를 가리니 필립이 태연히 말했다.

 

독은 아니니까 걱정할 것 없다. 그냥 눈만 가릴 뿐이야.”

 

찰칵, 날카롭게 울리는 금속음.

 

무거운 발걸음이 복도 가득 쿵쿵 울린다.

 

공격이 옴을 직감한 피오네가 방패를 앞으로 내밀었다.

 

나이프가 방패를 긁어 듣기 싫은 소음을 냈다.

 

좋은 판단이군.”

 

이번엔 오른쪽.

 

피오네가 목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방패를 돌렸지만, 필립은 몸을 낮춰 바닥을 쓸 듯 그녀의 다리를 걷어찼다.

 

!”

 

중심을 잃고 넘어진 피오네를 향해 단검 손잡이가 내리 찍혔다.

 

!

 

쇠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퍼졌다.

 

부단장, 괜찮아?”

 

다가오지 마세요. 리브 경! 위험합니다!”

 

리브는 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달려가며 사방으로 봉을 휘둘렀다.

 

매서운 바람이 일면서 연막이 조금씩 걷혀갔다.

 

터프한데?”

 

문제는 연기 속에서 적과 아군이 뒤엉켜 싸우는 상황이었다는 것.

 

빗나간 철 추가 머리 바로 위의 벽을 으깨 돌 부스러기가 날리자 피오네가 기겁해서 외쳤다.

 

멈춰요, 리브 경! 저까지 죽일 생각입니까?”

 

, 뭐야. 부단장이었어? 그럼 그 복면은?”

 

안 보이는데 제가 어떻게 알아요! 도대체가, 적과 아군도 구분이 안 가는 상황에서 그렇게 마구잡이로 공격을 하면 어떡합니까!”

 

그렇지만 방금 부단장 위험했던 거 맞잖, !”

 

연기 속에 몸을 숨겨 다가온 필립이 리브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카운터의 완력이 실린 발차기에 리브의 몸이 붕 떠 반대편 벽에 처박혔다.

 

리브의 목소리가 들리던 방향으로 방패를 들고 몸을 날려보았지만 걸리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등 뒤에서 날아온 주먹에 맞아 그녀 또한 바닥을 구를 뿐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해.’

 

연기가 깔리기 전 모습을 보면 상대가 쓰는 장비는 평범한 제복에 복면이 전부.

 

소리로 짐작하건대 사용하는 무기도 작은 나이프 정도다.

 

그런데도 자연스럽게 우리 위치를 파악하고 있어.’

 

저 남자, 앞을 볼 수 있다.

 

 

 

우욱. .”

 

에스테로사가 바닥에 엎드려 피 섞인 침을 뱉어냈다.

 

벌써 몇 번이나 적의 주먹에 얻어맞았지만, 반격을 시도해보지도 못했다.

 

해리스가 손을 뻗어 팔을 붙잡은 순간부터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안 보이는 게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 보인다.

 

마치 돋보기로 해를 바라보려 할 때처럼 너무 눈이 부셔서 사물을 분간할 수가 없다.

 

천장의 작은 조명이 코앞의 태양이라도 된 것 마냥, 망막을 태우며 시야를 앗아갔다.

 

청각과 관계된 능력이 아니었나? 한솔 경에게 들은 것과는 전혀 달라.’

 

아까 전부터 내 손을 뚫어져라 쳐다보던데.”

 

몸을 일으키려는 에스테로사의 팔을 차 다시 넘어뜨리며 해리스가 말했다.

 

갑판에 있던 죽도 든 안경 꼬맹이, 네 부하였나?”

 

검을 쥔 손을 구둣발로 짓밟으며 그가 웃었다.

 

하긴, 둘 다 검 들고 설치는 꼴을 보면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겠어.”

 

요즘 같은 시대에 단체로 기사 놀음이라도 하는 건지, .

 

너희 같은 애들을 상대로 이런 것까지 쓰고 싶진 않았는데 말이야.”

 

해리스가 주머니에서 너클을 꺼내 손에 끼웠다.

 

이터니움 합금으로 만들어진 너클은 손가락 구멍 끝에 뾰족한 돌기가 솟은 흉흉한 물건이었다.

 

내 생각보다 더 튼튼하더라고. b급은 가볍게 넘을 테고, a급 카운터 정도 되나?”

 

설령 a급 카운터라 해도, 사람을 상대하는 이상 자신이 질 일은 없다.

 

신경에 작용해서 오감을 극대화하는 그의 워치는 적에게 사용할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

 

시신경을 몇백 배로 예민하게 만들면 코앞에 있는 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청각을 자극한다면 작은 말소리조차도 바로 옆에 내리꽂히는 천둥소리가 된다.

 

바닥에 쓰러진 에스테로사의 머리채를 잡아 억지로 일으켜 세우며 해리스가 눈을 빛냈다.

 

그럼 슬슬 끝내자고.”

 

해리스는 반대쪽 손으로 상대의 무방비한 배에 있는 힘껏 펀치를 날렸다.

 

대번에 에스테로사의 허리가 꺾이며 기침을 토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뻗어 해리스의 팔을 붙잡는 그녀.

 

해리스는 무심히 팔을 털어 손을 뿌리치려 했다.

 

발악을.”

 

주먹을 거두려는 그의 표정이 딱딱히 굳었다.

 

상대의 악력이 너무 강했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팔이 부러질 것만 같은 괴력에 머리를 쥐던 손도 놓고 급히 에스테로사의 팔을 떼어놓으려 했지만.

 

이렇게 잡고 있다면, 보이지 않아도 아무 문제 없지.”

 

에스테로사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 계집애, 설마 일부로?’

 

순간 해리스의 목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에스테로사는 그대로 상대를 덮쳐 넘어지면서 오른팔 상박과 하박 사이에 상대의 목을 끼우고 졸랐다.

 

경동맥을 압박해 의식을 빼앗는, 암 트라이앵글 초크.

 

숨이 막힌 해리스가 그녀의 등을 너클로 내리찍었지만 에스테로사는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잠시 바동거리던 그가 금방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상대가 기절한 걸 확인한 에스테로사가 팔을 풀었다.

 

, 이제야 좀 앞이 보이는군.”

 

 

 

좁은 복도 안쪽은 좀처럼 연기가 빠져나가질 않아 여전히 교착상태가 이어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지는 건 피오네와 리브 쪽이었다.

 

둘의 몸 곳곳에는 자상(刺傷)이 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출혈이 계속된다면 체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

 

이미 옆 사람의 숨이 거칠어진 게 표가 날 정도다.

 

이대로는 필패(必敗).’

 

피오네가 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어떻게든 상황을 뒤집을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데.

 

부단장, 또 온다!”

 

앞에서 바닥을 박차는 소리가 들렸다.

 

피오네가 전신을 긴장시키며 다시 방패를 들어 올리려는데.

 

으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바닥에 넘어졌다.

 

리브 경?”

 

나 아니야!”

 

그렇다면, 저 남자가?

 

바닥에 부서진 잔해가 좀 있긴 해도 사물을 분간할 수 있다면 걸려 넘어질 이유가 없을 텐데.

 

앞이 보이는 게 아니었나? 그렇다면.’

 

리브 경! 천장을 부수세요!”

 

단호한 목소리에서 무언갈 느낀 리브가 즉시 뛰어올라 천장을 깨부쉈다.

 

잔해가 통로 곳곳에 떨어져 발 디딜 틈 없이 쌓여갔다.

 

필립이 긴장한 채 뒤로 물러서 상대를 살폈다.

 

둘 다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접근하는 걸 막으려 한 건가?’

 

시간만 끌려는 거라면 오히려 환영이다.

 

전대장님이 상황을 정리하고 올라오실 때까지만 버틴다면.

 

꽉 잡으세요. 리브 경!”

 

그 순간 두 소녀가 자신을 향해 달려왔다.

 

방어는 생각하지 않은 무식한 돌진이었다.

 

필립은 지금까지처럼 옆으로 살짝 비켜 피하려 했지만 단단한 막에 가로막혀 지나갈 수가 없었다.

 

하아압!”

 

피오네가 황금빛 장벽으로 통로를 가득 메우고는 그대로 연기 속을 주파했다.

 

연막을 벗어난 뒤 방패의 힘을 방출해 상대를 날려 보낸다.

 

으억!”

 

피오네의 뒤에 있던 리브가 재빨리 달려가 필립의 가슴팍을 밟고 목울대에 봉을 겨눴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간판 한 편에 무장을 해제한 병사들이 모여 기사단원들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총화기도, 강화복도 모두 빼앗긴 그들에게 더 이상의 저항 의사는 없었다.

 

리처드가 치료를 받던 에스테로사에게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맙네. 자네 덕분에 아티팩트를 회수할 수 있었어, 내 상부에 보고해서 반드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약속하지.”

 

보상은 괜찮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손길을 거절하지 않는 것은 기사로서 당연한 일이니까요.”

 

아니, 그렇지만.”

 

대가를 바라고 움직인 것이 아니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보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병사들을 돌아보며 리처드가 턱을 쓰다듬었다.

 

, 일단 지원 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잠시 기다려야겠지. 이대로 운항을 계속할 수도 없으니까. 아 참, 미안하지만 자네들도 참고인으로 같이 조사를 받아야 할 거야. 그냥 간단한 청취만 진행할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말고.”

 

경비 업체로 고용된 태스크포스도 다수 사망한 사건이니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휴가길에까지 사건 사고에 휘말려 시간을 빼앗긴다고 리브 경이 또 투덜대기야 하겠지만.

 

예상대로 옆에서 팔 여기저기 붕대를 감던 리브는 대번에 입이 튀어나왔다.

 

? 그럼 저희 여행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크루즈 티켓은?”

 

리처드는 에스테로사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자네들만 괜찮다면 관리국 차원에서 새 크루즈 여행 상품을 알아봐 줄 수도 있지. 혹시 이것도 자네가 말하는 대가에 포함되는 건가? 개인적으로는 내 호의라 생각하고 받아주었으면 하는데.”

 

그 소리를 들은 리브가 에스테로사에게 찰싹 달라붙어 어깨를 흔들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에리어스가 아직 치료가 끝나지 않았다고 말렸지만, 리브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피오네도 헛기침을 하며 은근한 눈빛을 보내는 것이 마음이 끌리는 모양이었다.

 

단원들이 이렇게 기대하는데 그 바람을 저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지.

 

그러시다면 기쁘게 받겠습니다. 단원들도 그러길 원하는 것 같고요.”

 

, 흐흐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스산한 웃음소리가 그들의 대화를 끊고 들어왔다.

 

해리스가 흐트러진 앞머리 너머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개처럼 꼬리를 흔드는 꼴이 참 역겹기 짝이 없군. 기사 나리께서는 자기 옆에 있는 게 어떤 놈들인지도 모르시나?”

 

짙은 원망과 분노로 덧칠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세계를 위한다는 감언이설로 온갖 사람들을 꼬드겨놓고, 막상 필요가 없어지면 씹던 계피처럼 내다 버리는 개자식이 바로 관리자다!”

 

차원 함선에 우릴 처박아두곤 10년이 지나도록 찾지도 않고서.

 

명예니 뭐니 하더니 정작 자길 믿고 따르는 부하들의 목숨을 한낱 고철 따위에게 떠넘긴 채.

 

이젠 웬 회사를 차리고 답지도 않은 가족 놀이나 하는 가증스러운 새끼가!

 

피오네가 그를 조용히 시키려 하자 에스테로사가 그녀를 제지하더니 해리스의 앞으로 걸어갔다.

 

자세한 사정까진 모르겠다만 그대에게도 사연이 있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억울함이 있다면 도리에 맞게 풀어야 하지 않겠나?”

 

! 도리 말이냐?”

 

에스테로사는 저길 보라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에리어스에게 치료를 받은 사람들이 몇 번이나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하고 있었다.

 

적어도 저 사람들은 그대의 원한과 아무 관계도 없어 보인다만. 죄 없는 시민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생각은 없다. 다만.”

 

그녀는 한쪽 무릎을 굽혀 해리스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대들의 억울함이 진실이라면 기사단 본부로 찾아오도록. 얘기를 들어본 뒤 가능하다면 도와주도록 하지. 물론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진 다음에 말이야.”

 

착각하고 있나 본데 난 그 빌어먹을 관리자 놈에게 책임 따위 물으려는 것이 아니다.”

 

놈과 관계된 모든 걸 불태울 것이다.

 

놈이 괴로움에 차 몸부림치는 꼴을 보고야 말 것이다.

 

내 부하들이, 형제들이 겪은 고통을 똑같이 겪도록 만들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수단 방법 같은 건 알 바 아니란 말이다!”

 

해리스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 뛰쳐나갔다.

 

피오네가 급히 달려와 리처드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해리스는 그녀들을 지나쳐 계속 달렸다.

 

이 사람을 노리는 게 아니었나?’

 

그 시선 끝에 있던 것은, 수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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