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하루 전.


다시 탐정사무소였다. 최이현은 경직된 몸짓으로 마지막까지 계획을 점검하며 준비를 했다. 한쪽 구석에는 어김없이 앤지가 앉아 있었다. 어째 평소와 달리 조용히 입을 다문 채로. 크게 긴장한 모습이라고 할 순 없었지만 평소처럼 여유가 넘치는 모습 또한 아니었다. 그저 진지한 얼굴일 뿐이었다. 어찌 보면 그조차도 이례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겠지만.


최이현은 복장을 챙겨 입었다. 그도 블랙 타이드 멤버들 몇몇과 함께 직접 거래 현장에 나가기로 되어 있었다. 이 작전을 거의 단독으로 입안한 것도 그였고, 실행에 가장 앞장선 것도 그였다.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도 나가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오늘 블랙 타이드와 합류하고, 내일 함께 거래 현장으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


앤지가 무덤덤한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최이현이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네가 거기 나갈 순 없는 노릇이잖냐. 좀 참아라.”


앤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확실히 앤지는 미켈레의 몰락을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장 거래에 앤지가 떡하니 나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최이현도 앤지가 그런 당연한 사리분별도 못할 녀석이 아니란 건 알고 있기에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앤지도 더 말하진 않았다. 그냥 일어나 최이현의 옷매무새만 추슬러 주었다. 그리고 짧게 이렇게만 말할 뿐이었다.


“죽지나 마요.”


그리고 최이현은 돌아보지 않고 사무소를 나갔다. 앤지가 겉옷에 도청기를 붙여둔 것은 끝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도시 외곽. 항구 근처.


한 무리의 남자들이 오래 전에 버려진 공장 지구 바깥에 차를 대고 우루루 내렸다. 뉘엿거리는 해가 가동을 멈춘 굴뚝 사이로 엿보였다. 그리고 남자들은 거래 장소인 폐공장으로 향했다. 최이현은 무심코 무사히 일을 마치고 저 해를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리다 흠칫했다. 분명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준비를 하고, 파악할 수 있는 모든 변수들을 고려했다. 그런데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의심하지 말아야 했다. 그들은 성공할 것이다.


음산한 소리를 내며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육중한 공장 문이 열렸다. 블랙 타이드와 최이현은 천천히 어두운 공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놀랍게도 미켈레는 조직원들과 함께 이미 도착해 있었다. 어둠 속에서 우뚝 선 키 큰 남자를 본 블랙 타이드 멤버들이 일제히 긴장했다. 미켈레 파멜라. 파멜라 가문의 수장인 그가 직접 거래 현장에 나오는 것은 확실히 드문 일이었다. 이번 엘릭서 거래가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의미가 되리라. 그 덕에 이렇게 약점을 찌를 기회를 잡게 된 것이긴 하지만.


최이현 쪽 남자가 먼저 딱딱하게 인사를 건넸다.


“직접 뵙는 건 오랜만이군요. 파멜라 경.”


“햇빛을 보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말이오.”


작지만 명징한 목소리가 어두운 공장을 울렸다. 미켈레의 얼음 송곳 같은 눈이 반대쪽 사람들을 훑었다. 그 시선이 최이현 쪽에 잠시 머물렀을 때, 최이현은 보이지 않게 침을 삼켰다. 오래 전, 그도 미켈레와 대면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오래전, 애송이였던 자신을 그가 기억할까?


그럴 리가 없다. 그때 최이현은 경험도 없던 새파란 신참 아니었던가.


“오래 끌 필요없겠지. 물건을 보여주시오.”


거래를 진행하는 남자는 미켈레가 돈부터 보여달라고 요구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역으로 그런 뻔하디뻔한 기선제압 따위는 필요 없다는 자신감일까?


미켈레가 손짓하자 조직원 중 하나가 커다란 가방을 들고 다가왔다. 그리고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그리고 블랙 타이드 쪽으로 슥 밀었다.


“직접 여시오.”


모두가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블랙 타이드 중 한 명이 신중하게 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가방이 완전히 열렸을 때,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게 무슨......”


그때였다. 폐공장 안에 소름끼치는 비명이 울려퍼졌다. 최이현은 놀라 눈을 크게 치떴다. 가방을 연 남자의 손이 예리한 나이프에 관통되어 가방에 꽂혀 있었다.


그리고 그 나이프를 쥔 자는 블랙 타이드 일원이었다. 비열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는, 다름아닌 최이현과 함께 바에서 계획을 논의했던 바로 그 남자였다.


“너, 너......”


손이 꿰뚫린 남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그 앞으로 미켈레가 바짝 다가와 있었다. 기겁하는 남자의 목덜미가 순식간에 붙잡혔고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유감스럽게 됐소이다.”


“크... 큭......”


“우린 오랫동안 거래해온 신뢰가 두터운 파트너지만... 안타깝게도 당신네들은 용병의 위장 기업이고, 우리는 범죄조직이지. 분수 넘치는 짓만 벌이지 않았다면 계속 살려두지 못할 것도 없었을 텐데. 참으로 아쉬워.”


미켈레가 자신의 카운터 능력을 발휘하자 남자의 몸이 급속도로 말라붙어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신음도 내지 못할 상태가 되었다.


“내 목을 노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았어야지.”


그리고 미켈레는 숨이 끊어진 남자의 몸을 사정없이 내팽개쳤다. 미켈레의 부하들이 일제히 화기를 꺼내는 것은 동시였다. 십수 개의 총구가 불을 뿜었고, 조용하던 공장 안에 수많은 남자들의 피가 흩뿌려졌다.


최이현은 본능적으로 주변에 버려진 드럼통 뒤로 몸을 던져 엄폐했다. 급변한 상황에 머리가 혼란스러웠고 주먹이 절로 쥐어졌다. 젠장, 젠장. 이런 멍청한 놈. 변수들을 전부 고려했다고? 성공한다고? 처음부터 놀아나고 있었으면서!


원통하고 화가 나면서도 최이현은 마지막까지 상황을 타개할 궁리를 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타개는커녕 여기서 살아나갈 가능성조차 없었다. 속절없이 이만 갈렸다.


총성과 비명은 여전히 울려퍼지고 있었다. 때문에 누군가가 최이현이 엄폐한 드럼통 뒤로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누군가가 최이현의 뒷목을 강하게 내려쳤고, 그는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뜨니 달리는 차 안이었다. 최이현은 가쁜 숨을 내쉬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묶여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창문 밖 풍경이었다. 바다가 보였고, 차는 다리 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린 최이현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미켈레가 거기에 앉아 있었다.


앞좌석에는 기사가 말없이 운전 중이었다. 미켈레는 최이현이 깨어난 것을 눈치챘음에도 눈길조차 주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결국 버티다 못해 최이현이 먼저 입을 열려는 순간, 미켈레가 불쑥 말했다.


“나는 딸을 정성으로 키웠다.”


“뭐, 뭐...?”


“그래서 네놈 따위와 놀아나고 있는 딸의 처지를 보니 한탄밖엔 나오지 않아. 어떻게 파멜라의 피가 이렇게까지 타락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날 살려둔 게... 앤지를 유인하기 위해서인가?”


미켈레는 또 대답하지 않았다. 그 모습은 아예 최이현과의 대화 자체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오래 전 네 모습이 기억나는군.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애송이. 그 애송이가 설마 겁도 없이 내 앞에 이렇게 나설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


이번에야 말로 최이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 자는 기억하고 있다. 단지 스쳐 지나갔을 뿐인 과거의 최이현을. 그걸 깨닫자 절망만이 엄습했다. 이런 자를 대체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이 자를 치려고 계획했단 말인가?


“넌 나를 모욕했고, 내 딸에게 손을 댔다. 편히 죽지는 못할 거야.”


그렇게 말한 미켈레는 더 말할 생각이 없다는 듯 가만히 눈을 감았다.


바로 그때였다. 무언가 작고 날카로운 것이 무서운 속도로 날아왔다. 얇고 예리한 칼이 느닷없이 날아와 차의 앞 유리를 깨고 운전수의 목을 정통으로 꿰뚫었다. 운전수는 비명 하나 지르지 못하고 즉사했다. 차가 기수를 잃은 말처럼 마구 흔들렸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무언가 무거운 것이 차 천장 위로 내려앉는 소리가 쿵 하고 울렸다.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기도 전에, 작고 흰 손이 불쑥 내려오더니 최이현이 앉은 좌석 쪽 차문을 통째로 뜯어 내던져버렸다.


“아저씨!”


그리고 나타난 것은 놀랍게도 앤지의 얼굴이었다. 앤지는 그대로 차 안으로 손을 넣어 최이현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폭주하는 차 밖으로 끄집어내 양팔로 감싼 뒤 뛰어내렸다.


“머리 조심!”


앤지는 최이현을 안은 채 도로를 굴렀다. 속도가 늦춰지지 않자 도로 가드레일을 붙잡고 겨우 멈췄다. 철로 된 가드레일이 휘어졌지만 앤지는 놓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카운터라도 너무 무리한 셈이었다. 팔이 빠지는 고통에 앤지는 이를 악물고 비명을 참아냈다.


저 멀리 미켈레가 탄 차가 폭발하며 열기와 파편을 사방에 흩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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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남녀 역할이 바뀐 것 같긴 하지만 알게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