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선배, 몇 밤 자고 나면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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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양?”



마치 다섯 살 어린아이의 투정 같은 질문에 주시윤은 뒤를 돌아보았다. 

크게 다쳐 깁스한 팔과 음울해 보이는 눈빛. 물에 빠진 강아지처럼 축 처져 있는 유미나의 입에선, 평소라면 상상도 못 할 한마디가 툭 하고 튀어나왔다.


몇 밤 자고 나면 올 거냐니.

이토록 노골적인 어리광을 부린 적은 주시윤의 기억 속에서 단 한 번도 없었다. 유아 퇴행이라도 한 게 아닐까 싶은 정도로 한껏 슬퍼 보이는 눈빛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떼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무슨 대답을 갈구하는 것인지 모를 표정을 향해, 주시윤은 평소처럼 대답했다.




“하하, 미나 양의 어리광은 오랜만에 듣는 것 같네요.”

“⋯⋯.”




무슨 말이든 좋으니 대답해달라는 자포자기한 표정에 주시윤은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도 아무런 미안한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주시윤에게 있어서 어쩌면 힐데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인간 대 인간으로서, 같은 소대원으로서 유미나와 함께 겪은 고난과 만들어진 유대는 이렇게 쉽게 두고 갈 만큼 사소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대로 다 건물이 다 무너진 회사에⋯ 회사 사람들과 덩그러니 내버려 두고 간다는 게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저도 확답은 드리기 어려울 것 같아서요.”

“대충 어림잡아서⋯ 얼마나⋯”




유미나가 그냥 가만히 묻는 듯해 보여도, 주시윤의 시야 밖 유미나의 모습은 분리불안이 온 강아지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조금 껄끄러운 서윤을 제외하면 타 소대원들이랑 심하게 척을 친 것은 아니었고, 회사 사람들이 유미나에게 못되게 구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다섯 살배기로 작아져 버린 것은 결국 줄곧 유대를 쌓아왔던 사람들의 부재가 만들어버린 것.


스쳐 지나가며 어쩌면 오랫동안 좋은 인연으로 되었을지 모를 사람이 당연히 그랬어야 한다며 허무하게 죽어버리고,

이토록 고생한 것도 자기 언니 때문이었는데 사소한 장난처럼 치부되어 사라져버렸다.


모든 게 정해진, 만들어진 길 위에서 자기의 선택이 진짜였는지조차 의심해야 한다.


유미나에겐 지금 정답을 알려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 답을 스스로 찾아야만 한다는 것조차도.

하지만 그렇다 해서 곁에 맘 놓고 기댈 사람조차 없는 건 경우가 달랐다. 이성적으로 그게 좋든 싫든, 듣자마자 온몸이 벌벌 떨릴 정도의 불안감을 불어넣기 충분했다.




“얼마나⋯?”




쓸쓸한 물음과 함께 수송기를 기다리는 헬리포트의 위에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대답을 갈구하는 애처로운 눈빛은 계속 주시윤의 눈을 주시했다.




“흐음⋯.”




무슨 대답이든 하기 전까진 유미나의 어리광은 끝나지 않을 듯했다.

명확한 정의를 내려주고 싶어도, 자칫하면 거짓말이 될 수도 있기에 쉽사리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대체 어떤 말을 해야 이 어린아이를 달랠 수 있을까.

주시윤은 수백마디의 말 대신 한가지의 행동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미나 양, 왼손 잠깐 줘보시겠어요?”

“왜⋯?”




여전히 유미나는 우울한 표정이었지만, 묘한 기대감이 섞인 의문을 띄우며 조심스럽게 깁스하지 않은 왼손을 내밀었다.

그는 왼쪽 손목에 끼고 있던 염주 팔찌를 빼내어 유미나의 왼손에 조심스럽게 올려주곤 두 손으로 염주를 쥘 수 있게 잡아주었다.




“뭐야⋯ 이거 조금 기분 나빠⋯”




마치 먼 길을 떠나는 징병 된 군인이나 할법한 행동에 유미나의 얼굴은 완전히 울상으로 변해있었다.

이토록 솔직하게 감정을 내비친 날이 몇 없었다는 것을 주시윤도 잘 알고 있기에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어린아이를 달래듯 말했다.




“하하⋯. ‘얼마나’에는 확답을 드릴 순 없지만. 지금 저와 스승님이 급히 가는 길이 위험한 길은 아니에요. 그리고 저는 스승님처럼 나 몰라라 떠나는 사람은 아닙니다. 이건 약속을 지키겠다는 증거고요.”




유미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여전히 맘에 들지 않는지 미덥지 않은 눈빛으로 주시윤의 푸른 눈을 맞춰올 뿐이었다.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겠다는 듯, 그는 여전히 생글생글 웃으며 똑같이 유미나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여전히 맘에 들지 않는지 유미나의 입에선 퉁명스러운 질문이 나왔다.




“내가 그대로 가버리는 선배가 밉다고, 이 염주⋯ 망가뜨리면 어떡하게⋯?”




당신의 소중한 물건이 한순간의 격한 감정 때문에 망가진다고.


제법 모난 말에도 주시윤은 여전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여유로우면서도 어르고 달래는 부드러운 말투였다.




“미나 양이 그렇게 해서 화가 풀리고, 괜찮아질 수 있다면 상관없습니다. 오로지 미나 양을 위해서 건네는 거니까요.”




부서진 건 다시 고치면 되니까.


주시윤은 조심스럽게 유미나의 손을 잡고 있던 두 손을 떼었다.

두 손이 떨어져 나가니 살짝 힘없이 벌어지는 손가락, 보이는 손바닥 위에는 주시윤이 항상 가지고 다녔던 투박한 염주가 모습을 드러낸다.


애착 물건까진 아니겠지만, 분명 그와 오랜 시간 함께했을 물건.

한번은 부서졌지만 다시 고쳐서 가지고 다닐 정도였으니, 이 염주 팔찌가 그에게 있어서 남다른 것임은 분명했다.


그래서일까, 유미나는 말없이 손위의 염주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이제 됐다는 듯 홀로 꾹 쥐어 보이며 주시윤과 눈을 마주쳤다.




“알겠어⋯⋯. 조심히 다녀와. 선배.”




잘 다녀오라는 인사와 함께 올라가는 입꼬리. 주시윤은 그 표정이 이 상황을 모두 납득한 게 아니라는 것쯤은 눈치껏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스승과는 꼭 해야만 하는 일이었기에 유미나가 보내는 미소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린아이에서 어른아이는 되었으니까. 그녀가 무너지지 않길 바라며.




***




어느 날 텅 빈 아카데미의 교실에서 조금은 가까울지도 모를 어른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자기 인생이 그동안 남들에게 체스판의 체스 말처럼 놀아난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혼자서 감내하기엔, 너무 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어린 직원에게 부사장은 답했다.


유미나가 했던 노력을 전부 부정하질 않길 바란다고, 그건⋯⋯ 너무 잔인한 선택이니까.







하지만, 여전히, 아직도.

유미나는 정답을 떠올리지 못했다. 


여전히 세상이라는 트루먼 쇼에 속고 있는 것 같아서

액정 너머 1이 사라지지 않는 문자 메시지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움직이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정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유미나는 한숨조차 쉬지도 못하고 애꿏은 핸드폰만 꾹 쥐었다.


문 너머로 우당탕거리는 소음과 함께 햇살 같은 기운이 다가온다.





“미나 선배!”

“⋯응.”




이젠 놀랄 기운도 없다는 듯이 힘없는 대답과 함께 몸을 돌렸다.

샤레이드의 명물 디저트라며 유미나의 앞에 들이미는 신입 소대원 노엘을 보며, 피곤한 듯 자긴 배 안 고프다며 그 호의를 거절했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천진난만하게 생글생글 웃는 모습에 아주 잠시나마 위안을 얻지만⋯




“안보네⋯⋯.”




액정화면 너머로 사라지지 않는 ‘1’의 주인만큼의 위안거리는 아니었다.


‘잘 지내고 있어?’

―라며 넌지시 보냈지만, 여전히 닿지 못한 간단한 문장은 찰나의 위로도 없던 것처럼 처참히 녹아버렸다.

그런 기대와 기다림이 어쩌면 당연하면서도, 자기한테 아무런 이득이 없단 걸. 유미나는 잘 알고 있었다.



액정화면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고 주시윤이 더 빨리 확인할 거란 보장은 없었으니, 유미나는 체념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쥔 손을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아⋯.”




문득 핸드폰과 손가락 끄트머리에 닿은 감촉.

그 촉감의 주인을 쫓아 손끝으로 더듬고, 잡아들어올린 것은 주시윤의 염주 팔찌였다.

자기 손목보다 한참은 더 큰 염주 팔찌를 보는 눈도 많은 데다가 손목에 껴봤자 흘러내릴 게 뻔했기 때문에 대충 주머니에 우겨넣고 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염주 팔찌를 지긋이 내려다보는 보랏빛 눈동자는 점점 초점을 잃는다. 



“미나 양이 그렇게 해서 화가 풀리고, 괜찮아질 수 있다면 상관없습니다.”




들숨 한 번에 입술을 깨물고. 마치 화풀이하듯이.




“오로지 미나 양을 위해서 건네는 거니까요.”




부숴도 된다고, 상관없다고, 그게 오로지 받은 사람을 위해서라고, 준 사람이 그러라고 했으니까.

나한테 분명히 말했다고.


거친 날 숨과 함께 순간적으로 왼손에 CRF가 몰리더니―――




“⋯!”




순식간에 연기처럼 꺼진다.

아무런 외부적인 요인은 없었다. CRF를 거둔 것은 오로지 유미나의 선택.


하지만 유미나는 충동적으로 손에 쥔 CRF를 순간적으로 거둔 이유를 자신에게 물을 용기가 없었다.


이것마저도 본인의 온전한 선택인지 알 수 없어서―




“미나 선배! 그거 시윤 선배님 거 아니에요?!”

“어⋯?”




제 손에서 부서지기 직전까지 몰린 염주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유미나에게 노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사무실 안을 울렸다.

별 악의 없이 물어봤겠지만, 애매한 대답을 내놓았다간 피곤한 쪽으로 몰릴 게 분명했기에 유미나는 대충 그럴듯한 답으로 기대감에 찬 불타는 눈망울에 물을 뿌린다.




“선배가 놓고 출장 갔길래 잠깐 맡아주고 있어.”

“역시 펜릴소대에요! 소대원끼리 소중한 물건도 맡아주는 다정함까지!! 그렇다면 저도 펜릴소대에 걸맞게 미나 선배를 보, 보좌? 보좌하겠습니다――!!”




물이 아니고 기름인가⋯⋯.


이젠 한숨도 나오지 않는다는 듯, 방방 뛰며 결의(?)를 다지는 노엘을 살짝 등진 채 들고 있던 염주를 주머니에 쑤셔 넣는 순간 느껴지는 진동에 유미나의 손이 움찔거리며 멈췄다.


그 진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면서.

줄곧 울상이었던 눈이 크게 떠지고, 황급히 염주 대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1’의 주인이 읽은 걸까?

클리포트 게임의 후폭풍을 추스르지도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샤레이드로 오면서 지금까지.

조금이라도 잘못 건드리면 영영 사라져버릴 것 같았던 미소가 마침내 옅게 번졌다.




[ 전 괜찮아요. 미나 양은요? ] 




다행히 ‘1’의 주인은 유미나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다음편(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