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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Gauntlet Academy Episode VII: The Final Day --



 "장난쳐요?! 이게 대체 뭐하자는 건데?"


 아침 여덟 시에 펠리세트가 물통을 집어던지며 격정을 부렸다.


 샤오린도 유진도 아무런 말도 못하고, 노엘은 겁먹은 표정으로 주위를 힐끔힐끔 보고 있으며, 서윤은 당황한 것도, 두려운 것도 아닌, 정말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살짝 쥔 주먹을 턱에 댄 채로 고민하고 있다.


 "…아니야, 정말로 우리도 모르겠어."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냐고요!"


 "아니… 너도 담당 선생님한테 전화로 확인했잖아? 우리가 어떻게 한 게 아니야. 우리가 미나를 탈락시킨 것도 아니고, 어떤 팀도 미나의 점수를 받지 못했어."


 "무슨 엉뚱한 변명을 하는 거냐고요! 보나마나 어딘가에 묶어놓고 잠시 버려둔 거 아니야?!"


 그러자 서윤은 플라스틱 테이블을 쾅 치면서 말했다. "말 조심해, 이 꼬맹이! 우리가 약았다는 말은 들었어도 지켜야 할 것은 반드시 지켜! 그건 납치잖아. 이건 실제 전쟁도 아니고 그냥 시험이야, 진짜 그런 짓까지 할 거 같아?!"


 그러자 오히려 펠리세트는 아예 상을 집어서 뒤쪽으로 집어던졌다.


 "꼬맹이라고?! 이제 시윤 선배도 처리했겠다, 미나 선배도 묶어뒀겠다, 당신 눈에는 내가 그렇게 보였나봐요?! 서윤, 이제 됬어요. 동맹은 여기서 파기야. 웃기지도 않는 촌극은 집어치우고 미나 선배가 있는 곳이나 말해요! 그렇게나 이깟 하찮은 시험에서 이기고 싶다면 그냥 기권해주지! 뒷문을 열었던 것도 너잖아!! 이 냄새나는 더러운 홍어가!!!"


 그러면서 펠리세트는 악에 받혀서 방패도 헬멧도 그대로 집어던졌다.


 반대로 이 모욕을 참을 수 없던 서윤은 자기도 총을 냅다 옆으로 내던지곤 주먹을 올리면서 그대로 소리쳤다. "뭐?! 이 재수없는 잘난척하는 고아 새끼가!!!"


 하지만 달려들기 직전에, 유진이 갑자기 앞을 막으며 서윤의 뺨을 휘갈겼다.


 짝.


 "……어?"


 그리고 굳은 눈빛으로 유진이 그녀를 노려보다가 말했다. "진정해, 대장."


 "유진아…?"


 "나이 차이도 엄청 나는 후배 상대로 철없게 뭐하는 짓이야. 난 대장이 나보다 냉철하고 성숙한 사람인 줄 알았어."


 "……."


 서윤은 심호흡을 하고 다시 목소리를 바꿨다. "후… 미안해, 유진아. 못 볼 꼴을 보였네."


 "……."


 "아무래도, 이 상태론 같이 있는 것은 무리야. 펠리세트, 고아라고 부른 건 사과할께. 다만…."


 펠리세트는 감정의 변화조차 없이 서윤을 계속 노려봤다. "……." 애초에 말싸움 중에는 서로에게 욕설을 하는 게 당연한 것. 뭐라고 말하건 딱히 심정에 변화조차 없던 그녀였다.


 "우린 절대로 미나를 묶지 않았어. 그건 정말 결백해. 유빈 선생님한테 지금 물어보던가, 아니면 나중에 찾아보던가. 어차피 진실은 너도 나중에 알 수 있을테니까."


 그렇게 말하곤, 서윤은 다시 총을 줍고선 둘에게 짐을 싸라고 말하며 살짝 웃었다. "그럼, 서로 안 좋은 감정은 일단 뒤로하고… 매우 불리하겠지만, 남은 경기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빌께."


 펠리세트는 서윤들이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다가 이내 시야에서 사라지자, 꽃병을 집어서 던져버렸다.


 쨍그랑 깨지는 소리.


 "착한 척하고 있어… 샤오린한테 시윤 선배를 뒤에서 쏘라고 한 것도 사실이잖아."


 …그건 사실이 맞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십몇 분 동안, 펠리세트는 방탄모도 쓰질 않고 구석에서 웅크리고 앉아 아무런 말도 하지를 않았으며, 노엘도 미지근한 커피를 마시면서 단지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민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이엘과 치후유가 찾아왔다.


 하지만 어찌되도 좋았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


 아예 대응도 하질 않는데다가, 분위기도 심상치 않은 걸 보곤, 치후유가 뭔가 있는 것 같다며 노엘에게 얘기를 들었다. 1팀과 2팀의 동맹은 깨졌으며, 어제 펠리세트가 봤듯 치후유가 시윤과 싸우던 도중에 샤오린이 저격하며 배신했던 게 원인이란 것과, 결정적으로 미나가 사라졌으며 오늘 아침까지 돌아오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그렇습니까…."


 치후유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다 말했다. "그렇다면 저희도 여기까지만 협력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이엘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에, 뭐?"


 "저희가 시엘 공에게 힘을 빌려드렸던 이유는, 정당한 복수를 하는데 있어 힘이 모자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미나 공이 살았건 죽었건, 이제 이들과 서윤의 연결고리는 끊어졌기에 제가 가세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 나이엘은 갑자기 히죽 웃으며 칼을 뽑았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내가 잡졸 둘을 재빠르게 처치해볼까?! 보라고, 회장! 너는 0킬, 나는 2킬! 이제 누가 여왕이지, 이 개년아? 우히힛, 히…"


 그때.


 치후유는 칼을 날카롭게 뽑으며 나이엘의 목에다가 겨누었다.


 "히… 히힛…. 뭐… 뭐하는 거얏?!"


 험악한 차가운 목소리로 치후유가 말했다. "저는 무사된 자로서, 위기에 빠진 약자를 억압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자 나이엘은 짜증내며 검을 칼집에 꽂곤, 손가락으로 날을 밀었다. "아… 알겠어, 알겠다구! 그냥 가면 될 거 아냐! 젠장, 김 새게!"


 …….


 그리고 둘은 떠났다. 커피를 다 마셨던 노엘은, 불안한 표정으로 펠리세트를 다시 쳐다보았다.


 "저기… 내가 선생님한테 다시 전화해볼게. 펠리세트, 통신기 좀 빌려줘." "……." 펠리세트는 말없이 기기를 그대로 건네주었다.


 같은 시각, 건틀렛 아카데미 교무실.


 현재 실적을 보고 교감하고 회의 중인 코치들.


 클라레스가 팔짱을 끼며 알렌을 보았다. "알렌, 여태까지 훈련은 어떻게 시켰었던 건가? 레이는 말이다… 이 세계의 대적자다. 그건 알고 있지?"


 "진정한 용사로 나아가는 길은 본인이 우리보다 더 잘 알겠지."

 "네가 보기엔 저게 제대로 된 길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더냐?"

 "물론, 순조롭지. 엇나가는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언젠가 너처럼 자신의 숨겨진 가능성을 깨달을 거니까."


 오지만디아스가 옆에서 끼어들며 말했다. "헤에~ 포텐셜이 확! 터진다는 말 아니야?"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군."


 클라레스는 줄리아를 흘겨봤다. "…조디악 나이츠 레드시프트 전단장. 사람이 옆에서 말하면 좀 끼어들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아니, 나도 업무처리 때문에 좀 바쁜데, 회의라고 갑자기 불러서 왔었더니 이런 잡담이나 하고 있고… 또 당신들끼리만 하는 얘길 지루하게 듣고만 있으라고?"


 "성실함도 근면함도 기사단의 덕목이다, 레온하르트 경. 기사 주제에 지루함에 지지 말라는 말이다."


 "아니, 난 기사고 뭐고 진작에 관뒀다니까… 흐아암."


 클라레스는 컵에 담긴 물을 마시다가, 갑자기 궁금해져 물었다. "그것보다, 당신들 학생들의 시험을 갖고 내기를 했다는데 사실인가?"


 "뭐, 뭣?! 누가 그런 소릴…이 아니라, 그럴리가 없잖아!"

 "……."


 "너는 어때, 알렌?"

 "…쓸데없는 소문을 퍼트리는 녀석은 붙잡아서 체벌하지 않으면 안 되겠군."


 "아니라는 건가. 뭐… 괜찮겠지. 음?"


 통신기 소리.


 나유빈이 받아도 되냐고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클라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안 되겠나? 자네의 학생들이 다급히 찾는 것 같은데… 상담을 해주게."


 오늘 아침에 미나가 사라진 것을 보고한 노엘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됬냐고.


 아까 전에 유빈은 모니터 실의 실비아에게 녹화된 영상을 통해서 동선을 뽑아보라고 지시했었고, 교직원용 갑패드를 - 아이패드 비슷한 것이다 - 켜서 그녀에게 전송 받은 메세지를 훑어봤다.


 "이건…."


 유빈은 중얼거렸다. 추적이 불가능하게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 현황 -



 제1팀: 유미나 - 행방불명 -, 주시윤 - 탈락 -, 노엘/스나이퍼, 펠리세트/디펜더(리더)

 점수: 1점(김소빈)



 제2팀: 서윤/스트라이커(리더), 김소빈 - 탈락 -, 샤오린/스나이퍼, 유진/디펜더

 점수: 3점(주시윤, 루크레시아, 옌.)



 제3팀: 레이/스트라이커, 샬롯 - 탈락 -, 카일웡/스나이퍼(리더), 루크레시아 - 탈락 -

 점수: 2점(이디스, 미카스타)



 제4팀: 옌 - 탈락 -, 이디스 - 탈락 -, 나이엘/스트라이커, 미카스타 - 탈락 -

 점수: 1점(샬롯)



 제5팀: 유나/스나이퍼, 에스테로사/디펜더(리더), 양한솔 - 탈락 -, 잉그리드 - 탈락 -

 점수: 2점(마사키, 치나츠.)



 제6팀: 치후유/스트라이커(리더), 마사키 - 탈락 -, 미나토/스나이퍼, 치나츠 - 탈락 -

 점수: 2점(양한솔, 잉그리드.)



 제7팀: 시엘/스트라이커, 아이리/디펜더, 제나/레인저, 린시엔/스나이퍼(리더)




 우울함과 억울함이 조금 풀렸는지, 초코 비스켓을 씹으며 오렌지 주스를 마시던 펠리세트에게 노엘이 미나 선배가 아예 행방불명이 됬다는 얘기를 하였다.


 "…살짝 긴가민가 했었는데, 그렇다면 서윤들이 말한 건 틀린 게 아니었군요." 펠리세트는 천하장사 소세지를 까서 물면서 말했다. "그래도 미안하지는 않아요. 고의로 시윤 선배를 저격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런 게 아니잖아요! 미나 선배가 지금…!"

 "네, 저도 알고 있어요. 그래서 같이 밤새도록 걱정했잖아요."


 "…네. 네, 그랬었죠."


 "…노엘." 그리고 컵에 따른 오렌지 주스를 한모금 마시면서 말했다. "잘 들으세요. 우린 차라리 지금 포기하고 돌아가는 것이 좋을지도 몰라요."


 "…네? 갑자기 무슨…?"


 "미나 선배는…."


 극적인 정적. 그리고 펠리세트가 조용히 말했다.


 "분명히 누군가에게 습격당했어요."


 "하, 하지만…? 어떻게 그런 게…?"


 "저도 몰라요. 하지만 미나 선배가 이번 시험에서 외딴 섬에 혼자 고립되길 기다려서, 그제서야 아무도 모르게 손을 보려 했을지 모르는…."


 단순한 직감 이상의 무언가였다. 시험 참가자 밖에 없던 이 쓰레기 섬에서, 이런 행동을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 있을까? 없다. 적어도 참가자들 중에선 없다.


 그리고, 방금 자신들의 코치인 나유빈에게 그 확인을 받은 것이다.


 "그런 위험한 뭔가가 있었을지 몰라요. 그러니까 더는 엮이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좋을 거예요."


 "서, 설마… 시엘 같은 암살자가?"

 "…아뇨. 시엘은 당연히 아니겠죠. 미나 선배를 제압하고 들키지 않는 곳까지 짊어지고 여태까지 계속 활동한다? 꼬리도 길면 잡혀요. 분명, 정식으로 참가한 28 명의 학생들 외의 누군가가 이 섬에 있을 거예요."


 "……."


 노엘은 왠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 무서워요."


 "네, 저도 무섭네요."


 "하, 하지만!" 노엘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만일 미나 선배가 정말 잡혀갔다면, 그렇다면! 지금도 도움을 바라고 있을 거 아니예요?! 저는 여기서 그냥 보고 있을 순 없어요!"


 여태까지 지친 목소리로 대충 대답해주던 펠리세트는 깜짝놀라며 손을 뻗었다.


 노엘이, 그냥 멋대로 바즈라만 들고 뛰쳐나가는 것이다.


 "자, 잠깐! 노엘!"


 펠리세트는 의자에서 일어나 급히 달리며 외쳤다. "안 돼요! 노엘보다 강한 미나 선배도 당했다고요! 어디로 가는 거예요!"


 하지만 노엘은 혼자 떠났고, 펠리세트는 부르다말고 지쳤는지 그대로 땅바닥에 털썩 앉아버렸다.


 한편, 치후유는 숲에 미나토와 함께 있다.


 나무기둥 의자에 앉아서 하품을 하는 미나토, 그리고 통신기로 치나츠와 연결한 치후유.


 "1팀의 남은 애들을 치후유가 처리할 수도 있었는데 놔준 거 보면, 정말 치후유는 자기 신념에 확실한 것 같아."


 "…언니가 좋은 성적을 받도록 최선을 다했어야만 했는데, 생각해보면 제가 나서고 싶은 대로만 휘둘리게 한 것 같아 죄송했습니다."


 치후유는 저편에서 쿡쿡 웃었다. "어머, 그런 거 신경쓴 거니? 걱정마. 어차피 언니도 미나토도 낙제는 아니니까. 오히려, 이런 때가 아니라면 언제 치후유가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겠니?"


 가문 연합의 후계자들은 어릴 때부터 같이 놀았기에, 서로가 성씨가 아닌 이름으로 불릴 만큼 친했었다.


 그리고 마사키야 투덜거리긴 했었지만, 다들 거부하지도 않고 치후유가 하잔대로 전부 따라줬던 것은 - 아무래도 이제까지 그녀가 성실하게 다른 셋을 도와주며 불평조차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보답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당주님."


 "맨날 언니의 그림자에 가려져서, 자기 하고 싶은 것도 못 해보고, 꾹 참고. 오히려 항상 느꼈던 거지만, 나에겐 네가 언니처럼 보였어. 그래서 오히려 놀라웠단다. 이번 시험에 하고 싶은 걸 정말 적극적으로 말하는 모습이… 솔직히 기뻤어. 그러니까, 우리 신경쓰지 말고… 응? 마사키?"


 상황을 보면, 옆에서 바꿔달라는 것 같았다.


 "언니?"


 "야, 치후유!" 그 마사키의 목소리다.


 "…어?"

 "넘마, 너나 치나츠나 미나토는 모르지만 나는 아슬아슬하다구! 그렇게 미안한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약한 애들만 골라잡자고 할때 듣지 좀 그랬냐!"


 "……."


 치후유는 장난인 걸 알고서,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래 알고 지냈으니 서로의 성격을 잘 아는 것이다. "역시나 소심한 그릇이군요. 남자답지 않습니다, 마사키."


 "너 진짜!"


 그렇게 화난 척하며 목소리를 올렸다가, 마사키는 낄낄 웃으며 털었다. "…뭐 어때. 그냥 하고 싶은대로 해라. 너도 애처럼 놀땐 놀아야지."


 "애처럼 놀땐 논다…."


 "응? 기분 상했어?"

 "아니, 아닙니다. 오히려 듣기 좋군요. 그럼…."


 "그래, 이기던 지던 열심히 해."


 그렇게 말하고 끊었다.


 가방에서 삼각김밥과 녹차를 주섬주섬 꺼내던 미나토가 곁눈질을 하다가 물었다. "치나츠는 어떻대?"


 "어떻긴, 그냥 쉬고 계십니다."

 "그렇겠지…."


 미나토는 녹차를 컵에다가 따라주며 웃었다. "일단 아침부터 먹자구. 그리고… 다음은 어디로 가고 싶어?"


 "글쎄…."


 조신하게 차를 마시면서 잠시 고민하던 치후유는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는 시엘에게 재도전을 걸려고 했습니다만, 그쪽도 나름대로 바쁘니까요. 3팀의 레이에게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그럼, 마지막까지 따라가줄게. 근데 그쪽에서 네가 좋아하는 일기토를 받아줄진 모르겠다. 에스테로사처럼 거절할지도."


 "훗…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을지 모릅니다. 서로의 성격을 아는 계기가 될 테니까요."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라 좋은 걸… 좋아, 레이들은 폐공장 쪽에 있다는 것 같더라. 좀 있다가 가자구!"


 그리고, 점심에.


 시험은 이제 중후반부에 접어들었다. 이보다 더 끈다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소빈을 기권시키길 잘했다. 그건 지금 생각해봐도 최적의 판단이었다. 걔한테 더 쓰도록 줄 페인트 탄도 남지 않았고, 더욱이 다른 팀에게 점수를 더 주는 것보다 제일 열세인 1팀에게 꽂는 게 더 낫다.


 그리고 서윤은 알고 있다. 앞으로의 전략도 정해졌다.


 '온다… 오늘도 오겠지.'


 굳이 자신들이 사냥하러 다른 팀을 찾을 필요도 없다. 시엘들이 올 걸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녀들을 위해 최고의 함정을 여기 준비했다.


 '…와라, 대륙의 살인마. 네가 날 노린다는 것 쯤은 알고 있어. 하지만 당하는 게 누굴지 한 번 보자고.'


 그렇게.


 버려진 건물이 늘어선 몽환적인 유메노시마의 번화가에, 또각또각 발소리를 내며 검은 옷자락을 휘날리는 그녀가 찾아왔다.


 "……."


 자신의 추적능력으로 알 수 있었다.


 아침엔 백화점에서 무언가 물건을 옮기고 있었고, 점심 때가 되자 영화관에 들어갔다.


 도대체 뭘 했었던 건진 모르지만, 적은 이제 세 명 밖에 없다. 치후유에게 들은 바론 1팀이 그녀를 내친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서로 성격이 다를까 모르겠구려. 치후유는 이곳에 와서 친구를 만들었고, 서윤 그대는 적만 만들었소. 꾀만 부리려다 자기 꾀에 넘어가는 것이지… 그렇다고 본녀가 충고해도 듣지 않을 성격이니.'


 린이 사탕을 빨다, 휙 던지곤 발로 밟아서 깨트렸다.


 …본인 딴엔 멋있다고 하는 걸까? 시엘 눈엔 그냥 귀엽게 보였다.


 "엇차, 그렇다면 그 빵쯔년을 손보러 가줄까."


 시엘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나이엘도, 아이리도, 제나도 각자 자신의 무장을 꽉 쥐었다.


 그리고 극장 안에서… 상영관에.


 있었다. 서윤과 유진이.


 고작 두 명…? 하지만 아무래도 괜찮았다. 이제는 그들을 지켜줄 미나도 시윤도 옆에 있지도 않고.


 시엘은 그냥 어둠 속에서 나와, 그녀들이 총을 겨눌 때까지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꽤나 일찍 왔네. 여전히 겁쟁이처럼 새벽에 올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소저가 맑은 정신으로 있을 지금에 대화를 하는 게 좋다 판단했을 뿐이오. 묻고 싶은 게 있었거든."


 유진은 방패를 꽉 쥐면서 싸울 기세를 보였지만, 서윤은 총구를 내리면서 말했다. "…사실, 이쪽도 뭔가 묻고 싶었던 게 있긴 했어. 그래, 마지막 결판을 짓기 전에 문답할 시간은 있겠지."


 "……."


 질문을 고르던 시엘이 물었다. "그럼 이쪽부터 물어보지. 어째서 옌을 쏘았던 것이오?"


 "…뭔가 착각하나 본데, 우린 첫날 밤에 널 목표로 쐈었어. 회장이 몸을 던져서 막았을 뿐이야."

 "호오…?"


 "개인적인 감정이라도 있을 줄 알았나봐? 단지, 7팀은 네가 없다면 전부 쉬운 상대니까, 시엘만 먼저 처치하고 나머진 추격해서 점수를 쉽게 얻자는 판단이었지. 만약 네가 탈락됬다면 지금 쯤 결과가 매우 달라졌을 걸?"


 시엘은 또 물었다. "그러면 어째서 우리의 관습을 비웃은 것이지?"


 "…뭐? 관습, 그게?"


 서윤은 자신도 모르게 웃어제꼈다. "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그게 그냥 너희들끼리 노는 게 아닌, 관습이었다고?"


 조금은 대화의 여지가 있었는가 싶었더니, 역시 짜증나는 여자였다.


 "정말로 수준이 낮군. 이래서 동이족을 오랑캐라 불렀던 이유가 있었소. 그대에겐 생소할지 모르지만, 이건 과거부터 있던 규율이자 전통이오. 흑동과 백서는…."


 "잠깐." 불현듯 갑자기 기억나는 서윤이다. "그래, 결혼이라 말했었지."


 "음…?"

 "샤오린이 말해줬어. 우리 쪽에도 중국인 애가 있거든. 그렇지만…."


 서윤은 또 비웃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래, 정정할께. 너희 관습은 조금 별나지만 이상한 게 아니야. 진짜로 해괴한 건 너희들이지."


 "……."

 "여자들끼리 무슨 결혼이라고… 웃기지도 않아. 애는 또 어떻게 만들려고 남자가 아닌 여자를 찾는 건데?"


 사실.


 이쯤되면 뭔가 궁금하게 느껴졌다. 시엘은 그래서 그대로 물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혐오적인 반응을 비추는 것이오?"


 "뭐?"

 "마치 히틀러가 유대인을 증오하는 느낌이오. 혹시 동성애자에게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한 적이라도 있소?"


 서윤은 기가 차서 씹듯이 내뱉었다. "도대체 무슨 헛소릴… 그럴리가 없잖아. 그냥 웃기잖아. 너는 안 웃겨?"


 하지만 오히려 그 반응을 보곤 시엘은 혼자서 납득했다.


 "흐음… 결국 그쪽에 뭔가가 있는 것 같구려. 본녀는 그냥 물었을 뿐이오. 사랑하는 사람에 성별은 중요하질 않다고. 오히려 그렇지도 않은 상대에게 평생을 약속할 수 있겠소? 하지만 그대는? 이런 감정적인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소."


 그렇지만 진짜 아니었던 서윤은 혼자서 중얼거렸다. "얘, 도대체 뭐래냐?"


 그리고 같잖다는 듯이 내뱉었다. "당신 말야, 지금 보니까 매우 순진하네. 나는 게이다, 나는 레즈비언이다. 이런 거 말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고치려고 하고, 판단을 고치려고 하고. 진짜 재수없고 역겹거든? 보통 사람들은 진짜 별 신경도 안 써. 니들끼리 누구랑 자고 다니건, 뭘 어쩌건."


 "……."

 "그런데 너희 같은 녀석들이 미디어도, 사회적인 가치관도, 걍 모든 걸 망치고 있어. 남자는 고기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근육 좀 붙이고, 여자는 머리 기르고 화장품도 바르고 다이어트하고, 그래서 결혼하고 애도 많이 낳고. 그런게 건강한 사회상이 아닌가?"


 서윤은 듣던 말던 계속 말했다. "근데 너희 같은 바보들은? 자기가 뚱뚱하지만 그래도 좋아해달라며 영화에도 게임에도 억지로 우겨넣지 않나. 그리고 되지도 않는 멍청한 얼간이들 주제에 누굴 훈계하려고 별 시덥잖은 헛소리나 메세지라고 우겨넣지 않나. 너도 진짜 우스워.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지 말아야만 한다, 그건 악하다 이런 논리는 대체 뭔데?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판단하건 그건 개인의 자유야. 네들은 남의 생각을 고치려고 한다고."


 "으음…."


 시엘은 눈을 감고 생각하더니 결국 고갤 저으며 말했다. "당신 말도 나름대로 일리는 있소."


 "…뭐?"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서윤은, 이렇게 그녀가 공격적이고 드셌던 이유도, 애초에 자신처럼 지기 싫어하는 녀석들하고만 싸워왔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상대의 말을 듣고선 일부이건 전체이건 시원하게 긍정해주는 상대는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잠깐, 뭐라고 했어? 내가 맞다고?"


 "나름대로 맞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잖아 있다는 것이오. 본녀는 그대가 단지 이유도 없이 그런 감정을 가지는 줄 알았소. 그래… 결국 유치하게 보일지도 모르지. 진짜 사랑은 단지 두 사람만의 문제일터. 다른 이들에게 우릴 신경써달라고 어리광을 피울 의미가 없소."


 "……."


 서윤은 그녀의 인생 동안에 이런 대화를 겪은 경험이 없어 뭐라고 할 줄 몰랐다.


 "옳은 말이라면 그걸 누가 했던지 새기는 게 낫겠지. 그럼, 그대가 나에게 물을 차례요."


 "응? 어, 어…."


 그제서야 서윤은 궁금한 걸 물었다. "어제, 어떻게 들어올 수 있었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소만…."

 "호텔의 문은 전부다 잠겨있었어. 어떻게 치후유랑 너희가 들어올 수 있었냔 거잖아. 혹시 여벌의 열쇠가 있던 것이라던가…?"


 펠리세트도 그걸 의심했었고, 서윤 자신도 마스터 키는 1팀과 2팀만 가졌을텐데 어째서 닫힌 뒷문을 통해서 침입한 것인지 아직도 이해하지를 못했다.


 사실, 샤오린이 시윤을 쏘기 이전에, 애초 그것부터가 반목의 시발점이었다.


 하지만 그 질문을 듣고, 시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 이런 질문은 당신 같은 사람한테서 예상하지도 못했단 것처럼.


 "…정말이지 소저는 본녀를 무시하는 것 같소. 눈 앞의 이는 곧 흑동의 문주며 여러 사람의 숨을 끊었던 여자요."


 "아니, 그건 이미 알아. 대체 그것과 무슨 상관인데?"


 "이렇게 둔할리가? 문이 잠겼다고 들어가지 못할 암살자가 도대체 어디에 있겠소?"


 …아.


 맞다.


 사실, 생각하면 너무나도 당연했다.


 이 녀석은 정말로 사람을 여럿 죽이고 다녔던 자객이었다. 그것도 실력이 있으니 대장의 자리에 올랐을 것이다. 저런 버려진 호텔의 뒷문 따위야, 저쪽에선 수련생도 따고 들어올 수 있겠지.


 "……."


 서윤은 한숨을 쉬고는 인정했다. "그래. 너무나도 간단했던 건데, 내가 몰랐었네. 창피하게…."


 "하지만 어찌됬건, 이것으로 우리가 서로에게 묻고 싶었던 말은 다 들어준 것으로 알겠소."


 "그래… 여기까지 와서 나도 져주고 싶진 않거든?!"


 불이 꺼져있는 상영관에.


 유진하고 서윤. 반대편엔 나이엘과 시엘, 제나와 시엔과 아이리가 있다.


 '분명 질 수 없는 싸움이군.'


 그렇게 생각한 시엘은 칼을 뽑으면서 기를 싣었다. "그렇게나 노력했는데 안타깝구려. 어제만 했어도 그대 둘이 날 막는 게 벅찼소. 하지만 지금은? 승산이 어떤지 직접 계산해보시오."


 둘의 문답을 지루하게 듣고 있던 나이엘도 드디어 칼을 뽑으면서 말했다. "하! 그 촌뜨기가 사라졌다고 들었기에 약간 실망스러웠는데 말야. 야, 지난 번의 운동회는 잊지 않았겠지?!"


 "후, 후후후…."


 ""……?""


 서윤은 나이엘은 무시하고 시엘에게만 대답했다. "역시 암살자로서 혼자 싸우는 건 잘하지만 전술적인 판단력은 전무하네… 잘 보는 게 어때? 너야 그렇다고 쳐도, 남은 셋은? 애초 검술은 연습도 못한 노엘에게 밀린 제나? 키 빼고는 모든 면에서 그 땅꼬마 펠리세트보다 열등한 아이리? 재능은 돈 밖에 없는 저 린시엔? 그나마 나이엘이 전력일까?"


 "노, 노엘에게 밀린건 사실이긴 해도… 요새 잠도 제대로 못 잤었고…!"

 "우와! 쇼크! 그래도 아이리님, 펠리세트보단 귀엽다구?!"

 "훗… 수준에 맞는 하찮은 도발이군."


 서윤은 눈을 흘기며 쏘아붙였다. "시끄럽네, 이 오합지졸들이. 적어도 너흰 살아서 못 나가니까 각오하고."


 시엘은 찡그리며 물었다. "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내가 당신을 얕봤다면 당신도 나를 얕본 것 같네, 시엘. 내가 말하는 건…" 서윤은 손가락을 튕기며 어디 있는지도 모를 샤오린에게 신호를 보냈다. "바로 이거야!"


 탁!


 그리고.


 갑자기 문이 잠겼고, 상영관 좌우와 뒤의 커튼이 올라갔다.


 나이엘이 묘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거울…? 아니, 뭐가 이렇게 많아?"


 "……!"


 암살자인 시엘은 바로 알아챘다. 이게 대체 뭔지.


 그러나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바로 몇 초 뒤에, 거대한 화면에 영상이 비춰졌다.


 영상 자체는 그냥 단순한 색깔만이 전부였다. 단지 엄청나게 밝았을 뿐이었다.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이게 계속해서 번갈아서 비추면서 마치 폴리곤 쇼크처럼 미친듯한 속도로 발광해 - 아예 대낮보다 어지러운 광경이다.


 "우, 우욱…!"


 그렇게 시엘은 바로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치명적인 약점이 눈에 있단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눈이 어떻게 안 좋은가?


 여태껏 행동양식을 본다면, 어두운 곳에선 낮에도 잘만 싸웠던 그녀였기에 몸 컨디션이 절대적인 시간을 기준으로 바뀌는 게 아니라, 그냥 단순히 밝으면 볼 수 없다는 것을 쉽게 알았다.


 "젠장… 나도 눈 좀 아프지만 말야!" 서윤은 그렇게 말하곤 나이엘부터 겨눴다.


 "자, 잠깐?! 왜 나부터?"


 그러자 유진은 방패를 앞에 밀며 달려왔다. "시엘 빼면 네가 제일 강하잖아! 각오해랏!"


 "타, 타임! 잠깐 타임! 시엘, 좀 빨리 일어나! 아, 아니… 다들,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얏?!"


 …사실.


 일단 동맹이라 굳이 내색은 하지 않았을 뿐이지, 나이엘은 서윤처럼 시엘 제외하면 이 팀에서 쓸만한 녀석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차가운 현실은 그처럼 있는 그대로의 진실만 보여줬다.


 스크린을 등지고 서있는 서윤들에 - 당연히 이것도 계산한 것이다. 자신들이 이런 함정을 짜놓고 스크린을 쳐다보는 위치에 서있을리 없다. - 제나도 아이린도 시엔도 아무것도 하질 못했다.


 스크린을 향해 방패를 세워서 눈을 가렸지만 너무 어지러워 뭘 할 수도 없던 아이리.

 어떻게든 검을 쥐고 나이엘을 향하는 유진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그냥 넘어진 제나.

 그나마 선글라스를 꺼내서 썼다지만 맞추건 빗맞추건 애초에 별로 도움도 안 되는 시엔.


 "이, 이 무능한 쓰레기들 때문에에에에에~~~!!!"


 그나마 높은 카운터 랭크 덕분에 이 시각적인 트랩에도 내성이 있었던 나이엘이었지만, 결국 그게 그녀의 마지막 말이 되었다.


 "나이엘, 탈락!"


 그리고….


 차례로, 다음 이름도 불리게 됬다.


 "린시엔, 탈락!"

 "제나, 탈락!"

 "아이리, 탈락!"


 "후, 후후후후…."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서윤은 기분이 좋은지 크게 웃어제꼈다.


 주시윤까지 삼 점, 그리고 이 잡졸들까지 더해 전부 칠 점.


 나머지 시엘까지 더하면 팔 점이다. 정말로, 이렇게까지 잘 먹혀들 줄은 몰랐다.


 "다들, 무슨 안구건조증에 걸린 거야? 눈이 그렇게 안 좋았나? 이거 하나에 전부 떨어졌다고? 진짜 기가 막히네! 좋아, 샤오린! 이제 그냥 나와도 돼! 마지막 시엘은 네 손으로 처리해!"


 하지만, 샤오린을 불러봐도.


 대답이 없었다.


 "…샤오린?"


 그리고 저편에, 영상기를 틀고 있던 샤오린의 위치에는.


 펠리세트가 샤오린의 양팔을 뒤로 돌려서 제압하곤, 다른 손으론 그녀의 머리에 권총을 대고 있었다.


 "예전에 같이 싸울 때, 당신은 주로 어떤 위치에 있었나 계속 관찰했죠, 샤오린."

 "……."


 샤오린이 물었다. "…왜 우릴 배신하는 거야?"


 "배신은 당신이 했겠죠. 당신, 중국인이죠? 이런 걸 적반하장이라고 하지 않나?"

 "하지만 우리는…."


 그러자 팔을 잡은 손을 쥐었다.


 "읏… 아파!"


 이게 대체 무슨 악력….


 카운터가 아닌데도, 괴물 같이 노력한 신체 훈련과 보조장비 때문인지, 샤오린이 풀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시윤 선배를 일부러 쏘지 않았다고요?"


 "……."


 샤오린은 - 솔직히 말해서 서윤처럼 남들을 속이며 사는 게 맞질 않았다.


 왠지 모르겠지만 거짓말하는 게 내키지 않았다. 물론 명령이야 그냥 따르지만, 개인적으론 그런 성격이었다.


 '하아… 조금 치사하긴 했어.'


 그렇게 생각한 샤오린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솔직히 사과하고 싶긴 했었지만, 만일 털어버리면 그건 자신만이 책임지는 것이 아닌 서윤까지 몫이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죽어도 말할 순 없다.


 "고의가 아니야.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겠고. 그냥 네가 좋을대로 생각해줘."


 "…그게, 마지막으로 할 말인가요?"


 샤오린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미나는 진짜 우리가 어떻게 한 게 아니야."


 "그건 알아요. 시윤 선배의 건 때문에 그렇죠. 그러니까…." 펠리세트는 권총을 당겼다. "저세상에… 아니, 학교에 가서 시윤 선배한테 사과하세요. 그럼."


 탕!


 그렇게, 서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가 들렸다.


 "샤오린, 탈락!"


 …….


 "…뭐?"


 근데 그것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발광하던 영상기가 꺼지면서 관은 다시 어둠으로 가득찼다.


 유진이 놀라며 중얼거렸다. "자, 잠깐… 뭐가 어떻게 되는…?!"


 곧바로.


 유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도, 갑자기 거대한 검기가 그녀의 몸을 향해서 몰아쳤다.


 "크, 크아아아악!!"


 …주저앉은 동안 포기하지 않고서 기회를 엿보며 준비했던 일격이다.


 유진이 탈락함과 동시에, 바로 천장으로 도약했다 튕겨 지면으로 내려오는 시엘. 눈 앞의 서윤의 목에 칼날을 대고 말하였다. "친우도 아닌 나의 충언을 들을지는 모르겠으나…."


 "……."

 "서윤, 그대는 내가 보기에 적을 만들고 다니는 게 취미일지도 모르겠구려."


 "웃기지마. 저딴 쓸모없는 녀석들이 적이건 뭐건 도대체 왜 중요한데? 결국 사람들은 능력이 있는 자의 얘기만 들어. 의사도 아닌데 영양학이나 다이어트를 말해봤자 누가 진지하게 듣겠어? 과학자도 아닌데 물리학과 세계에 대해 논하면 누가 듣겠어? 우리가 카운터라지만, 진짜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공을 세우지 않으면 무슨 존경받을 가치가 있겠어?"


 "…음?"


 "자기는 카운터니까 세상이 알아서 대접해주겠지, 그딴 태도로 대충 하루하루 낭비하며, 정작 침식체랑 싸울 때는 다른 강한 카운터가 알아서 해주겠지, 그러면서 적당하게 뒤로 빠지고. 죽여버리고 싶단 말야."


 서윤은 바닥에 침을 툭 뱉으며 말했다. "내 눈에는 오히려 너 같은 애들이 이상하게 보여. 저딴 떨거지들하고 자길 동격으로 둘 수 있나? 특히 너는 문파의 수장이라며? 짱개, 바보들이랑 소꿉장난치는 게 재밌니?"


 "하아…." 시엘은 한숨을 쉬었다.


 뭐라고 평가하기 어려운 여자다. 그런 느낌만 들 뿐이다.


 "부처 눈엔 부처만 보이고, 짱개 눈엔 짱개만 보인다오."


 "뭐…?"


 서윤은 황당한 눈을 지었다. "야, 그거 그렇게 쓰는 말 아니거든? 결국 난 그냥 한국인이잖아."


 '중국인이건 한국인이건, 대충 맞는 쓰임새 같소만….'


 "어쨌건, 그대는 졌소.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소?"


 "졌어? 내가? …웃기지마. 이 싸움은 내가 이겼어. 지금 내가 몇 점이지? 7점이야. 너는? 나까지 죽여도 2점. 압도적인 점수차지? 다른 애들은? 너랑 똑같이 2점. 4팀만 1점." 그리고 서윤은 비웃었다. "봐봐, 너희들 정도야 이미 당연히 이겼고, 경기가 잘 풀리면 내가 시험에서 1등이 될지도 모르지."


 "그래, 잘됬구려."


 그렇게 말하며 시엘은 서윤의 머리를 내려쳤다.


 쿵.


 쓰러지며, 서윤도 탈락됬단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이 학교로 전송되었다.


 가만히 칼을 집어넣는 시엘에게 펠리세트가 조용히 걸어왔다.


 "동영의 무사에게 들었소."

 "동영…?"


 시엘은 눈을 감았다. "치후유를 말하는 것이오."


 "아…."


 "서로 동맹을 깼다고 했더군. 그리고… 방금 그대가 저들의 배신을 응징한 것이겠지."

 "대충 그런 거예요."


 시엘과 펠리세트는 눈길을 교환했다. 딱히, 서로 공격할 의사는 없는 것 같다.


 "…도와줘서 감사하오. 적어도 본녀가 스스로에게 맹세한 다짐은 지킬 수 있었으니."

 "전 그냥 제가 원해서 방해하고 싶었을 뿐이예요."


 "후후, 심지가 곧구려. 기억하리다."


 "……."


 시엘이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여기에?"


 "아…."


 펠리세트는 방금 생각났단 듯이 물어보았다. "맞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닌데. 저는 노엘을 찾고 있었어요."


 "노엘? 그 어검술을 사용하던 회색 머리의 친구 말하는 것이오?"

 "네!"


 "…미안하군. 오전부터 지금까지 본 기억이 없소."


 "아마 그렇겠죠…."


 시엘은 발을 옮겼다. "그럼. 그대에겐 아무런 한도 없으니, 본녀는 이제 가리다."


 "잠깐, 어디로 가는 건가요?"


 "6팀의 치후유나 3팀의 레이와 서로의 무를 겨루려 가는 것이라오." 그리고 그녀는 뒷모습을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그대도 갈길을 가시오. 연이 닿으면 언젠가 다시 마주치겠지."


 특이한 인사다.


 '치후유도 그렇고, 왠진 몰라도 정말 옛스러운 사람이 많네요….' 펠리세트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웃으며, 반대편으로 나갔다. "네, 아마 오늘 내일 학교에서 다시 만나겠죠. 그쪽도 만족할만한 최후의 결투를 치르시길."



 - 현황 -



 제1팀: 유미나 - 행방불명 -, 주시윤 - 탈락 -, 노엘/스나이퍼, 펠리세트/디펜더(리더)

 점수: 2점(김소빈, 샤오린.)



 제2팀: 서윤 - 탈락 -, 김소빈 - 탈락 -, 샤오린 - 탈락 -, 유진 - 탈락 -

 점수: 7점(주시윤, 루크레시아, 옌, 나이엘, 아이리, 제나, 린시엔.)



 제3팀: 레이/스트라이커, 샬롯 - 탈락 -, 카일웡/스나이퍼(리더), 루크레시아 - 탈락 -

 점수: 2점(이디스, 미카스타)



 제4팀: 옌 - 탈락 -, 이디스 - 탈락 -, 나이엘 - 탈락 -, 미카스타 - 탈락 -

 점수: 1점(샬롯)



 제5팀: 유나/스나이퍼, 에스테로사/디펜더(리더), 양한솔 - 탈락 -, 잉그리드 - 탈락 -

 점수: 2점(마사키, 치나츠.)



 제6팀: 치후유/스트라이커(리더), 마사키 - 탈락 -, 미나토/스나이퍼, 치나츠 - 탈락 -

 점수: 2점(양한솔, 잉그리드.)



 제7팀: 시엘/스트라이커(리더), 아이리 - 탈락 -, 제나 - 탈락 -, 린시엔 - 탈락 -

 점수: 2점(서윤, 유진.)



 한편, 노엘은 바로 미나가 갔던 동굴까지 갔었다가 미나는 찾질 못하고 이상한 힘에 홀리게 되었다.


 망갈라 수트라. 이상하게 생긴 목걸이를 보았기에 호기심에 주워본 그녀는 그 물건의 사념에 제압되진 거다.


 그리고, 레이가 있는 폐공장 쪽으로 가던 치후유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음? 노엘?"

 "……."


 아침에 본 그녀의 모습과는 달리,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바즈라를 돌려댔다. 무언가 기분 나쁜 사기가 느껴졌다.


 '뭐지…? 예감이 안 좋아.'


 "미나토, 뒤로 물러서십시오."

 "뭐? 하, 하지만…."


 챙!


 머뭇거리는 미나토의 머리 뒤로 바즈라가 날라왔었고, 그걸 치후유가 섬광과도 같이 쳐내었다.


 '…무거워?!'


 마치 슬렛지 해머로 내려치는 것 같은 힘이다. 노엘의 칼날은 자신도 몇 번 받아친 적이 있는데, 그땐 그냥 노엘이 닌자처럼 손으로 날린 것 같이 가벼웠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랐다.


 "…칫!"


 그리고 날라오는 다른 바즈라를 향해서 미나토가 화살을 쏘았지만….


 "이게 뭐야?!"


 쏴맞추는 것이 가능했던 이전의 바즈라와 달리, 아예 화살을 꿰뚫고 그냥 날아들어왔다.


 '이 정도로 급격히 힘을 얻는 건 예사로운 일이 아니야. 필히 무언가가 있을 터인데…!' 치후유는 바로 도약하며 마음으로 그 기운의 근원을 느꼈다.


 "…목걸이?!"


 노엘은 아무런 말도 하지를 않았다. 단지, 자세조차 변하지 않고서 미끄러지듯 갑자기 다가와….


 "……!"


 그대로 단검을 전방향에 흩뿌렸다.


 "칫!"


 검성의 실력에 도달한 치후유는 자기 앞으로 향한 세 개를 목표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검격을 휘두르며 막아냈다.


 이제, 일반적인 적을 상대로는 이게 반격의 기회가 됬겠지만….


 '윽… 자세가!'


 지금 싸우는 적은 너무나도 이상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다뤘다.


 그리고.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이, 묘한 느낌이 들었다.


 바로 눈을 들면, 어느새 치후유의 앞에는 그 노엘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들어올려, 역으로 쥔 단검을 통해 내려 찍으려고 했다.


 "놔둘 것 같아?!"


 하지만 뒤에 있던 나유빈이 화살을 바로 쏘면서 원호했다. 그걸 보곤, 노엘은 혀를 차면서 들고있던 단검을 날리면서 화살을 관통시켰다. 그리고 그때….


 "빈틈!"


 치후유는 노엘의 목에 걸려진 목걸이를 움켜잡곤, 그대로 팔 힘으로 뜯어내려고 했다.


 "……!"


 놀란 표정을 짓는 노엘은 손을 바닥에 떨어져있던 바즈라를 향하곤 쥐어내며 이쪽으로 오게 했었지만….


 "큿, 으윽!"


 그걸 예측하고 몸을 돌린 치후유의 허벅지에 찔리면서, 회수에 실패하였다. 그리고, 치후유는 깊게 느껴지는 고통에 오기로 저항하듯 힘을 꽉 주곤 목걸이를 뜯어냈다.


 …….


 차랑, 차랑 거리면서 뜯었더니 햇빛에 녹아버리듯 사라진 목걸이.


 그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어쨌건, 분명히 시험 참가자의 모든 무기는 날에 코팅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단검은 자신의 몸에 박혔다. 그걸 의아하게 생각한 치후유는 뽑아 관찰했지만… 무언가 칼 자체가 아닌, 방금 전의 이상한 요기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을 지었다.


 어쨌건 응급처리를 하고선 미나토와 함께 앉아 잠시 쉬고있던 치후유는, 펠리세트가 오는 것을 봤다.


 "노엘? 잠깐…."


 치후유가 부상을 입은 걸 보곤 물었다. "치후유 씨, 다리는 어떻게 다친 거예요?"


 "……."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를 않았다. 단지, 옆에 있던 미나토가 설명했다.


 "우리가 공장 쪽으로 가고 있었는데 노엘이 갑자기 우리 앞을 막고 있더라고. 근데 대화를 아예 하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이상했었어. 무언가에 홀린 듯이… 또, 분명 바즈라의 날엔 코팅이 되있는데, 이걸로 치후유의 다리를 벨 정도로 힘도 이상하게 강해졌고. 하지만 쓰러트렸더니 그대로 기절하고 깨어나질 않아."


 치후유가 덧붙였다. "힘으로 쓰러트린 것이 아닙니다. 이상하게 생긴 목걸이를 차고 있었길래 뜯어냈더니… 갑자기 누워선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던 것입니다."


 펠리세트는 노엘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바보… 섬에 대해 무슨 이상한 게 숨어있을지도 모른다고 주의해줬는데."


 그리곤 치후유에게 눈길을 돌렸다. "노엘의 상태가 매우 이상해요. 시험에서 같이 기권하고 돌봐줘야만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치후유 씨는 어떻게 할 건가요?"


 "…걷기 불편한 것도 아니니까, 계속 싸우고 싶습니다."


 "하아… 다치면 빨리 병원에 가셔야죠. 제대로 된 붕대를 감은 것도 아니고…." 그리고 펠리세트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열쇠를 꺼내곤 치후유에게 던졌다.


 "열쇠…?"


 "여기서 북서쪽에 버려진 호텔이 있어요. 거기 2층의 방에 보면 의약품이 있는 방이 있거든요. 믿든지 말든지 자유지만, 적어도 붕대랑 몇 가지 약은 본 기억이 있으니까 필요하면 가봐요."


 그리고 뭔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펠리세트는 노엘의 손을 잡고선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노엘 때문에 치후유 씨의 다리가 그렇게 된 것도 좀 죄송하기도 하고…. 노엘하고 펠리세트, 6팀에게 항복!"


 …….


 둘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치후유가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펠리세트 씨는… 자기가 한 일도 아닌데 매우 미안해하는 군요."


 "리더로서 자기 팀원이 친 사고를 수습하려고 그러는 걸거야."

 "……?"


 "만약 치후유가 사고를 쳤다면 치나츠가 지금 펠리세트처럼 저랬을 걸?"


 치후유는 그렇게 읽을 관계가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아니, 저와 언니야 애초 나나하라의 가문 사람이 아닙니까. 하지만 저 둘은 딱히 아무런 관계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 어… 그러게?"

 "……."


 치후유는 일어나며 말했다. "어쩌면 그냥 순수히 제가 걱정되서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말한대로 호텔로 먼저 가보려는 거야?"

 "그렇습니다. 이것도 그녀가 베풀었던 정이니까."


 '정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네. 시험 치기 전까지는 모르는 애들도 많았는데, 시엘도 에스테로사도 그렇고… 치후유의 우직함과 올곧음을 마음에 들어하는 친구들이 생겼던 것 같았어.'


 사실은, 자신도 치후유를 엉뚱하지만 스스로가 하는 일에 진심인 그 투명한 성격이 인상적이라 생각해왔다. 그렇지만 매우 역설적인 게 아닐까.


 이번 시험에선 온갖 꾀를 부리려고 애쓴 서윤보다도, 강적을 찾아서 정정당당히 승부를 걸었던 이 치후유가 오히려 전체적인 양상을 불규칙하게 흔들었다. 얘랑 싸우고, 쟤랑 싸우고, 그러더니 얘를 도와주고, 쟤도 도와주고.


 '하하… 뭔가 참 신기하네. 본인은 매우 단순한 성향인데, 행적은 왠지 매우 복잡해.'


 어쨌건, 시험도 이젠 완전한 후반기에 접어들었다. 적어도 그녀의 마지막 결투를 지켜볼 수 있도록, 미나토는 치후유와 함께 폐허와도 같은 거리를 조용히 걸었다.


 같은 시각, 건틀렛 아카데미의 교감실.


 나유빈이 문을 쾅 열며 나타났다.


 "교감 선생님, 교장 선생님은 이런 중요한 때에 도대체 어디 계신 겁니까? 미나 학생은 사라졌고, 또 섬의 한 포인트엔 침식파가 지나칠 정도로 높은 농도를 띄고 있어요. 그 동굴…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지금 당장 시험을 중지시키고…!"


 "진정하고 돌아가서 하던 일이나 계속 하도록. 만일 자네가 필요해지면 우리가 부를 거니까."


 "하지만 왜…!"


 클라레스는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왜 당장 인원을 파견하지 않겠나? 일을 크게 만들지 말자는 거다. 일정대로 진행한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면, 미나 양을 찾기 위한 수색대를 섬에 파견한다. 그리고 별도로…."


 "그랬다간 늦습니다! 레이는 대적자여도, 미나는 여기서 늑대예요! 일반적인 학생이 아니라 탐미엘의…!"


 "그러니까 말한 거다. 황도 기사단과 구원 기사단은 섬을 수색하도록 시키고, 우리는 미나 학생이 사라진 이면세계로 출발할 거니까."


 "……."


 클라레스가 자료 시트를 보여주며 말했다. "조사에 따르면, 미나 학생은 네헤모트가 있는 이면세계로 떨어졌더군."


 "그럼 지금 당장이라도…!"

 "초월의 마왕이라 불리는 네헤모트라도 이 시점에서 굳이 미나를 어떻게 하진 않겠지. 아닌가?"


 "……."


 "만일 무슨 일이 일어나면 제이크 선생을 출동시켜서 수습할테니, 더이상 자네가 걱정할 필요는 없네."

 "…뭐든 후회하기 전에 빨리 끝나길 빌죠.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유빈은 그렇게 말하고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


 "후우…."


 클라레스는 돌리던 펜을 책상에 툭 내려놓곤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마치 나유빈이 듣는 것처럼, 혼잣말을 했다. "현자에 대해서 실망이 크겠지, 나라고 자네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거 알고있나? 만일 저렇게 낯을 가리는 성격이 아니었다면, 현자가 아니라 황제가 되었겠지."


 "그는 사람들의 앞에 나서는 걸 그다지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야. 네모난 로봇을 만들건, 새 모양의 로봇을 만들건… 그것도 아니면 부하를 사용하건, 뒤에서 완벽한 계획을 수립하길 좋아하고 그게 준비되지 않는다면 나서길 싫어해. 다만, 그렇기에 나에게도 레이에도 있어 그가 현자라고 불려지는 이유겠지."


 "하지만 말이다…."


 클라레스는 일어나 창문 바깥을 쳐다보았다.


 "그는 진심으로 이 세계를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남자이다. 그런 사람에게 내가 결정권을 넘긴다는 것도, 그런 사람에게 내가 부하로서 따른다는 것도, 그리고 그런 사람의 능력이 부족한 부분을 내가 대신 처리한단 것도… 이 세계의 멸망을 막기 위해선 기꺼이 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자넨 모르겠지. 현자하고 우린 이미 운명공동체와 같단 것을."


 "그렇기에 그런 은둔자와 같은 기질도 어떤 책망해야만 할 게 아니라 그런 모자란 부분을 서로 보충해야만 할 것으로 느꼈다. 나를 표면적인 지도자로 세우고서 이 세계를 구원할 답을 찾아달라고… 하지만, 나유빈. 자네에겐 거기까지 설명할 수 없었군. 자네로서는 이걸 수긍할지를 모르겠지만…."


 그리고 클라레스는 커튼을 쳤다.


 힐데가 없는 세계의 관리자와 클라레스. 그러하나 여기도 완벽하게 평화로운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시험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왔다.




 - 현황 -



 제1팀: 유미나 - 행방불명 -, 주시윤 - 탈락 -, 노엘 - 탈락 -, 펠리세트 - 탈락 -

 점수: 2점(김소빈, 샤오린.)



 제2팀: 서윤 - 탈락 -, 김소빈 - 탈락 -, 샤오린 - 탈락 -, 유진 - 탈락 -

 점수: 7점(주시윤, 루크레시아, 옌, 나이엘, 아이리, 제나, 린시엔.)



 제3팀: 레이/스트라이커, 샬롯 - 탈락 -, 카일웡/스나이퍼(리더), 루크레시아 - 탈락 -

 점수: 2점(이디스, 미카스타)



 제4팀: 옌 - 탈락 -, 이디스 - 탈락 -, 나이엘 - 탈락 -, 미카스타 - 탈락 -

 점수: 1점(샬롯)



 제5팀: 유나/스나이퍼, 에스테로사/디펜더(리더), 양한솔 - 탈락 -, 잉그리드 - 탈락 -

 점수: 2점(마사키, 치나츠.)



 제6팀: 치후유/스트라이커(리더), 마사키 - 탈락 -, 미나토/스나이퍼, 치나츠 - 탈락 -

 점수: 4점(노엘, 펠리세트, 양한솔, 잉그리드.)



 제7팀: 시엘/스트라이커(리더), 아이리 - 탈락 -, 제나 - 탈락 -, 린시엔 - 탈락 -

 점수: 2점(서윤, 유진.)








https://www.youtube.com/watch?v=hYmA6ppYEsU



(초무투전 오반 테마 오리지널)




https://www.youtube.com/watch?v=Luq0ll6CDEU


(초무투전 오반 테마 어레인지)


(음악에 대해서 잠깐 말하면, 이건 오반의 테마로 지정된 곡이긴 해도 진짜 손오반 같단 느낌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음…. 멜로디부터 왠지 고풍스런 서유럽계 곡이 연상되었고. 생각해보면 오반 보다는 왠지 레이가 주는 존재감이랑 완전히 잘 맞는 것 같아서 링크 걸었음. 어레인지는 피아노로 연주됬지만 중간에 편곡된 부분이 살짝 맞지 않는 느낌이라 원곡도 같이 올려봄. 둘 중 하나 마우스 오른쪽 눌러서 반복.)














 해가 떨어지는 때.


 폐공장에 있던 레이하고 카일은 다가오는 치후유와 미나토를 보았다.


 앉아있던 레이는 검은 제복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검을 잡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이제까지, 여러 상대들과 검을 나눠보며 자신의 내면을 되짚어본 당신, 그리고 저 멀리에 극동의 사무라이들이 숭상한 무사도를 소중히 받들어오며 그들의 정신을 깨우친 소녀여. 그대에게는 나에게 도전할 권리가 있습니다."


 "……."


 치후유는 단지 침묵했다.


 "앞으로의 운명을 건 싸움에, 몇 가지 질문을 한다면 내가 어떤 거짓도 없는 답을 주도록 약속합니다."


 치후유가 물었다. "결국 당신이라고 해도, 자신의 힘에 한계를 느낀 때가 있을터… 그걸 물어보아도 되겠습니까."


 "모두의 기대를 어깨에 짊어질 때입니다."

 "…그렇습니까."


 치후유가 물었다. "나에게는 검의 길이 인생이자 목적과도 같습니다. 당신에게는 힘이란 무엇입니까?"


 "소원을 이루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떤 소원도 없다면, 힘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저는 할 수 없겠지만, 그러한 번뇌와 열망을 떨치는 걸 해탈이라 부르겠죠."


 치후유가 물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내가 당신을 이기면 그건 당신에게 있어서 무엇을 뜻합니까? 그리고, 당신이 나를 이기면 그건 당신에게 있어서 무엇을 뜻합니까?"


 "어느쪽이건 운명이자 숙명으로 생각합니다."


 "……."


 치후유는 눈을 감았다가, 전의를 다지곤 눈을 부릅 뜨면서 외쳤다. "나나하라의 무사, 나나하라 치후유가 그대에게 도전한다!"


 그리고 칼을 크게 휘둘러, 레이도 달려나가며 외쳤다. "오십시오, 그 카타나가 얼마나 예리한지 시험하겠습니다!"


 3팀과 6팀의 싸움.


 스트라이커인 레이와 스트라이커인 치후유가 시작부터 격돌했다. 거리를 재며 발도술로 견제하는 것을 레이가 칼등으로 막으면서 진입각을 보는 동시, 스나이퍼인 카일은 뒤쪽에서 화살을 자신에게 쏘아댄 미나토에게 총구를 향하며 반격하였다.


 검사 둘의 싸움은 되려 탐색전과 같은 분위기로 시작됬다. 치후유는 깊숙히 파고들어 일격을 먹이려고 하질 않고 단지 거리 자체를 베듯 유지하며, 레이가 큰 기술을 사용하는 걸 주의했다.


 어째서 코치들은 레이가 치후유보다 강하다고 수긍했던가?


 너무나도 간단했다. 팔힘에서 강했기 때문이다.


 치후유의 랭크는 최하였다. 그게, 그녀 자신이 약하단 말은 아니지만, 비교대상인 레이는 최상급의 카운터 워치를 가졌기에 마치 장검이 아니라 거대한 육중한 양손도끼를 휘두르는 수준이었다.


 저쪽은 단지 힘으로 밀어버리면 끝인 싸움이지만, 이쪽은 기술하고 직감으로 커버해야만 하는 싸움이었다.


 '큰 기술을 쓸 때, 그것을 반격하거나 혹은 회피하여서 역공을 가한다…!'


 치후유는 레이를 어떻게 상대해야 승산이 있을지 알고 있다.


 그리고 레이도.


 '얼핏보면 공격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방어가 목적인 그냥 견제야… 빈틈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군.'


 치후유가 계속해서 거세게 팔을 휘두르고 있긴 하지만, 서로의 검을 맞대는 건 피하려는 기색을 알아챘다.


 '지치지 않고 얼마나 그럴 수 있나 시험해 볼까.'


 그래서 둘의 싸움은 고착되었다. 레이도 수동적인 스탠스를 유지했기 때문에.


 하지만 그 상황은 외부적인 요인에 큰 변화를 맞게됬다.


 챙, 챙, 계속 칼끝이 비스듬히 칼끝에 닿는 소리가 퍼트려진 전장에서.


 미나토는 엄폐물의 뒤에 숨은 카일에게 계속해서 화살을 쏘았다. 둘은 같은 스나이퍼였고, 보통은 카일이 미나토보다 우수한 퍼포먼스를 보였기에 그쪽에 우위가 있을거라 생각하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반대였다.


 활은 곡사로 화살을 쏘지만, 총은 직사로 탄환을 쏘기에 여기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서로 거리가 먼 것도 아닌데, 미나토는 나무 뒤에 숨어서, 카일은 컨테이너 뒤에 숨어서 서로 엄폐물을 두고 사격하는 와중.


 미나토가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그냥 머리 위로 쏘아서 맞춘다.


 아무리 미나토가 눈에 띄는 실력은 아니라고 했어도, 건틀렛 아카데미에 있는 이상 그 정돈 할 수 있었다.


 "크윽… 벌써 몇 발 맞았지?!"


 카일의 얼굴이 꽤나 당혹감에 일그러졌다. 처음 몇 발은 그냥 운 좋게 맞췄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사실 운이 아니라 진짜 실력인 거다. 계속 여기서 공격을 교환하면 분명히 자기가 먼저 죽어버릴 거다.


 '…그렇다고 여기서 내가 뺀다면, 6팀은 레이를 집중공격하게 될텐데…!'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분위기 읽을 줄 알던 카일은 한숨을 쉬면서 외쳤다. "레이, 고글을 쓰세요! 장치를 가동하겠습니다!"


 하지만 둘의 결투에 신경이 팔렸었던 레이는 얼굴을 찡그렸다. "…뭐? 지금 하겠다고?!"


 그리고.


 검사 둘의 싸움은 그대로 다른 국면을 맞았다. 사방이 오색의 입자를 띈 안개에 가려져, 미나토는 물론이고 치후유도 볼 수 없게 됬다. 치졸하단 느낌도 없잖아 있었지만, 레이는 떨떠름하게 고글을 쓰곤 그대로 달려들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에 대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치후유는 완전히 달랐다.


 "이런 저급한 수단까지 쓰다니… 되려 마왕 같군요."


 그렇게 말하며, 눈이 보이지도 않는데 칼날을 흘려냈다.


 심안.


 '이건… 되려 놀라운데.'


 레이는 뒤로 빼면서 다시 칼을 휘두르곤 스텝을 양쪽으로 밟으며 치후유의 옆구리를 노리며 휘둘렀다.


 챙, 챙. 계속 울려퍼지는 소리. 하지만 어느것도 닿질 못하였다.


 "…이번에는 눈이 아닌 귀를 교란시킬 생각입니까?"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진정한 검사는 검으로 검을 쫓을 뿐. 인간의 불완전한 감각에 의존해 세상을 보질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정통으로 칼을 밀어내듯 찔렀다.


 "…큭!"


 명치를 찔렸다. 그리고 뒤로 물러나는 레이.


 "……."


 스스로 맞춘 걸 알곤, 치후유는 미나토를 향해 뒤를 돌아봤다. "미나토는 적의 저격수를 쫓아 처치하십시오!"


 "아아, 맡겨두라고!"


 안개에선 화살을 쏘질 못한다. 그래서 공장 쪽으로 들어가야만 하겠지. 근데 그래도 괜찮아.


 '아까 화살을 충분히 맞췄으니까, 카일도 더는 견디지 못하고 끝날 거야!'


 그 생각은 카일도 했었다. 이미 빈사에 가까운 카일은 저렇게 몸을 날려온다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런, 후퇴를…!"

 "놓칠까보냐!"


 그렇게 말하면서 둘은 지하실로 그대로 들어갔다.


 '당했다…! 당황해서 위층이 아닌 아래로 내려왔어. 여긴 도망칠 곳도… 음?'


 중앙에 있는 거대한 철덩이.


 그래. 그랬었지. 여긴 야니우스의 잔해가 있었다.


 '…….'


 '야니우스… 나에게도 힘을!'


 그리고, 카일은 섬광과도 같이 떠올려진 발상에 모든 걸 걸었다.


 바로 지나지 않아 미나토도 시위를 당긴 채로 들어와 전방향에 겨누었다.


 "한 발만 맞아도 죽지, 카일?! 알고 있어, 아까 엄청 맞았잖아!"


 팽팽한 긴장감.


 "이쪽으로 왔었는데… 그래, 저기 로봇처럼 보이는 것 뒤에 숨었지, 그렇지?"


 그리고….


 이쪽으로 주의하며 온다. 보자마자 바로 쏘겠지. 하지만 그 이전에….


 "지금이다!"


 그렇게 외치는 카일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야니우스에 장전된 후추 미사일이 갑자기 날아갔다!


 "무, 우, 이, 콜록, 콜록… 이게, 뭐얏?!"


 얼굴에 정통으로 맞은 미나토는 눈을 껌뻑이며 잡았던 활도 놓치고 떨어트렸다.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카일은 달려가서 바로 떨어진 활을 잡아다 반대쪽으로 집어던졌다.


 그리고 총구를 겨눴다. "끝났습니다, 미나토."


 "크, 우욱, 콜록, 콜록… 제, 젠장…."


 탕!


 그리고 바깥에.


 미나토가 탈락했단 소리에 귀를 기울인 치후유에, 그 미세한 움직임을 보았던 레이는 빈틈이라 생각해 전력으로 몸을 날리면서 내리치려고 돌격했다.


 하지만….


 쨍강!


 치후유는 몸을 기울이듯 피하며 품에 파고들어 그대로 고글을 부숴냈다.


 "이, 이건…!"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었다.


 "…빈틈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레이 공. 저를 너무 얕보신 것 같군요."


 치후유는 칼을 돌리며 다시 납도하곤, 그대로 안개 속에서 걸어왔다.


 레이는 - 그녀와 다르게 - 이런 오색의 안개 속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적이 어딨는지도 모르고 칼을 어디에 휘둘러야만 할지 감도 잡히질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이 설치한 함정에 역으로 걸리게 된 것이다.


 "큭…!"


 치후유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서 빠르게 스텝을 밟으면서 칼끝으로 계속해서 레이를 베고 찌르며 밀어냈다. 이런 잔칼질에 레이는 계속해서 맞아, 어깨에 부착된 측정장치의 수치는 계속해서 내려갔다.


 '이대로라면 불리해…! 하지만….'


 레이는 자신이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


 승부.


 그것은 서로의 운명과 숙명을 비추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만일 내가 치후유보다 감이 좋질 않다면, 그것 또한 내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진실…!'


 그래서 결국 풀서클에 도달하게 됬다.


 결투의 초반에 치후유는 레이가 큰 공격을 하길 원해서 계속 견제하며 거리를 재면서 돌았지만….


 지금, 레이는 큰 기술을 도박처럼 자신의 직감을 믿고서 날리려는 거다.


 "하아아아…! 갑니다, 치후유!"


 "……."


 하지만 치후유는 눈을 감고서 피했다. 그리고…!


 '여기서 시간을 끌다간 적의 저격수가 와서 가세할지 몰라. 그렇다면 속전속결을 해야겠지.'


 "이것으로 끝입니다, 레이! 절기, 화권…!"


 "……!"

 "큭!"


 만일, 인명을 결정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마지막까지 거짓된 희망을 주었던 건 그 누군가의 장난이었을까.


 자신이 이 판단을 내린 건 필연일까, 우연일까.


 서걱.


 "…무념."


 하필이면 그때.


 노엘하고 싸웠을 때 찔렸던 다리에서 격한 통증을 느껴, 그대로 주저앉았던 치후유.


 그리고 그 소리를 향해, 반사적으로 레이는 검을 쳤었다.


 그렇게, 무사는 당당한 도전자로서 자신이 바라던 최후의 결투를 마쳤다.


 …….


 밤이 시작하는 때.


 폐공장에 있던 레이하고 카일은 다가오는 시엘을 보았다.


 앉아있던 레이는 검은 제복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검을 잡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무림세가들의 시조를 빠르게 잡는다면 당나라의 초기라고 할 수 있을테죠. 역설적이게도 중국의 역사는 현존하는 세계 많은 국가보다 길지 모르지만, 무와 협을 문화권을 상징하는 힘으로서 본다하면 이슬람에 비해서도 늦습니다. 그리고 무공의 깊이도 딱히 서양권에서 개발되진 현대 판타지계 구조들을 시니피케이션(중국화, Sinification.)시킨 것과 다르지도 않습니다. 그러하나 당신, 흑동의 문주여. 그대에게는 나에게 도전할 권리가 있습니다."


 "호오… 대협은 특이한 부류군. 외부인은 무림의 역사에 능통하지 않소. 하물며 그 기원이야…."


 시엘은 묘한 감탄을 했다.


 "앞으로의 운명을 건 싸움에, 몇 가지 질문을 한다면 내가 어떤 거짓도 없는 답을 주도록 약속합니다."


 시엘이 물었다. "그대에게 있어 자객이란 어떠한 존재인지 묻고 싶소. 본녀를 어떻게 보는지 알고 싶으니까."


 "검을 휘두르는 길은 결국엔 하나로 이어져있습니다. 기사도, 무사도, 자객도, 결국 출발지만 다를 뿐입니다."


 시엘이 물었다. "우리의 무공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소?"


 "힘을 다루는 길도 결국엔 하나로 이어져있습니다. 인류가 그 자신의 이상적인 가능성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힘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게 과학이건 마법이건… 혹은 중화에서 전해진 무공이건."


 시엘이 물었다. "강한 힘을 다루는 자는 항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지. 사부는 당신이 양녀로 받아들였던 본녀에게 항상 그걸 상기시켰다네. 대협에게 있어 책임이란 뭔지 여쭤도 되겠소?"


 "침식체로부터 세상을 구원한다는 것만이, 저로서는 버릴 수 없는 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칼에 기를 흘렸었다. "충분히 들었소. 이제는 대협의 힘을 본녀에게도 보여주오."


 그리고 칼을 크게 휘둘러, 레이도 달려나가며 외쳤다. "오십시오, 그 지안이 얼마나 예리한지 시험하겠습니다!"


 3팀과 7팀의 싸움.


 레이는 시작하자마자 카일에게 손짓해서 싸움에 끼어들지 말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카일은 물러났다.


 "…의외로군. 협공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오?"


 "암살자인 당신이 기회를 엿보다 습격하질 않고, 정면에서 결투를 신청했기 때문입니다."


 시엘은 눈을 감고는 수긍하는 목소릴 내었다. "…이게 실전이라면 그렇게 했었을 것이오. 단지, 그대의 무를 보고 싶었을 뿐."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그러면서, 레이는 몸을 돌리며 그 속도를 더해 칼날을 시엘에게 부딪쳤다.


 "…선풍검술! 허나!"


 시엘은 발끝에다가 기를 집중시키곤 회전해, 그대로 밀쳐내었다.


 "오…?!"


 레이는 놀라며 몇 번 반복했었지만, 치후유와의 싸움관 다르게 시엘은 동일한 힘으로 맞받아쳤다.


 "…굉장한 힘이군요. 당신도 최상급 카운터였습니까?"


 "아니, 본녀는 단지 C급에 지나지 않소. 단지 힘을 어떻게 다루는지 알 뿐이라오."


 '근데 이건….'


 우연인진 모르지만, 시엘은 단지 자신의 움직임을 보고서 대응하기만 할 뿐이다.


 레이는 멈추곤 바로 칼날을 기묘한 각도로 세워 찔러대기 시작했다.


 "……!"


 음과 양의 이치였나.


 이쪽에서 정방향으로 칼을 움직인다면 저쪽에선 역방향으로 칼을 움직임으로 상쇄될 것이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예상대로 시엘의 검술에는 이에 대응하는 초식이 없었다. 아니, 어디에도 없을 거다. 로마인처럼 방패를 들지 않는 이상엔….


 보법으로 뒤로 빠졌었던 시엘이 감탄했다. "그런 검술은 처음 보았소."


 "놀라기는 이릅니다. 아직 당신은 제 진심을 보질 못했습니다."

 "비슷한 힘을 가지는 상대였다면 그래도 검술을 시험해보고 싶건만, 본녀는 그 괴력을 감히 맞설 엄두가 없구려."


 그러나 시엘은 포기하진 않은 기색이다.


 기검을 날카롭게 세우곤 말했다. "그렇지만 본녀도 밑천이 떨어졌단 얘긴 아니라오."


 "이건… 설마? 알렌도 썼던 적이 있었어!"


 그리고 시엘은 발을 튕기면서, 그대로 허공에 내리쳤다. 검기가 그대로 바람을 찢으며 레이에게 향하였다.


 "하앗!"


 "……!"


 땅에 사뿐히 착지한 시엘. 다만 다시, 매우 놀란 표정이었다.


 "그토록 정교하고 아름다운 동작으로 막을 줄은 몰랐다오."


 당연했다. 적의 검을 검으로서 막기 위해서는 단지 어떻게든 칼날을 댄다면 그만이다.


 하지만 검기는 달랐다. 철로 벼려진 하나의 물체가 아닌, 말 그대로 기 자체니까.


 가로로 날라오는 검기를 세로로 칼을 세워서 막아봤자 그 부위만이 가려질 뿐에, 실제로는 칼로 물을 자르듯이 나머지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그러나 진짜로 고수였다면… 방향을 재고 완벽히 막아내는 것이 가능하다. 방금처럼.


 "…알렌이 비슷한 기술을 자주 쓰지. 대련 상대로서 항상 막다보니, 이번에도 어떻게 쉽게 할 수가 있었어."


 "……."


 시엘은 다시 검을 휘둘러 기를 싣어내었다. "그 한 번은 단지 시험에 지나지 않소. 진심으로 덤빌테니 각오하는 게 좋을 거요."


 그리고 계속 보법을 통해 벌처럼 날아오르며, 초마다 연속해서 기검을 쏘아날리는 시엘.


 하지만 레이도 계속해서 검을 돌리면서 전부 막아냈다. 중간부턴, 시엘은 아예 어둠에 몸을 숨기곤 보이지도 않는 방향에서 불규칙하게 몰아쳤다.


 '지금의 패턴은… 음!'


 그러나 괜히 마왕… 아니, 대적자가 아니었다.


 기검이 공간에 일렁이는 것을 보곤, 마치 DDR을 치듯 정확한 칼의 자세를 완벽한 순간에 갖다 대며 막았던 거다.


 "……."


 시엘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애초 이 이상 속도를 올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검아일체, 칼날에도 기를 흘려넣어 마치 자신의 신체 일부인 것처럼 휘두른다 하더라도, 검기를 날리기 위해선 팔을 움직이는 동작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저쪽이 그걸 멀리서 보고 반응하니 속도로 밀어붙일 수가 없던 거다.


 "이제 알 것 같군. 그대의 검춤은 완벽함에 가깝소."


 시엘은 어둠 속에서 몸을 드러내며 다시 착지했다. 레이의 어깨에 부착된 장치의 숫자를 보면, 전혀 줄지 않았다.


 멀리서 이걸 얼마나 쏘던 간에, 전부 막아낼 수 있으니 아무런 의미도 없단 거다.


 레이는 칼을 붕붕 휘둘러 접곤 말했다. "칭찬은 고맙지만 결의를 다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정도에 오를 수 있을 겁니다."


 …….


 '어쩐다….'


 근거리서 접근하면, 더이상 회전베기가 아니라 그 기묘한 찌르기로 대응할 거다. 카운터 워치의 덕인지 뭔진 몰라도, 레이는 자신보다 빠르다.


 원거리서 견제하면, 지금처럼 검기를 날리는 정도여야 유의미한 타격이 될텐데 그조차도 인풋 입력을 읽는 보스처럼 전부 쉽게 막아낸다.


 보통 이럴 경우, 아예 싸움 자체를 포기하고 후퇴해서 다음 기회를 노린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제일 강력한 카드인 암살조차 포기한 상태다.


 그렇다면….


 "본녀의 오의를 보여주도록 하겠소. 결국 이걸로 결판을 짓게 되겠지."


 서역의 마법사들은 이것을 헤이스트나 오버드라이브라고 불렀었지만….


 실질적인 원리로는 혈맥의 흐름을 급격하게 개방하여, 일시적으로 매우 강력한 힘을 통하게 한다. 하지만 몸 자체도 해할 뿐더러, 축적했던 기도 전부 소진되어 적의 공격에 대항할 최소한의 무공조차 쓰지도 못하게 된다.


 이게 통하면 이기고, 막히면 진다.


 실전에서도 리스크가 너무 커서 쓰질 아니했던 테크닉이나….


 '이런 때에 쓰기 위한 비술이니, 참으로 적절하지 아니한가.'


 그녀도 문파의 사매가 - 카우마 - 무림세가들의 친선전에서는 자주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 이기면 이기고, 지면 시원하게 패배를 인정하면 되니 이런 상황에는 으뜸패로 채용되기 알맞은 기술임에 틀림없다.


 시엘이 바로 자세를 취하였다.


 레이는 그걸 보고선 팔을 고치며 그대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무엇을 할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하아아아앗…!"


 몸에서 붉게 일렁이는 기의 아우라. 시엘은 그리 소리를 외치면서 집중하곤, 갑자기 몸을 튕기며 빛과 같은 속도로 어둠에 녹았다. 여기저리 발이 치닫는 소린 들리지만, 눈엔 전혀 보이질 않는다. 속도도 속도고, 애초에 몸을 어둠에 숨겼으니까 예측이 되질 않는 것이다.


 그리고 곧이어, 그녀의 잔상이 생기더니, 무수히 많은 분신이 비춰졌다.


 "…설마!"


 그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시엘 본인은 원을 계속해서 돌며 레이가 위치서 이탈하지 못하도록 포위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분신들에게서 일제히, 무수히 많은 검기가 쏟아져내렸다.


 "이것은…! 걸렸다?!"


 레이도 그제서야 눈치채고 말았다. 심안에 눈을 떴지만 애초부터 기를 다루지도 않는 치후유와 달리, 시엘은 매우 어린 나이에 집단의 수장이 된 최소 수재 정도는 되는 여자.


 검기를 바로 날리질 않고, 허공에 붕 떠있게 하여 지연시킨 뒤에, 일시에 중앙을 향해 쏘아지도록 시간차를 극도로 정밀하게 계산시켰던 거다.


 이것은 가히 묘기의 수준이었다.


 흑동이고 백서고 문주이고, 독일인인 레이에게 그게 다 뭔진 모르지만, 어쨌거나 몇백 년이 되는 역사 동안 살아남은 암살자 집단의 수장이란 것은 안다. 그녀가 속하는 집단도 악명 높은 하사신에 견줄만한 것이겠지.


 그리고 그걸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틀렸어… 애초에 어떻게든 포위에서 벗어나면 쉽게 무력화되는 기술이지만, 걸린다면…!'


 당연히, 주먹이나 발길질을 몇 방 맞아주는 것과 다르다.


 전력을 다해서 휘두른 검기를 몇십 발은 넘게 동시에 맞는 것이다.


 총체적 화력은 시엘이 자신의 몸을 직접 사용하는 격투술로도 내지 못할 스케일이다.


 "크, 으으, 으으윽!"


 그걸 전부 맞아버린 레이. 하지만 동시에….


 "아직, 끝난 게 아니오!"


 옆에서 계속 돌기만 하던 시엘은, 부처의 거대한 석상처럼 쾅 육중하게 땅을 울리게 착지해.


 순간 땅에서 무수히 많은 돌덩이들이 치솟아올라….


 "하앗!" 동시에 철근과 같은 단단한 다리로, 레이를 공중에 올려찼다!


 "이것이야 말로 본녀의 오의…!"


 즉시 몸을 회오리와 같이 회전하며 용과 같이 비상하는 시엘.


 바로 떠오르는 바위 하나에 발을 맡기곤, 다시 차며….


 레이의 몸을 자신의 신체 자체가 스치듯이 베고, 그리고 반대편에서 암석에 다시 발을 디딛고 다시 레이의 몸을 베면서 스쳐가고, 다시 다른 반대편에서 돌덩일 밟고 레이를 스치듯이 베어내…!


 그걸 미친듯한 속도로 반복하는, 질풍과도 같은 난격을 가했다!


 그리고….


 쿵!


 다시금, 시엘은 무릎을 꿇으며 땅에 착지하였다.


 공중에 떠있던 레이는, 마지막 피니시로….


 여태껏 천공에 뜬 바위와 암석과 돌덩이들이, 시엘로부터 흘려넣어진 기에 의해 레이에게 날아가서 서로 부딪치며 폭쇄됬다!


 과연, 그녀의 사부는 지금처럼 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시엘을 문주로서 임명했던 것이다.


 …….


 멀리서 둘의 결투를 지켜보던 카일은 놀라워할 뿐이었다.


 "이, 이게 대체…. 레이도 대단하지만, 저 시엘도 이런 기술을 쓸 줄 알았단 겁니까?"


 전세계의 학교에서 카운터들과 잠재력이 있는 학생들을 모집하였던 건틀렛 아카데미라지만, 지금 시엘의 수준에 준하는 학생은 여태껏 얼마나 많이 있었을까?


 너무나도 화려했다. 치후유의 심안도 나름대로 대단하긴 했었지만 - 시엘은 확실히 눈으로 직접 보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실력이다.


 하지만….


 "으, 크윽…."


 격투 게임 초필살기 같은 공격을 맞았던 레이는, 마치 지팡이를 짚듯 검에 힘을 싣어서 몸을 받치곤 일어났다.


 "?!"


 시엘의 눈엔 역력히 당황한 표정이 나타났다.


 레이는, 아직도 쓰러지지 않았다.


 "…어째서?! 그걸 다 맞고 살아남을 수는…!"


 "……."


 레이는 뚜벅뚜벅 걸어오며 말했다. "인정하죠. 꽤나 아프기는 했습니다. 아마… 시엘 당신이 무림인들의 정점이 아닐까 생각하네요." 그리고 칼을 머리 위로 올리며 말했다. "아직 당신이 젊단 걸 감안하면… 언젠가 혼자서 5종 침식체 정도는 쉽게 죽일 수 있는 정도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


 시엘은 금빛 비녀를 풀면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더이상 저항할 힘은 없소. 그래… 이것이 바로 천마와 같은 대협의 무…. 하지만 기억하시오. 언젠가 그대를 꺾기 위한 비술을 무림의 누군가가 찾아낼지도 모른다는 걸."


 그녀의 분홍빛 긴 머리가 땅까지 늘어뜨려졌다.


 서걱.


 그리고 그 형체를 향해, 침묵하면서 레이는 검을 쳤었다.


 그렇게, 자객은 영민한 도전자로서 기교와 기예를 시험하는 최후의 임무를 마쳤다.


 …….




 - 현황 -




 제1팀: 유미나 - 행방불명 -, 주시윤 - 탈락 -, 노엘 - 탈락 -, 펠리세트 - 탈락 -

 점수: 2점(김소빈, 샤오린.)



 제2팀: 서윤 - 탈락 -, 김소빈 - 탈락 -, 샤오린 - 탈락 -, 유진 - 탈락 -

 점수: 7점(주시윤, 루크레시아, 옌, 나이엘, 아이리, 제나, 린시엔.)



 제3팀: 레이/스트라이커, 샬롯 - 탈락 -, 카일웡/스나이퍼(리더), 루크레시아 - 탈락 -

 점수: 5점(이디스, 미카스타, 치후유, 미나토, 시엘.)



 제4팀: 옌 - 탈락 -, 이디스 - 탈락 -, 나이엘 - 탈락 -, 미카스타 - 탈락 -

 점수: 1점(샬롯)



 제5팀: 유나/스나이퍼, 에스테로사/디펜더(리더), 양한솔 - 탈락 -, 잉그리드 - 탈락 -

 점수: 2점(마사키, 치나츠.)



 제6팀: 치후유 - 탈락 -, 마사키 - 탈락 -, 미나토 - 탈락 -, 치나츠 - 탈락 -

 점수: 4점(노엘, 펠리세트, 양한솔, 잉그리드.)



 제7팀: 시엘 - 탈락 -, 아이리 - 탈락 -, 제나 - 탈락 -, 린시엔 - 탈락 -

 점수: 2점(서윤, 유진.)





 달이 떠오르는 때.


 폐공장에 있던 레이하고 카일은 다가오는 에스테로사와 유나를 보았다.


 앉아있던 레이는 검은 제복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검을 잡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우리 세계에서 침식체가 나타났던 것은 중세 무렵… 동로마는 그에 의해 멸망했고, 주위 바바리안들도 무력하게 당했지요. 만일 율리아누스가 나서 서로마를 개혁하지 않았다면 문명 전체가 쇠퇴해 멸망했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기사단의 기원은 거기에 있습니다. 서로마의 프랑크인 동맹들과, 그들이 세운 아르카데나 공국… 전설적인 황제 샤를마뉴하고 열두 명의 조디악 나이츠. 그들을 계승하는 기사여, 그대에게는 나에게 도전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 황도 기사단의 단장 후보하고, 저 구원 기사단의 단장 후보하고 맞서 대결하는 무대가 되었군…."


 에스테로사는 중얼거렸다.


 "앞으로의 운명을 건 싸움에, 몇 가지 질문을 한다면 내가 어떤 거짓도 없는 답을 주도록 약속합니다."


 에스테로사가 물었다. "이건 지금 시험과는 관계가 없지만… 구원 기사단의 구원이란 무얼 의미하는 것입니까?"


 "황도 기사단에선 다른 오더에 대해 딱히 설명치 않았나 보군요. 사실, 별 것 없습니다. 단지 침식체들의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평화를 갈구하는 것이랍니다."


 에스테로사가 물었다. "당신은 평화를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적을 완전히 정복한 때? 외부의 침입을 막는 것?"


 "전자는 로마인의 성향과 비슷하고, 후자는 현대인의 성향과 비슷하군요. 이상적인 감성적인 관점에선 보통 후자라고 하겠으나, 현실적인 전략적인 관점에선 전자가 정답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적대적인 이면세계들을 계속해서 감시하고 공격하며 힘을 기르지 못하게 막아야만 하니까요."


 에스테로사가 물었다. "…그 평화가 정말로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


 에스테로사는 금발의 머릴 뒤로 넘기며, 버고 소드를 들고 달려나갔다. "우문이었군, 그것은 그대와 내가 직접 눈으로 봐야만 할 미래겠지! 투 암즈! 간다, 유나!"


 그리고 칼을 크게 휘둘러, 레이도 달려나가며 외쳤다. "오십시오, 그 브로드 소드가 얼마나 예리한지 시험하겠습니다!"


 3팀과 5팀의 싸움.


 스트라이커 둘과 스나이퍼 둘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맞서기 전에, 에스테로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은 단독으로 레이를 이길 수 없다.


 상대도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항상 목검을 들고 대련했던 결과는, 공격과 방어를 반복하다보면 자신이 먼저 지쳐서 레이에게 승부를 양보했던 것 밖에 없다.


 치후유와 달리 레이의 칼날을 받고 쳐내기는 해도, 지구력이 밀린다는 거다.


 그렇다고 치후유나 시엘보다 검술이 뛰어난 것도 아니라, 호각에 그칠 뿐이지 딱히 검술로서 우월하게 압도해본 적도 없다. 근력은 약하지만 어떻게든 기술로는 승산이 보였던 치후유와 다른 경우였다.


 허나 그러하면?


 에스테로사는 치후유나 시엘과는 달리 날카로운 전술적인 마음가짐으로 상황을 보았다. 평소에도 그런 훈련을 한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움직이면 이쪽이 더 승산이 높을 거다…!'


 카일이 생각한 것과 완전히 반대로 움직였다.


 "어?"

 "이건… 잠깐?"


 카일의 예측은 이것과 달랐다. 유나는 팀의 에이스고 자신은 그에 미치질 못하였다.


 그래서 에스테로사는 아마도 자신이 직접 레이와 접전을 하는 도중에, 유나에게 막강한 화력으로 카일을 재빨리 처치하고 협공을 하자고 명령했을 거다… 그렇게 예상했던 것이다.


 그러면 자신은, 단지 버티면 된다. 그냥 유나가 자길 처치하기 전에, 시간을 끌면서 레이가 에스테로사를 끝내길 기다리면 되는 거다… 그런 것이었다. 애초에 레이가 더 강하니까.


 근데, 아니었다.


 유나는 계속해서 화력계의 주문보단 바닥에 넝쿨이 자라는 스펠을 비롯하여 빠른 견제형 주문만 반복해서 영창했다.


 레이에게.


 오히려 에스테로사는 반대로, 자신만 보고서 달려오는 거다.


 "치, 칫!"


 카일은 바로 고글을 쓰며, 다시 오색의 연기를 뿜는 장치를 작동시켰다.


 스나이퍼라서 상성상 우위긴 하지만, 애초에 서윤조차 제대로 잡질 못했던 페인트 탄이다. 이걸 에스테로사에게 계속 쏴봤자 의미는 없다. 오히려 상성 보정이 없더라도 같은 스나이퍼인 유나를 처치하는 게 더 빠를 거다.


 그러니까 도망가야 했었지만….


 '하지만 왜 이런 판단을 하는 거지?'


 사고가 살짝 경직된 편인 카일은, 자기가 최선이라고 판단한 결론 외에 다른 발상을 떠올리기 적잖이 힘들어했다.


 도대체 에스테로사는 어째서 이 결정을 내린 건가?


 "위르고!"


 지금이 그런 경운데, 에스테로사의 판단은 완전히 정반대에 있었다.


 '여태까지 치후유와 시엘이 레이와 싸우는 모습을 봤었는데… 의외로 레이에겐 뚜렷한 대공 수단이 없다. 그렇다면 유나를 유일하게 공격할 수 있을 카일만을 내가 먼저 처치하면…!'


 그건 체크메이트와 다를 게 없는 상황이다. 유나는 자면서도 날 수 있는데 지구전으로 간다면 단지 방해조차 없이 공대지 마법주문만 난사하여 이길 수 밖에 없어지는 거다.


 카일은 안개 속으로, 계속 달려갔다. 근데….


 "자, 잠깐… 어떻게 계속 쫓아오는 거지?"


 분명, 앞을 볼 수 없어 추적하질 못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마치 심안으로 보는 치후유처럼, 에스테로사는 무서운 속도로 자신에게 달려오며 안개에 가려진 공장의 내부에서도 정확히 위층까지 올라가는 자신을 추적하였다.


 "…이, 이건?"


 그리고 창문에 비친 자신의 옆에는, 처음 보는 처녀의 푸른 혼령이 떠있다.


 "설마… 버고 소드? 그래, 아까 위르고라 외쳤었지?!"


 실수했다.


 저건 그냥 검이 아니었나? 어떤 마법적인 유물인가? 뭔진 모르지만, 저걸로서 자길 추적하는 거다.


 '유나의 마법을 견딜 수 있는 방벽을 짰는데 오히려 에스테로사가 달려왔고, 또 추격을 떨칠 수단도 마련하지 못했어…. 이건 그냥 완전하게 말렸군요.'


 창 바깥을 보니 유나는 레이가 공장 건물까지 들어가지 못하게 계속해서 방해했다. 틀린 거다.


 "칫… 어떻게 된 시험이, 페인트 탄이지만 저격총의 피해량을 이렇게 낮게 설정한 건지."


 카일은 트랩을 작동시켜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려고 했지만… 그조차 딱히 먹히지 않을 건 잘 알고 있었다. 어쨌건 밸런스 갖고 징징거리는 말이긴 했지만, 옆에 샤오린이 있었다면 전력으로 긍정하며 고갤 끄덕였을 거다.


 그리고, 에스테로사가 문을 열며 들어왔다.


 "참으로 안타깝게 되었군, 카일."


 "…예측하지 못한 수였군요. 역시 황도 기사단의 단장 후보…" 카일은 저격총을 겨누었다. "하지만 애초에 전 레이의 덤이었습니다. 포는 잡혔어도 차가 남아있단 것을 알아두시죠."


 탕!


 그리고 바깥에 있던 유나와 레이는, 카일이 탈락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해냈구나, 팀장!"


 유나는 그때에 아예 긴장을 풀고서, 하늘 높이 치솟더니 강력한 마법을 영창했다.


 "일월이여, 눈물이여, 비탄이여! 리겔, 하늘에 뜬 왕자를 칭송하나니… 대지에 깃든 오래된 황금시대의 다이몬들을 일깨우소서!"


 헤시오드의 전설에 관련된 주문이었다.


 유나가 화염 마법에 특화된 스페셜리스트 메이지였어도, 딱히 다른 계열 마법을 쓰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달이 뜬 밤에, 그리고 하늘 위의 별들의 움직임에 따라서 사속성의 정령들을 임의로 일으키는 스펠. 이번에는 물의 거인들이 레이의 옆에서 나타났다.


 "…워터 엘리멘탈?"


 "어어… 물의 정령? 어째서?"


 …과연 견습 대마법사.


 일단 주문을 성공적으로 외우긴 해도, 오늘은 공기나 화염과 암석의 정령이 나타나는 날이 아닌 물의 정령이 소환되는 날짜다. 이건 계획한 것과 달랐었다.


 레이는 내려오며 곤혹스런 표정을 짓는 유나를 보고서 어리둥절했다.


 어쨌건 스펠을 성공적으로 시전했는데 왜 저쪽이 당황하는 것인가?


 유나가 낭패란 표정을 짓는 이유라면, 어쨌던간 자신의 주기술은 화염 마법이며 이런 소환수는 단지 적이 가드에 집중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역할로 세워놓으려던 것이다.


 근데 워터 엘리멘탈이면 완전히 반대다.


 "어, 어쨌건! 그럼 파이어스톰은 쓰질 못하겠고…!"


 에또, 에또, 그러면서 자신의 마법서를 꺼내 뒤적거리는 유나. 밑에서 멍하니 보던 레이는, 갑자기 자신에게 파도를 몰아쳐내는 엘리멘탈을 보고서 발을 띄웠다.


 "하앗!"


 그리고 물을 타면서 베어냈다. 다만….


 칼로 데미질 줄 수 없었다.


 '이거, 공격 자체가 아예 통하질 않는 것 같은데.'


 클라레스의 즈외유즈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침식체를 비롯하여 이런 환상종도 공평하게 데미지를 줄 수 있으니까.


 '하아… 알렌이 검을 빌려준다고 할때 받아둘 걸 그랬어.'


 그렇게 말하며, 여러 워터 엘리멘탈이 쏟는 물을 서핑을 하듯 타면서 여러번 칼질을 했지만, 전혀 의미가 없다.


 "…응?"


 근데 몇 번 반복하다보니 왠지 깨달았다. 이것들은 자기가 있는 곳에다 물을 뿜는다.


 각도가 어디건, 한 번 락온하고 그냥 쏘고, 쿨타임이 지나 다시 락온하는 그런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거… 써먹을 수 있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나무 빗자루에 올라탄 유나를 보았다. 잘하면….


 첨벙.


 첨벙.


 그리고 자신의 생각에 빠져서 뭐가 좋을지 책장을 계속 넘기고 있던 유나는, 그제서야 뒷장에서 뭔가 쓸만한 걸 찾았다. "그, 그래! 이거!"


 뇌격.


 몇 번 연습하지 못한 주문이긴 했었지만, 어쨌거나 물에 젖은 상대로도 시너지가 있는 지금 상황에 완벽한 마법.


 "자아… 그렇다면! 신들의 왕이여, 그리고 시간의 아들이자 천둥의 막내여… 어… 어?!"


 하지만 너무 방심을 하고 말았다.


 "하아아앗!"


 높게, 계속 높게 파도를 타고 있다, 급격하게 몸을 떠올리며 구르듯 칼날과 함께 몸을 돌리는 레이.


 그 공중회전 검격에 유나의 빗자루는 잘려지며 동시에 유나도 땅에 추락하였다.


 "이, 이럴 수가아아아~~~?"


 쾅!


 그제서야 밖으로 천천히 걸어나온 에스테로사는 이걸 보고 매우 당황해 외치었다. "유, 유나?! 도대체 어떻게?"


 그녀가 얼쩡거리다 늦게 나왔지다만, 전혀 나무랄 것도 아니었다. 에스테로사는 자신의 몫을 마쳤고, 공장 바깥에 나와봤자 자신이 처치당해 레이에게 점수만 올려줄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품을 하며 초코바나 먹고 있었어도, 괜히 유나를 방해하는 것보단 나은 것이다.


 어차피 다 이겼던 전투다… 그렇게 생각할만한 이유가 없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이제 얼마나 했는지, 잠깐 조용히 보려고 했는데… 아예 위기에 빠졌던 거다.


 "아, 아야야얏…!"


 머릴 긁적이는 유나. 그리고 허겁지겁 달리는 에스테로사. 반면, 평소였다면 달려가 끝냈겠지만 지금은 소환수에게 계속 막혀 움직이기도 힘들어하는 레이.


 "도대체 뭐 어떻게 되서 떨어졌던 건가, 유나!"


 다그치기보단, 설마 레이에게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어 계산에 오차를 일으킨 것인가 반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나는 그게 어처구니 없는 실수인 걸 알기에 울상을 지었다. "그, 저…."


 "그러니까, 뭐?"

 "아, 아니…!"


 에스테로사는 한숨을 쉬었다. "모르는 것인가? 됬다, 그냥. 중요한 건 레이다."


 손가락으로 가리킨 끝에는, 마왕과 같은 위용을 뽐내면서 걸어오는 밝은 회색 머리의 대적자가 보였다. 워터 엘리멘탈들은 벌써 사라졌다 - 사실 유나의 마력으로는 그렇게 긴 시간에 걸쳐 소환수를 부릴 수도 없었다.


 "삼 분…."

 "…응?"


 "나도 레이 상대론 삼 분 정도는 버틸 수 있다. 위르고에 나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그렇지만 그 이상은 매우 버겁다. 뭘 해야만 하는지 알겠나?"


 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바로 그 이전에 레이를 무너트릴, 초필살기를 하나 준비하면 되는 거지?!"


 "그래, 부탁한다. 처음부터 내가 승부를 걸었던 것은 유나, 너였다. 이것은 너의 무대다!"


 "응!"


 그렇게 말하곤, 푸른 망토를 펄럭이며 그녀는 검을 들고서는 레이와 대치했다.


 "……."

 "……."


 뒤에서 캐스팅을 하는 게 뻔히 보여진다. 레이는 땅에 칼끝을 짚곤 물었다. "제 앞길을 막겠단 겁니까."


 "기사의 이름은 아군들에게 있어 최전방에서 벽의 역할을 수행하겠단 약속과 같다. 당신도 모르는 게 아닐터."


 말이 끝나기 무섭게 레이의 칼이 내려찍었다.


 하지만, 레이가 양손으로 베었던 걸 에스테로사도 칼몸을 다른 손으로 잡고서 막았다.


 "치후유와 시엘은 개인의 무에다가 모든 것을 걸었었죠. 자신의 인생이 곧 그것이었으니."


 힘싸움.


 "그녀들이 나보다 강하다고 할 셈인가?"

 "강하다라… 강하다는 것은 당신에게 있어 결국 무엇입니까?"


 "그건…."


 챙!


 철과 철이 맞댄 상태에서 힘을 주어 밀쳐, 둘은 살짝 떨어졌다.

 검을 바로 잡고, 에스테로사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몸이 아닌, 마음마저 강해야만 진짜 강함이라 할 수 있을테지!"


 본인이 생각한 강함을, 그렇게 상대에 솔직히 터놓는 여기사의 심장.


 그녀는 웃었다. 역시 자신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그걸 들은 레이 또한, 피식 웃으면서 칼을 세우며 몸을 회전시켰다.


 "하앗!"

 "이야아앗!!"


 챙.


 챙, 챙.


 칼과 칼이 부딪치며 청명한 울음소리를 달밤에 퍼트렸다. 앞선 도전자에 비한다면 살짝 투박할지 모르지만, 묵직하고 빈틈 없는 연격이다.


 시엘이 대응할 초식이 없어서 상대하지 못할 찌르기를 계속해 막는다.


 치후유가 팔로서 막을 힘이 없어서 감당하지 못할 베기에 맞대어냈다.


 본인이 짐작한 그대로, 검사 대 검사로서 레이를 이길 실력이 아니지만, 반대로 그녀의 검술은 레이의 공격을 막아내기엔 충분한 수준에 달했던 것이다.


 그렇게 바쁘게 칼을 놀리는 사이에, 레이가 말했다. "누가 제일 강하냐고 물어봤죠!"


 "으음?!"


 하지만 이제 지치며, 전광석화처럼 계속 쇄도하는 난격에 밀려지는 에스테로사.


 "치후유는, 순수하게 자신의 검술에만 의존하는 마음의 강함을 지녔습니다!"


 그리고 몸을 그대로 밀어넣었다. 이건…?


 '이건, 검술이 아니다! 이 동작은…!'


 단순히 팔꿈치를 앞으로 밀며 공격하는 체술이다. 에스테로사는 뺨에 맞고는 뒤로 굴렀지만, 곧바로 일어나 다시 검을 고쳐서 쥐었다.


 하지만….


 "그리고… 시엘은!"


 바로 동시에 도약해 칼로 내리찍는 레이.

 에스테로사는 본인도 알 수 있었다. 이걸 막을 힘은 없다. 그래서, 옆으로 간신히 굴렀다.


 "자신의 유리함을 포기하고, 자신의 불리함을 마주하는, 그런 마음의 강함을 지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격에.


 버고 소드가.


 튕겨져 그대로 놓쳤다.


 "그리고 당신은 문무를 겸비해, 최선의 판단으로 직접 아군들을 이끄는 그런 마음의 강함을 지녔습니다."


 푸숙.


 땅에 박히는 브로드 소드.


 "이건, 졌군."


 그러나 에스테로사는 분한 표정을 짓지 않았으며, 단지 당당하게 서있었다.


 "하지만 기사는 죽을 때도 적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다. 자… 그럼, 나를 치도록."


 "그래… 명예롭게 보내주죠. 당신에게는 깔끔한 탈락을 허락합니다."


 그리고 그 강적을 향해, 존경하면서 레이는 검을 쳤었다.


 그렇게, 기사는 불괴의 도전자로서 자신의 신념에 따르는 최후의 전쟁을….


 "잠까아아아아안!!!"


 말을 자르듯이, 나우 위에 올라갔던 유나가 소리쳤다.


 "?!"


 레이도 에스테로사도 그녀를 쳐다봤다.


 "기다렸었다구! 언제 끼어들지 몰라 고민하고 있었는데! 근데 됬어!" 그리고 손가락을 위로 쳐들었다.


 "몰락하는 제국의 운명과 숙명을 탈선시킨 참 구원자여, 겨울의 축복이 그대의 이름에게 있나니! 떨어지지 않는 로마 만세, 떨어지지 않는 태양 만세! 그대 다시 한 번 광휘를 인류의 적들에게 비추어 주소서… 솔 인빅투스!!"


 그리고 갑자기.


 밤에, 마치 태양이 뜬 것처럼 환한 햇빛이 쓰레기들의 인공섬에 비추어지곤.


 격노에 가득찬 거대한 화염의 주먹이 지상으로 핵폭탄과 같이 떨어졌다.


 "으,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레이는.


 그 단말마를 마지막으로 날아갔다.




 - 결과 -



 제1팀: 유미나 - 행방불명 -, 주시윤 - 탈락 -, 노엘 - 탈락 -, 펠리세트 - 탈락 -

 점수: 2점(김소빈, 샤오린.)



 제2팀: 서윤 - 탈락 -, 김소빈 - 탈락 -, 샤오린 - 탈락 -, 유진 - 탈락 -

 점수: 7점(주시윤, 루크레시아, 옌, 나이엘, 아이리, 제나, 린시엔.)



 제3팀: 레이 - 탈락 -, 샬롯 - 탈락 -, 카일웡 - 탈락 -, 루크레시아 - 탈락 -

 점수: 5점(이디스, 미카스타, 치후유, 미나토, 시엘.)



 제4팀: 옌 - 탈락 -, 이디스 - 탈락 -, 나이엘 - 탈락 -, 미카스타 - 탈락 -

 점수: 1점(샬롯)



 제5팀: 유나 - 생존 -, 에스테로사 - 생존 -, 양한솔 - 탈락 -, 잉그리드 - 탈락 -

 점수: 8점(마사키, 치나츠, 유나 생존, 에스테로사 생존.)



 제6팀: 치후유/스트라이커 - 탈락 -, 마사키 - 탈락 -, 미나토 -탈락 -, 치나츠 - 탈락 -

 점수: 4점(노엘, 펠리세트, 양한솔, 잉그리드.)



 제7팀: 시엘 - 탈락 -, 아이리 - 탈락 -, 제나 - 탈락 -, 린시엔 - 탈락 -

 점수: 2점(서윤, 유진.)




 같은 시각, 건틀렛 아카데미.


 오지만디아스가 외쳤다. "아싸아아아아아아아앗!!! 이겼다아아아아아아아아!!!!!"


 동시에 계속 손톱을 씹으면서 불안하게 쳐다보던 서윤도 짜증내며 소리쳤다. "아닛, 진짜 정말!!!!" 그러자 옆에 있던 시윤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었다. "왜 그래요, 서윤 양? 2등도 나쁘지 않다고요? 하아… 2등이라도 했었으면 좋겠네."


 서윤은 처음엔 눈을 희번득거리며 고개를 돌려 뭐라고 하려다가, 정작 말한 대상이 시윤이다보니 켕기는 게 있는지 결국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카린은 카일이 결승전까지 남자 모두 같이 먹자고 피자를 시켰고, 다른 모두도 부실하고 매점에서 과자와 음료수를 갖고 와서 먹고 있었는데….


 우물거리며 불안하게 피자를 먹고 있던 카린도, 뒤로부터 실비의 어깨에 팔을 감고 기대며 바라보던 루크도, 그리고 프랑스 수입 과자를 코코넛 우유랑 같이 마시고 있던 샬롯도, 그리고 실비 본인도 3팀이 패배해서 3등으로 떨어지자 안타깝단 한숨만 내쉬었다.


 이들의 반응이 재밌는지 소매로 입을 가리며 키득키득 웃는 치나츠, 그리고 구석에서 폰게임을 하느라 딱히 신경도 쓰지 않는 미나토와 마사키와 아이리, 그리고 끝까지 진지한 눈으로 보다 눈을 감고 박수를 치는 치후유, 그런 치후유를 흘깃 보다가 자신도 따라하는 시엘.


 옌들은 학생회에서 마저 업무를 보고 있다.


 오지만디아스가 알렌에게 다가가며 외쳤다. "어때요, 알렌 선생님! 제가 말했죠? 내놔요, 사십만원!"


 "…후우, 레이 이 녀석."


 그리고 제로 콜라를 마시던 카린이 갑자기 뿜었다. "푸후우우우웃!"


 옆에서 잉그리드가 불쾌한 표정으로 봤다.


 "아… 저, 카린 쌤?"

 "아, 아니… 미안해요."


 '뭐야, 결국 학생들 시험으로 내기했잖아? 교사 실격 아냐? 그리고 무엇보다 사십만원? 무슨 판돈이 그래? 여기가 뭔 라스 베가스야?'


 오지만디아스는 장난으로 알렌의 뺨에 지폐를 부비면서 놀렸다. "이얏~ 40만원 어택! 분하지? 분하지?"


 그러자 알렌은 그냥 손으로 슬쩍 밀면서 평소대로의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마요, 줄리아 선생님. 다시 뺏기 전에."


 "아, 그럼 안 되지."


 정색하며 바로 지갑에다 넣는 줄리아.


 "그것보다 레이 녀석… 고작 세 번 연속으로 싸웠다고 저렇게 지쳐하고 방심하고…. 저래서야 불안한데."


 사실 내기에서 졌단 것보다도 그게 더욱 신경쓰였는지, 알렌은 뭔가 진지한 눈으로 화면을 쳐다봤다. 오지만디아스도 장난기있는 목소릴 거두고 말했다. "그렇죠. 레이는 특별한 아이니까. 솔직히 유나하고 에스테로사가 상대라고 했어도, 원래는 레이가 이겼어야만 했는데. 거기다가 카일까지 붙어있었으니…."


 "……."


 알렌은 그래도 기분이 나쁜지, 아니면 단순히 레이가 자신의 기준에 달하지 못한 건지, 눈을 감으면서 혼잣말을 했다. "레이 녀석, 잔소리 좀 해야겠군."


 그리고 저 방에서 캐스터로 작업하던 캐시도, 마지막으로 최후의 생존자와 동시에 1위는 곧 5팀이라며 박수를 치면서 녹화를 마치곤 방으로 나왔다.


 "하아… 하루 종일 재밌었네! 음…? 교장 선생님?"


 그 말에 모두가 뒤를 돌아봤다.


 언제부터 거기에 있던 것일까.


 말끔한 검은 수트에 큰 키, 날카로운 콧날하고 턱선, 눈빛. 연설할 때에도 봤었던 교장이자… 이 세계에선 현자라 불리우는 관리자였다.


 일견 차가운 인상과 달리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 모두 음식을 먹으면서 보고 있었군요. 조금 더 쉴까요? 여러분께 급하게 드릴 말씀이 있어 시상식을 빠르게 마치고 싶은데…."


 카린이 대답했다. "아, 아뇨! 금방 치우겠습니다! 다들, 남은 거 대충 먹고 빨리 치우죠!"


 그리고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모니터 실의 화면엔 검을 뽑으면서 승리의 환희에 젖어있는 에스테로사와, 나무에서 폴짝 내려오며 같이 박수치는 유나가 보였다.


 …….


 에스테로사와 유나는 바로 섬에서 워프되어졌다.


 함선을 타고 출발했던 학교의 운동장에, 다른 모두도 모여 서있었다.


 손을 흔들면서 매우 기뻐하는 줄리아와, 조용히 박수치는 한솔과,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잉그리드.


 진짜, 이겼구나.


 이길 줄은 몰랐는데.


 고개를 돌려보면 저쪽엔, 그래도 마지막까지 힘냈다고 등을 토닥이는 카일과, 뭔가 분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루크, 그것과는 관계 없이 교감 선생님을 바라보는 샬롯이 있었다.


 '그래도, 레이도 강했지. 다음에는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도록 더욱 훈련에 정진을 할까….'


 …어느새 여기 있던 모두에 정이 들었다.


 별빛 아래. 그런 감성과 열기에 젖어있던 도중, 교장이 연설을 생략하고 - 흔치 않은 일이었다 - 바로 시상식을 진행했다. 3위인 3팀이 교단에 서서 박수를 받고, 2위인 2팀이 교단에 서서 박수를 받고, 그리고 1위인 자신의 팀이 다같이 교단에 서서 박수를 받고….


 '뭔가 서두르는 감이 없잖아 있는데…?'


 바로 다음, 교장은 지체하지 않고서 마이크에 대고 말하였다. "호명하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남아주시기 바랍니다."


 옆에 있던 나유빈은 그를 노려봤다.


 "……."


 '아마 급하겠지… 아니, 급해야만 했었겠지. 늑대가 사라졌다면 별도의 구출대를 먼저 보냈어야 할 게 아니었나?'


 차례로 이름이 불렸고, 다른 학생들은 곧 평소대로의 일상으로 복귀하였다.


 일단 지긴 졌다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았냐며, 내일부터 한 달 동안 방학인데 여행이나 갈까 떠드는 서윤들.


 혼자 불리지 않아 뭔가 실망했다며 내일 보자며 집에 전화하는 루크.


 묵묵히 시엘을 보다가 아무런 말도 없이 고개를 돌리는 옌.


 의자에 탄 채로 졸면서 날아가는 이디스….


 한참 티격태격 거렸지만 내일부터 방학이니 노래방에 가고 아침까지 놀자하는 나이엘과 미카.


 멋진 시합 축하하고 덕분에 이겼다며, 선물 - 민초 케이크와 딴 거 - 부실 냉장고에 넣었다는 한솔하고 잉그리드.


 간만에 치후유가 정말로 원하는 걸 하는 모습을 봐서 기뻤다며 또 치후유가 동생이라 행복하단 치나츠.


 별 거 없었는데 우리끼리 마지막을 장식하자며 피시방에 가서 라면으로 떼우고 아침까지 놀잔 마사키.


 그런 거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면서도 어쨌건 빨리 게임이나 하자고 달려가는 미나토.


 린이 부른 리무진에 같이 타고 집까지 가는 아이리와 제나.


 그리고….


 이름이 불렸던 모두들.


 교장이 남은 인원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알고 계시는대로, 1팀의 유미나 학생은 시험 도중에 행방불명으로 처리되었습니다. 본래 이런 안전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게 시켰었지만…."


 …….


 심각한 분위기.


 "현재, 구원 기사단과 황도 기사단의 협력을 받아서 유메노시마 일대에 중요한 특이점은 없는지 수색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침식현상의 전조일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뒤는 그들에게 맡기고서 저는 위험한 임무에 직접 출두해야만 한다고 결정합니다. 미나 학생은 결국 이곳에 있는 모두의 친우이자, 모두의 학생이며, 저에게도 미래를 맡길 수 있는 인생의 후배입니다. 그녀의 안전은 제가 책임졌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실전이자 위험한 작전입니다. 이번 시험의 실적을 보곤 충분하다곤 판단했지만, 아직 졸업하지 않은 여러분들에게 이런 일을 강요하진 못합니다. 만일…." 교장이 이어서 말했다. "이면세계에 가는 것이 불안하다고 느끼는 분들은, 저와 함께 미나 학생을 구하기 위한 탈환대에 참가하지 말고 집에 귀가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불안한 눈초리로 모두를 둘러봤다.


 하지만….


 딱히 모두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서 가만히 남았다. 사실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이름은 건틀렛 아카데미지만, 이 세계 자체가 애초 중세기부터 침식체들과 싸워왔었고, 이 학교도 간간히 현장학습처럼 이면세계에 가서 야생 침식체들을 상대로 실전을 연습하기도 했었다.


 …모두, 어중간하게 강했었기에, 지금부터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데 딱히 겁먹지도 않은 거다.


 "여기, 클라레스 교감 선생님이 차원 흔적을 추적한 끝에, 특정 고심도 좌표에서 미나 학생과 동일한 파형의 CRF를 발견하셨습니다. 탈환대의 팀은 재편성을 하였으며, 곧 차원 함선을 타고 목적지로 출항하겠습니다."


 그리고 교장은 마지막 말을 마쳤다. "학생 여러분들의 협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상성: 없음 (후반부의 유미나 탈환 편에선 적용되지 않음)



 탈환대 함선: 코핀


 함장: 교장

 부함장: 교감 클라레스 아르카데누스 마그누스


 오퍼레이터: 실비아 레나 쿠퍼



 탈환대 제1팀: 나유빈(리더), 노엘, 펠리세트.


 탈환대 제2팀: 라이카(리더), 시윤, 치후유.


 탈환대 제3팀: 알렌(리더), 레이, 샬롯.


 탈환대 제4팀: 카린(리더), 카일, 시엘.


 탈환대 제5팀: 오지만디아스(리더), 유나, 에스테로사.


 함장 경호원: 제이크, 주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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