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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auntlet Academy Episode VIII: Rise of Thamiel --



 어딘지 모를 중세풍 판타지의 깊은, 고요한 적막한 감옥.


 그곳에서 미나는 눈을 뜨며 깨었다.


 "…여긴? 동굴이 아니야."


 그러자, 밖에 있던 뱀의 하반신을 한 간수들은 뭐라고 말했고, 이후….


 십 분 뒤에, 갑옷을 입은 거대한 몬스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다크 로드 네헤모트.


 지금 당장 자신을 죽일 의사는 없어보였다. 그가 낮고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깨어났군, 늑대."


 "……."


 미나가 물었다. "잠깐… 여긴 어디? 맞아, 당신… 그때 동굴에서 나를 습격했지?"


 "그러하다."


 "뭐가 '그러하다'야?! 잠깐, 도대체 왜 날 잡아온 거야? 난 그냥 평범한 C급 카운터라고."


 "……." 네헤모트는 곧 침묵을 깨었다. "너는 아직 너 자신의 역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군. 관리자가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는가?"


 "관리자?"


 "너의 세계에선 교장이라 불리는 남자다."


 "…교장 선생님이랑 서로 아는 사이야?"


 암흑의 군주는 음산한 기운이 비추는 눈을 밝히었다. 목소리는 그것으로부터 울리는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알지만, 아직까지 대면한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너를 매개로서 접선을 요구하는 것이지."


 "하아…." 미나는 한숨을 쉬었다. "맘대로 해, 어차피 나 같은 건 아예 아무도 신경 안 써. 근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걸."


 "아니, 그렇지 않다."


 "위로해주는 건 고마운데 말야, 정말로…."


 "……."


 네헤모트가 침묵하자, 유미나는 버릇처럼 카운터 워치를 보았다. 그런데….


 침식파가 있는 이면세계에선 에너지가 소모되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뭐야 이거? 당신, 설마 침식체가 아냐?"


 "이것을 묻는가?"


 그렇게 말하곤, 네헤모트는 손을 들었다. 갑자기 몰아치는 침식파.


 "큭… 역시!"

 "……."


 다만 네헤모트가 손을 내리자, 갑자기 침식파의 폭풍이 없어져버렸다.


 "…어?"


 "이런 정도야 어떤 마왕이던 할 수 있다. 아스모데우스도 그러고 놀더군. 단지, 세계 전체를 이런 형태로서 조율하는 것은 나 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늑대여."


 미나는 고개를 돌리며 정정했다. "미나라고 불러. 왜 자꾸 늑대라고 부르고 있는데?"


 "…상관없겠지. 그렇다면 미나."


 다크 로드는 철컹거리며 의자에 앉더니, 무겁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너의 '언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미나가 그 정체 모를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을 무렵에.


 같은 이면세계, 멀리 떨어진 상공.


 관리자와 학생들이 탑승했던 함선에선, 브리핑을 하고 있다.


 "목표는 간단합니다. 미나 학생의 위치를 추적, 그리고 회수하곤 바로 이탈하며 원래의 세계로 귀환합니다." 지휘봉을 잡은 교장이 전자 지도에다 툭툭 치며 짧게 설명했다.


 옆의 클라레스를 왠지 부드러운 눈길로 쳐다보던 샬롯이 말했다. "저기… 질문이 있어요."


 "무엇입니까?"


 "클라레스 선생님도 저희랑 같이 싸우시는 건가요?" 왠지 기대에 찬 묘한 눈빛.


 하지만 말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건지, 클라레스는 눈을 감으면서 안타깝단 듯이 말했다. "원래라면 너희 같은 견습생을 이런 이면세계에 무작정 밀어넣지 않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여의치 않게 이런 임무를 내리게 됬다. 다만 짐이 책임지고 너희의 안전을 지켜주겠으니 불안해하지 말거라."


 "네에…."


 '도대체 무슨 질문이…?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나유빈은 머릴 긁적이며 흘깃 보다가 물었다. "교장 선생님, 미나 학생의 위치는 어떻게 알 수 있는 겁니까?"


 "지금 그녀가 소지한 장비의 전파를 추적해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곳엔 야생 침식체만이 아닌… 지성적인 군체들이 잔뜩 있어, 어떤 함정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정찰대를 먼저 보내 확인한 뒤에 작전을 시행하고 싶은데…."


 나유빈이 손을 어깨 높이에 살짝 들며 말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글쎄… 1팀은 이런 정찰에 딱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요."


 "1팀 전체가 아니라, 1팀의 리더인 저와 5팀의 유나가 정찰 임무를 맡겠습니다. 여기서 날 수 있는 인원은 저희 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왠지 이상하단 생각이 드는 유빈이었다.


 '…대체 뭐지? 내가 원래 있었던 세계의 그 관리자 님하고 뭔가 많이 다른데….'


 "괜찮을까요?"


 "미지의 이면세계에선 지체할 수록 위험합니다."


 관리자는 부탁하듯 말하였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갑판으로 나가 날아서…"


 '…여기서 바로 날라고?'


 "아니, 전함의 위치를 적들에게 들켜선 안 됩니다. 그렇기에 일단 저희끼리 하강해, 여기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부터 비행해 탐색하겠습니다."


 "아…. 그러면 되겠군요. 그렇게 해주세요."


 '뭐야…?' 나유빈은 뭔가 의아하단 눈빛으로 교장을 쳐다봤다.


 뭔가 너무 이상한데?


 이 사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아니, 여기 오기 전에 도대체 무슨 계획을 했었나?


 애초에 계획이 있긴 한가?


 "관리자님… 아니, 교장 선생님. 만일 저희가 없는 동안에 적이 공격한다면 어떤 행동을 취하실 겁니까?"


 "그건…." 관리자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대답했다. "그건, 아무래도 전투원과 함께 함선을 방어하려고 하겠죠."


 "방어? 우린 지금 이면세계 한복판에 있습니다. 십몇 분도 되지 않아 적들에게 밀리게 될 거예요." 모두가 나유빈을 쳐다봤다.


 왜 지금 여기서 이런 논쟁을 하려고 드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경조차 쓰질 않고 나유빈이 이어서 물었다. "그런 상황에선 빨리 피하는 게 좋겠죠. 그러니까 여쭤보는 건데… 만일, 이건 가정입니다만, 정찰조인 저희마저 적에게 잡히면 어떻게 할 겁니까?"


 "…그건."


 관리자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


 역시 그랬었다.


 나유빈은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냥 저 혼자 목표지점을 확인하고 돌아오겠습니다. 만일, 적에게 공격을 받거나 불리해지면 도망치세요."


 "…네? 하지만 그렇게 할 순…."


 나유빈은 눈을 감고 침묵하다, 이내에 눈을 뜨며 말했다. "관리자."


 "……!"

 "당신이 저를 이곳에 불렀기에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애초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여기서 죽건 말건 당신이 신경쓸 이유가 뭡니까?"


 "하지만, 하급자를 단지 체스말과 같이 이용하고 그렇게 버린다니…!"


 "과감하단 말이 무정하단 말과 동일한 뜻은 아닙니다. 지금 당신이 가진 건 유약함이지 다정함이 아닙니다. 같은 전사로서 죽음의 무게를 이해하는 것이 지휘관의 본분이나, 당신은 이들을 - 그리고 저를 - 어떤 지켜야만 하는 시민이자 약점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학생들 중 일부는 -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다.


 다만, 교장은 단지 말 없이 시선을 내리깔곤 침묵했다.


 "……."


 "선택의 무게는 무한하지 않습니다. 단지 책임과 같은 무거움을 가집니다. 모두를 살려서 같이 집에 돌아가는 이상적인 지휘관이 되고 싶다 - 역사에서 그런 자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고, 단지 전쟁이 뭔지 이해하질 못하는 겁쟁이의 사고관에 지나지 않습니다."


 교장은 뭔가 의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겁쟁이라고?"


 유빈은 그걸 듣고 나지막히 읊조렸다. "책임의 무게를 무서워하며 그걸 피하려고 하는 겁쟁이가 아닙니까."


 더이상 대화해도 의미가 없다.


 유빈은 그대로 창 밖으로 떨어지곤, 지면에서 조용히 몸을 굴렀던 뒤, 바로 카운터의 힘을 증폭시켜서 달려나갔다. 코핀에서 어느정도 멀어지자 그는 그대로 바위를 밟고 위로 솟아올라 양익을 전력으로 펴서 창공을 가르듯이 날았다.


 애초에 스파이 놀이를 할 생각도 없었고, 빨리 목표를 확인해 적이 추격대를 보낸다고 해도 바로 이탈하여 따돌릴려는 속셈이다.


 …….


 같은 시각, 병원.


 고요하다.


 푸르른 달빛이 비치는 하얀 침대에 누워있던 여자는, 하품을 하면서 깨어났다.


 "호오…."


 마치 이 세상에 있어선 안 될 것 같은 미성.


 "달이, 아름답네."


 그녀의 존재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것이었다.


 "미나는…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내 사랑은…."


 "……."


 창 밖을 계속 보고있던 그녀가 깨어났단 것을 눈치채자, 저편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그림자가 말을 걸었다.


 "지금 일어났나?"


 "너는… 벨제부브? 여태껏 나의 침실을 지켜주었던 거니?"


 "그렇지 않으면 그 네헤모트 녀석이 너의 영향력을 이 세계에서 영원히 날려버렸을테니."


 순결한 신비로운 처녀와도 같았던 분위기가, 갑자기 그 표정과 함께 일그러졌다. "네헤모트… 그 쓰레기가? 농담이지?"


 그리고, 다시 몽환적인 낯빛을 띄우면서 웃곤 말했다. "싫어라, 나는 나의 왕자님이 키스를 해주길 바랬는데."


 "…그건 무슨 농담이지?"


 "어머, 잠자는 숲 속의 공주도 안 읽었어?"


 "…미안하군, 인간 세계의 문화란 것은 우리에겐 하찮은 넌센스다."


 "흐음…."


 새하얀 이불을 걷곤 자리에서 일어나며.


 "일단 고맙다곤 할게. 하지만…." 탐미엘은 이어서 말했다. "게임은 좀 더 기다려야만 할 거야."


 "…왜지?"


 이유를 말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글쎄.


 "참을성 없는 아이네. 대신 클리포트 게임의 우선권은 네가 갖도록 해."


 "흐음…."


 어둠 속에서 마치 무수히 많은 벌레처럼 일렁이던 그림자는, 괴물처럼 굵고 음침한 남성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것도 좋겠지. 하지만… 여태껏 시간을 끌고서, 도대체 뭘 하려고 할 셈인가?"


 "그야, 당연하지 않니?"


 그리고.


 그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으면서도, 조용히 발소리를 내며 어디론가 걸었다.


 "그이를 만나러 가야지."



 .

 .

 .



 '여기 있군. 아니, 그것보다….'


 정말로 여기가 마왕 네헤모트의 이면세계가 맞긴 한가?


 왜 침식파가 아예 없지? 마치 멸망하지 않은 세계처럼.


 어쨌건, 도시처럼 보이는 곳 중앙의 성채에서 창문 너머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미나 양은 무사하군. 근데 구출작전이라….'


 유빈은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돌파해 미나를 업고 함선까지 돌아가서 다시 워프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은 했지만, 사방에 4종 침식체 급의 거대한 스켈레톤 헤드가 떠다니고 있었다. 밑에는 6종 침식체 급의 미노타우로스들이 있다.


 '…….'


 그것들을 보던 나유빈은 중얼거렸다.


 "…이것들은 대체 뭐야? 왜 이렇게 강한 거지? 적어도 허신 급인 괴물이 여러 개나 있다고?"


 게다가 야생 침식체도 아니다. 만일, 자신이 바로 강습해 미나만을 안고서 함선으로 도망친다면, 저들의 지휘관은 방향을 읽고 추적하여 이탈하기 전에 함선을 침몰시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진다.' 유빈은 팔짱을 끼면서 고민했다.


 …….


 "어쩔 수 없지… 일단 보고하는 것이 낫겠어."


 돌아가서 나유빈은 교장에게 설명했다.


 미나를 발견하긴 했지만, 주위엔 비행형 4종 침식체와 육상형 6종 침식체가 잔뜩 있었다고.


 그리고 확실히 말했다. "여기서 싸우면 당연히 집니다."


 평행세계에서 클라레스를 몇 명이나 데려와도 정면승부론 이길 수 없는 전력이었다.


 함장실의 의자에 앉아있던 교장은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포기해야하는 건가…?"


 "포기하라고 하진 않았습니다. 단지 빠르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 거지?"


 왜 이 남자는 이걸 자신에게 묻는 것인가?


 나유빈은 한쪽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당신은 현자라 불리는 남자가 아니었습니까? 당신이 최선이라고 판단하는 결정을 내리세요."


 "……."


 고민하고 있나?


 "아까 보니, 자넨 무척 빠르더군. 혹시 미나 양을 낚아채 함선에 돌아올 수 있다면…."


 "저라고 그 생각을 안 한 것이 아닙니다. 적의 지휘관이 저의 동선을 보고 함선을 위치를 짐작하여 역습할지 모릅니다. 이 함선이 저 침식체들의 공격을 조금이라도 버틸 수 있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그러면, 탈환대 중 일부가 잠입하여 미나를 빼돌리고…."


 "그건 고도의 훈련을 받은 인원에게만 맡길 수 있는 임무입니다. 도대체 누구에게 시킨다는 겁니까? 시엘? 그녀 외엔 아무도 없어요. 하지만 그녀조차 암살이 아니라 이런 구출작전은 경험이 없지 않은지?"


 "혹시, 자네는 나에게 미나 양을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인가? 어떻게 생각해봐도 답이 보이지를 않네."


 "그럴리가 있습니까."


 교장은 한숨을 쉬면서 한탄했다. "시그마라도 있었더라면…."


 '…이 남자는….'


 "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


 관리자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겠나?"


 "돌격조가 함선의 극편에서 적의 시선을 끈 뒤, 강습조가 미나 양을 회수하여 이탈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제 말을 잘 들으세요, 관리자. 애초에 죽음이 없는 전쟁은 없어요. 거기다가 우린 전력상 거의 불가능한 목표를 이루려고 하고 있습니다. 다른 전투원이 필요없다고 판단하면 - 그게 저라도 해도 - 돌격조에 투입시켜서 시선을 끌게 한 뒤 버리십시오."


 "그럴 순 없네!"


 "그러면 도대체 뭘 원하는 겁니까!"


 나유빈은 답답한지 직설적으로 지적하였다. "애초에 최소한의 희생을 원했더라면, 당신은 그냥 미나가 여기서 죽게 내버려두고 원래 세계의 치안과 방어를 강화할 생각을 해야만 했었습니다! 근데 아니었어요! 당신은 기사단도 아닌 그냥 학생들을 이끌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어서 말했다. "이 세계의 미나가 정확히 무슨 역할을 갖는 건지 나도 모르지만, 그게 당신에게 중요한 열쇠이기에 이러한 판단까지 내린 것이었겠죠! 그건 좋습니다, 그렇다면 그걸 위해 진심으로 전력으로 흔들리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근데 지금 보니까 당신은 아예 아무런 계획도 없이 사자의 입 안으로 뛰어들은 것이 아닙니까?!"


 "……."


 "단지 마음 가는대로, 이것이 옳은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했더니 답이 보이질 않아 도망치고. 저것이 옳은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했더니 길이 막혀서 다시 도망치고. 그게 바로 여기에 학생들을 데리고 온 이유가 아닙니까? 미나란 애를 그대로 버린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


 정곡인가.


 유빈은 팔짱을 꼈다. "…제가 맞췄군요. 그렇지 않나요?"


 "……."


 나유빈은 문을 열고 나가면서 마지막으로 이 말을 하였다. "신에 달하는 능력이 없다면, 굳이 스스로서 신의 책임과 의무를 지려고 하지 마십시오. 만일 더이상 누구도 잃기 싫다면 그냥 삼십 분 내로 여기서 이탈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리고 세 시간이 넘도록, 함선에선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유빈은 초조하게 시계를 바라보다… 갑자기 먹구름이 짙게 끼며 요동치는 강력한 침식파가 차원의 전역에 울리는 걸 느꼈다. "이건… 이 정도의 힘은, 설마?!"


 관리자의 함장실에 다시 달려갔던 유빈은 다시금 전율감을 느꼈다.


 "이… 이것은…."


 탐미엘.


 '신화적인 괴수인 티폰과 비슷한 수준이야. 그렇지만…!' 원래 세계에서도 많은 경험과 힘을 쌓아온 그였기에, 되려 기에 눌리지 않고 반발적인 적대심을 뿜어내며 눈을 부라렸다.


 반면, 탐미엘은 가소롭단 듯이 비웃으며 쳐다봤다. "어머…. 너, 이곳의 사람이 아니네?"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말조심하렴, 그냥 지워버릴 수도 있으니까."


 "내가 뭐라고 말할진 내가 정한다."


 "후, 후후후… 뭐지, 이 버르장머리 없는 하룻강아진?"


 그러자 옆에서 있던 관리자가 조용히 나섰다. "그만 자극하는 것이 현명할 걸세. 지금 눈 앞에 있는 여자는 사실…." 그리고 그녀의 정체를 불렀다. "관측된 최초의 신이니까."


 신?


 "신이라…." 나유빈은 옷을 털면서 그냥 중얼거렸다. "저는 이 눈으로 누군가가 순수한 인간의 힘으로 신격에 달하는 걸 보았죠."


 탐미엘은 - 갑자기 그 말을 듣고선 인상을 무척 일그러뜨렸다.


 어째서일까, 이렇게 기분이 나빠할 이유는 아마….


 "어머, 진짜 그냥 넘어가줄려고 했는데, 이 꼬마가 날 자극하네?"


 "……."


 "흥… 뭐, 아무래도 좋아." 탐미엘은 유빈에겐 애초 아무런 관심도 없고, 관리자에게 눈길을 돌렸다. "미나를 찾으러 왔다지? 그런데 고민하고 있잖아? 창문 안쪽의 공주를 위해 세레나데를 부를지 말지를…."


 그리고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내 사랑,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니? 나야, 그 아이야?"


 "…나는…." 그의 입모양을 읽곤, 탐미엘은 즐겁다는 듯이 비웃었다.


 "당신은 우리에… 아니, 나에 너무나 가까워. 그런데도…."


 "……."


 "좀 더 즐겁게 날뛰어주길 바랄게. 당신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후회하고 절망하는 모습을… 내 눈에 새기고 싶어." 그리고 그 머리를 흩날리며, 눈을 번쩍이며 탐미엘이 공간 전체에 외쳤다. 마치 세계 자체가 뒤흔들리듯. "네헤모트, 너의 세계에 불청객이 왔노라. 신에 불경한 이들을 모두 죽여버려라."


 그리고 함선의 모든 기능이 정지되었다.


 "이런…! 잠깐…." 그리고 나유빈은 그대로 뒤를 돌아봤지만, 그곳에 있던 관리자는 아예 사라져버렸다.


 "뭐지, 관리자가…?"


 "어머, 내가 그런 건 아냐. 그이는…" 탐미엘은 양손을 부드럽게 팔꿈치에 받치곤 숙녀처럼 서있었다. "항상 이렇거든, 예전부터. 중요한 일이 생기면 단지 뒤에서 보는 걸 매우 좋아해."


 "……."


 "그럼 잘있어, 길 잃은 꼬마. 네 도발은 그냥 어른스럽게 넘어가줄게. 하지만…." 마지막, 그녀는 뱀처럼 샛노란 마안을 뜨면서 경고를 하였다. "여기서 더 있다가 휩쓸리지 않는 게 좋을걸?"


 곧 그 말을 끝으로 탐미엘도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애초 여기에 아무도 없던 것처럼 모두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게 다 뭐지… 다들 장난질을 치나?!'


 유빈은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곧 쿵 소리를 내며 함선 자체도 불시착해….


 그리고 침식체들이 전부다 몰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이제는 서두르지 않으면 안 돼!" 그렇게 말하며, 유빈은 오른팔을 살짝 뻗으면서, 자신의 날개와 비슷한 색의 적황색 에너지 블레이드를 펼쳤다.


 그리고 다른 손으론….


 쾅!


 왼손으로 그냥 함선의 바닥을 뭉개, 천장에서 떨어지며 모두가 뒤엉켜서 싸우는 꼴을 봤다.


 난장판이 따로 없다. 바깥에는 거대한 해골 머리가 떠다니며 고급 주문들을 난사하고 있고, 안쪽에는 골렘들과 해골들이 함선 내부에서 교사와 학생을 가리지 않고서 공격하고 있다.


 '다들 흩어졌어… 하지만 지금 찾아야만 하는 사람은…!'


 카린. 그리고 시영.


 그 두 명이 자신의 세계에서 건너온 자다. 우선순위는 그쪽의 귀환에 있었다.


 마치 힐데가 블레이드 스톰을 쓰듯, 몸을 회전시켜 앞길을 가로막는 적을 카타스트로피 블레이드로 베어내면서 시영에게 다가갔다. 칼등을 대어 골렘의 팔을 막아내긴 하나, 왠지 힘겨워보였다.


 "시영 씨, 이젠 너무 늦었어요! 우리라도 원래 세계로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쪽에 있던 언데드 워리어가 시영에게 도끼를 던졌다. 그걸 재앙검으로 막은 유빈.


 시영은 칼을 거두며 물러났다. "저도 안다구요! 하지만 카린 씨도 같이…!"


 "좀만 버티세요, 제가 가서 말할테니!"

 "네!"


 모두가 혼란해하는 상황에.


 노엘은 펠리세트의 방패 뒤에 숨으며 바즈라를 날렸지만 어떠한 효과도 없는 걸 보곤 패닉했다.


 치후유는 여태껏 싸워왔던 침식체와 다르게 칼날로 베어내질 못하니 후려치고 있지만, 비효율적이다.

 시윤은 1팀의 멤버도 같이 지휘하는 라이카를 옆에서 보조했다.


 줄리아와 에스테로사는 돌격하여 해골들을 검으로 쓰러트렸지만, 끝도 한도 없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그나마 레이는 카운터 워치의 괴력으로 골렘도 쉽게 박살내긴 했다. 옆에 서서 보조하는 샬롯과 알렌도 비교적 잘 싸우긴 했지만… 유빈은 밖의 원군이 쇄도하면 결국 수에 압도될 것이라고 정확히 예측하였다.


 어쨌건 통로로.


 가던 도중, 해골 전사하고 맞닥뜨린 유빈은 팔을 휘둘러 재앙검을 통해 갈라내곤, 다른 손을 대며….


 "파워 워드…!"


 지금 자신들이 공략하는 언데드 워리어는 강령술에 의해서 되살아난 존재. 에너지 블레이드로 베어도, 다시 재구성해 일어날 뿐이었다.


 자신의 앞길을 막는 해골들에게 일일이 주문을 걸어서 해제시키며, 유빈은 포위되있던 카린들에게 닿았다.


 "유빈 선생님?!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카린, 카일 그리고 제이크. 셋은 책상을 엄폐물로 삼아서 몬스터들을 간신히 막고 있었다.


 "상황을 설명할 시간이… 제이크 선생님, 둘을 안고 전격 방어막을 쳐요!"


 "뭐? 아, 알았어!" 뭔진 모르지만, 제이크는 뭔가 있겠거니하고 즉시 지시대로 했다.


 "하아…!"


 에너지를 차지하곤.


 "라이트닝---- 어스퀘이크!!"


 그리고, 뭉쳐있어 포위망을 형성하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번쩍이는 전기 폭풍과 지진이 몰아쳤다.


 키이이이이이익---!

 카악- 카아아아악-!


 전부 쓰러졌다.


 물론 미리 방전 보호막을 치란 경고를 했듯이, 이 범위공격은 함선의 외벽까지 뚫었다. 애초에 탐미엘이 땅에 추락시킨 배라서 그걸 신경써야 할 건 아니지만….


 "후, 유빈 선생. 나만큼은 아니지만 짜릿한 공격이야. 고맙군, 오늘 당신을 보곤 많이 놀라는 걸."

 "……."


 선글라스에 가려졌지만, 어쨌건 살았단 표정을 짓는 제이크.


 유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곤, 카린에게 눈길을 돌렸다. "잠에서 깨어날 시간입니다, 카린 준장."


 "뭐…? 카린 준장?"


 "……." 카린은 조용히 고개만 저었다. 그걸 보곤, 유빈은 그녀의 어깨를 잡고선 흔들었다.


 "여기 있으면 당신은 죽어요! 밖을 보십시오, 저게 보입니까? 6종 침식체는 되는 소머리의 거인들이?!"


 그것만이 아니었다. 더욱 많은 골렘들과 해골들이 증원되고 있다. 하늘에는 검은 로브를 입은 마법사도, 공중을 부유하는 해골 머리들과 보조해 마법주문들을 난사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유빈의 가슴에 손을 대면서 조용히 미는 카린.


 고개를 숙인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무리예요, 유빈 선생님."


 그리고 일어나며 저격총을 장전했다. 왠진 모르지만 그녀는 울고 있었다. "저… 원래 세계가 전혀 기억나질 않아요. 게다가…."


 정말로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그런 척을 하면서 여기서 최후를 맞고 싶었던 것일까.


 "여기엔 제 남동생도 있고, 제이크 선생님도 있고… 모두가 있는데 전부 버리고 저 혼자만 갈 수는 없는 걸요."


 어쩌면.


 그녀는 그 사진을 보여줬던 때부터,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찾던 사람은 바로 여기에 있었기에, 떠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


 그때.


 저편 창공에서 부유하던 해골, 아이언 리치들 중 하나가 눈을 빛내면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강력한 회오리 바람이 몰아쳤다.


 "우읏… 꺄, 꺄아아악!!!"


 카린은 그에 휘말려 날아가버렸다.


 "누, 누나! 안 돼!!"

 "카린!!!!"


 '이런…!'


 양팔에 카일과 제이크를 잡고서 엎드렸던 유빈은 카린마저 붙잡지는 못했다.


 결국 그녀는 놓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제이크는 일어나자마자 그녀를 쫓으려고 했지만, 유빈이 붙잡았다.


 "이거 놔!"


 "지금의 당신은 교사입니다, 제이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예요!"


 "……."


 "카일하고 같이 따라오세요, 당장!"


 유빈은 힐데가 아니었다. 언제라도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순 있지만, 눈 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다. 더욱이 자신은 이들에게 코치이자 교사였다. 적어도 학생들만은 여기서 구출해야 했던 거다.


 그리고, 그 책임은 지금의 제이크도 공유했다. 그들은, 뭐가 어쨌던지 지금 선생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일을 포기하고 그르쳐선 안 되는 거다.


 '시윤, 노엘, 펠리세트… 여기에서 벗어나도, 원래 세계로 갈 수단이 있나?'


 없다.


 시험 당시에 쓰인 전송장치는 공간이동 기기이지, 세계간 점프를 시행할 순 없었다.


 애초에 함선 자체가 침몰되선 안 되었던 것이다.


 '이러니까 재촉했던 거다…! 근데 듣지를 않았어! 도대체 뭔 생각을 하고 있다가, 이런 중요한 때엔 혼자 사라져서 모습조차 보이지를 않는 건가?!'


 어쩌면 이것도 투쟁의 익숙한 광경일지도 모른다.


 지휘관은 혼자 도망치곤, 남은 병사들은 절망과 비탄에 빠져서 상관의 무능함을 저주하며 죽어가는.


 …사실, 침식체들의 위협에 맞서는 평행세계엔 되려 이게 정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라이카!"


 멀리서 투명한 골렘이 자기 조교의 뒷통수를 찍으려 한 걸 보고는, 급하게 오른팔을 휘둘러 에너지 블레이드를 날렸다. 쉭 날아가며 곧 그것의 팔에 박혔다.


 "조심하세요, 보이지 않는 적도 있어요!" 그렇게 외치며, 손을 꽉 쥐며 재앙검의 에너지를 터트렸다. 터진 골렘의 잔해에 맞은 라이카는 놀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아… 네!"


 시윤, 펠리세트, 노엘. 전부 그녀 옆에 있다. 나머지는….


 "유빈 선생!"


 클라레스가 다급히 불렀다. "여태까지 어딨었던 건가?!"


 "엔진 관리실에 포위됬던 카린들을 찾아봤습니다."


 "카린? 하지만 제이크 선생과 카일 학생만을 데려오지 않았는가?"

 "……."


 "그건 됬어, 바깥의 상황은 어떤가?!"


 둘러보면, 흩어졌던 전투원은 모두 클라레스를 중심으로 집결하였다.


 '관리자가 해야만 하는 일을 교감이 대신하고 있군….' 그렇게 생각하면서 보고하였다. "거대한 망치를 든 미노타우로스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전부다 제6종 침식체 급이예요! 어떻게 하실 겁니까?"


 "……."


 모두가 싸우고 있는 와중에, 클라레스는 창 밖을 봤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짐과… 그래, 알렌. 미안하지만 부탁을 해도 되겠나?"


 검술로 적을 견제하다가 헬파이어를 쏘던 알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박쥐로 변신했다가 클라레스의 옆으로 날아와 변신을 풀었다.


 눈을 감고 고갤 끄덕였다. 그도, 이런 상황에 대한 각오가 되있던 거겠지.


 "훗… 마지막 저승에 가는 길까지 함께 하지."


 "…지옥에 떨어져도 상관은 없다. 단지 혼자 간다면 지루할테니 말이야."


 그렇게 말하고, 서로 어깨를 툭 치는 둘.


 "……."


 각오가 빠르군, 그렇게 생각한 유빈이다.


 "하나만 부탁해도 되겠나?"


 "무엇이든지 괜찮습니다."


 클라레스는 즈외유즈를 들고서 학생들을 칼끝으로 가리켰다. "미안하지만, 저들의 목숨을 자네에게 맡기겠네."


 "…일단, 이곳의 포위를 뚫어야만 하겠군요."


 "짐하고 알렌이 적 주력부대의 시선을 끌도록 하겠다. 절대로 실패하지 말도록."


 "……."


 유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레스는 유빈에게도 어깨를 툭 치면서 마지막 인사를 한 뒤, 큰 소리로 외쳤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임무는 실패하였다! 하지만 짐은 책임을 지고 모두가 여기서 탈출할 시간을 벌겠다, 모두, 나유빈 선생의 통솔을 따르도록!"


 그 말에.


 펠리세트의 방패 뒤에 숨어서 권총을 쏘던 실비아도.


 시윤의 옆에서 카타나를 휘두르던 치후유도.


 위험에 처한 노엘에 달려오며 구해주던 에스테로사도.


 전방으로 돌진하는 레이를 원호하던 시엘도.


 유나가 마법을 시전하는 동안에 적을 막았던 샬롯도.


 거대한 박쥐로 변한 알렌과 그를 타고서 마치 거신과도 같이 대지를 울리며 다가오는 미노타우로스에게 날아가는 클라레스를 보았다.


 그리고….


 "안 돼요! 클라레스님!!"


 자리를 벗어나 그를 쫓아가려는 샬롯을 제지하면서, 유빈은 모두에게 소리쳤다. "줄리아 선생님, 주시영 선생님! 일단 함선에서 나가야만 해요! 학생들과 함께 저를 따라와요!"


 그렇게 말하곤, 손날에서 펼쳐진 재앙검을 길게 늘어트려서 외벽을 절단하곤 길을 만들었다.


 함선의 바깥에.


 '여기서는…!'


 이제서야 전체적인 전황이 확실하게 잡혀졌다. 적은 - 누가 지휘하는 건진 몰라도 - 제공권을 장악하기 위해 비행형의 침식체와 마법사를 보내고선, 경보병을 서둘러서 보내 포위하고 주력 부대를 뒤따라 보내는 거다.


 추락한 함선의 주위에도, 다행히, 이제까지 싸웠던 골렘하고 언데드만 보였다.

 힘으로 제압하긴 어렵지 않단 뜻이었다.


 "모두, 웻지 포메이션을 짜겠습니다!"


 옆에 있던 라이카가 중얼거렸다. "…웻지?"


 "……."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는 건가.


 "전투력 순으로 앞에 서서 적의 진형을 꿰뚫고 돌파합니다! 제가 선두에, 제이크 선생님이 저의 왼쪽 뒤에, 줄리아 선생님이 저의 오른쪽 뒤에… 그렇게 다들 삼각형으로 서요! 준비가 됬다면 신호에 맞춰 돌격합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침식체의 포위망을 뚫고 강행하여, 그곳에서 이탈했다.




 - 생존자 현황 -



 탈환대 제1팀: 나유빈(리더), 노엘, 펠리세트.


 탈환대 제2팀: 라이카(리더), 시윤, 치후유.


 탈환대 제3팀: 레이(리더), 샬롯.


 탈환대 제4팀: 카일(리더), 시엘.


 탈환대 제5팀: 오지만디아스(리더).


 오퍼레이터: 실비아 레나 쿠퍼


 예비 전투원: 제이크, 주시영.




 몇 시간 뒤, 네헤모트의 성채.


 "…내가 죽이라고 하지 않았었나?"


 클라레스도 카린도 알렌도, 전부 포로로서 붙잡기만 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탐미엘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네헤모트를 쳐다봤다.


 "의회는 이미 이들을 포획하여 심문한단 것으로 결정했다."


 "어차피 그 의회의 수장도 네가 아니었니?"


 네헤모트는 부정은 하지 않았다. "마왕들은 너를 신으로서 받들기도 하나 전부는 아니다. 이곳의 정치에 간섭하고 싶은가?"


 건방진 쇳덩어리 녀석이.


 탐미엘은 이전부터 이… '초월의 마왕'이라고 불리우는 자를 누구보다 아니꼽게 바라봤다.


 "흐응…. 그렇다면?"


 그러자 네헤모트는 검을 휘두르더니 칼날을 이쪽으로 향했다. "감히 이곳에서 원로원의 권위에 도전하나? 네가 이기면 날 공허로 추방하여라. 반대로 내가 이기면 널 망각으로 던져버리겠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네헤모트는 그녀를 자극만 하지, 먼저 공격하지 않는 이유가 달리 있었다.


 그가 탐미엘을 공격하면 조약에 의해서 다른 마왕들은 전부 네헤모트를 공격하지만, 반대로 탐미엘이 선공을 치면 아무도 끼어들어야 할 필요가 없던 것이다. 그리고 - 그것이 네헤모트가 원하는 상황이었다.


 "…시시해. 관둘래." 물론, 그렇게 뻔한 도발에 걸려줄리가 없다.


 잠시 지루하게 침묵하던 둘.


 다시 입을 연 건 탐미엘이다. "그보다 미나는?"


 "지금은 나의 포로다. 만나게 해줄 순 없지."


 "어머나, 언니로서 면회 좀 하고 싶다는데 그것도 안 돼?"


 네헤모트는 마치 탐미엘의 말버릇을 놀리듯이 그녀가 자주 썼었던 말을 따라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


 고요히 높은 곳에서 창 밖을 보며 운치를 즐기던 처녀.


 지금 어둠의 군주와의 회화에 의해, 불쾌감을 느끼길 시작했다.


 "여전히 짜증나는 성격이네, 자고 일어나도 넌 달라지질 않아. 그래… 로자리아처럼 귀여워지면 안 돼?"


 탐미엘의 날이 선 말투.


 하지만 네헤모트도 비슷하게 반응하였다. "나에게 있어 이곳의 불청객은 관리자가 아닌 너다, 여자."


 관리자라….


 "흐응… 뭔가 아쉽게 됬네. 우리 그이가 얼마나 이를 갈면서 증오할지 기대했는데. 자기 때문에 이 하찮은 개미 같은 것들이 또 죽었다며 괴로워하는 모습은 어떨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안아주고 싶다니까."


 "……."


 "너무 상냥한 사람이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네헤모트는 그녀의 헛소리가 하찮다고 생각하면서도 대답해줬다. "…그렇게 죽이고 싶다면."


 "응?"

 "포로들로 토너먼트를 열어주지. 네가 직접 참가해서 관리자에게 비탄과 분노를 느끼게 하는 것은 어떠한가."


 …….


 "못 본 사이에 진짜 뱀 같아졌어. 부부 사이를 이간질하는 취미가 있네? 그리고 무엇보다도…."


 탐미엘은 뭔가 가소롭단 듯이 표정을 바꿨다. "내가 네 무대에 올라 춤을 춘다고? 꿈에서라도 그럴 것 같니?"


 "…서로가 느끼는 감정은 같나보군. 나도 그 멍청한 클리포트 게임엔 어떤 관심도 없다."


 탐미엘은 되려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다시 피식 웃으면서 아무런 말도 하질 않았다.


 "그러하나 이런 말은 의미가 없어."


 "……?"


 "관리자는 지금 당장에 떠날 것 같군."


 그러자 탐미엘은 이제껏 진지한 태도의 낮게 깔던 목소리와 달리, 소녀처럼 당황했다.


 "뭐어~? 정말?! 말도 안 돼!"


 "어쩌면 게임 자체의 의미가 없어질지도 모르지."


 "이거 네 책임 아니야? 네가 너무 압박을 줘서 그렇잖아!"


 "당신이 그를 너무 자극한 결과다."


 그리고 네헤모트는 철컹거리며 방에서 나갔다. "…그가 버려둔 말은 나에게 회수할 권리가 있겠지."


 어둠의 군주의 뒷모습을 보며, 탐미엘은 중얼거리다가 흥미롭단 듯이 미소를 지었다. "흐음… 흐음… 하지만, 토너먼트라…. 오랜만에 눈을 떴으니까, 그것도 재밌는 구경거리가 되겠네."


 동굴.


 아직도, 네헤모트의 이면세계에.


 어떻게든 학생들을 원래 세계로 보내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그 방법이 없는 상황.


 제이크와 줄리아는 그 난리에 관리자도 전사하지 않았냐 물었지만, 유빈은 고개를 저었다. 본인의 눈 앞에서 사라졌던 것을 봤으니까. 그리고….


 "차원 함선이 격침된 이상, 우리만으로 원래 세계에 돌아갈 수는 없어요. 교장 선생님을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나유빈은 그렇게 말하며, 줄리아에게 자신이 없는 동안에 생존자들을 지휘하라고 부탁하곤 바로 떠났었다.


 …….


 다들, 아무런 말도 없었다.


 굳이 입을 열어야만 할 필요가 없던 건지도. 딱 봐도 여기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시영만큼은 달랐다.


 '…하아. 결국 이렇게 됬네요. 근데 유빈 씨는 무슨 생각으로 아직까지 남아있는 건지….'


 나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냥 돌아가서 잠이나 자고 싶었다. 남의 세계 일이라고 신경을 끄고 싶었다. 그야, 도와줘서 진짜 해결될 일이면 모를까, 자기 힘으로 대체 뭘 할 수 있겠나.


 사실, 시영도 유빈에게 귀환장치를 받았으니 원하면 지금 당장 떠나도 되긴 했다. 하지만….


 '뭐랄까… 카린 양이 걱정되네요.'


 그녀는 마지막에, 이곳에 있는 남동생과 제이크를 버리고 갈 순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전해들었다.


 제이크는 그렇다고 쳐도, 카일까지?


 참 카린다운 성격이다….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납득하는 시영이다. 힐긋 시윤을 보면, 자신은 딱히 그렇게 큰 감정은 들지 않는데.


 생각해보면.


 이곳에 처음 왔을때, 어째서인지 '역할'을 부여받았다.


 '이곳의 제 자신이라고 했었던가요… 생각해보니 성격도 얼굴도 약간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시윤의 사촌 누나. 그리고 건틀렛 아카데미의 한국어 교사란 직책에.


 자신 뿐만이 아닌, 다른 모두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


 카린도 건틀렛 아카데미의 영어 교사로 동일히 모두에게 인식되고 카일의 누나란 역을 받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분명히 그 기계는… 이곳의 관리자가 만들었다 했었죠. 이면세계의 누군가를 불러오며, 기억을 덮어씌워서 이곳의 생활에 그대로 적응시키려는 것 같았는데.'


 그것의 기능은 알겠지만, 설계자인 교장의 진짜 의도는 무엇일까?


 처음 이곳에 올땐, 남의 기억을 헤집는 것을 보고서는 절대로 착한 사람은 아닐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년 지내보니 왠지 모르겠다. 단지 이면세계에 저항할 뿐인 평범한 남자처럼 보이기도 했었고.


 …….


 뭐, 고민해도 모르겠지.


 '하지만….'


 시영은 제이크를 힐끔 쳐다봤다.


 "……."


 아직도 카린이 신경쓰이는 걸까. 사실, 자신도 그렇긴 하지만.


 이 남자는… 자신의 세계에 있었던 제이크 대령이었다. 애초에 카린이 수거한 이면세계 전송기기란, 여기에서 만들어져 우리쪽 세계로 보내졌다. 그걸 제이크가 리플레이서 사태 이전에 주운 것이었겠지.


 본인은 그 물건이 뭔진 이해하였을까? 아마 그랬던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이상한 아티팩트라고 생각하여 사적으로 보관했던 것인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어쨌건, '제이크'는 버튼을 눌러서 이쪽으로 보내졌다. 그게 단지… 타이밍이 약간 이상했다.


 자신이나 카린과는 달리, 죽기 직전에 - 혹은 죽으면서 - 눌렀던 결과, 순수한 '물질'인 시체는 그곳에 남곤, 존재… 혹은 자신이 부르는 대로, '혼'만 이 세계로 오게 되었던 것.


 …적어도, 그게 원래 세계의 관리자가 유빈에게 전달한 정보였다.


 '근데, 저걸 보면 몸도 있고, 살아있잖아요? 뭐지… 여기 교장은 우리 관리자와는 다른 기술을 가졌다던가?'


 아니면….


 '어쩌면 저와 같이 반혼의 능력을 가진 것일지도 모르겠죠.'


 혼만 부를 줄 알면, 그릇에 담는 건 어려운 게 아닌 것이다. 단지 여태껏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 뿐.


 '과연, 과연. 그럴지도.'


 …혼자 생각하다보니, 어떻게든 납득되긴 했다.


 "하아…."


 그렇다곤 해도, 지금 이런 우울한 상황이 딱히 바뀐 건 아니지만.


 '그렇지만 역시 본인에게 말해줘야만 할지도 모르겠어요.'


 유빈은 카린과 시영만큼은 원래 세계로 귀환시켜야 한다고 하긴 했지만….


 '어차피 여기 앉아서 가만히만 있는 것도 지루하고, 또 달리 할 것도 없고… 게다가 무서운 사람인지 착한 사람인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 교장이란 사람도 사라졌고…. 에이, 될 대로 되면 좀 어때요?'


 그리고.


 "제이크 선생님."


 "……?"


 심란해하는 제이크를 두고 시영은 전부 말하였다.


 얘기하는 도중 시시각각 변하는 제이크의 표정.


 그리고 자신이 눌러 이곳으로 전송되게 했던, 한국어로 써진 아티팩트.


 자신은 본 적 없지만 어쨌건 원래 세계 델타 세븐과 관련된 사건.


 그리고 가장 중요한 키로….


 …카린과의 관계.


 두서없이 이것저것 말하기는 하나, 시영은 자신만 설명하는 것이 아닌, 상대가 무의식 중에 느끼는 위화감의 정체를 전부 짚으며 자극을 했다.


 하지만….


 "정말 재미있는 농담이군. 기운을 복돋아주려는 건 알겠어."


 "진짜라니까요… 하아."


 당연히 믿을리가 없었다.


 자신은 부모님의 혼이 말해줬다. 카린은 그나마 온지 이 년 밖에 되지도 않았다. 이 사람은?


 저쪽 세계에서 언제 왔으며, 언제부터 체육 교사로 지냈는지 몰라도 결국 엄청나게 오래 있던 거다. 거기다가 기억까지 덮어졌던 것이니까 사실 여기가 그에겐 그냥 새로운 고향이겠지.


 "시영 선생, 당신도 매우 심란한 것 같아. 이런 상황에 그런 조크나 하고."


 "……."


 "근데 나는… 미안하지만 신경쓸 일이 있거든."


 "카린 선생님 말하는 거죠?"


 제이크는 말이 없다가 그냥 긍정했다. "들켰군."


 "모를리가 있겠나요. 우리가 얼마나 오래 같이 지내왔었는데."


 …….


 "밤이 늦었군. 일단 오늘은 자는 게 좋을 것 같아."


 "어머, 그런가요? 아니, 그것보다 제이크 선생님은 안 주무시게요?"


 제이크는 일어나며 말했다. "나도 자버리면 침식체가 오는 걸 누가 감시하지? 게다가 이딴 거지 같은 상황에, 학생들보고 너희도 불침번을 서라고 말할 수 있나?"


 "……."


 "하지만 나라고 맨날 밤을 샐 순 없으니까 말야. 내일이나 모래 쯤엔 시영 선생님께 부탁하고 싶군."

 "그래요… 물론, 저는 이 조난 생활이 길 것이라 생각하진 않지만요."


 제이크는 시영의 어깨를 툭 쳤다. "하하, 긍정적이군. 나도 배우고 싶어."


 그리고.


 모두가 자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렸다.


 밖엔 다수 웨어드래곤들이 순찰을 도는 것을 보았다. 처음엔 조용히 지켜봤지만, 이쪽으로 수색을 오는 것 같다.


 제이크는 황급히 모두를 깨웠다. 하지만….


 "……."


 다크 로드 네헤모트.


 언제부터 있었던가?


 그가 동굴의 중앙에 검을 땅바닥에 찍어놓곤 가만히 서있던 것이다.


 "너… 너는 대체?"


 놀란 제이크가 물어봤다. 분명 침식체처럼 생기긴 했는데, 침식파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투구 속의 불빛과 같은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결국 너희들의 실력이란 이런 정도였나…."


 "……."


 "나는 너희에게 있어 초월의 마왕이라 불리는 자다. 클리포트 게임에 앞서 얼마나 준비됬나 보려고 했지만, 이 정도로 아무것도 못할 줄은 예상치도 못했군."


 그러자.


 "마왕…! 네가, 미나를 납치한 것이냐?!"


 옆에 있었던 레이가 검을 쥐곤 공격할 기세로 달렸다. 하지만….


 네헤모트는 고개를 돌리며 그를 노려보았고, 레이는 그대로 정지되었다.


 "이게 무슨…?"


 "……."


 그리고 칼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대적자… 마왕 그 이하 사도의 수준도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군." 그리고 가까이 보기 위하여 레이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것이 레이를 베기 위한 것처럼 보여졌는지, 제이크는 꽉 쥔 주먹을 들어올려 달려들며 외쳤다. "우리 학교의 학생을 건들여? 내가 가만히 보고 있을 거 같나?!"


 이 정도의 상대를 보고도 그냥 싸움을 건다….

 선생으로서 오기인 거겠지.


 네헤모트는 눈을 돌려 제이크를 노려봤다. 하지만….


 이상하게 멈추지 않았다.


 "라이트닝 - 익스큐션!!!"


 그리고, 투구에 그 펀치를 정통으로 맞았다.


 "……."


 그러나 피해도 미동도 없었던 네헤모트는, 칼을 쥐지 않은 다른 손으로 그의 머릴 잡고선 눈높이를 맞추었다.


 "흠…."


 "이, 이 자식…!"


 "흥미롭군."


 …….


 "…뭐?"


 어째서 자신의 마안이 통하지 않은 것인가?


 무언가 특별한 힘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궁금해, 육체의 정수와 존재 자체를 꿰뚫어본 그는 특이한 걸 보았다.


 "이건… 마르스와 비슷한 느낌이군. 아니, 파장이 동일해. 마르스 본인은 아니지만…."


 "무슨 소릴 하는 거냐?!"


 "……."


 그렇게 잠시 보다가, 네헤모트는 제이크를 그대로 벽에다가 집어던졌다.


 "크, 크헉!"


 동굴 출구를 보면, 밖에 있던 몬스터들도 전부 들어오기 시작했다.


 네헤모트는 칼을 치켜들었다, 모두를 가리키며 말했다. "웨어드래곤들이여, 저들을 감옥에 데려가도록 하시오."



 .

 .

 .



 어두운 실내에.


 의자에 앉아서 모니터로 모든 것을 지켜보던 남자.

 그의 뒤에, 급한 발소리를 내며 다른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참 찾았습니다."


 나유빈이 있는 곳은, 관리자가 하이브마인드 컴퓨터를 설치했던 비밀장소.


 관리자는 놀라면서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여길…?"


 "건틀렛 아카데미의 학생은 시험 도중에 탈락할 경우, 학교에 바로 워프하는 장비를 착용했죠. 그런 기술력에 더해, 당신의 신체는 남들과 다르기에, 이런 세계간의 전이도 가능한 전용장비를 만들 수 있지 않았습니까?"


 "…변함없이 날카로워. 우리 세계에도 자네 같은 남자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있었으면…? 저는 아직 여기 있습니다. 단지 당신의 선택을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게 당신의 최선입니까?! 여기서 그냥 갈려고?"


 관리자는 침묵했다.


 다른 세계로 혼자 전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빈도 그걸 알고서 따진 거다.


 "이 세계도…."


 뜸을 들인 관리자는, 우울하고 지친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 세계도, 실패했네. 순간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모든 게 다시 물거품이 됬어."


 나유빈은 관리자의 앞에 걸어와서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무엇이 잘못된 선택입니까?! 당신은 제일 중요한 때에 아무것도 하질 않았습니다! 애초에 선택하는 것조차 포기했었는데 뭔 잘못된 선택을 했단 겁니까?!"


 그리고 책상을 쾅 쳤다. "지금도…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는데, 죽을 위기에 처한 그들의 생명을 '다시' 물거품이 됬다고 퉁치는 것입니까?! 이것은 당신의 꿈이 아니야! 실제 눈 앞에 살아있는 사람이다!"


 "나도, 나름대로의 책임을 느끼고 있다네. 그들의 죽음은 전부 내 죄가 되겠지."


 "당신은 도대체…!"


 "사람들은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지도 몰라."


 "정신 좀 차리세요!" 나유빈은 그대로 관리자의 뺨을 쳤다.


 "……!"


 "누구도 당신의 이런 모습을 보기 싫어할 겁니다! 누구보다도 당신을 의지했던 클라레스와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떠올리세요!" 유빈은 격정을 내면서 외쳤다. "여기서 도망치면 거기선 또 뭘 할 겁니까? 그냥 허송세월만 낭비하고는 적이 찾아오면 그냥 도망치려고? 당신에겐 원하는 미래라도 있는 겁니까?!"


 "나도… 나도!"


 관리자는 의자에서 일어나 똑같이 소리쳤다. "나도, 원하는 미래가 당연히 있지 않겠나!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상황이 존재하네! 단순히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더이상 위험이 없이 낙원과 같은 영원에 안주할 그런 세상을! 나도 원했었던 거네!"


 "그렇다면 그 미래를 위해 적들과 싸우세요! 당신이 이끌 인류의 길에 방해가 된다면, 그들을 완전히 정복하고 당신이 만들 세계로부터 내쫓으세요! 지구와 생명의 역사를 아십니까? 애초에 낙원이란 어디에도 없습니다, 투쟁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라 할 수 있겠나요?!"


 "하지만…!"


 "하지만 뭡니까, 할 말이 있다면 왜 지금도 당신을 믿고 기다리는 저들에게 가서 말하지 않는 겁니까?!"


 "그들을 볼 면목이…"


 "그것이 잘못됬다는 겁니다!"


 유빈이 말했다. "한 집단을 대표하는 남자는 곧 그에 맞는 책임조차 지어야만 한단 말입니다, 왜냐면 모두 당신을 믿고 따르고 있으니까! 외부인들이 당신의 실책을 조롱하고 비웃어도, 욕한다고 하더라도! 그걸 모두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스스로 결정한 것이기에! 그리고 당신 자신이 만들려고 하는 미래를 끝까지 봐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성공하건 실패하건, 그딴 나약한 소릴 말고서 나아가야만 하는 겁니다!"


 …….


 "…자네는, 어떻게 그걸…?"


 "저도…." 유빈은 똑바로 관리자와 눈을 마주했다. "저도 한 집단을 대표하는 남자이기에 그럽니다."


 "하지만…."


 관리자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네. 내가 만일 직접 나선다면… 자넨 아마 모르겠지. 세계에 과분할 정도의 기술력으로 침식체들에 대항한다면, 멸망이 예정된 세계는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통해 인과율을 지키려고 노력하네."


 '…음?'


 '잠깐… 그건 단지 미네르바 카린이 파워업을 했음에도 원래 세계에 남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플롯적 장치가 아니었나?'


 관리자는 유빈을 향해 보면서, 이제까지의 모든 트라우마를 다시 회상하듯 처절한 목소리로 소리질렀다. "그렇기에 내가 쓸 수 있는 기술들을 모두 제공해도, 여태까지… 모두 처참하게 죽을 뿐이었어! 단지 침식체들에게 찢기고 먹히는 걸 넘어서, 아예 정신이 세뇌되 동료를 쏘고, 몸에서 침식수가 자라나며 역겨운 살덩어리 괴물로 퇴화하며… 그들이 절망하고 원망하는 모습을 지금까지 잊을 수 없었네! 그걸…"


 아.


 그제서야 유빈은 깨달았다.


 자신이 원래 있던 세계의… 마치 절망과 욕망의 감정 자체가 거세된 듯한 그 '존재'와 다르게.


 이 사람은, 관리자라는 지위를 떠맡은 '인간'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그래서, 당신은 그들의 옆에 있어주지도 않겠단 것입니까?"


 "……!"


 "마음대로 하십시오. 저로서는 당신을 설득하지 못한단 것만을 깨달았으니까요. 하지만…." 유빈은 관리자를 뒤로했다. "기도하기만 할 줄 아는 자들에겐 어떤 구원도 없습니다. 그건 그리스부터 비잔틴까지 똑같았죠. 그리고…."


 "……."


 "이 세상은 조금 넘어져서 다칠 필요가 있어요. 사실은 당신도 알고 계셨겠죠. 클리포트 게임이 머잖아 시작하며… 이제까지 본 적 없는 폭풍이 몰아칠 터인데, 이 세계는 배가 침몰하기 이전에 선장이 도망치고 있군요."


 그 말을 끝으로, 유빈은 문을 닫고선 나가버렸다.


 …….


 혼자 남은 관리자는 읊조렸다.


 "험난한 시대는 강인한 사람을 만들지."

 "강인한 사람은 안락한 시대를 만든다."

 "안락한 시대는 연약한 사람을 만들지."

 "연약한 사람은 험난한 시대를 만든다."


 "……."


 "…그래, 그랬었던 건가."


 전에, 누군가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었다.


 어째서 지금 기억난 걸까. 어째서 지금 생각난 걸까.


 관리자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저편을 보았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만 할지를… 끝내 고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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