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문 -




 제목으로 낚시질해 미안하다 카붕이들아. 사실 단편이긴 해도 완전 독립적인 것이 아닌 IF 오리지널 세계관의 장편에서 설정 이어지는 거임. 다만 저거 보질 않더라도 이해되게 최대한 외부적인 오리지널 설정들을 배제했음.


 단순하게 요약해서 그냥 관리자가 완전승리 했던 세계관임. 엔딩 직후 상황 궁금하면 이것만 보면 될 것 같다.  


 어쨌던간 이게 뭐냐하면 - 제목도 내용 그대로 드러나게 적었지만 - 본편에선 한국 느낌나는 테마들이 거의 사용되질 않았기에 그냥 각시영으로 단편 구상하고 엄청나게 짧게 썼음. 쓰는데 조금 오래 걸리는 저것들과 다르게 아주 짧으니 나도 편하네.



 - 간략하게 주요 인물 소개 -




 레지나 맥크레디: 공식과는 달리 다리 안 다침. 대신 동화책을 안은 소녀와도 같이 네크로노미콘을 가짐. 불멸자가 됬음. 관리자가 이탈리아에 설립했던 카운터 유니버시티의 마법학 교수이자, 카운터 마법학교 선생의 역할을 하고 있음.



 에델 마이트너: 외신 가아그셰블라. 지식에 탐욕하여 악인들을 흡수해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면서 인간세상은 더럽고 추악하다는 관점을 얻고 그것을 삼켜왔었던 자신도 부정하단 회의감에 빠졌지만 레지나에 의해 설득되어 해탈하곤 종속되진 영혼들을 해방했음(EP7). 이후 레지나가 죽기 직전 자길 대신 희생하나, 그녀가 에델의 영혼을 네크로노미콘의 강령술을 통해 자신에게 빙의시킴(EP11).

 지식을 갈구하던 그녀가 누군가를 위한 지식으로 되어져 좋아하던 레지나와 영원히 함께 하게 되었음. 진짜 서사 기네.



 미리네: 공식과 별로 안 다름.



 정다인: 공식과 별로 안 다름.



 진보라: 공식과 별로 안 다름.



 김철수: 공식과 딱히 다르지 않은 성격임.



 가은: IF 최종보스. 마왕들도 상회하는 침식체 티폰을 만들고서 코핀들을 위협하였지만 결국 패배하고, 기억을 잃게 되고는 관리자의 부탁으로 레지나가 그녀를 지도하고 관찰하게 되어짐.



 주시영: 본편 빌런. 어차피 오프닝 씬부터 나와서 스포는 아니야.



 카린 웡 준장: 공식과 딱히 다르지 않은 성격임. 장비만 좀 다르게 나옴.



 리벳: IF 본편에서 관리자와 친해졌고, 학교 갔던 레지나랑 놀지 못해 심심해 하니까 관리자가 요원으로 쓰는 중임.





  -- 카운터:사이드 IF 외전 - 레지나가 미리네들 선생님이 되고 각성 주시영 나오는 단편 --




 깊은 밤에.


 공항에서 인도의 아티팩트를 받고선 델타세븐 연구실로 이송하란 명령을 받았던 미군들은 산길에서 난데없이 습격 당해 정체불명의 적에게 화기를 쏴갈기면서 역력히 당황한 기색을 띄었다.


 "젠장… 이게 뭐지? 저건 대체 뭐야?"

 "카운터 아니야?! 분명 내가 방금 맞췄는데 피도 흘리지도 않는… 크억!"


 동양의 검을 휘둘러 차례차례 기절시켜 쓰러트린, 고매하고 위협적인 인상을 풍기는 여성. 그녀는 비릿 웃더니, 총알을 대놓고 맞으며 마지막 남은 자에게 다가갔다.


 인상을 일그러트리며 몸을 던지는 금발의 남자. "대체 뭐하는 놈인진 모르겠지만!" 하지만 여자는 칼을 휘두르지 않고, 주먹으로 명치에 꽂아버려 바로 눕히고는 트럭 안쪽을 본다.


 "후후… 여태껏 어딨는지도 몰랐던 브리트라의 영경을 대신 찾아주다니, 이것으로 임무는 완수했다… 그런 것이겠죠?"


 너무나 고요한 달밤에, 아직도 몸을 비틀거리며 기절한 군인들을 쳐다보곤 그녀는 중얼거렸다. "전쟁이 끝났다고 모두들 해이해지기는… 이렇게 되어 다시금 악당이 나타나면 막을 수 없게 된답니다?" 그리고 음산하고 짙게 뿜어지는 악의를 품은 거울을 가지고 나오며, 그녀는 혼자서 읊조렸다. "아아, 이것으로 볼 수 있겠어요. 어머니, 아버지… 아수라님이 재림하시면, 저를 위해 희생하신 은혜를 갚을 수 있을 터이니…!"


 그렇게 짙은 갈색의 머릴 고요한 밤바람에 휘날리며 소녀는 무당의 신검을 허리춤에 꽂곤 사라졌다. 기절했던 남자들 중 일부가 어째선지 자신들을 죽이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위화감을 느끼면서, 이를 지시했던 카린 준장에게 보고하기 위해 무전기를 꺼내고는 주위를 살피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짙은 그림자가 기분 나쁘게 드리운 날이다.


 이탈리아.


 리플레이서와 마왕들의 전쟁을 직접 지휘해 승리했던 신생관리국의 관리자는, 승전 직후 로마에서 관리국 타이탄을 타고서 개선식을 하고, 미-관리국 연방을 창설해 관리자이자 콘술이 되었다. 정치 외에 학문적인 연구 및 교육 영역들도 구상하던 그는 카운터 유니버시티와 부속인 카운터 마법학교를 세웠고, 레지나에 마법학 교수직을 줬다. 그녀는 곧 카운터 견습생들을 개인적으로 지도하였다.


 미리네, 정다인, 진보라. 그리고… 신가은. 위험요소인 그녀를 관찰하라는 의미도 있었다. 어쨌거나 일반적인 학급제와 달리 운영되는 곳이기에, 신지아와 맞먹는 지능수준을 가지는 레지나는 이들에게 라틴어와 영어를 비롯해서 여러가지 학문들을 가르치고 담당했다.


 그것이 벌써 일 년. 그녀는 또 새로운 인원을 맡게 되었다.


 "김철수라… 잠재력이 뛰어난 소년이라 써놨지만 글만으론 전혀 짐작할 수 없네요."


 개인 사무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서류를 보던 레지나의 옆에, 영혼의 상태로 떠있던 에델이 버릇대로 모노클을 올리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어차피 곧 만나게 될 테니까, 눈으로 보고 천천히 알아봐도 좋겠지요."


 전쟁 당시 죽었던 에델은, 그녀를 마음 속 깊이 아끼던 레지나의 네크로노미콘 의식으로 술사의 몸에 빙의되 지금처럼 같이 살고 있다. 그녀가 이어서 말했다. "그러나 다른 한 명은… 주시영이라. 한국의 무당 가문의 후계자이며 대대로 사용한 신검을 물려받고는 검술을 연습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 이름은…."


 "…에델?"

 "흐음…."


 에델은 고개를 털었다. "이건 설마… 아니, 저의 착각일 수도 있겠죠." 그런 그녀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레지나는 벽에 걸려진 유럽풍 나무 원시계를 보고서는 커피 잔을 내려놨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됬군요. 다만 전학생이라 해도, 이렇게 합숙날 당일에 올 줄 몰랐었는데…."

 "카운터인 아이들을 바로 선별하여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거니까, 이런 것도 이상하진 않을테죠?"

 "가르치는 사람 부담도 생각해줬으면 하네요."


 그렇게 푸른 외투를 걸치면서 네크로노미콘을 안는 레지나를 보곤, 에델은 혼자서 쿡쿡 웃었다. '어머나, 정말로… 언젠가 레지나 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게 된다곤 상상하지도 못했었어요.' 그리고 둘은 그대로 공항으로 향했다. 신입생을 맞이하고 마법학교 시설을 안내해주기 위해서.


 몇 시간 뒤.


 원래부터 그녀가 담당하던, 리네와 다인과 보라와 가은에게 새로 그녀가 맡은 철수와 시영을 소개하며 아침을 먹고는 바로 사디니아로 갔다. 합숙이라 말했지만 그냥 별장에서 노는 느낌하고 비슷했다.


 향그러운 꽃냄새가 멋진 파도와 같이 풍겨오는 지중해의 한 곳. 아름다운 색의 물길이 흘러오는 바다에 매우 낭만적인 인상에 취하여, 미리네는 딸기 아이스크림을 먹다 소곤소곤 거리더니 레지나를 봤다.


 두꺼운 책을 읽으며 트로피컬 드링크를 마시던 레지나는, 소녀의 초롱초롱한 시선에 뭔가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반응했다. "무엇인가요, 미리네 씨?" 벌써 일 년 넘게 그녀들을 지도했던 레지나는 거의 이런 느낌이다.


 한국에선 절대 상상하지 못할 선생과 제자의 관계다. 처음 적응되지 않던 리네들도 곧 익숙하게 됬지만. 어쨌건, 리네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저기, 저기… 쌤, 해변까지 왔는데 놀지도 못하고 그러지는 않겠죠?"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가요?"

 "그… 야들과 배구도 하고 싶고, 돌도 줍고 싶고…! 뭣보다 바다까지 왔는데 수영도 못하면 이상하지 않겠나 묻고 싶네예!"

 "야들…? 네예…?"


 한국어를 매우 유창하게 구사하는 레지나지만 사투리까진 익숙치 않았다. 어쨌건 그녀는 햇빛이 반사되어 눈처럼 빛나는 새하얀 머리카락을 사뿐히 넘기곤, 조용히 말했다. "좋겠죠. 단, 어디까지나 제가 볼 수 있는 곳에서 하세요."


 "네? 무슨 얼라들도 아니고예… 쌤!"

 "허가하지 않습니다."


 "아~ 우! 뭐, 어쩔 수 없죠! 그러면…!" 레지나의 성격을 아는 리네는 모두에게 돌아보며 외쳤다. "좋아, 좋아! 들었지? 카운터 마법학교에 온 걸 환영한데이! 서로 어색함도 잊고 오늘은 진창 놀자고!"


 보라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움직이기 귀찮은데…." 그런 보라의 어깰 주무르고 있던 다인이 말했다. "어쩔 수 없지…? 리네, 한 번 불 붙으면 누구도 못 말리니까."


 "……."


 그런 그녀들의 옆에 조용히 있으며 아무것도 먹지 않던 철수에 다인이 말했다. "박스 군도, 누나들이랑 놀고 싶지 않니?"


 "아, 네? 아… 그게, 저, 저는…!" 자신보다 큰 누나들에 둘러쌓여 위축되던 철수는 어깨를 흠칫 떨면서 놀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차피 빨간 박스에 얼굴이 가려져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걸 보고, 바나나를 까서 먹던 시영이 웃었다. "으음~ 그래도 본인이 싫다면 존중하는 편이 좋겠지요?"


 "뭔 소린가? 이런 데서 빠지면 소심하고 소극적인 남자가 된다!"


 미리네는 돌아보며 냅다 소리지르듯 크게 반응했다. 그리고 본인도 모르게 흥분해 말했다. "시영이 너도 말이다, 금마 평생 먹여주고 재워주고 보살펴줄 것도 아니라면 그렇게 응석 받아주고 그런 거 아니라고!"


 "아, 아하하…."


 '먹여주고 재워주고… 호, 혹시 그거… 결혼?'


 멍하니 다른 생각을 하던 철수는 화들짝 놀랐다. 혼자 요상한 열정에 불이 붙었는지, 미리네가 다가와 마스크를 벗기려고 잡아당겼으니. "그리고 닌 아까부터 밥도 안 먹고 요상한 투구만 쓰고 뭐하고 있노? 마! 금마는 투구벌레가?"


 "뭐, 뭐하는 거예요? 대체…!"


 퐁.


 "으잉…? 금마, 왜 면상이 빨갛노?"

 "아… 아… 아우…!"


 부끄럼과 당혹감에 얼굴을 붉히던 철수는 아무런 말도 못했다. 다만 약간 둔한 미리네는 얼굴을 가까이 하고서 바라보곤 이후 손가락을 탁 튕기었다. "아하! 역시나 그렇제? 더우면 마스크를 벗지 뭐하러 여태껏 쓰고 있었능가?"


 "귀엽고마, 귀엽고마, 니도 차암! 오라, 남동생이 생긴 것 같아 좋은데이!" 그러고서 미리네는 철수의 머리를 팔로 안으며 싱글벙글 웃었다.


 그리고 그때에. 여태껏 책을 읽으며 집중하던 레지나는 탁 덮고서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미리네 씨."


 "네? 아…."

 "뭐를 해도 자유지만, 교칙에 위반되는 행동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 물론입죠, 넵!"


 그리고 철수를 휙 놔주는 미리네. 레지나는 가까이 다가가서, 몸을 숙이며 빨개진 철수의 얼굴에 눈을 맞추고는 손을 올려봤다. 얼음꽃과 같이 상쾌하게 느껴지는 한기와 부드러운 촉감 그리고 어른의 향기.


 "우웃… 우우…." 소년의 심장을 더욱 강하게 자극하였다. 다만 그걸 모르는지, 레지나는 손을 거두며 자신의 이마에 댔다. "딱히 열은 없어보이네요."


 "열사병에 걸리면 안 되니까, 만일 쓰러질 것 같다면 무리하지 말고 언제든지 와주세요." 어린 철수에겐 교사라는 책임감에, 에델에게 말하듯 다정한 목소리로 일렀다. 반면, 미리네에겐 진지한 톤으로 말했다. "미리네 씨도 너무 무리한 강요는 하지 마세요, 어린 아이들은 거절하는 법을 모르니까."


 "……."

 "대답은 어디로 갔죠?"

 "아, 네! 쌤, 알겠씀다!"


 미리네는 잠깐 고개를 털곤, 그리고선 모두를 둘러보며 다시 기운차게 말했다. "자, 자! 어쨌던간, 아까운 시간 낭비하지 말고 당장에 놀자! 가자고, 철수야! 다인이도 보라도 시영이도… 그리고…" 뭔가 거리감이 살짝 느껴지는 목소리로 보라에게 부탁했다. "저기… 개은이에게 물어보면 어떻겠노? 금마가 싫다면 할 수 없어도."


 보라는 힐긋 가은을 보고서는 이후 물어봤다. "I wish you don't mind it but… would you like to play with us?"


 기억을 잃었던 그녀는 한국어를 전혀 말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레지나나 혹은 코딩을 하면서 영어를 빠르게 익힌 보라와만 말할 수 있다.


 가은은 옷을 털면서 대답했다. "Play? what play are you even talking about? it's… fine. I guess I will go with you guys - not that I have anything else to do in here alone." 보라는 웃으며 말했다. "Thank you, we shall have great time, I promise."


 애초 라틴어와 영어를 가르치는 이곳 카운터 마법학교임에도 외국언 젬병 자체인 미리네는 불편한 표정을 지으면서 둘을 보다, 가은도 좋다는 말을 듣고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십 분 뒤에….


 렌탈 서비스에 들려 수영복을 고르면서 소동을 피우던 미리네들은 아직도 얼굴이 빨간 철수와 함께 나오곤 그대로 레지나에게 돌아와 카드를 돌려주었다. "저기, 귀여운 수영복이 많던데… 쌤도 하나 걸쳐보면 어떤가요?"


 "싫습니다."


 매우 직설적인 대답. 그리고 그녀는 덥지도 않은지, 해변가에서 혼자 평상복을 입곤 철학서적을 계속 읽고 있다. 미리네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대충 고개를 돌리곤, 배구공을 휙 던지면서 말했다. "좋아, 니들 화끈하게 가보자고!"


 처음은 수영을 하다가, 이후엔 신기하게 생긴 돌도 주워보고, 몸 좀 풀어지고 배도 살짝 찼다 느낀 미리네는 모래성을 짓다말고 모두에게 외치었다. "조아, 좋아! 이렇게 끝낼 순 없다 아이가? 그렇제? 다음은 내기 배구다 안카나!"


 "…뭐?"

 "갑자기 무슨 내기야?"


 보라와 다인이 이번엔 또 뭐냐는 듯이 반응해, 미리네는 손을 옆구리에 대며 흐흥 웃음을 짓곤, 시영을 보면서 말했다. "오라, 진 팀이 맛난 거 사주는 게 어떻노? 좋제이? 응? 좋을끼다!"


 묵묵히 바라보는 가은과, 제멋대로 날뛰는 미리네를 보곤 볼을 긁는 시영. 리네는 철수를 갑자기 휙 안으며 말했다. "하지만 금마들에겐 미리네님과 싸우면 너무 불리하지 않겠네이? 그치? 좋아, 핸디… 핸드… 핸드캡으로 철수가 내 팀이다!"


 "저, 저기, 리네 누나! 숨… 숨이 막혀…"


 미리네는 무시하고 힐끔 둘러보다 가은을 지목해 외쳤다. "Gae-Un! Team, ME!"


 개운, 팀, 미. 멍하니 쳐다보던 그녀에게 보라가 대충 배구를 하겠으며 미리네가 그녀를 팀으로 지목했단 흐름을 말했다. 가은은 별 생각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잠깐요, 잠깐요! 저 돈 없어요…!" 그러자 철수를 더 꽉 안으며, 미리네는 웃으면서 등을 팡팡 쳤다. "괜찮다아이가! 괜찮은기라, 괜찮은기라! 누나 강하데이! 철수는 단지 지켜만 보는기라! 아, 뭐 머꼬 싶은지 생각 잘 해두기라. 여기 이태리 말이제, 밥들 기름은 좀 지지만 진짜 맛있데이!"


 그렇게 말하며, 리네는 시영을 보며 생각했다. '후후… 다인과 보라는 그리 뜀박질도 못하는 책벌레고, 가은 가시내는 말은 안 통하지만 운동도 공부도 잘하지. 이거, 시영 금마. 첫날부터 돈을 뜯기니 정말, 이거 이거…!'


 …하지만 미리네의 작은 음모는 완전 실패했다.


 "뭐, 뭐꼬, 이 가시나는?! 와 이렇게 빠르노? 그걸 막아?!"

 "우씨, 우씨! 이게! 어떻게 계속 막고 있는겨!"

 "와, 아악! 개운, 개운아! 왼쪽이데이! 아니, 거기 말고! 아웅, 참말로 답답하네 이거이!"


 시영이 지나치게 강했다. 게다가 가은과 말도 통하지 않았다.


 확실히, 가은은 자기 쪽으로 오는 공은 전부다 잘 쳐내긴 했다. 그렇지만 수동적인 느낌이라 잘 공격하진 않고 되치기만 해, 별 의미가 없었다.

 게다가 지시가 먹히지 않으니 결국 미리네가 혼자 뛰면서 그나마 수비가 약한 다인과 보라를 향해 꽂으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시영이 가로채, 절묘한 각도로 꺾으면서 미리네가 받질 못하는 쪽에 내던졌던 거다.


 "아으, 진짜! 개운 저 가시나 정말로! 철수 금마에게 맛난 거 먹이겠다고 했다가 낭패봤데이…!"


 스포츠엔 관심도 없던 철수는 공 자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고, 그냥 뛰는 척만 하고 있었는데 미리네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듣고는 갑자기 묘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웃, 우… 더이상 날뛰게 두지는 않겠다!"


 자신도 모르게 샐러리맨X의 대사를 치면서, 그대로 몸을 던졌다. 하지만….


 "엣, 에? 철수야, 뭐하노?!"

 "어… 아차! 철수가 그쪽으로 갈 줄 몰랐는데…!"


 당혹스런 목소리로 외치는 리네와 시영은, 이내 철수의 얼굴에 빠각 부딪쳤다 하늘까지 튕겨오르는 배구공을 멍하니 보았다. 주위에 수영을 하던 여자나, 썬탠을 하던 남자나, 음료수를 마시면서 걷던 아이들과, 심지어 멀리 떨어진 벤치에서 책을 읽던 레지나도. 모두 로켓처럼 올라가는 볼을 올려봤다.


 애초부터 상급 카운터인 주시영이 체육계인 미리네와 대결해 자신도 모르게 본심으로 던진 공이었다… 철수는 모두가 달려오는 소릴 들으면서 그대로 눈을 감았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난 것일까.


 눈을 뜨면, 이미 저녁이다. 숙소 건물일까, 계속 지켜보고 있던 레지나와 그리고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한숨을 쉬던 리네가 비춰졌다. 약간 머리가 울리는 느낌에 몸을 살짝 들어올려 이불을 걷어내는 철수.


 "몸은 괜찮으신가요?"


 다가오며 뭔가 말하려는 리네를 손을 뻗어서 막는 레지나. 철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네! 저도 일단 카운터니까요… 전혀, 전혀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러자 리네는 크게 박수를 치며 웃었다. "아하하하, 고래야지! 금마, 진짜 사내답네! 크면 가시내들 엄청 따르겠…" 하지만 미리네의 말은 막혀졌다. 레지나가 엄청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기에.


 "……."

 "……."


 아무런 말도 못하고, 눈길을 돌리며 검지를 맞대곤 비빈다. 레지나는 고개를 돌리고는 철수가 공에 맞은 부위를 살며시 만졌다. "딱히 상처는 없지만, 어릴 때는 조심해야 하니까요. 혹시 계속 아프거나 그러지는 않은가요?"


 "그냥… 괜찮아요."


 "그렇군요." 레지나는 손을 떼곤 이어서 말했다. "혹시라도 밤에 아프시면, 선생님께 말씀해주세요." 그리곤 미리네를 보았다. "리네, 철수 군을 방까지 데리고 가세요."


 "넵!"


 둘은 조용히 방에서 나와, 말 없이 걸었다. 계단을 올라가 승강기를 타고 방에 데려다준 미리네는 철수에게 침울하게 사과했다. "미안하다, 내가 그러는 게 아닌데… 너 같은 꼬마앨 델꼬 무식하게 쌘 카운터들 사이에 배구라니, 쌤이 그렇게 화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안카나."


 "아뇨… 괜찮아요."

 "맞다, 철수야. 그래도 말이제, 먹고 기분 풀어주면 좋겠는데…."

 "네?"


 미리네는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뭐시기냐, 결국 시합은 중간에 멈추긴 했지만, 그래도 육 대 사로 피자 큰 거 사기로 했는데이, 금마도 와서 묵거라." 그러고선 철수의 손목을 잡으면서 그냥 끌고가는 리네였다.


 어쨌건, 가은 빼고 모두 그녀의 방에 있었다.


 피자를 젓가락으로 먹으며 아이패드로 뭔가 읽고 있는 다인, 콜라를 마시면서 노트북을 통해서 뭔가 작업하는 보라, 그리고 입에 안 맞는 것인지 따로 사온 샌드위치만 먹고 있는 시영. 두리번거리던 리네는 다인에게 물었다. "다인아, 개은인 또 어디로 갔노? 그 가시내 진짜 말 하나 더럽게 못 알아먹는데이."


 그러자 갑자기 보라가 컵을 탁 놓곤 말했다. "…아, 미안. 말하는 거… 깜빡 잊었어."


 "뭐?"

 "아까… 내기란 말은 안 하고 배구라고만 했어. 가은인 아마도… 음… 모를 거야."

 "아니, 이 가시내 정말로! 아하, 그래서 개은이 금마 제대로 하덜 않았고? 진보라 넘마, 진짜!"


 그렇게 툴툴 화내며 미리네는 외투를 휙 집고는 걸치었다.


 "…뭐해?"

 "몰라서 묻노 징말로? 금마 대신에 지금 뛰어나가서 찾아야지 안카했나! 개은이 말이제, 혼자 핏자도 못 먹꼬서 그냥 소외되면 기분이 좋을끼라, 그제? 나간데이!"


 그리고 문을 쾅 닫고, 멀뚱히 혼자 서있던 철수를 다인이 손짓하며 불렀다. 이불 위에 어색하게 앉은 철수에게 잘라둔 피자가 담긴 접시를 밀면서 그녀가 말했다. "하아… 리넨 진짜 못 말려. 그래도 애가 의리는 있어서인지 챙길 건 전부 챙겨주니까."


 피자를 집어서 호호 불면서 먹던 철수가 물었다. "저어… 혹시, 전부 친한 사이세요?"


 "응?"

 "리네 누나하고, 다인 누나하고, 보라 누나하고, 가은 누나하고 대충 그래보이셔서…."

 "아~"


 다인은 콜라를 컵에다 따라주면서 말했다. "우린 일 년 동안 같이 지내면서 게임제작 동아리도 하고 그랬거든. 다만 가은이만 한국어를 모르니까 리넨 살짝 불편해하는… 아니야, 잊어줘." 듣던 철수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네? 누나들이 게임도 만들어요?"


 "그래! 카운터즈 사가라고…"

 "카운터사이드?"


 다인은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면서 말했다. "맞아. 알고 있네? 카운터사이드 팬게임인데 만들어보자고 내가 먼저 제안했어. 철수도 한 번 해보는 게 어때?"


 곰곰히 생각하던 철수는 물티슈로 손을 닦고서는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보라에게 다가갔는데, 모니터엔 엄청 복잡하게 보이는 영문이 꽉 차있다. 타닥타닥 계속해서 뭔가 치던 보라는 콜라를 다 마셔서 일어나려 했었는데, 철수가 옆에서 기다렸단 듯이 따라줬다.


 "…뭐해?"


 "저, 저기 그게… 어…." 어색해하며 철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기, 보라 누나. 이거 카운터즈 사가 맞죠? 아까 다인 누나가 말해줬어요. 카운터사이드 팬게임을 만든다고…."


 "…혹시 너도 카사해?"

 "아, 네! 나유빈 사단의 신작 카운터사이드! 스튜디오 브이사이드의 대표작이잖아요?"

 "흐음… 흐음…."


 콜라를 마시면서 뚫어지듯 철수를 보던 보라는 전부 마시고는 그대로 툭 놓으며 말하였다. "이리와…."


 "…네?"

 "무릎에 앉아."

 "…네, 네?"

 "응… 하자."


 머리에 물음표만 띄우던 철수를 멍하니 보던 보라는 갑자기 팔을 뻗치더니 그대로 안아가곤 의자를 다시 돌렸다. 딸깍딸깍. 방 안에 곧 울려퍼지는 멋진 음악과 함께, 모니터에선 형형색색의 화려한 이펙트와 캐릭터가 번갈아 나타나더니 타이틀을 비춰주었다.


 "우와… 우와!"


 신나하며 마우스와 키보드를 계속 두들기며 프롤로그 스테이지를 플레이하는 철수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인형처럼 안고 있던 보라. 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끝났다.


 "그만…."

 "네?"

 "…아직 거기까지 밖에 못 만들었어. 게임… 엔진 만드느라 일 년 정도 걸렸거든."


 철수는 솔직하게 감상평을 말했다. "정말 재밌었어요, 팬게임이라곤 전혀 믿겨지지 않는 퀄리티였는데! 음악도 좋았고…." 그러자 보라는 살짝 웃으며 철수를 놔주었다.


 "완성되면… 시디 보내줄게."


 그 뒤, 다인하고 계속 피자 먹으면서 여러가지 얘기하던 철수는 화장실이 급해져서 문을 열고 조용히 나갔다. 여태껏 관심없는 척 구석에서 눈치만 보던 시영은 그대로 눈을 붉게 빛내며 웃고는, 자신도 밖으로 따라나갔다.


 밤이 되어 집에 가고 싶단 생각도 들고, 그렇지만 예쁜 누나들과 선생님이 상냥하게 돌봐주는 것이 나쁘지는 않고, 여러가지 생각하던 철수는 손을 물로 헹구고 나왔는데 시영이 벽에 기대며 웃는 걸 봤다.


 기묘하게 색기어린 그 분위기에 부끄러워 우물쭈물 피하려다 어깨를 잡혔다. 시영이 말했다. "저기… 철수 군은 어땠어요? 오늘 재밌었던가요?" 마치 귀에다가 호 불어주는 그런 간지러운 음색. 철수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재밌기는 했었어요, 약간 아팠지만… 그래도 선생님도 누나들도 돌봐준 것도 있었고…."


 "헤에…."


 "그렇다면 철수 군은 누굴 제일 좋아해요?" 시영이 이어서 말했다. "만일 제가 아니라면 좀 슬플 것 같은데요…."


 요녀의 눈에는 단지 쉬운 먹잇감만 비춰졌다. 뱀의 앞에 서서 삐약거리는 병아리하고 다를 게 없던 철수는 곤란해하며 말했다. "그게, 그게…! 모두에겐 비밀로 해주세요, 아무래도… 아무래도 시영 누나를 제일 좋아해요!"


 "그렇구나."


 시영은 그대로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몸을 낮추곤 눈을 마주쳤다. "나도 철수가 좋아."


 "…네?"

 "궁금하지 않니? …어때? 아까부터 알고 있었는데. 여자애가 안아주면 좋지?"

 "……!"


 어린 소년이 힐끔힐끔 여자를 보곤, 아닌 척 고갤 돌리면서 피한다. 사실 너무나도 뻔한 것이다. 하지만 그 나이인 철수는 수치심에 부들부들 고개를 숙였다.


 그걸 보고 재밌다고 느낀 시영은 뱀이 혀를 날름거리듯 속삭였다. "그거 아니? 사실 여자애도…." 손가락으로 사로감듯이 어깨를 눌렀다. "남자애가 안아주면 좋아하는 걸?"


 "…저, 정말요?"


 잡았다. 그렇게 속으로 비웃으며 입맛을 다시는 시영. "어때…? 잠깐, 누나랑 어디 가볼까?"


 하지만 철수가 침을 꼴깍 삼키며 고개를 끄덕이려고 하는 순간, 미리네가 한숨을 쉬면서 터벅터벅 걸어왔다. "뭐꼬, 니네끼리 어디 가노? 증말, 개은인 어딨는지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내는 들어가서 식은 피자나 먹어야 하고, 오늘 일진 진짜 사납데이."


 마치 꼬리가 밟힌 뱀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던 시영. 하지만 곧 표정을 지우면서 헤실헤실 웃음을 짓고는 돌아봤다. "아하하하, 어디 가는 게 아닌 그냥…"


 "그냥?"

 "담력시험… 같은 거나 해볼까나…!"


 시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놀라서 엉뚱한 소리나 뱉다니!'


 하지만 미리네는 그것을 듣곤 눈을 빛냈다. "호오? 담력시험! 그거 좋제! 시영이 너 재밌는 거 많이 아는고마! 좋지, 좋지! 아니… 잠깐." 그리고 곧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말이제… 어떻게 알았노? 이곳은 이태리 아니였노? 금마는 어떻게 여기에 귀신새끼 나오는 장소를 아는기라?"


 '설마… 걸린 건가? 얼굴만큼이나 단순했었군요.' 시영은 미리네를 속으로 깔보면서 대답했다. "아하하, 저야 준비성이 워낙 철저하니까요! 여기 오기 전에… 전부 살펴봤었어요! 재밌는 게 있을까 너무 기대되서 말이예요."


 "그렇고마, 그럼 당장 가제!"

 "아… 네?"

 "개은인 없지만, 뭐 느그들끼리 피자도 잔뜩 멕였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산책도 기냥 가보던가! 당장 가보자 안카나? 다인이하고 금마 보라년하고 가장께, 내가 끌고 갈테니 말이야. 쪼매 기다려라!"


 쓸데없이 행동력이 좋은 미리네는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가선 나가자고 등을 떠밀었다. 선생님이 어디 가면 말하고서 가라 하지 않았냐고 정다인이 물었지만, 그냥 단체로 화장실에 갔다면 되지 않겠냐며 그냥 기분파인 성격대로 밀어세우는 그녀였었다.


 …덕분에, 모든 것은 시영에게 편하게 되었다.


 반면 몇 분 뒤에, 해변으로 산책을 갔다가 돌아와 레지나와 면담을 했던 가은은 리네들을 불러오라고 들었고, 올라와 아무것도 모른 채로 문을 두들겼다.


 "Hello? is there anybody here? guys? Ms. Maccready wants to see you."


 "Bora? Da-In? Rine? …where did everyone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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