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참 불공평하다.
이 말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래서 한 번 더 강조해서 말한다. 세상 참 불공평하다.
아,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 세상엔 자기들이 그토록 많은 특권을 타고났다는 걸 아예 인식도 못하는 녀석들도 있으니까. 태어날 때부터 금보따리에 친친 동여매져 있었으면서, 자기들 인생은 전부 본인 손으로 일궈냈다고 착각하는 부류들 말이다. 그래놓고 그 얄상한 입술로 잘도 나불대지.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모두 피나는 노력 덕분이에요!
지금 이런 걸 떠오른 이유가 뭐냐고? 뭐, 별건 아니다. 눈앞에 있는 잔디에 살얼음이 살포시 내려앉은 게 보이니까 말이지. 발자국처럼 이어진 그 살얼음을 따라가 보면... 옳지. 보인다.
레지나 맥크레디. 고고학과. 수재라고 소문이 자자한 우등생. 듣기로는 집도 어마어마한 부자라더라. 거기까지만 해도 나 같은 평범한 사람 열폭시키는 데는 충분한데, 거기에 더해 또 하나가 더 있다고. 그게 뭔지 알아? 바로 이 잔디 위 살얼음의 정체야.
세상에, 저 아가씨는 거기에 더해 카운터이기까지 해. 냉동 능력이라나. 이게 말이나 되는 거야? 세상에, 신이든 마왕이든 대답 좀 해봐. 한 사람한테 저런 행운이 전부 가도 되는 거냐고.
"어머, 선배. 안녕하세요. 시험은 잘 보셨나요?"
"그냥 그럭저럭."
"평소에 열심히 공부하시잖아요? 전 너무 어려워서, 그냥 대충 적고 나와버렸는데... 아무래도 전 틀린 것 같아요."
저렇게 생긋 웃으면서 말해도 학년 수석은 이 잘난 아가씨가 전부 쓸어갈 것을 안다.
그 잘난 시계 가지고 있으면 얌전히 어디 태스크포스에나 들어가서 돈방석에나 앉을 것이지. 왜 고고학과에 들어와서 애꿎은 범재의 열등감이나 유발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참, 집이 부자랬지. 우리 양갓 규수님에게 야만스러운 침식체 몸에서 보라색 돌덩이나 꺼내라고 저주나 퍼붓고 있었다니, 이거 큰 실수를 범했네.
"너야말로 공부 열심히 하던걸. 그러고보니 휴일에도 본가로 안 가고 학교에 남아 있던 것 같던데? 아무리 공부가 중요하다지만 가끔은 집에 얼굴도 보여주고 그래야 하지 않겠어. 어머니께서도 딸 얼굴 보고 싶을 텐데."
내가 그렇게 말하자, 평소 냉담하기만 해 보였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퍼진다.
"아, 그게... 그래야죠. 저희 어머니가... 보고 싶어하실 테니......"
나는 그 모습에 약간의 의혹을 느낀다. 본가 이야기를 꺼리나? 뭔가 가족 문제가 있는 건가?
부잣집 자제의 자신의 미래를 둔 부모와의 갈등, 그런 걸까? 한편으로 또 꼴불견이라고 생각할 뻔했지만, 레지나의 얼굴을 더 자세히 보니 그 생각에 회의가 들었다.
그 얼굴은 단순히 '껄끄러운 것'을 떠올리는 얼굴이 아니었다. 정말로 생각하기도 싫은 것을 떠올렸다는 듯, 한편으로 공포마저 느껴지는 기묘한 표정......
내가 영문을 모르고 어리둥절해 있을 때, 레지나는 급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럼 먼저 가볼게요. 아직 시험이 남아 있으니까요. 선배도 열심히 하세요."
그리고 그 차가운 귀공녀는, 잔디 위에 또 다른 살얼음을 남기며 내 앞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더 이상 레지나 맥크레디와 엮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기묘한 운명은 나를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시험이 끝나고 곧 방학이 시작될 참이었다. 하릴없이 산책이나 하던 나는 여학생 기숙사 근처에서 찢겨져 뒹굴고 있는 한 편지봉투를 발견했다. 한 귀퉁이에 희미하게 젖은 자국이 있었다. 의아하게 여겨 잠시 살펴보니 단순히 젖은 것이 아니었다. 살짝 얼어붙었다가, 녹아내리는 중이었다.
퍼뜩 이 편지의 주인이 누군지 깨달았다.
내용물은 바람에 날려갔는지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무슨 바람이었는지, 주변을 샅샅이 뒤지며 편지의 남은 잔해를 그러모았다. 완전히 찢겨 산산조각이 난 정도는 아니었으므로, 생각보다는 쉽게 온전한 편지를 내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런 행동을 한 이유? 그냥 난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 부잣집 아가씨의 집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왜 방학 때도, 연휴 때도 학교에 내내 남아 있는 것을 택하는지. 이번 방학에도 레지나는 기숙사에 남아 있을 낌새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처음 찢어진 편지봉투를 들어올린 순간, 난 그것이 내 의문을 해소시켜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봉투에 쓰여진 이름 때문이었다.
'From. 안나 맥크레디'
---
계속 쓸지는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