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주말챈에 올리는 예하 순애물) 하나의 연인, 열의 타인 -1- - 카운터사이드 채널 (arca.live)

2화: 관남충X에클레시아 하나의 연인, 열의 타인 -2- - 카운터사이드 채널 (arca.live)

3화: 관남충X에클레시아 하나의 연인, 열의 타인 -3- - 카운터사이드 채널 (arca.live)

4화: 관남충X에클레시아 하나의 연인, 열의 타인 -4- - 카운터사이드 채널 (arc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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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스가 눈을 뜬 곳은 익숙한 병실이었다. 그녀는 그림자에서 인간으로 되돌아와서 처음 보았던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일어났나?”

 

그 말에 고개를 돌리니, 관리자가 눈을 부비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 자신을 기다린 걸까?

 

“내가 얼마나 쓰러져 있었느냐?”

 

“이틀 정도라네.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어.”

 

그녀는 잠시 자신의 몸을 훑어보더니, 조금씩 몸을 움직였다.

 

“윽. 아직 갈비뼈는 다 안 붙었나보군.”

 

허리를 돌리자 가슴께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인상을 절로 찌푸린 그녀는 포기하고 다시 침대에 몸을 뉘였다.

 

“갈비뼈가 4개나 나갔는데 그게 이틀만에 붙는게 이상한 것 아닌가? 아무리 카운터라도 앞으로 닷새 정도는 병원 신세를 져야 할 거야.”

 

“그곳에서 죽은 사람은...몇이나 되지?”

 

그녀가 묻자, 관리자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 상태로 처음 물어보는 것이 희생자 여부라니, 정말이지 대단하군. 다행스럽게도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조금씩 다친 사람들은 몇몇 있지만, 아무도 크게 다치지 않았네. 뭐, 자네가 나선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군.”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는 왜 그렇게까지 다른 사람의 안위에 집착하는 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을 뿐이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그냥 직업병으로 생각하거라. 만민의 구원이 나의 사명이었으니.”

 

“확실히, 이해하기 어렵군. 자네는 그럼 카운터…성자의 힘은 반드시 세상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고 믿는 건가?”

 

에클레시아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다. 나는 그저 교단의 성황으로서 책무를 다한 것일 뿐, 애초에 성흔이란 것이 원해서 얻는 것도, 거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평범한 사람은 타인을 해치지만 않는다면 어떻게 힘을 사용하든 신경쓰지 않는다. 모든 성자가 역병과 맞서 싸울만한 힘을 가진 것도 아니니 나의 길을 모든 이에게 강요할 순 없지.”

 

관리자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반드시 세상을 구할 필요도 없고, 모든 사람이 싸울 순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자네 자신은 이제 아무런 의무도 없고, 힘도 잃어버렸으면서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건가? 왜 자네 자신한테만큼은 기괴할 정도로 엄격한건가? 그 해변가에서 내 눈에 비친 자네는 마치 자네가 전부 구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세상이 멸망할 것처럼 보이더군. 아직도 자네가 구원자라고 착각하는 것 마냥.”

 

“아무리 나라도, 그런 말은 조금 불쾌하구나. 그러니…이 이야기는 그만해 주지 않겠느냐?”

 

그녀는 그를 노려보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불쾌감보단 오히려 울분에 가까워 보였다.

 

“흐음. 그러면 주제를 바꿔 볼까. 이곳에선 애인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다네. 자신과 열 명의 타인이 물에 빠지면 어느 쪽을 구할 것이냐고.”

 

“…? 조금 뜬금없구나. 유감스럽지만 나는 연인이 있어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구나. 하지만 나에게 어느 쪽이 올바르냐고 묻는 거라면, 나는 아무래도 열의 타인을 구하지 않을까 싶구나. 물론 자신의 연인을 구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만…나머지 열 명도,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들이니.”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무슨 의미지?”

 

관리자는 그녀의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말에, 그녀의 가슴이 철렁했다.

 

“굳이 연인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네. 가족, 친우…전장의 동료도 될 수 있지.”

 

“……”

 

‘안녕하세요, 에클ㄹ…아니 예하!’

 

그 때, 자신은 웃으며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이야기했었지.

 

“자네가 열의 타인을 선택했을 때, 그것이 정말로 올바른 결과를 불러왔던가?”

 

‘너희들과 같은 공간에 숨쉬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구역질이 나. 전부 죽어.’

 

‘아우드라, 제발 부탁이다. 나를, 차라리 나를 죽이거라. 내 사지를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버려도 좋으니 제발…’

 

‘아아아악!’ ‘살려줘!’ ‘아파, 아파, 아파아아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모르스는, 자신도 모르게 조소했다.

 

‘그래, 그때 나의 선택이 모두를 지옥으로 떨어뜨렸지.’

 

제 딴엔 올바른 길을 걷는다고 착각하며, 이교도들의 처우를 애써 무시했다. 언젠가는 모두 바꾸리라고, 후일만을 도모하던 그녀는 끝내 한 명의 소녀-벗의 믿음을 배반했고, 그 대가로 자신의  벗과 세상 모두를 잃어버렸다.

 

아둔한 자신으로 인해 한때 그녀를 보며 해맑은 미소를 지었던 소녀는, 힘을 잃고 비참하게 자비를 구걸하던 자신을 차갑게 외면하고 엘리시온의 모든 것을 저주하며 처절한 복수를 이루었다.

 

“하, 그래. 열은 커녕 어느 쪽도 구하지 못하고 모두 나락으로 떨어뜨린 나같은 실패자가 감히 입에 올릴 수 있는 주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구나.”

 

“아직도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전혀 이해를 못 하는 것 같군.”

 

무심하게 관리자가 내뱉은 그 말에, 모르스는 이를 악물었다.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도대체 어찌해야 했단 말이냐?”

 

“……”

 

어째서일까. 고작해야 말 따위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비극을 수없이 넘고, 그림자로 전락하여 차원을 떠돌면서도 울어본 적이 단 한번을 제외하면 없었건만. 어느새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저 남자의 저 말이, 어째서 이리도 서운하게 느껴지는 걸까.

 

“하루도 빠짐없이 검을 휘두르고, 식사를 하면서도 서류를 보고, 죽어간 이들의 가족을 위로하고, 괴물과 맞섰다. 알던 이가 역병에 걸려 죽어도, 내가 손수 가르친 병사들이 역병체들의 이빨과 발톱에 찢겨나가도, 역병이 두려워 내가 신뢰하던 이들이 나를 배반하고 나의 기대를 저버려도 멈추지 않았다. 오직 세계를 구해야만 한다는 일념 아래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단 말이다.”

 

그녀가 울분에 차 말을 쏟아내는 것을, 관리자는 그저 말없이 지켜보았다.

 

“나라고 약속을 지키기 싫은 줄 아느냐? 나에게 소중한 이들을 우선하고 싶지 않았던 줄 아느냐? 다른 모든 이들의 약속이, 그들의 가족, 친우, 연인이 나의 약속과 사람들과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포기했다. 내가 잠시라도 머뭇거리면, 잠시라도 멈춰서면 수없이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모든 이가 지옥 속에서 구원을 바라고, 나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그래서 그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정작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작 하나의 운명조차 바꾸지 못한 내 자신이 원망스럽다. 헌데 도대체 어찌하란 말이냐? 힘도, 이름도, 사명도 잃은 나에게 다시 한 번 아우드라와 싸우라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어차피 이제 나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는데.”

 

그리고 그 울분을 모두 쏟아내자, 마음 속 가장 밑바닥에 감춰져 있던 것이 그녀의 입에서 힘없이 흘러나왔다.

 

“난, 적어도 우리가 친우라고 생각했건만. 이리도 아픈 상처를 후벼파야 할 만큼 내가 미웠느냐? 내 모습이 그리 실망스러웠느냐? 아니면 나라면 과거 따위는 진즉에 극복했어야 한다는 것이냐? 그럴리가 없지 않느냐. 나 또한, 사람인 것을…”

 

서럽게 울던 그녀를, 관리자는 부드럽게 껴안았다. 흐느끼는 모르스를 토닥이며, 그는 입을 열었다.

 

“그래, 그거야. 자네도 사람인데, 모든 기대에 부응할 수는 없어. 부응할 필요도 없지.”

 

옅은 웃음을 띄운 관리자는 말을 이어나갔다.

 

“나도, 실패해서 세상믈 멸망으로 이끌었지.”

 

“…!”

 

“난 사실 자네보다 훨씬 죄질이 깊어. 끝없이 세계를 넘으며 실패하면 그 세상을 떠나고, 새로운 세계에서 싸우고. 그 세계도 실패하면 다시 새로운 세계를 찾고…그 과정에서 친우의 후손들을 끔찍한 운명에 처박았던 경험도 있었지.”

 

물론 이번엔 장하게도 그 친구의 후손 중 하나가 결국 운명의 굴레를 끊어냈지만 말이야, 라고 관리자는 웃으며 말했다.

 

“나도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지. 내가 반드시 뭐라도 해내야겠다고 생각했어. 모든 걸 대비하고, 모든 걸 준비하고, 모든 미래를 예측하고…그런데도 실패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했지. 차라리 업보라고 생각하고 죽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네. 자네가 죄인이면, 난 아마 골백번은 죽어도 시원찮을 대역죄인인 셈이니까 말이야.”

 

관리자는 그 말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죽음으로는 아무것도 속죄할 수 없어. 그래서 또다시 도전했네. 과거의 친우가 적이 되어도, 나를 믿고 따르던 이들이 죽어나가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어. 그리고 이 세계에 도착했고, 이 세계도 멸망의 직전까지 이르렀지.”

 

“…이 세계는, 아직 멀쩡해 보였다만.”

 

“그래, 이번 세계도 포기하기 직전에 어떤 변수를 눈치챘거든. 처음엔 무시할까 생각도 했지만…언제까지 다음번만 노릴 지, 알 수 없었거든. 그래서 차원을 넘을 동력을 모조리 써서 마왕들을 다시 봉인했지.”

 

“잠깐, 그럼…”

 

“그래, 이젠 더는 기회가 없지. 이번에 패배하면 나 역시 끝장이라네.”

 

“그래도, 괜찮은 건가?”

 

그녀가 묻자, 관리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모르지. 해봐야 알지 않겠나. 어차피 쌓아둔 데이터도 다 떨어져서 이젠 예측도 쉽지 않다네. 부딫혀보는 수밖엔 없지.”

 

“그런 무책임한…!”

 

“무책임하면 뭐 어떤가?”

 

“뭐?”

 

“자네도, 나도 고작 사람일 뿐인데 말이야. 애초에 우리가 세상을 구하겠다고 설치는 것부터가 웃기는 노릇일지도 모르겠지. 그런데 말이야, 우습게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저질러버린 이 세계야말로 지난 그 어떤 세계보다 일이 잘 풀리더군. 친우의 후손은 스스로 용혈을 극복하질 않나, 고작해야 잔재인 줄만 알았던 늑대는 스스로 각성하질 않나. 예전엔 나를 믿지도 않았던 나라의 군인 친구들과 어영부영 엮여서 협력하게 되질 않나.”

 

관리자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처음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 온갖 수단을 동원해도 꿈쩍도 안할 것 같던 망할 운명이 내가 손을 놔버리니 그제서야 천천히 굴러가기 시작했거든. 그리고 최근에야 조금 깨달았다네.”

 

“…무엇을?”

 

“가끔은, 안 된다 싶으면 그냥 드러누워서 다른 사람한테 ‘해 줘’라고 부탁해도 된다는 걸 말이야.”

 

“그게 대체 무슨…”

 

하핫, 하고 관리자가 웃었다.

 

“사람 사는게 다 그런 것 아니겠나? 가끔은 서로한테 민폐를 끼치기도 하는 거지. 내가 아무리 대단하든, 잘났든 간에…못 하는 일이 있고, 그런 일은 남한테 조금 떠맡겨도 상관없다는 거야.”

 

물론 그 덕에 부사장한테 바가지를 자주 긁히지만 아무튼 말일세, 라며 관리자는 마치 농담하듯 말했다.

 

“그러니까, 너무 혼자 다 해내려고 하지 말게. 그건 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야. 어려우면 도와달라고 하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해도 된다네. 원하는 것과 대의, 둘 다 이룰 수 있을지 어떻게 아나? 욕심 조금 부린다고, 나쁜 게 아니야. 사람이라는게 다 그렇다네. 실패했다고 해서, 아무 의미도 없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너무 자신 탓만 할 필요 없네. 가끔은, 그냥 전부 세상 탓이라고 돌려버려도 괜찮아.”

 

어느새 울음을 그친 모르스는 힘없이 웃었다.

 

“그대는, 정말이지 짖궃구나. 구태여 이런 방법을 쓰지 않아도, 그냥 내게 말해주어도 되었을 것을.”

 

“그래도 그 덕에 응어리는 조금 풀렸지 않나?”

 

“그렇긴 하다만, 말이 너무 매몰찼다. 난 조금, 아니 많이 섭섭했으니.  아무렇지도 않게 내 상처를 들쑤시다니, 너무하구나.”

 

“그건…미안하게 됐군.”

 

“방금 깨어난 환자였는데도. 매정하게…”

 

“…사과하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내 가능한 선에서…”

 

“그러니까 조금만 더, 이대로 있어다오.”

 

그리 말하며 그녀는 관리자를 세게 안았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과 조용한 병실에서 유달리 크게 울리는 심장소리에 대해서는, 둘 모두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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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업로드 성공...


아마 2-3화 내로 마무리될 것 같기는 한데...뭔가 더 써보고 싶기도 하고...고민을 좀 해봐야겠음.


아, 물론 너네들이 제일 보고싶어할 그 씬은 무조건 2-3화 안에 나감. 그 씬이 뭔지는 천박함의 본산인 카챈 유저라면 다 알거라고 생각함.


그럼 수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