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이이이일---!!!! 이 개새끼가아아아!!!”

“엑스트라 주제에!!! 이름도 안 나오는 버러지 주제제에!!!”




붉어진 뺨 위로, 흐르는 뜨거운 눈물 그 사이로 쓰러지는 도붕이. 그렇게, 내 옆의 바닥을 구르며 발버둥친다. 화염에도 끄떡 없었지만, 총은 다르겠지.


원래 저건, 침식체를 처치하기 위해 만든 총.

구관리국의 소총. 소총병의 무기. 그 복제품.


침식파의 영향으로 일시적 환영인 도플갱어 본연의 능력, 자신의 존재를 깎아만든 모조품.


왜? 다닐이? 하는 의문이 이제서야 든다. 하지만, 그것 보다 다급하게 외치는 그의 목소리. 


왜? 나를 발레리라고 부르는거지?

난 발레리가 아닌데.




“뭐하는거야 병신새끼야!!! 일어서서 튀어!!!”




왜? 하면서도, 몸은 정직하다.

째깍째각, 시계 소리가 들려 온다.

도붕이에게 받은 기억은 내 손실과 함께 왔다.

내 머리 반쪽을 먹으면서, 돌려 준 기억.


나는 잊어버린 발레리의--- 아니, 이건 

내가 처음 탐미엘에 의해 여기에 왔을 때의 기억.


원래 내 기억.


그러니까, 이게 사실이라는 걸 누구보다 내가 더 잘안다. 입으로 아무리 아니라고 내뱉어봐도, 긍정하고 마는 내가 있다.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도붕이 말대로 난 아무짝에 쓸모 없는 인간이니까. 개쓰레기, 박상연보다 쓰레기.

태어나질 말았어야 하는 쓰레기니까.




근데, 근데------


왜 달리고 있는거야? 왜 일어서서 도망 가려고 하는거야? 넌 쓰레긴데?




“허억, 하악, 하아악---!”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켜서, 달린다.

도붕이에게서 멀어지려고, 지면을 긴다.

팔에 힘이 안 들어가서 주저 않으면 다리로 밀어서 멀어지려고, 어떻게든 멀어지려고 발버둥친다.




“안 놓친---! 크아아악!”



등 뒤에서 들리는 불꽃이 튄다. 이 동공에서 번쩍번쩍, 번개처럼 화약이 타며 운다. 우레처럼 울며, 계속 이어진다. 


웃기네. 마치, 맞지 않으려고---

살려고, 지면을 기고 있다. 가슴이 아프고, 팔 다리가 저려. 마음은, 머리는 이미 다 쓸모 없다는 걸 아는데. 그런데, 몸은 살고 싶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그렇게 등 뒤의 총포음에 박자를 맞추듯 기어서 떨어진 뒤. 일어서서 뒤를 돌자, 새카만 동공 속에서 세 개의 호흡. 거친 숨.



“크, 크으으윽---! 으학, 하악--- 커억---! 흐으, 으으으으---!”


잘 보이지는 않지만, 바닥에서 꿈틀 거리고 있는 것은 도붕이. 


“허억, 허억--- 씨발--- 새끼, 더럽게⋯ 안 죽네⋯ 그래도 카운터 도플갱어라 나랑은 레벨이 다르다 이거냐?”


그 반대편, 벽을 짚고서 숨을 몰아쉬는 것은 도플갱어 다닐. 

다 죽어가고 있다. 금새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이 그렇게, 뜨거운 숨이, 이산화탄소가 동공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나를 포함해서.



“왜--- 방해 하냐고---! 이 버러지들, 쿨럭, 커억---! 말 해 줬잖아!!!”

“저 새낀 도플갱어 발레리가 아니라니까! 몇 번을 말해야 되냐고!!! 이 병신같은---!”


맞아. 난 발레리가 아니다. 그 도플갱어는 더더욱 아니고, 오히려 난 발레리를 죽음으로 몰아 넣고서 까맣게 잊어버린 쓰레기인데.


“허억, 허억--- 그래.”


“그러겠지.”

“그럴거고.”



“나도, 다닐이 아니니까.”


어둠 속에서 떨리는 목소리. 새빨간 바이저의 불빛, 코 앞을 비춰주는게 다인 톱니바퀴. 그 아래의 9의 문양만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뭐라고? 도플갱어 다닐이 아니야⋯?

그럼---



“뭐라고? 뭐라는 쿨럭, 거야 이 미친 도플갱어새끼가아아---!”


“하하, 마치 넌 도플갱어가 아니란 것처럼 아가리 놀리네. 이 새끼---”










흔들리던 불빛이 앞을 향한다. 이 동공, 어둠 속에서 앞이란 어디일까. 나는 여기서 빠져나갈 출구라고 생각하는데. 다닐은 어딘가를 노려보며, 바이저의 불빛을 내뿜는다.




“도플갱어 다닐은, 처음부터----후욱, 허억---”

“그 때, 그 처음--- 바퀴벌레랑 싸웠을 때 죽어버렸거든? 어? 알아, 듣겠냐? 이 자식아---!”



“지랄하고 있네! 그럼 넌---!”





그럼 넌 뭔데.





“헤르타, 아니지. 셜리였지. 너희가 아는 이름은 셜리. 자신이 지은 이름은 헤르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원본을 뛰어넘은 도플갱어.

원본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헤어나올 수 없었던 지옥에서, 전장이라는? 어? 있지? 그 지옥에서---


사람을 살리고, 태어나게 했던 그 도플갱어. 셜리=헤르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구한 도플갱어 다닐이다.”


그건 도대체 무슨---하고, 불빛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 곳에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당장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은 다닐이 있었다.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 그 가벼운 분위기는 만들어냈던 것처럼. 흉내낸 것처럼.



“헤르타는--- 그 날, 나를 살렸지. 그리고 지금, 겨우, 졸라 빡치게도, 지금 내가 그 의미를 알 것 같거든.”


“뭐라는 거야 이 씨발병신새끼야! 관심 없어!!!”


도붕이의 말을 끊듯이, 탕 하고. 집중하라는 듯이 총성이 울고, 도붕이의 비명. 동시에 반동으로 밀려나 주춤하는 다닐.



“들어라, 씨발--- 하악, 하아억--- 난 그 뒤로, 무의미하게 10년을 또 보냈다고. 그냥 얻은 생명, 어떻게할지도 모르고, 그저 그렇게 흘리다가 그 자식을 봤지.”


그 자식.

아마,


“그래--- 너네가 말하는 그 발레리라는 자식말이야.”

“도플갱어가 아니야, 원본! 방금 너희들이 길게도 씨부렸던!”




“절망적이야. 앞이 하나도 안 보여. 어? 안 그래? 혼자만 남겨졌고, 이 눈보라치는 설원에서, 뭘 할 수 있겠냐고. 어떻게 하라고! 어? 흐흐흐흐, 쿨럭---”


맞아. 혼자 남겨진 발레리는 나와 헤더를 구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싸웠었다. 헤더는 그 시점부터 이미 도붕이에게 먹혀서, 가짜였지만.


“그런데, 싸웠다고. 그 바퀴벌레처럼. 왜? 어째서? 그렇게, 피똥싸게 버틴 결과가 저 자식이잖아? 어? 자기랑은 아무 상관도 없는 놈을 왜?”


그래, 맞아. 왜?

이럴 이유 없는데, 그럴만한 가치는 없는데.



“흐, 흐흐흐--- 난 지금, 왜 그런지 알 거 같거든. 어?”










“사람이었으니까.”





어째서, 눈물이 나오려고 하지.

아니란 거 아는데. 저 말이 틀렸다는 걸 다 아는데.

그런데도, 그 말만으로.


목구멍이 뜨겁게, 달아 올라서 침을 삼키는 게 어려워져서.






“사람? 크크크크크, 지랄도 애미 염병지랄하고 자빠졌네! 여기에 사람새끼는 단 하나도 없어!!! 병신새끼들아 너넨 다 그냥 오타쿠 새끼들 좋으라고 만들어진 배경이야! 엑스트라 새끼가 뭔데 아가리를 놀려?!”

“너네들한테 뭔 가치가 있는데?! 저 새끼한테 뭔 가치가 있는데?! 이 씨발 병신같은 창작물 조연 새끼들이 뭔데 누굴 가르치려들어?!”



이야기에서 이름만 언급 되었을 뿐.

아무것도 하지 못 했던 다닐.

심지어, 그 도플갱어. 존재자체만 있을 뿐, 결국 그 무엇도 아니다. 맞아. 하지만---




“그래, 우리는 일시적 현상. 원본을 먹어치우는 것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침식체. 


근데 있잖아, 씨발.



헤르타는, 헤르타는 텅 빈 나를 구했다고.

자신이, 그랬으니까, 살아줬음 했으니까, 이기적일지라도, 그런 거라고”


“원본 발레리도 그래, 살리고 싶으니까 그런 거겠지. 그걸 위해 모든 걸 걸면서 살아갔지.”



그건, 아마. 죽어갔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한다. 실질적으로 그래. 나 때문에 죽었으니까,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래, 처음부터 내가 없었다면 어쩌면 그림자 류드밀라와 만나서---



“그러니까, 난 내 이기심으로 헤르타처럼---

 셜리처럼---



저 새끼를 살리고 싶다고.”



척, 하고 실루엣이 일렁인다. 보이지 않지만 그걸 나를 가르키는 손.



“원본, 원본, 원본----! 원본에 미쳐가지고!!! 그런 주제에 같은 동료를 연료취급해서 처먹으면서도 그 모순을 하나도 이해 못하는 너네랑은 다르게!!!”


“원본을 뛰어 넘을거다. 헤르타처럼---!”



“알겠냐?! 발레리!? 넌 나랑 똑같아! 살아있을 가치가 없어? 그 딴게 뭐가 중요해? 도플갱어가 하는 말이 다 옳고, 니가 잘못을 했어? 그게 뭐가 문젠데?”


“살아, 씨발 살으라고! 개병신처럼 더러워졌어도, 이젠 뭐 앞이 없어도, 살라고! 적어도 널 구하려다가 죽은 새끼들한테, 뭔가는 보여줘야할 거 아냐?!”


“나도, 알아! 나도 그렇게 헤르타 대신 살아봤으니까! 10년을 그냥 그렇게 살아만 있었으니까!

근데 있잖아 씨발---!”



모르겠다.

모르겠어.

왜 저러는지 도저히 모르겠어.

왜, 나를---




“도플갱어같은 현상 따위한테 필요없다느니 가치가 없다느니, 너 때문이라느니 그 딴 말 듣고 질질 짜면서 홀라당 넘겨주지 말라고!!!”


“넌 헤르타가 목숨이랑 맞바꾼 생명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잖아!!!”


“허억, 허억--- 아직---”

“숨 쉬고 있잖아. 씨발놈들아⋯”





눈물이 흘렀다. 뜨겁게, 흘러서 나도 모르게 코를 훌쩍였다. 아파, 마음이 아프다. 내가 잊고 있었던 사실들. 틀림없이 저지른 일들. 


망쳐버린 것들. 처음부터 아귀가 맞을리가 없지. 내가 다 부셔놨으니까. 


그런데도, 발레리는 날 구하려고 했고.

난 그 은혜도 모른 채 득의양양해서 발레리를 대신한다느니 뭐니, 이 이야기를 원래대로 되돌린다느니 뭐니.


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고. 내 자신이 너무 작게, 느껴져서. 교실 책상 위에 앉았을 때처럼, 매순간순간이 마음이 녹아내릴 것 같아서.


그랬는데, 결국, 나는 그대로구나 하는 걸.



도붕이가 말한 것처럼, 나 자신은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고 도붕이에게 빼앗긴 내 존재정보. 그걸 탐미엘의 계약. 내 안의 시계가 억지로 주변인들을 이용해서 채우다보니 일어난 변질.



그래, 난 처음이랑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어.

알렉스 야짤로 딸이나 치며, 엄마 돈으로 산 맥주를 마시고 밤새 갤질이나 하던때랑. 그렇게 스비갤에서 분탕을 치고, 그리고---




그런데, 그런데도.



살라고?

그럴 수 있다고?



내가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구하려 왔다고?





“못 알아 먹겠으면, 이걸로 해. 씨발. 연료라고 들었을 때, 니가 지은 표정을 넌 모르겠지. 어? ”



도플갱어 알렉스가 우리를 가뒀을 때, 둘이서 있던 감금실. 옆 방에 가둬진 것은 이제는 재생조차 못하는 숨만 붙어있는 도플갱어들. 


같은 동료를 잡아 먹으면서, 버티고 있었다.



“그 표정이, 아마--- 그래.”



표정따위 본 적 없지만, 만약 헤르타에게 맨 얼굴이 있었다면, 이 바이저 아래에--- 원본도 아닌, 그녀 자신만의 얼굴이 있었다면---



그런 표정일 거 같아서.





라고, 




그냥 그것 뿐. 변덕에 가까운 거라고, 말을 돌리듯이. 별 거 아니라고 말하듯이. 다닐은 그렇게 다시 벽을 짚고 일어선다. 겨눈 총의 실루엣. 



“그러니까, 뛰어 발레리. 어? 뭔지는 모르겠지만 넌 나름대로 뭐 할게 있는 거 아니냐? 저 도플갱어 놈은 어차피 여기서 끝이야. 동굴 반대편에는 이미 부전대장이---”




“옘병하고 있네 병신들이---”



도붕이가 일어선다.



“허억, 허억--- 후우, 개병신같은 잡소리 듣느라 재생도 역겨워서 개같이 느리더라.”

“도플갱어 알렉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야, 이 빡통새끼들아. 다닐, 아 뭐 다닐이 아니랬나? 그럼 씨발 이 병신 도플갱어새끼야. 내가 저 새끼를 놓치고, 너한테 저 새끼 길목에서 잡아오라고 시킨 다음에 뭘 했을 거 같냐?”


“암만, 이 통로가 빠르다지만, 시간이 존나 비죠?”




쾅, 하고 위에서 들려오는 진동. 굉음에 후두둑, 하고 동공 자체가 울린다. 뭐, 뭐야. 하고 출구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굉음이 더 이어진다. 이건---


전차의 포음. 총격하는 소리. 외치는 목소리.

전투, 싸우고 있다.



“흐흐흐흐, 그림자 유두말랑쨩 존나 개허접이니까 대충 포대 하나로 유인 시켜놓고, 그새 열어뒀거든.”




아, 이건 너한테 배운거다?

물론, 살짝 어레인지를 해봤지. 그림자년이 수복한 포대에 원격으로 접속해서, 펑. 하면 당연히 그 쪽으로 오겠지?



그 사이에, 코핀 오브 타기리온의 봉인을 해제하면---



“그 씨발년이 뛰쳐 나오겠지?”




솔파미레시도! 마왕의 사도⋯! 하지만, 그것보다 그 안에 갇힌 메이즈 전대원들이 더 먼저 깨어날텐데⋯


두근, 하고 심장이 뛴다. 어쩐지 그 소리는 째깍째깍하고 울어서 싫은 가능성 하나를 새긴다.




“흐흐흐, 너 이 새끼. 그 씨발년 종자가 어딘지 까먹었냐?”







클리포트의 마왕.

그리고 그 사도잖아?





탁탁, 하고 도붕이가 자신의 가슴을 치는 소리.






그리고 내가 탐미엘과 계약해서 얻은 이 루프의 능력또한 클리포트의 마왕의 능력.


즉, 내 계약을 반쯤 나눠가진 도붕이는 나처럼 클리포트의 파장을 가졌으니.





“미리, 그 씨발년한테 귀뜸해줬지. 힘 모으지말고, 처음부터 초전박살을 내라고. 괜히 왕의 안전히 깨울 생각으로 시간 끌다가---”









“관남충 오면 조진다고. 푸하하하하하하, 그러니까 그 씨발년은 지금”







“손 쉬운 도플갱어들을 처먹고 있을거다. 뭐, 지가 시킨 도플갱어 류드밀라가 없긴 해도 그거만 먹고 그림자 류드밀라까지 먹으면 나머지는 반병신 메이즈전대---”



“말해두겠는데, 이 병신새끼야. 원본!!! 어?!”


“내가 있는 한, 니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없어.

 이 좆망한 스토리를 다시 고쳐쓸 수도, 도망칠 수도 없다고. 넌 씨발!!! 내가 좆같지만, 제일 잘 알거든!!!”



“여기서 나한테 먹히는 것 말고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개씨발 병신새끼니까!!!”




끝났다.

이젠 내가 뒤집을 수 있는 건 없다. 그렇다면, 이번 루프는 포기하고 여기서 도붕이를 붙잡아서 흡수--- 할 수 있을리가 없어.


다닐은 이제 더 싸울 수 없겠지. 숨을 고르는 것이 고작. 나는 머리가 반쯤 먹혀서 싸울 수 있을지도 몰라. 게다가, 여기서 지면 완전히 먹혀버린다.


차라리 여기서 자살이라도 해서---





“⋯”



다닐의 말을 떠올린다. 소리지르며 했던 이야기들 대부분은 솔직히, 흘러가듯 내 모든 것을 긍정한 게 아니다. 다닐 자신이 이야기 했던 것처럼, 이기심.


하지만, 내가 봐왔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림자 류드밀라, 도플갱어 알렉스, 발레리, 메이즈 전대원들.


그들을, 또 포기할 수 있을까.

지금, 여기서 간단히 또 도망쳐도 될까.


안다. 이게 멍청하고, 힘들고, 의미없고, 그냥 힘을 빼고, 여기서 자살하는 것보다 한 없이 리스크가 큰 일이라는 건.


그런데, 살아있다고 하니까. 살라고 하니까⋯



그럼, 너희들은?

지금 바깥에 들려오는 비명들은?




없었던 것처럼---

원래부터가 망가진 이야기니까 없었던 일로.


애초에 박살난 인생이니까, 이번 생에서는---





일어선다.




“어딜 가려고 개새--- 크악!”

“너야말로, 허억--- 어디 가냐?!”




앞 뒤로 들려오는 총소리. 비명과 외침. 

고마워. 고마워, 다닐. 하지만, 미안해.



떨리는 두 다리를 일으켜서, 출구를 향해 걷는다. 달리려고 하니까 바닥이 잘 안 보여서, 미끄러워서 몇 번 헛디딘다. 오른손으로 지면을 어설프게 짚어서 팔목이 아리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서 걷는다. 뛴다. 어설프게 뒤뚱뒤뚱, 그것만으로 숨은 턱까지 차올라서 이미 없는 왼쪽 눈알이 뜨겁다. 




아직, 잘 모르겠어. 잘 모르겠다고.

하지만, 다닐이 나를 자신처럼 겹쳐봤던 것 처럼.


그렇게, 지금 아무런 이득도 없는 짓을 하면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서.

도붕이가 엑스트라라고, 배경에 불과한 새끼들이라고 했던 것 처럼.



내 인생을 내집어던진 내가, 엑스트라인 내가, 

나도---



할 수 있는 게 있을거라고.

믿고 싶어. 있을거야.



이야기가 망가졌다고, 놓고 싶지 않아.


이기적이더라도---





“방해하지말라고 다닐 이 병신이!!!”

“멈춰 원본!!! 니 새끼가 뭘 할 수 있다고!!!”





달려서, 이 동굴을 빠져나간다.

앞에 기다리는 것은 눈보라. 설원. 그 위로 피어나는 불꽃, 화약의 꽃. 절망의 십자 쐐기를 든 마왕의 사도. 



그렇지만, 마음이 외치고 있어서.

안 그러길 바래서.


도붕이 말대로, 이건 나 자신. 본연의 가치관, 사고관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어설프게, 뛰어서 나는 동굴을 벗어난다.









--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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