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선배, 몇 밤 자고 나면 올 거야?



일러스트 원본 링크


상편 중편












 “원망이라⋯”



원망해도 되냐는 유미나의 질문에 주시윤은 씁쓸하게 웃었다.

정말 고작 그것만으로 되냐는 것처럼.


유미나는 이걸로 끝이 아니라는 듯, 한발짝 떨어져 쥐고 있었던 염주 팔찌를 들어 보였다.

얼마든지 이런 거 부숴버릴 수 있다며, 어중간하게 핀 하얀 손이 위태롭게 느껴진다.




“나는⋯. 내가, 선배의 눈앞에서⋯ 선배가 아끼는 물건을 부숴버릴 수도 있어.”



“제가 미나 양에게 말씀드렸었죠. 그렇게 해서 미나 양의 화가 풀린다면 상관없다고. 그렇게 해도 된다고요.”



“부숴도⋯ 화가 안 풀린다면⋯?”



“왜 화가 났는지, 어떻게하면 풀 수 있을지,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선 미나 양을 도와줄 겁니다.”



“⋯⋯막상 부숴버렸을 때 선배의 마음이 바뀐다면? 그때는?”



“음, 글쎄요. 그래도 적반하장으로 왜 그랬냐고 미나 양을 다그칠 생각은 없습니다. 부서진 건 다시 고치면 돼요.”



“⋯⋯.”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부서지면 되돌리기 쉽지 않으니까요. 전 미나 양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하길 바라는 것. 그것뿐입니다.”



유미나의 끝없는 칭얼거림에도 주시윤은 표정이 굳어지거나 짜증 한 번 내지 않았다.


도대체? 왜?

‘나’를 위로하는 걸까, 위로받을 자격이 있을까?




“부술 거야⋯.”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 그리고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투정 부리는 어린아이는 나쁜 사람이니까, 걸맞은 행동을 해야겠지.


걸어 다니는 불행 덩어리의 마음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거라고― 그렇게 곱씹으니 유미나의 손위로 CRF가 집중된다.




“정말로!!”




주시윤은 다 안다는 듯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선배가 내 마음을 어떻게 알겠어, 뭘 알고 그렇게 웃고 있는 거야⋯⋯.. 아무것도 모르잖아!



내면의 나쁜 아이가 외친다. 나쁜 건 나야.

아니, 아무것도 모르고 웃는 당신이야.



하지만 그게 마치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아서, 너무도 이질적인 풍경인 것 같아 유미나의 눈앞은 흐려져 가고 있었다.

표정도, 옥상의 풍경도, 네온사인 불빛도 도화지에 번지는 수채화처럼 섞여들다가――




“흐윽⋯⋯.”




울음소리와 함께 흐린 마음은 흘러내리고, 풍경은 다시 선명해진다.

다시금 선명하게 보이는, 다 안다는 선명한 미소는 눈꺼풀에 덮여 또 보이질 않는다.

손 위로 고이던 CRF는 어느새 휘발되어 사라졌고, 들어 보였던 염주는 손에 그대로 쥔 채 옥상 바닥으로 내려간다.


목놓아 우는 것도 스스로 용납하지 못해서 힘겹게 흐느꼈다.

미약한 천성은 결국 남을 미워하지 못했고, 여전히 자기 잘못이 없음에도 자신을 스스로 자학한다.


조금만 더 내가 잘 선택했더라면. 아니, 처음부터 나랑 엮여 든 게 문제였을 거라고.

그랬다면 아무도, 그 누구도 영영 떠나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한없이, 외로운 마음에 비수를 꽂는다.

그게 가혹한 선택임을 알면서도, 누군가 있어도 외톨이로만 서 있는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는다.




“음⋯⋯.”




눈앞에 서 있는 주시윤이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닐 텐데. 그렇게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외롭게 울고만 있다.

차라리 소리를 지르고, 남 탓이라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주시윤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조용히 유미나에게로 다가간다.










“아⋯⋯?!”




오랜만에 만난 위태로워 보이는 가장 가까운 소대원이 무른 사람이란 것을 알기에, 백 마디의 말보다 하나의 행동으로 꺾여가는 마음을 바로 세울 수 있게 품을 내어준다.


불과 몇개월 전의 유미나라면 기겁하고도 남을 행동이었지만. 어려진 아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흐윽⋯⋯윽⋯”




포옹이 주는 안정감에 넘어가 목놓아 울어도 괜찮을 텐데. 그러라고 내놓은 품에서 유미나는 여전히 염주를 쥔 손으로 주시윤의 팔을 붙잡으며 조용히, 하염없이 울었다.




“선배⋯⋯.”

“네, 미나 양. 저는 여기 있답니다.”

“흐윽⋯.”




세상에서 제일 서럽게 울고 있는 어린아이에게, 누가 나쁘고, 어떤 게 정답이냐고, 알려줄 순 없었다. 주시윤은 유미나가 직접 선택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으니까.

그게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선택이라고, 오래전부터 정해놓은 답이었기 때문이라고.


유미나가 그걸 알 리는 없었지만, 유미나는 그에게 묻지 않았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나는⋯ 무서워⋯⋯.”

“뭐가 무서운 건가요? 사람?”

“이렇게!!”




명쾌한 해답보단 폭발하는 카타르시스였을 테니.


고함과 함께 팔을 잡은 손에는 힘이 바짝 들어간다.




“선배를 붙잡고 질질 짜고 있는 것도⋯! 화를 내는 것도, 속상한 것도⋯ 흐윽⋯ 전부⋯⋯.”




뒷말을 채 잇지 못하고, 또다시 울음이 가로막는다.

그 가여운 모습에 향해 물었다.




“주변인들이 사라지는 게 무서운 건가요? 미나 양.”




팔을 잡은 손이 힘겹게 떨어지고, 유미나는 고개를 힘없이 끄덕인다.

벌써 지친 듯, 거친 숨을 내쉬는 어린아이의 등을 주시윤은 조심스럽게 토닥여주었다.


그래, 당연히 그럴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지.

어른들에게도 버거운 이야기니, 당연히 갓 성인이 되어가는 나이의 소녀가 감당하기엔 힘든 일이었다.


제일 친했던 친구의 최후, 서로에게 지지자가 되어줄 거라 생각했던 아카데미의 인연, 그리고 언니.


그 끝에는 눈앞의 지금 이 사람일지도―




“미나 양, 제가 구원기사단에게 당해 납치됐을 때, 기억나나요?”



주시윤이 유미나의 양어깨를 잡아 조심스럽게 바로 세운다.

품에 안겨 서럽게 울어놓곤, 울음이 가득한 얼굴은 보이기 싫은지 끄덕거리기만 할 뿐, 고개를 완전히 들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게 새어 나오는 웃음을 빠르게 거두고는 다음 말을 이어간다.




“그때 미나 양이 오지 않았더라면, 저는 이 자리에 서서 미나 양을 위로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그때⋯”

“하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말은 사양할게요. 제가 기적적으로 살아났다고 한들, 결국 미나 양이 없었으면 성녀를 열세로 몰아넣지 못했을 테니까요.”




현재의 좀먹혀 잊어버린 기억을 천천히 상기시킨다.

최고의 선택이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단지 최선을 다한 선택을 했을 뿐.




“미나 양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서 선택한 거잖아요?”

“⋯⋯.”

“그 선택을 모조리 부정하기엔 미나 양 자신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나 양, 설마 저도 부정하시려는 건 아니겠죠?”




묘하게 살벌한 질문에 유미나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든다.

한참을 울어 충혈된 눈이 주시윤의 눈과 마주치자, 황급히 피하며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아, 아냐! 아니야⋯! 으, 선배⋯ 진짜⋯”

“하하하, 이건 좀 너무했나요? 뭐, 아무튼⋯”




질색하는 목소리에 주시윤은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염주 팔찌를 쥐고 있는 유미나의 손을 잡아 올린다.

처음 준 날 그때 그 모습처럼. 다시 한번 두손으로 유미나의 손과 염주를 감싼다.




“다시 돌아와서, 이걸 미나 양이 부쉈든 부수지 않았든⋯ 그건 온전히 미나 양의 선택이에요.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해서 제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저조차도 사실 알 수 없는 일이고요.”

“부숴도 된다며⋯?”




어이없다는 듯 퉁명스럽게 말하며 든 얼굴은 눈두덩이가 빨개져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엽다는 듯 한 번 더 웃더니, 능청스럽게 말을 이어간다.




“하하하, 예를 들면 그렇다는 거겠죠?”

“⋯⋯진짜 부술 거야.”

“같이 부술까요?”

“어⋯ 어?”




갑작스러운 행동에 유미나가 두 눈을 크게 뜨며 주시윤을 바로 본다.

하지만 푸른 눈동자는 여유로운 눈웃음과 함께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하나, 둘, 셋 하면 부수는 겁니다? 하나, 둘――”

“자, 잠깐만!”




당황한 목소리가 스쳐도 카운트다운은 멈추지 않는다.

그의 오른손이 유미나의 손에서 떨어져 나간다.




“셋!”

“으헥――?!”


























“뭐야⋯!? 여긴 어디야?!”




카운트다운의 끝에는 팔찌가 부서지는 소리가 아닌, 예상 밖의 힘에 의한 공간이동이 있었다.

지부 사무실건물 옥상에서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화려한 네온사인들과 야경이 유미나와 주시윤을 반긴다.




“아까 노엘 양이 샤레이드를 소개해줄 때 눈여겨 봐뒀어요. 음, 꽤 높은 빌딩의 옥상 정도가 되겠네요.”

“제, 제일 높은 건물 위로 온 것 같은데⋯?”




주시윤은 장검을 다시 허리춤에 정리해두면서도, 염주 팔찌를 사이에 두고 잡은 유미나의 손을 놓지 않았다.


이게 무슨 행동인지, 스스로 뭘 의미하는지 충분히 알 텐데.

유미나는 못마땅하단 듯 주시윤을 흘겨보면서도, 내심 단둘이 서 있는 이 순간이 마음에 들었다.


도시의 활기를 머금은 시원한 바람이 두 사람을 맞이하고, 눈앞을 가득 채우는 불빛들이 환영 인사를 보낸다.




“전, 미나 양이 자신의 선택을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미나 양의 선택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제가⋯ ‘우리’가 서 있는 거니까요. 하하, 너무 같은 말만 하는 것 같네요.”




비극도 희극도, 우리 모두 자기 스스로의 선택이 만들어냈다고.

주시윤은 멋쩍게 웃고 있지만, 눈은 확신에 가득 찬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나의 답은 그렇다―라고, 응시하는 푸른 눈에 유미나는 아직 긍정하지 않는다.




“어때요, 미나 양? 단둘이 샤레이드에서 제일 높은 건물 옥상에 무단침입을 해서 야경을 보는 소감은?”




웃긴 사람이야. 

사람을 속여서 제멋대로 시내 건물 옥상에 데려오질 않나. 사람 놀리는 데는 은근히 도가 튼 인간이다.




“⋯⋯그래, 선배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지.”

“하하, 칭찬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완전한 해결법은 아니었어도, 아직 잡고 있는 두 손이 말한다.

유미나는 주시윤을 따라 멍하니 별 대신 흐르는 야경과 빛들을 보며, 스쳐 지나가듯 깨닫는다.


나는 위로 받고 있다고.














***











하루가 48시간⋯ 아니면, 그 이상일 순 없을까?

물에 젖은 강아지처럼 축 처진 유미나에게 주시윤은 공항 로비 한복판에서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더 있다가 가면 좋겠는데, 스승님이 될 수 있으면 빨리 돌아오라고 해서―”

“선배, 지금⋯ 소대장 핑계 대는 거야?”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일임을 두 사람 다 알고 있었지만⋯

결국 어쩔 수 없다는 건, 본심을 굽힐 수밖에 없다는 의미기도 했다.


주시윤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유미나의 왼손에 꼭 쥐고 있는 염주 팔찌를 흘끗 쳐다보았다.

아마 돌려주려는 것 같아서, 주시윤이 먼저 선수를 친다.




“그건 미나 양이 좀 더 가지고 있어 주겠어요?”

“왜⋯?”




지금 자기에겐 필요 없다고 말하려다 잠깐 멈칫한다.


그 이유를 알 리가 없는 유미나가 괜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염주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그래도 돌려주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주시윤은 바라지 않는 모양이었다.




“다음에 다시 볼 때, 돌려받겠습니다. 그때까지 미나 양이 잘 보관해주세요.”

“⋯⋯내가 부수면 어떡해?”

“하하하, 그건 이미 말해드렸습니다. 미나 양을 위해 드리는 거라고. 음.”




이젠 정말로 다시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엔 다행히 사장의 배려로 단둘이서 공항으로 왔지만, 결국 정해진 헤어짐에 유미나는 쉽게 인사를 하지 못하고 연신 염주 팔찌만 만지작거렸다.


당연히 한나절 만에 어른으로 돌려놓기엔 무리였을까.

애초에 어른인 적이 있었는가―라는 문제는 덮어둔 채로, 눈앞의 어린아이에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




“그럼 미나 양, 도착하면 따로 연락하겠습니다. 그동안 잘―”

“선배.”




주시윤이 몸을 돌리기도 전에,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튀어나온 말.

이것 또한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타인이 풀어 줄 수 없는 문제였으며, 이곳에 남는 어린아이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니까.




“네, 미나 양.”




비에 젖은 강아지처럼 짓던 울상. 그나마 입꼬리를 살며시 올리며 묻는다.




“몇 밤 자고 나면 올 거야?”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