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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auntlet Academy Episode II: 유미나의 기묘한 생일 --



 "미나 선배!"


 띵동.


 "미나 선배애애애!!!"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쾅.


 쾅.


 쾅, 쾅, 쾅.


 쾅!!!!!!!


 "알았어, 노엘! 일어나면 될 거 아냐?!"


 그때까지 자고 있었던 미나는 신경질을 내며 침대에서 일어나곤 그대로 문을 벌컥 열었다. "문 부숴지겠어, 이 바보야! 애초에 휴일인데 왜 귀찮게 오늘도 와서… 어라?"


 하지만 미나의 예상과 달리, 평소에 못 보던 얼굴이 모여있었다.


 노엘 뿐만이 아니라, 시윤, 그리고 레이, 샬롯, 루크레시아까지.


 그 루크레시아가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방금 건 내가 쳤던 거야. 아무리 불러도 나오질 않아서 집에 없나하고."


 "하아…. 우리집 낡았단 말야. 그렇게 쳤다간 부숴져."

 "얼굴 보니까 세수도 안 하고, 아직까지 자고 있던 거 같은데. 오늘 너 생일이라 다들 아침도 안 먹고 나왔어."

 "…그건…."


 미나는 한숨을 쉬었다. "미안. 어제 학교 끝난 뒤로 저녁에 병원에 갔다가 새벽에 겨우 집에 와서 잠들었어."


 그러자 샬롯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미나야, 혹시 많이 아픈 거야? 오늘 파티 취소할까?"


 "아, 아니 나 때문에 병원에 간 게 아니라, 그게…."


 말할까 말까 고민하던 미나는 그냥 고개를 젓곤 말했다. "그냥 됬어. 나 씻고 나갈 준비 할테니까, 일단 들어와."


 "……." 잠시 생각하던 루크레시아는 시윤과 레이를 보곤 말했다. "야, 남자들은 나가서 케이크 큰 거 사와."


 "…뭐?"

 "갑자기 그건 무슨 말이예요?"


 "아침 그걸로 먹게. 미나야, 괜찮지?"

 "응? 아… 그, 글쎄. 나야 아무거나 줘도 괜찮고…."


 미나는 자기 생일인데도 남들이 챙겨주는 것에 부담스러움을 느끼는지, 소극적인 반응만 보였다.


 샬롯이 물었다. "근데 케이크는 펠리세트가 만들어서 주기로 하지 않았어?"


 "그건 개인적인 선물로서의 케이크고, 이건 파티 케이크니까."

 "…다른 거야?"


 "그럼, 다르지. 모두 모여서 초도 꽂고 불도 불어서 꺼야지 진짜 생일파티 같잖아." 그리고 루크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그럼, 둘이 그걸로 미나 생일 선물 사는 거니까, 적어도 육만원 이상으로 사와!"


 시윤이 귀찮은 듯이 말했다. "아니… 아침부터 케이크 먹는 건 그렇다 쳐도, 왜 저희가 가야만 하는 건데요."


 "왜 그렇게 눈치가 없어? 미나 씼는다잖아! 샤워하고 머리도 말리고. 좀 나가있어!"

 "아…."


 시윤은 납득하긴 했는지, 결국 한숨을 쉬고 레이와 함께 투덜거리며 나갔다.




https://www.youtube.com/watch?v=m9LIwlPNFs8

(마우스 오른쪽 눌러서 반복)


 한 시간 반 뒤. 촛불도 끄고 케이크도 나눠 먹고, 오랜만에 진짜 평범한 소녀 같은 기분으로 하루를 연 미나는, 이후 친구들에게 등쌀이 밀리며 시내로 나왔다.


 "그러니까! 미나 선배, 어제 새벽부터 계속 어디 갈지 생각했고, 가게 리뷰도 전부 봤고, 볼 영화도 리뷰 전부 읽어보고, 놀이 공원도 어떤 기구가 있는지 찾아보고, 전부 다 알아봤어요!"


 노엘은 계속 미나의 옆에서 깡총깡총 뛰면서 정신사납게 굴다가, 눈을 빛내며 계속 말했다. "오늘은 미나 선배가 주인공이니까! 뭐든 하고 싶은 걸 고르면 베스트 옵션을 알려드릴게요!"


 "근데 너 말야… 어제 모의전 늦게 끝나고 집에 똑같이 늦게 들어갔잖아? 그럴 시간이 있었어?"


 게다가 오늘 아침에 자기보다 일찍 일어나서 문을 두들길 정도면 잠도 더 적게 잤다는 말일텐데?


 "걱정마세요! 영화 보다가 중간에 잘지 몰라서 레드불을 삼십 캔이나 미리 마셔뒀어요!"


 레이는 그 말을 듣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그거… 괜찮은 거야? 카운터라도 위험할 거 같은데."


 샬롯이 물었다. "그럼, 일단 어디로 가고 싶어?"


 "글쎄… 딱히 아침부터 볼 영화도 없고. 쇼핑이나 먼저 할까?"


 루크가 말했다. "평소에 갖고 싶었던 게 있었나봐? 좋아, 얼마나 비싸건 내가 사줄게. 친구 생일선물이라고 하면 파파도 눈 감아줄테니까."


 그때 루크레시아는 대충 옷 가게나 디지털 매장을 예상했지만.


 전혀 틀렸다.


 "이거…."


 "미나야, 이런 걸로 괜찮은 거야?"


 단지 동네 슈퍼마켓에서 먹을 것만 잔뜩 카트에 담고 계산해달라는 미나.


 하지만 루크가 왜 당황한 건지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미나는 그걸 너무 비싸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여 컵라면 박스를 덜어내려고 했었다. "아… 미안. 생일이라고 내가 너무 들떴지? 게다가 네 생일 땐 내가 비싼 선물을 사줄 수도 없는데. 내가 봐도 너무 많이 골랐어."


 루크가 손을 잡으며 말렸다. "아냐, 네가 원하면 이것도 괜찮아. 신경쓰지 않으니까."


 어쨌든 계산을 하고 물건을 집 문 앞에다 배송해달라고 주소를 적고선 나갔다.


 아무 말도 없었던 샬롯이 이번엔 어디로 가고 싶냐고 물어보자, 미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글쎄… 모르겠어. 다들, 어디 가고 싶은데라도 있어? 난 딱히 어딜 가도 상관 없으니까."


 양팔을 교차해 뒷통수에 느긋이 받치고 있던 레이가 말했다. "그럼, 게임 센터라도 갈까?"


 "게임 센터?"

 "어차피 한 시간 뒤면 영화도 시작할 거 같은데, 멀리 가기보단 그냥 심심풀이로 시간만 대충 떼우고…."

 "응. 좋아."


 혹시 다른 애들은 싫진 않은가 눈치를 봤지만, 샬롯이야 그냥 묵묵히 가만히 있고, 루크도 괜찮은 것 같았다.


 "House of The Corrupted"


 "King of Counters"


 "Strikers 2044"


 클래식 아케이드 타이틀을 전부 모아둔 동네 오락실. 중등부 시절에 학교 끝나고 시윤도, 레이도, 루크도 항상 놀러와서 동전을 트럭으로 쏟아붓곤 했다. 게임은 잘 못하지만 돈을 내주던 샬롯도 옆에서 구경하기도 했고.


 기지개를 편 시윤이 갑자기 손가락을 탁 튕겼다.


 "그러고보니, 미나 양의 생일인데 격투 게임으로 토너먼트를 여는 건 어때요?"


 슈팅 게임은 잘 하지만 격투 게임은 잘 못하는 루크가 중얼거렸다. "쟤 또, 자기 실력 자랑하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닌데."

 "아니긴 뭘 아니야."


 레이가 말했다. "토너먼트라… 팀 짜기 복잡하잖아? 삼 대 삼으로 나누자. 남자 대 여자는… 아니고. 흠…."


 "그래요, 그러면 1팀 대 3팀. 그렇게 하죠."


 1팀은 미나-노엘-시윤, 3팀은 샬롯-루크-레이 순으로 하기로 정했다.


 애초에 게임을 할 시간이 없었던 미나는 샬롯에게 그대로 졌다. 하지만 의외로 강한 노엘이 샬롯을 이겼지만 루크에게 안타깝게 졌고, 그 뒤에 시윤의 픽은….


 오로치.


 나이트메어 기스.


 오메가 루갈.


 "……."


 같은 팀이지만 정말 치졸함을 눈 뜨고 봐주질 못하겠는지, 노엘은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시윤 선배, 누가 대전에서 오로치를 써요? 게다가 남은 둘도 보스 캐네? 이거 반칙 아니예요?"


 "야, 진짜 너 정말…!" 루크는 오로치의 천벌에 계속 맞고 죽으면서도 한숨만 쉬지 딱히 격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평소엔 이겨먹어야 속이 풀리는 그녀답지 않은 반응이다.


 노엘이 이상하게 여겨 물었다. "저기, 루크 선배. 화 안 나요?"


 "뭘, 쟤는 항상 저러니까. 진짜 짜증나지만 이젠 그냥 됬어."


 "아싸아~ 이겼다~."


 놀리듯이 특이한 목소리를 내는 시윤. 그리고 힐긋 노려보더니 그냥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루크.


 "아, 몰라. 비행기 게임이나 할래. 미나야, 같이 할까?"

 "어… 응. 그래."


 "다음은 나네!" 레이는 웃으며 루크가 앉던 자리에 바로 앉고는 동전을 넣었다.


 "어…?"


 테리. 갑환. 알프레드.


 숨겨진 커맨드로 똑같이 보스 캐릭터를 고를려고 하지도 않고, 탁 탁 탁 눌러서 바로 고르는 레이.


 노엘이 레이의 뒤에 서서 말했다. "저기, 레이 선배. 보스캐 고르는 게 낫지 않아요? 시윤 선배도 쓰는데…."


 "아니, 난 그냥 디폴트 아랑 팀이 좋아."

 "그러시다면야…."


 시윤도 실력이 꽤 있는 편인데 이걸 이길 수 있나? 그렇게 생각한 노엘.


 알프레드-갑환-테리.

 기스-오로치-루갈.


 엔트리를 탁탁 고르고선 시작했다. 승부의 결과는 노엘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첫타자로 나온 알프레드가 전부다 이겨버렸다….


 열풍권이나 카이저 웨이브 같은 장풍기를 쓰면 곁눈질로 계속 보던 레이가 칼 같이 대공기(오그멘터 윙)의 무적 프레임을 이용해 뚫고 들어와 연속기를 먹이거나, 공격을 가드하고 있으면 갑자기 이동 잡기(스톨)를 쓰거나, 넘어지면 다이브 킥(포커)을 쓰면서 이지선다를 걸었던 것.


 강하다 강하다 불러줘도 결국 시윤은 그런 캐릭터들로 장풍만 난사하는 플레이를 했었는데, 그걸 카운터하는 러시다운 캐릭터에게 그대로 뚫렸던 것이다.


 "아…." 정신적인 충격이 엄청난지, 알프레드의 체력을 반절도 깎지 못했던 시윤은 그냥 멍하니 있었다.


 "하하, 내가 이겼네!"


 …그래도 매너는 좋은 레이라 티배깅도 도발도 하진 않았다.


 "우와… 추해. 너무 추해. 시윤 선배, 보스캐만 써놓고 졌네요."


 머리를 긁적이던 시윤은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언제 이렇게 실력이 늘었던 건지… 아마 이 지역에서 레이보다 잘할 사람은 없을 걸요?"


 "그, 그런가?"

 "제가 중등부 때 건틀렛 아카데미 고등부 선배를 이겼던 직후 권왕의 칭호를 지키고 있었지만… 이제 넘길 때가 된 거 같군요. 받아주세요."


 "아, 아니… 그건 좀…."


 쓴웃음을 지으며 사양하는 레이. 그 옆에서 닭살이 돋는 표정을 짓던 노엘이 말했다. "권왕이라니, 뭔가 식상하고 촌스럽지 않아요? 그래! 마왕은 어때요? 마왕 레이!"


 그러자 오히려 시윤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그게… 중이병스러워."


 "…………."


 떫은 표정을 지으며 애써 무시하려는 레이의 반대편에선 미나와 루크가 스트라이커즈 2044를 하고 있다.


 히든 기체인 선더볼트가 사기였는데, 특히 루크는 동방 루나틱도 클리어한 경험이 있으니 선더볼트를 픽하면 원코인으로 최종보스 기가스까지 클리어할 수도 있었다.


 반면 미나는 그냥 계속 봄만 쓰다가 죽고, 다시 봄만 쓰다가 죽고 반복하고 있다.


 "아… 나 진짜 동전 값 못하네."


 "괜찮아."


 집중하느라 짧게 말하는 루크.


 "저기… 얼마나 남았어?"

 "여덟 번째에 기가스가 나와."


 "또 죽었네."

 "……."


 "저기, 동전 계속 넣어주지 않아도 돼."

 "그냥 계속해. 나중에 안 갚아도 돼."


 "아, 그… 그래."


 뒤에서 샬롯은 조용히 보고 있다가, 시계를 힐끔 보더니 크게 말했다.


 "다들, 가자. 이제 영화 십오 분 전이야."


 관에 들어가기 전에 팝콘과 주스를 사려고 하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을 봤다.


 "어? 선생님들 아냐?"


 레이가 가리키자, 루크가 외치며 불렀다. "제이크 쌤, 카린 쌤!"


 익숙한 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둘. 미나는 갑자기 장난기가 도졌는지, 둘을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뭐야, 선생님들. 데이트 해?"


 "아, 저, 그게…."


 "어…." 뭐라고 대꾸하려던 제이크는 미나 말고 여섯 명이나 있는 걸 보곤 이상하단 듯이 물었다. "아니, 너희야말로 뭔데 대체 우르르 몰려다니냐?"


 샬롯이 대답했다. "오늘, 미나 생일이예요."


 "아, 그래?" 제이크는 선글라스를 벗어서 앞주머니에 꽂으며 말했다. "미나, 생일 축하해."


 "고맙습니다."

 "흠… 말로만 축하한다고 하는 것도 뭐한데. 아니…."


 제이크는 팔짱을 끼며 물었다. "너희도 영화 보려고 온 거야?"


 "응. 내 생일이라고, 같이 영화나 보자고 해서."

 "뭐 보는데?"


 "프로젝트 스타 극장판: 스타게이저."

 "같은 거네?"


 그러자 제이크는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럼 너희들 모두 콜라랑 팝콘 내가 사줄게. 미나는 특별히 비싼 걸로 골라도 돼."


 "아… 저, 제이크 선생님. 그럴 필요는 없어."

 "사양하지마. 이거 카린 선생님 몫까지 내가 사주는 거니까, 걱정말고 오늘 하루 즐겁게 애들이랑 같이 놀아."


 역시 인기가 좋은 선생님이다… 그런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드는 미나였다.


 영화 자체는 딱히 참신하진 않았지만 퀄리티나 디테일은 좋았다. 딱 정통파 판타지 같은 느낌이었달까.


 같이 나온 뒤에, 카린은 제이크랑 함께 반대편 출구로 가면서 외쳤다. "얘들아, 주말에 시험 있는 거 알지? 너무 늦게까지 놀지 말고!"


 정오가 살짝 지나서 극장 옆의 햄버거 가게로 가서 대충 먹곤, 다음엔 샬롯이 백화점에 가자해서 이것저것 봤다.


 "옷도 그렇고 화장품도 그렇고, 미나는 꾸미면 더 예쁠 거 같으니까."


 마치 어린 소녀가 인형을 치장하고 노는 느낌. 미나는 쑥쓰러워하며 물었다. "저기… 화장품 종류를 왜 그렇게 잘 알아? 잘 보이고 싶은 남자애라도 있어?"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린 것이 직격이었는지, 샬롯은 침묵하며 고개를 돌리곤 얼굴을 붉혔다.


 "아…."


 "아하하, 미안… 이상한 질문을 했네." 미나의 옆에서 머리띠를 고르던 노엘이 그걸 듣고 다가왔다.


 "미나 선배! 예뻐지고 싶은 건 소녀의 본능이라구요!"

 "응, 넌 확실히 소녀 같아."

 "네? 정말요? 칭찬 감사합니다!"


 이것저것 화장품을 둘러보던 루크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역시, 화장품 보다는 옷이 좋겠어. 미나도 그렇지? 화장품이야 뭐… 옷은 그냥 입으면 바로 눈에 보이고, 그렇잖아?"


 "하긴… 생일 선물로 화장품을 주는 경우는 들어본 적 없어요."

 "그런 거지. 그래, 이쪽 말고 저쪽에서 골라보자."


 두리번 거리던 미나가 보라색 드레스에 관심이 있는 걸 보고 샬롯은 그걸로 좋냐고 물었다.


 "아… 그게, 왠지 언니가 생각나서 봤던 거야. 딱히…."

 "언니?"

 "아, 아무것도 아냐."


 "……."


 샬롯은 옷을 잡고는 미나에게 주었다. "사이즈는 맞을까? 가서 한 번 입어봐."


 "괜찮은데…."

 "어서."


 뭔가 무언의 압력에 미나는 옷을 입고서 왠지 기쁜 듯이 웃었지만, 가격표를 보곤 역시 미안한 느낌만 받았다.


 "역시 너무 비싼데, 그냥 됬어."

 "……."


 하지만 샬롯은 그 태도 똑같이 점원에게 다가가서 저걸로 계산해달라고 했다.


 "이거 22만원인데…."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야. 게다가, 나도 집에 하얀 드레스 있어. 나중에 학예회때 입고 나와서 같이 사진 찍자."

 "아, 응."


 여자애들이 옷을 고른다니까 1층 자판기에서 주스 마시면서 잡담이나 하던 시윤과 레이는 미나가 옷을 바꾼 걸 보자 묘한 반응을 보였다.


 "우와, 미나 완전히 달라보이네? 진짜 숙녀 같아."

 "옷 사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보라색이라니, 정말 보니까 신기하네요."


 미나는 한쪽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시윤 선배, 그거 칭찬이야 욕이야? 게다가 레이 선배, 예전엔 숙녀처럼 보이진 않았다는 얘기고?"


 "아, 아니 내 말은…."

 "…그냥 됬어. 장난이야. 어차피 레이디 같은 건 샬롯이지 내가 아니고."


 루크가 말했다. "벌써 네 시네." 노엘은 웃으며 대꾸했다. "아직 네 시 밖에 안 됬네요? 어차피 미나 선배의 생신이니까 모두 적어도 자정까진 놀거죠? 오늘 토요일이니까 아예 새벽도 넘기고 내일 아침까지 달리자고요!"


 "아, 아니… 제발 그러지마. 진짜 부탁이야."


 미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이어서 말했다. "진짜 다들 고맙고, 노엘 너도 고맙지만… 슬슬 지치지? 그러니까 저녁까지만 같이 먹고 해산하는 게 좋겠어."


 레이도 루크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여기서 피곤하다고 말하면 섭섭할까봐 눈치를 주긴 싫었는데, 어차피 미나도 알 건 아니까 그냥 최대한 티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네에에에?! 하지만, 미나 선배! 저 아직 선배님한테 선물 드리지도 못했었고!"


 노엘을 보면 알 수 있다. 얜 진심으로 미나를 따른다. 그냥 그러는 척하는 게 아니다.


 "아… 그러면 네가 저녁 사줘. 아, 애들 거 다 사면 부담스러우니까. 내것만 사줘."


 "그래요? 아… 뭐, 선배님이 원한다면 그걸로 할게요. 음… 그렇다면 종합 레스토랑에 가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레이가 물었다. "우리집 옆에 있는 거 말하는 거지?"


 "네! 그거요!"


 "근데 말야, 지금 거기까지 가도 네시 반 정도 밖에 안 될 걸. 저녁 먹기엔 좀 이르지 않아?"


 "음… 그러면, 좋아요! 놀이공원에 가요!"


 루크가 제안했다. "아, 아니… 놀이공원엔 아침부터 갔어야지. 고작 한 시간 정도 들어가서 뭐해. 미나야, 가는 길에 그냥 노래방에 들렸다가 갈까?"


 "노래방?" 미나는 눈을 번쩍였다. "그래, 좋아!"


 시윤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나 양, 또 쏘 유 리멤버 그거 부를려고…."


 "어? 안 돼?"

 "아니, 맨날 그거 부르잖아요. 뭐 됬나…."


 노엘도 눈을 똑같이 빛냈다. "와! 저 미나 선배랑 노래방 처음 가봐요! 엄청 기대되요!"


 "아… 기대하지 마세요, 미나 엄청 음치… 크헉?!"


 미나는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시윤의 발을 밟았다. "쓸데없는 소리하지마, 선배."


 노래방은 상가 쪽에 있었다. 대충 시간을 떼우고 나오는데, 저편에서 카일과 실비아가 보였다.


 루크가 중얼거렸다. "어라? 뭐야, 카일 바쁘다더니 실비랑 저기서 놀고 있었네?"


 "음? 진짜네요. 저기, 카일 군!"


 "앗…."

 "어? 네 반 애들 아냐?""


 루크가 다가가서 따지듯 물었다. "아니, 미나 생일이라니까 자긴 빠져놓고. 그랬더니 이유가 데이트야?"


 실비가 화난 목소리를 냈다. "누가 이런 벽창호랑 데이트야?! 애초에 난 오퍼레이터 후보생이라 다음 주의 시험도 딱히 내 일이 아닌데, 얘가 귀찮게 시험에 쓸 장비를 같이 찾아보자고 해서 온 거라구!"


 카일은 떨떠름한 표정을 짓다가 미나를 보면서 말했다. "딱히 시험이 미나 양의 생일보다 중요하단 뜻이 아니라, 그냥… 먼저 실비아랑 약속을 했는데 그걸 또 깨버리는 것도 좀 그래서…."


 "알아. 그런 상황 나도 자주 있었으니까. 전혀 신경 안 써."

 "꽤나 즐거우셨던 것 같군요. 제가 드린 돈으론 무엇을 사셨나요?"

 "아… 아직 아무것도 안 샀어. 그게 말야, 저축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카일은 훗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축. 좋은 습관입니다. 딱히 그런 의도로 드린 건 아니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이해해줘서 고마워."

 "아뇨, 저야말로. 그럼 저희들은 이만…."


 그리고 종합 레스토랑에 갔다. 단지….


 미나는 메뉴판을 보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뭐, 뭐야 이거… 왜 이렇게 비싸?" 그리고 고개를 돌렸더니 전부 양복을 입은 어른들만 보였다.


 "노엘… 아무리 봐도, 여기 우리가 있을 자리가 아닌 거 같은데."

 "신경쓰지 마시고 고르세요!"


 "그, 그게…."


 "어서요!"


 미나는 이십장이 넘는 메뉴판을 계속 넘겼지만 결국 아무것도 고르질 못했다.


 '이럴 땐 대체 어떻게 해야하지…? 제일 싼 걸로 골라야만 하나?'


 '엄청 눈치보여! 하지만 제일 싼 건 그냥 피자 메뉴에 있는 치즈 피자잖아. 이건 피자도 아니라 그냥 빵이고….'


 '아~ 아 정말! 모르겠네 진짜! 그냥 노엘에게 시켜달라고 해야지, 그래! 그게 명안이고 정답이야!'


 평상시엔 떡볶이나 만두 같은 분식들만 먹은 미나에겐 너무 적응이 되질 않았다…. 어쨌건, 미나는 생각대로 노엘에게 메뉴판을 건네며 말했다. "저기, 내가 아까 햄버거 너무 많이 먹어서 입맛이 살짝 없어. 네가 골라서 시켜줘."


 "네? 아, 그렇다면…."


 노엘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요, 산양 스테이크 레어로 시켜요!"


 "뭐…?"


 '그건 또 대체 뭔데?'


 하지만 그것만이 당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카레 버팔로 윙, 모듬 초밥… 거기다가 샬롯은 매우 당연하단 듯이 랍스터를 고르고는 웨이터를 불러서 어떻게 조리하라고 자연스럽게 프랑스어로 말했다.


 "아…."

 "미나 선배,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냐."


 '이거 요리 하나 당 몇 만원은 나오는 거잖아… 너희들, 대체 그 돈은 다 어디서 나오는 거야?'


 식사 뒤에.


 이제 헤어지려고 하나, 노엘은 계속 미나 옆에 끝까지 붙으려고 했고, 그 노엘을 루크가 질질 끌고 갔다. 어색하게 쓴웃음을 지으면서 오늘 다들 너무 고맙다고 손을 흔들어주었고… 그리고 노을이 진 하늘을 보면서 왠지 갑자기 외로운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애써 무시하려고 했는데, 그냥 컴컴한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 적막한 느낌에 깨닫게 되었다.


 "아… 이게 행복하단 느낌이었구나."


 언니가 병원에 입원한 뒤부터, 자긴 항상 그것만을 신경썼다.


 학교에서도 혼자는 아니었지만, 언젠가 다들 자신만의 인생을 살 것이고, 자기와 크게 관계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은 모두가 즐겁게 놀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자기를 밀어주었다.


 "……."


 그리고 다시 언니의 사진을 보았다. 왠지 우울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들겼다.


 "…코치 선생님?"


 나유빈이 초콜릿 케이크와 초콜릿 종합선물세트를 들고 서있었다.


 "해피 버스데이, 미나 학생."

 "아…."


 "고맙습니다!"


 기쁘게 받는 미나에게 유빈은 약간 멋쩍은 듯한 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선물을 뭘 골라야만 좋을지 몰라서, 미나 양은 먹을 것도 좋아하니까 초콜릿으로 결정했어요. 하지만 중간에 라이카 교생에게 전화가 왔더니 자기들도 초코 케이크를 만들었다고…."


 "아, 이거 전부 선생님 선물이 아니었구나."

 "그래요. 어차피 미나 학생의 집에 가는 길이니까 제가 대신 갖다주겠다고 말은 했는데… 생각해보니 받는 입장에선 비슷한 선물을 두 개 받은 거잖아요."


 미나는 만족한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음식엔 그런 거 없어."


 "그렇군요."


 "아무튼… 밤도 늦었는데 굳이 선물 줄려고 찾아와줘서 고마워."


 "……."


 유빈은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보니, 언니는 어때요? 오늘 병원에서 뭔가 연락 온 것이라도 있나요?"


 "그냥, 아직도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아서…."

 "그래요."


 "미나 학생의 장학금은 대부분 언니의 병원비를 위해서 쓰고 있잖아요?"

 "네."

 "시험을 잘 본다면 추가지원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잘하면 좋겠어요. 항상 응원하니까요."


 "선생님…."


 미나는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유빈은 그 얘기를 할까 말까 고민했다. 그걸 눈치챘는지, 미나는 유빈과 눈을 마주했다.


 "…선생님?"

 "아뇨, 그게 제가 오늘 드리고 싶은 말이었어요. 미나 학생, 내일도 푹 쉬시길."


 미나의 집에서 떠나 차에 타며, 그리고 다리를 건너며 유빈은 생각에 빠졌다. '이 세계에 온지 벌써 일 년… 하지만 원래의 세계에서는 아직 열두 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했었지. 이곳의 관리자인 교장은 딱히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하지만 이렇게 평행세계에서 카운터들을 부르고 기억을 덮어씌우는 짓을 하는 이유는….'


 그리고 밤하늘의 야경이 보이는 곳에서, 차를 멈추곤 밖으로 나왔다.


 '이 세계엔 탐미엘이 존재해. 그렇지만 아직 클리포트 게임조차 한 번 일어나지 않았었지. 그에 비슷한 스케일의 침공도… 유예된 것인가? 하지만….' 그리고 핸드폰에서 찍었던 그 미나 언니의 사진을 보며 인상을 일그러트렸다. '그녀가… 곧 이 세계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나유빈은 굳은 표정으로 밤하늘을 쳐다봤다.


 어쩌면, 이 세계도 곧 침식되어 무너질지 모른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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