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일의 번화가는 사방을 오가는 연인들의 무리들에 의해 한 폭의 그림으로 수놓아진다. 애정행각이 오가고, 하루에 대한 두근거림으로 번화가는 어느 때보다 활기차게 빛난다.
이른 아침, 주변에 산재해있는 연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관리자는 번화가의 한복판에 나와 있었다.
평소라면 나오지 않고 집에서 늦은 아침까지 잠을 자거나 하며 뒹굴었을 테지만, 오늘은 만날 사람이 있었다. 마침 날씨도 좋고, 벚꽃도 휘날리는 계절이니 적절한 타이밍의 약속이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지 5분이 지났다. 손목시계는 10시 10분을 가리켰다.
시계를 보다보니 기다리는 상대가 언제쯤 오게 될지, 어디쯤 왔을지 따위를 궁금해하고 있었다. 관리자는 스스로도 이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관리자는 눈부신 햇살을 맞으며 도로를 바라봤다. 도로 위에는 대기업 임원이나 정부 고관이 탈 법한 고급진 검은 색의 리무진이 달리고 있었다.
이 이른 시간에 번화가에서 리무진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도대체 누구길래?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 관리자를 향해 리무진이 접근해왔다. 리무진은 관리자가 서 있는 인도 쪽으로 주차했다.
차량의 문이 열리자, 기분좋은 바람이 불어와 관리자의 몸을 어루만졌다. 바람에 의해 관리자의 옆에 있는 벚나무로부터 벚꽃이 휘날렸다.
대뜸 리무진이 자기 앞에 도착해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관리자는 문이 열리자마자 곧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평안하셨나요, 사장님?”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부는 것처럼 들려오는 목소리, 물결처럼 찰랑이는 갈색의 머리카락, 바다를 담은 듯한 푸른 눈동자.
리무진에서 나온 사람은 나나하라 가문의 당주, 나나하라 치나츠였다.
오늘 약속을 잡은 사람은 치나츠였지만 설마 했더니 리무진을 타고 올 줄은 예상 못했다. 관리자는 반갑게 미소 지으며 치나츠를 맞아주었다.
“네, 치나츠 양은 잘 지냈나요?”
“물론입니다. 자, 일단 가시죠. 해야 할 이야기가 많다고 그러셨잖아요?”
치나츠는 격식 있는 말투로 답하며 자신이 타고 온 리무진의 운전석을 향해 고갯짓으로 인사했다. 그리고 관리자를 재촉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빨리요.”
“그래요. 일단 가도록 하죠.”
그녀가 이렇게까지 서두르는 이유에 대해 관리자의 머릿속에는 무수한 물음표가 생겨났다. 일단 관리자는 치나츠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두 사람이 번화가 속 사람들의 틈으로 들어가자 리무진은 왔던 길로 떠나갔다. 치나츠는 남몰래 리무진이 움직이는 것을 신경쓰고 있다가, 리무진이 떠나자 걷는 속도를 조금 늦추었다.
“후후. 이제야 좀 자유로워졌네요.”
치나츠는 후련한 숨을 내쉬었다. 격식이 느껴지던 말투도 나이 대에 맞게 풀어졌다.
“자유요?”
“사장님이랑 만나기로 했던거요. 가문의 어르신들이 사사건건 걸고넘어지려고 하셔서, 그분들을 설득하거나 따돌리느라 고생을 좀 했거든요.”
아하. 그런 뒷배경이 있었구나. 항상 의연하고 우아한 언행을 보이던 치나츠가 이렇게 한숨을 내쉴 정도면 관리자는 그녀가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납득했다.
치나츠는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관리자에게 ‘들어보세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면...’ 이라며 못했던 이야기의 포문을 열어젖혔다.
자신이 느꼈던 감정들에 공감해달라는 그 모습이, 마치 사춘기의 소녀가 불만스러운 점들에 대해 뒷담화하는 것을 연상시켰다. 나이를 생각하면 딱 그게 맞긴 하지만.
치나츠의 말로는 원래 수행인들까지 딸려 보내려고 했으나, 필사적인 설득 끝에 겨우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 치나츠는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문중 어르신들은 진짜 너무하세요. 코핀 컴퍼니와의 중요한 계약 체결 건으로 만나는 것이라고 핑계까지 댔는데도 계속 안전이 걱정된다고 뭐라 하시다니. 포기를 모르시는 분들이라니까요. 정말.”
"으으, 고생 많았겠네요. 징해요 정말."
"그쵸??"
“타고 온 리무진도 어르신들의 의지의 일환인가 보네요.”
“그러니까요. 그렇게 필요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치나츠의 마음도 이해됐지만 어르신들의 입장도 이해가 안되는건 아니었다. 그녀는 필요 없을지라도 가문의 어른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가까스로 얻은 나나하라 가문의 당주다. 다소 과보호를 하더라도 필사적으로 싸고 돌려는 것이 어른들의 심리이리라.
그 이유가 어쨌건, 당찬 치나츠에게는 성에 차지 않겠지만 말이다.
“치나츠 양은 유서 깊은 대귀족 나나하라 가문의 당주님이시잖아요. 리무진 정도는 어쩔 수 없죠. 그 권력의 맛을 즐겨 보시는건 어때요?”
“대, 대귀족이라뇨. 그런 거 아니에요. 사람들이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관리자가 살짝 장난을 담아 말을 건네자, 치나츠는 당황하며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주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고 싶다구요. 권력 같은건 원하지 않아요.”
“하하하. 미안해요. 일단 만났으니, 뭐가 제일 하고 싶으세요? 치나츠 양?”
몰래 '할 이야기가 있다'며 머신갑을 통해 관리자와 접촉해서 만나는 것이지만, 치나츠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관리자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이미 몇 번 정도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서 안면도 튼 상태였다.
관리자의 제안에 치나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명문가의 아가씨나 지을 법한 우아한 웃음을 지었다.
“후후. 정말 많은데. 뭐든 괜찮으시겠어요?”
“그럼녀~”
관리자는 어딘가의 바다를 수호하는 귀여운 해군 소녀들처럼 장난스럽게 답했다.
“그럼 우선 팔 좀 빌려주실래요?”
팔을 왜 빌리려는 건지 의문을 표시하기도 전에, 치나츠는 관리자의 오른팔을 덥석 안았다. 그리고 자신의 팔과 엮어 팔장을 꼈다.
연인들이나 할 법한 팔장에, 속도를 맞춰 나란히 걷는 구도가 되자 관리자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고 대신 당황한 표정이 돌았다.
“???? 아니 이거-”
“자. 이대로 좀 걸어요. 참고로, 반론은 받지 않을 거에요. 후훗.”
치나츠의 머리카락이 팔치에 계속 닿았다. 샴푸와 향수가 펼치는 향연이 관리자의 코 끝을 간지럽혔다. 치나츠의 이미지와 딱 맞는 벚꽃색 블라우스에 관리자는 시선을 치나츠에게서 뗄 수가 없었다.
관리자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잔뜩 굳은 채로 치나츠와 함께 걸었다. 신장은 또 왜 쓸데없이 치나츠와 얼마 차이 안나서 팔장을 자연스럽게 만드는지.
이제와서 불평해도 이미 늦었다. 하고 싶은게 있냐고 물어본건 관리자 본인이었고, 뭐든 괜찮냐는 말에 긍정한 것도 관리자 본인이었다. 자승자박이었다.
진짜 연인은 아니지만, 제3자가 보기에는 팔장을 낀 두 사람은 이미 훌륭한 한 쌍의 연인이었다. 그 사실이 관리자의 움직임을 계속 무겁게 만들었다.
"사장님. 몸이 좀 굳으신 거 같은데요?"
"네, 아, 아니요? 전혀요. 그냥 어제 좀 잠을 잘 못자서요. 아하하하."
그 몸이 굳은게 당신 덕분이지 않습니까. 예?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관리자는 꾹 참았다.
하지만 몸이 굳은 것과는 별개로 심장은 알 수 없는 느낌으로 자꾸 간질거렸다. 정확히는, 두근거린다고 해야 할까. 관리자의 뺨은 자신도 모르게 살짝 붉게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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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건 정말로 어렵다. 카린 글 쓰려고 했다가 대회 주최자의 취향에 맞게 치나츠 글로 써보기로 했음. 치나츠 문학도 별로 없으니 마침 잘 됐구나 싶다. 근데 치나츠가 사실 취향이 아니라고 한다면? 아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