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 들어간 첫 번째 삽화는 AI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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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
푹신하다.
사각.
편안해.
사각.
따뜻해.
"응?"
사각
눈 뜨기 싫어.
사각
깨우지 마....
탁!
"카린 웡."
잠깐, 이건...
"눈 뜨셔도 됩니다. 저는 적이 아니고, 딱히 당신을 포로로 잡은 것도 아닙니다."
내 목소리?
그 목소리가 들린 순간 의식이 완전하게 각성하며 눈이 뜨였다.
퍽 오랜 기간 빛을 보지 않기라도 했는지, 갑작스레 접한 빛에 익숙해지길 몇 초.
그리고 그렇게 뜨인 내 눈에 들어온 첫 번째 물체는......
"......"
"그렇게 쳐다보면 부끄럽습니다."
오른손에 접은 책을 든 채, 쓴웃음을 지으며 나를 내려다보는.
나를 매우 닮은 소녀였다.

어?
하지만 카린 안토노프는 죽었는데?
'아니, 그 이전에 그녀의 머리색은...'
그렇게 살짝 패닉 상태에 빠지며 일어서던 나를 그녀가 제지하며 도로 눕혔다.
그녀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책을 자리에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진정하세요, 카린 양. 당황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당신은 환자입니다. 저걸 보십쇼."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자 눈에 들어온 곳은 링겔.
어? 내가... 링겔을 맞고 있다고?
왜?
"당신, 제가 구하러 오기 전에 쓰러졌던 건 기억하고 있습니까?"
"......"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습니까? 그럼 옆을 봐주십쇼."
고개를 돌리자 눈에 들어온 것은......
"아!"
레베카, 주시영.
이 함선에서 여정을 함께 한 동료들.
그러자 기억이 플래시백 됐다.
분명히......
"예, 식수 부족으로 다들 죽기 직전이었습니다."
"그, 그랬군요."
"그래도 이제는 괜찮을 겁니다. 며칠 누워 있으면 모든 게 다 해결될 테니 건강은 걱정마시길."
"고마워요. 그럼 여기는?"
그러자 그녀는 한 박자 쉬며, 말을 고르더니 답했다.
"집행자(Executor)급 전함 3번함, 종결자(Finalizer). 그 의무실입니다."
"저, 그럼..."
"당신의 함선, 아이기스는 종결자로 예인 중입니다. 딱히 손상도 없어서 자력으로 항행할 수 있을 거 같았는데......
당신이 기절해 있던 지라 기동할 수가 없더군요. 어쩔 수 없이 저희 함으로 끌고 가는 중입니다."
아, 그런건가......
"푹 쉬세요. 당신은 당신의 목적지에 도달할 겁니다. 며칠만 기다려요."
"예? 제 목적지요?"
내 목적지라고?
그 의문을 입에 담기도 전에 답이 돌아왔다.
"관리국."
"!"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에서 나가려는 것처럼 보여서 다급해졌다.
"저기요. 잠시만요! 그럼 당신은..."
"우리는 만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제 꼴이 이래서 못 알아보겠지만..."
"예?"
그녀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얼굴에 새겨진 쓴웃음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따뜻해졌다.
이내 그 온기를 지우려는 듯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 그녀는 내게 답을 내주었다.
"크로스로드 작전. 그리고 빨간망토."
"???"
"두 번 모두 갑자기 사라진 덕에 제 입장이 난처해졌습니다."
'뭐... 이제는 지난 일이지만요.' 여전히 쓴웃음을 지은 채 말을 끝낸 그녀...
아니, 그인가? 하지만 '그'는 분명 남자였는데......
"멀쩡한 남자인 제가 이 꼴이 된 건 제 앞에 있는 누구씨 덕이죠."
"!"
거기까지 말하더니 그녀, 아니 그인가? 모르겠다.
일단 "그"라고 하자.
그가 다가와 내 눈을 감겼다.
"마음 놓으세요."
"하지만......"
"쉿"
열리던 내 입을,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대는 것으로 막은 그.
"당신의 여정은 곧 목적지에 이를 겁니다."
"......"
"약속드리죠. 푹 쉬고 계세요."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내 의식은 다시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Side Out>
N주 전.
클리포트 게임에서 세계를 구했느니 뭐니 해도 세상은 돌아가고, 사람은 일해야 한다.
델타 세븐 역시 마찬가지.
클리포트 게임 당시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열심히 써서 올리고, 국회 청문회까지 끌려갔다 돌아온 그들을 맞이한 것은 그저 평범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상 와중 카일 웡을 괴롭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으으, 또 그 여자인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침대에서 일어난 소년.
그의 머리 속에는 무슨 호접몽마냥 방금까지 꿈에서 경험해온 그녀가 들어차 있었다.
카린 웡, 카일 웡의 평행세계 버전.
본래라면 만날 수 없는, 귀하다면 귀한 인연이건만.
어떻게 돼먹은 게 그녀와 만날 때마다 일이 번번이 꼬였다.
첫 만남 당시에는, 그녀 덕에 기껏 개발 중이던 신형 엔진이 폭발해버렸고.
두 번째 만남 당시에는, 그녀 덕에 여장취미 드립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카린 웡은 그걸로도 성이 차지 않은 건지, 카일 웡의 꿈을 절찬리에 침범하는 중이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나름대로 짐작 가는 데가......
"정말 하나도 없는데 말이죠."
그동안 뭐 아티팩트를 잘못 건드린다거나 한 적도 없다.
그런데 대체 왜......
'그만하자.'
고민해봤자 답이 나오지 않는 영역에 대한 사고를 억지로 중지시킨 카일.
다소 일찍긴 하지만 아침을 준비하는 그의 눈에 문득 감자가 들어오자 문득 떠오른, 며칠인가 전에 꿨던 꿈.
'시영 씨, 이것 봐요! 감자가 이렇게나 풍작이에요! 특별히 오늘 저녁은 베이크드 포테이토에요. 삶은 감자가 아니라!'
'하아~ 그래봤자 그냥 단순히 감자만 구워 먹을 뿐이잖아요?
그런 거 말고, 버터랑 콘, 치즈를 깔고, 그 위에다 요거트랑 꿀까지 잔뜩 넣은 베이크드 포테이토 먹고 싶어요.'
'시영 씨, 그런 투정 부리면 못 써요.'
도대체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늘상 한쪽 눈을 감고 있는 아가씨와의 대화가 뇌리에 떠올랐다.
'그 의문에 대해 꿈에서 카린 웡도 주시영에게 물었지만 제대로 되먹은 답은 얻지 못했지.'
......약 1시간 후.
같은 관사를 함께 쓰는 실비아는 투덜거리며 식탁에 앉았다.
"아직 아침이잖아, 애늙은이. 말단 병사도 아니고, 좀 간부 답게 있잖아? 그... 여유 있게 생활할 수는 없어?
일단 소령 계급이니 장기 복무도 신청만 하면 프리 패스면서."
끝까지 침대에 누워서 개기던 실비아를 일으켜서 샤워시키고, 머리는 무슨 애완동물 털 말리듯이 말리는 것도 모자라.
옷을 입는 것까지 도와서 가까스로 사람 꼴로 만드는 데 성공한 카일.
"시끄럽습니다, 실비아 양. 요리 과정은 물론이고, 식사 후 뒷정리도 안 도와주는 주제에 무슨 말이 그렇게 많습니까?"
"심지어 자기 방 청소도 안 해서 제가 하는데 말이죠"라며 덧붙인 카일.
여기서 더 뭐라 했다간 저번처럼, "이 나이에 딸이 하나 딸린 미혼부가 된 느낌이다"며 청승을 부릴 거 같다는 직감을 받은 실비아.
이 직감은 단순히 "여성의 감"이 아니라, 나름대로 카일과의 교제 중에 얻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감이었다.
그렇기에 실비아는 입을 삐죽이면서도 일단은 침묵하기로 결정했다.
"우우~ 언젠가 이딴 관사 박차고 나가주겠어..."
물론 한 마디 더하는 건 잊지 않았고.
"제발 그래주셨으면 좋겠군요."
실비아는 델타세븐에 끌려온 후로도, 군무원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제때 출근을 안 한다던가,
호출에 답을 제때제때 안 한다던가 하는 말썽을 부린 덕에 상부(라 쓰고 마리아라 읽는다)의
대승적 결단을 강요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카일 웡 소령의 관사에 얹혀살며 그의 밀착 감시를 받게 되었다는 소리다.
......카일 웡은 현 상황에 대해 "밀착 감시"라 쓰고, "애새끼 돌봄 서비스"라 읽는다며 한숨을 내쉬곤 했지만.
"그나저나 왠일이야? 베이크드 포테이토에 이렇게까지 토핑을 풍성하게 끼얹고 말이야."

* 대충 이렇게 생겨 먹은 음식임
오븐에 구운 감자를 살짝 파낸 다음, 그 틈에다 파낸 감자와 베이컨, 옥수수콘, 치즈, 크림, 버터 등의 혼합물을 쑤셔박아,
다시 한 번 오븐에 구운 베이크드 포테이토.
카일 웡은 평소에 하던 베이크드 포테이토 기준으로, 보통 치즈-베이컨 조합에 크림을 살짝 얹은 담백한 타입을 선호한다.
이번처럼 콘과 버터도 함께 굽는 것에 모자라, 다 구워진 포테이토에다 아예 요거트와 꿀까지 떡칠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 의문에, 카일 웡은 쿨하게 답해줬다.
"어째서인지 제 평행세계 버전이 나눈 대화가 떠올라서요. 감자가 풍년이라고 좋아하더군요."
"아~ 그 4종 유기하러 왔다는? 그리고 할로윈 분장하고 알바 뛰었다는 걔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물론 실비아는 믿지 않았지만.
그녀는 함께 나온, 구운 소세지를 한 입 배어물고는, 카일이 구운 계란 후라이의 탱탱한 반숙 노른자를 터트릴지 말지 고민하며 카일을 놀렸다.
"카일, 그냥 오늘 따라 좀 풍성하게 먹고 싶었다고 해. 괜히 이상한 핑계 대지 말고."
"......"
순간 발끈한 카일.
그러나 이내, 오늘 밤에 무자비한 보복 공격을 감행하기로 결의하며, 그녀의 말을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출근할 때, 공짜 카풀하는 걸로도 모자라 뒤에 타려하는 실비아의 뺨을 꾸욱 늘려주는
앙증맞은 해프닝이 있었지만 무사히 출근한 카일.
"아야! 야, 카일 좀 봐줘... 나 어제 작업하느라 늦게 잤단 말이야..."
"물론 그렇겠죠."
그렇게 주차하고 차에서 내린 바로 그 순간.
그 일은 발생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먼저 눈치챈 자는......
"어, 카일?"
카일 웡 본인이 아닌, 실비아 레나 쿠퍼였다.
"뭡니까, 실비..... 아?"
자신의 목소리에서 위화감을 느낀 카일 웡.
그와 동시에 밀려오는 가슴의 갑갑함에 그녀(그)가 고개를 내려다보자 발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시야에 들어온 것은 강렬한 존재감을 어필하는 거대한 산봉우리.
그것을 인지하자 뇌가 사고를 정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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