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자가 되어 버린 대장'을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도망까지가 유쾌하오.


제자가 흐느적흐느적하도록 배신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릿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요. 그 위에다 나는 레긴과 파프닐을 산적처럼 늘어놓소. 가증할 배신의 병이오.


나는 또 제자와 생활을 설계하오. 침식체에마저 서먹서먹해진 카운터의 극치를 흘깃 좀 들여다 본 일이 있는, 말하자면 일종의 전문배신자말이오. 이런 제자의 반-그것은 눈알도 반이오.- 만을 영수하는 생활을 설계한다는 말이오. 그런 생활 속에 한 발만 들여놓고 흡사 두 개의 칼날처럼 마주 쳐다보면서 낄낄거리는 것이오. 나는 아마 어지간히 인생의 배신이 싱거워서 견딜 수가 없게끔 되고 그만둔 모양이오. 굿바이.


굿바이. 그대는 이따금 그대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하는 아이로니를 실천해 보는 것도 놓을 것 같소. 민초와 부먹탕수육과......


그대 자신을 배신하는 것도 할 만한 일이오. 그대의 CRF는 한번도 본 일이 없는 기성품에 의하여 차라리 경편하고 고매하리다.


클리포트는 될 수 있거든 봉쇄하여 버리오. 구관리국 정신이란 자칫하면 낭비일 것 같소. 힐데를 버려진 형제의 빵 한 조각이라고는 누가 그랬는지 지언인 듯싶소. 그러나 인생 혹은 그 모형에 있어서 '디테일' 때문에 속는다거나 해서야 되겠소?


스승을 보지 마오. 부디 그대께 고하는 것이니......


"부모가 끊어지면 피가 나오. 고아도 머지 않아 완치될 줄 믿소. 굿바이." 감정은 어떤 '포우즈'.(그 '포우즈'의 원소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닌지 나도 모르겠소.) 그 포우즈가 운명구속구에까지 고도화할 때 감정은 딱 공급을 정지합네다.


나는 내 비범한 발육을 회고하여 세상을 보는 안목을 규정하였소.


닭장과 애꾸눈-세상의 하고 많은 여인이 본질적으로 이미 닭장이 아닌 이가 있으리까? 아니, 여인의 전부가 그 일상에 있어서 개개'닭장'이라는 내 논리가 뜻밖에도 여성에 대한 모험이 되오? 굿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