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선배, 몇 밤 자고 나면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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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음⋯ 몇 밤 자고 온 거지?


나이에 안 맞게 어린아이 같은 질문을 던져놓고 정작 유미나가 스스로 세 본 적은 없었다. 

의도치 않게 샤레이드로 날아온 것도 모자라 매일매일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으니, 세본 적이 없다기보단 세는 것을 포기한 것에 가까웠다.

만나기 전에 잠깐 세볼까 싶어 액정화면을 꾹꾹 누르다가, 이내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듯 그 화면을 꺼버리고 고개를 든다.



앞서 달려 나가고 있던 노엘이 유미나에게 빨리 가자는 듯 뒤를 돌아 손짓한다.

또 다른 펜릴소대원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이 들뜬 모양인지 세상 행복하게 뛰어노는 대형견 같은 모습이었다.

아마 노엘에게 꼬리가 있었다면 세차게 흔드는 탓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을지도 모른다.




“미나 선배! 어서 가요! 약속한 시간에 늦겠어요!”




건틀렛때문에 한동안 바빴기도 하고, 자긴 괜찮으니 다녀오라는 사장의 배려 덕에. 유미나와 노엘은 오랜만에 혹은 처음으로 출장 나간 소대원 한명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둘이서 따로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노엘도 엄연한 펜릴소대의 소대원이고, 햇살 같은 활기참이 내심 좋았기에 따라오려고 하는 노엘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미나의 속마음보다 훨씬 더 많이 들떠있는 후배의 모습을 보며, 유미나는 은은하게 입꼬리를 올리는 거로 대답을 대신했다.




“노엘⋯ 너무 앞서가지마.”




다시 돌아온 샤레이드 직할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공항 로비. 북적이는 사람들 틈 속에서 유미나와 노엘은 주시윤을 찾기 시작했다.

앞선 노엘의 호들갑과는 다르게 예정된 시간보다 약 10분 정도 더 일찍 도착한 탓일까. 주시윤의 모습은커녕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지 않았다.




“힝. 저희가 너무 일찍 온 걸까요?”

“그럴지도 모르겠네. 비행기는 정해진 시간이 있으니까.”




노엘은 납득했다는 듯 유미나의 옆에 딱 붙어서서는 공항 전광판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뭔지 알고는 보는 건지 그냥 보는 건진 딱히 모르겠다는 듯, 유미나는 인파가 우르르 몰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시윤의 인상착의라고 해봤자, 매번 비슷한 옷만 입고 다니니 옷깃만 살짝 스쳐도 알아볼 수 있을 터. 그러나 약속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공항을 빠져나가려는 인파는 점점 줄어드는데도 주시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노엘도 점점 기대감이 조급함으로 변하는지 점점 난감한 표정으로 변해간다.




“미나 선배⋯.”

“나 그렇게 쳐다봐도 뭐 안 나와. 선배는 자주⋯ 가끔 늦기도 하니까 뭐. 아니면, 입국심사가 오래 걸리는 걸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입국심사가 그렇게 오래 걸리기라도 하나 싶어, 유미나는 위치를 묻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 옆으로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히잉. 그럼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글쎄⋯ 그건 상황마다 다르니까 아마―”

“그래도 정각엔 오지 않을까요?”

“헤에, 역시 그렇겠죠?”

“그럼요.”







“⋯⋯엥?”





나란히 서 있던 두 여자가 자연스럽게 끼어든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 능청스럽고 능구렁이 같은 말투의 주인은 유미나와 노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잘 지냈어요? 미나 양.”




익숙한 미소, 얼굴, 말투, 목소리⋯⋯.


지독하게 잘 알고 있고, 왜인지 모르게 보고 있으면 안심이 되는 모든 것이 눈앞에 나타났다.

몇 밤을 자고 올 거냐는 유치하고도 철없는 질문까지 해가며 그렇게 재회를 고대했건만, 어째서인지 유미나의 머릿속은 자꾸만 새하얗게 지워져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라운드원을 떠나고, 샤레이드에 와서 지금까지도 수도 없이 많은 잡념과 의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괴롭혔는데, 주시윤이 눈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유미나의 사고가 멈춘다.


안정감? 안도감?

그저 익숙한 사람을 보면 괜찮을 거라는 단순한 생각은, 어리석은 판단인 모양이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불안한 마음 한쪽에서는 꺼낼 말을 고른다.

항상 그랬듯이 지금도 생글생글 미소를 짓는 저 남자에게 건넬 말.

어떤 첫마디가 가장 자연스러울까⋯⋯



“선ㅂ⋯”





“처음 뵙겠습니다! 시윤 선배님! 펜릴 소대의 신입 노엘 라이트라고 합니다!”

“오? 그쪽이 말로만 듣던 우리 소대 신입, 노엘 양이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악의라곤 조금도 없는, 그저 눈치가 없을 뿐인 노엘의 명랑한 목소리가 말을 가로채고, 어색하게 입만 뻥끗하던 유미나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샤레이드 건틀렛 방송도 봤습니다. 생중계는 아니고 녹화방송으로요. 노엘 양의 실력 굉장하더군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시윤 선배님!! 그렇다면 저 노엘! 선배님의 격려를 받았으니,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하하. 우리 소대에 이런 열정적인 신입이 올 줄이야⋯”




분명 저 두사람은 한 공간 안에 유미나의 두 눈앞에서 서 있건만 어째서 이리도 멀게만 느껴지는지.

처음부터 일행이 아니었던 것처럼, 그 먼 거리는 한없이 더 멀어진다.


그들 주위의 인파는 흐린 안개처럼 사라지고, 오로지 한 사람과 두 사람이 남는다.

귓가를 울리는 공항 로비의 소음도 먹먹해지고, 두 사람의 수다도 메아리처럼 멀리서 울려왔다.


유미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관심조차도 없는지.

사실 그들이 만나고 나서 흐른 시간은 1분도 흐르지 않았는데, 자꾸만 매정하게 느껴져 시선을 돌렸다.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마치 그 공간의 주인공은 유미나가 아닌 것처럼.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놓인 허수아비였다.





“미나 양. 잘 지냈나요?”




반가웠지만, 한없이 서운했고.

그 ‘잠깐’을 ‘고작’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가혹했다.




“그럭저럭⋯.”




거짓말 따위 통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나름 선의의 거짓말로 대답을 대신한다.

싱거운 대답에도 눈에 띄는 표정 변화는 없었지만, 주시윤은 자신을 마주치지 않는 보라색 눈동자를 읽는다.




“다른 소대원분들이 없는 동안 미나 선배가 여기서 엄청나게 고생하셨다고요! 휴, 저라면 벌써 쓰러졌을 거예요. ”

“아무리 임시직이라지만, 소대장 자리가 쉬운 편이 아니죠. 흐음⋯.”




길쭉한 손가락이 턱을 매만진다. 여전히 보라색 눈동자는 공항 로비 여기저기로 굴러다니다가 자기에게 다가오는 노엘의 해맑은 표정으로 시선을 고정한다.


유미나에게 있어서, 주시윤이 그라운드원을 떠나던 날에 해주었던 이야기들은 이제 소용이 없었다.

단지 지금은 어리광 부릴 때도 장소도 아니었을뿐더러, 처음부터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쉽게 되는 거라면 세상에 갈등이란 존재하지 않을 테니.




“일단 갈까요? 노엘 양. 아픈 미나 양을 대신해서 안내 좀 부탁드립니다.”

“넷! 맡겨만 주세요―!”




유미나의 옆에 붙어있다가, 순식간에 신나서 먼저 튀어 나가는 노엘을 사람 좋은 미소로 지켜보던 주시윤은 노엘이 잠시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유미나의 눈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 놀랬잖아, 선배⋯”

“하하, 미나 양 답지 않게 풀이 많이 죽어있어서요.”

“아냐⋯”




순간적으로 마주친 푸른 눈동자는 유미나가 왜 풀이 죽어있는지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게 싫어서 저도 모르게 인상을 쓴다.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그래.


그 뒤로도 노엘이 앞서나가 사라질 때마다, 주시윤은 유미나에게 평소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며 안부를 물었지만, 유미나의 태도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무엇을, 어떻게, 왜 반응해야 하는지 떠오를 때마다,

그러면 안 될 것만 같아서 입을 꾹 다물었다.







***







또, 건물의 옥상. 그 아래로 깔린 샤레이드의 풍경.

싸늘하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유미나는 옥상 난관에 왼팔을 걸친 채 말없이 희미하고 차가운 네온사인들 내려다보았다.


몇 밤이었을까. 무의식적으로 검지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얼마나 지났는지를 가늠해보니 고작 몇 밤은 아니었다. 고작이라고 하기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러있었으니.


유미나에게 염주 팔찌를 손에 쥐여준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주시윤은 그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유미나와 주시윤 외의 제삼자가 있는 자리에서는 유미나에게 큰 신경을 써주지 못했고, 그럴 겨를이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유미나가 그 뜻을 모르진 않았다. 힐데까지 있었다면 한 소리 들을 게 뻔할 정도로 오해받는 것보단 훨씬 나은 일이었다.

그러나 이해하고, 알고 있다는 것과 솔직한 심정은 평행선을 달릴 뿐이었다.


저도 모르게 다시 꺼낸 투박한 염주 팔찌는 여전히 유미나의 손에 있었고―




“미나 양.”




어느새 그 팔찌의 주인이 유미나의 뒤에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처음 팔찌를 주고받았던 그날처럼 주시윤은 유미나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기분 나빠⋯”

“하하, 그렇게 연락하셨으면서 기분 나쁘다고 하면⋯ 조금 상처받을지도요?”




사장이랑 더 얘기할 게 있었다면서 핑계를 둘러대며 유미나에게 다가오는 주시윤.


유미나는 차마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다시 만나면 마음이 놓일 줄 알았건만, 유미나의 마음속에는 오늘 조금씩 쌓여간 서운함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수면에 뿌려져 더 거친 파동이 일었다.




“선배한테 한 거 아냐⋯”

“흐음?”




대체 왜, 뭐가 기분 나쁜 건지. 아무리 머릿속을 헤집어봐도, 드넓은 모래사장 속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기분이었다.



왜 그러는 건데. 이유가 뭔데. 내가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 거지. 기분 나빠도 되는 걸까?

지금 이 생각조차 나에게 허락된 게 아니라면. 아니, 그냥 내가 이렇게 고통받아야만 하는 게 그놈의 운명, 숙명 같은 거라면?


처음부터 행복이라는 선택지도, 나를 위한 길도,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기회 따윈 없었던 거라면?

내가 정하는 모든 선택이 그로 인해 얻었다고 생각한 인연들이, 전부― 손 틈새로 빠져나가는 모래알 같은 거라면?

그럼 내가 멋대로 화내고 웃어도 상관없을까? 아냐, 그렇게 멋대로 했으니까 모두 잃은 거라면⋯⋯?




아냐, 아냐⋯!


아니야!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했었더라⋯?


아니! 어떻게 해도⋯ 소용없는 거라면 차라리―――――――――













“미안해요. 미나 양.”

“에⋯?”



소리 없이 흔들리던 보라색 눈동자의 떨림이 멈춘다.

그 목소리를 쫓아 돌아본 옆자리에는 똑같이 옥상 난관에 팔을 걸친 주시윤이 웃으며 유미나를 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라는 말은 결국 핑계니까요. 하하.”




이 사람이 왜 사과하는지 알 수 없어서, 알 것 같은데 알 수 없는,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이란 갈증이 유미나의 입술을 바짝 마르게 한다.


주시윤이 사과할 이유는 없다. 그는 그저 사회생활을 위해 스스로 처신을 잘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게 제일 가까운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면 핑계라도 대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 그의 의중은 그러했다.


그러나 잃어버린 물건을, 자길 위한 최선의 선택을 찾고 싶어서 하염없이 넓은 모래사장을 헤집는 소녀에겐 와닿지 않았다.


그의 사과가 자길 시험하는 것 같아서. 그 사과가 자기가 잘못 선택한 행동이 만든 것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손은 닳고 닳아, 어려지다 못해 금방이라도 산산조각이 날 것 같은 마음을 쥐고 그에게 정답을 갈구한다.




“그럼⋯ 선배를 원망해도 되는 거야⋯?”




어른아이의 구슬픈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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