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유미나.

25살 꽃다운 나이에 싸구려 조명이 눈을 아프게 하는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이 호프집은 뒷골목에 있는 음침한 장소인데도 단골이라는 작자들이 매일 거르지도 않고 와서 허리 한 번 제대로 필 새도 없는 곳이다.

장점이라면, 시급을 잘 쳐준다는 것.

단점이라면, 일이 너무 힘들다는 것.

그리고...

"......"

쓰레기를 버리러 골목으로 나오면, 꼭 저짓거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어제는 사모님 한 명이랑 제비가 한 마리 부둥켜안고 꼴값을 떨더니

오늘은 백발 꼬맹이와 중년 남자가 그짓거리를 하고있었다.

집에 있는 마누라만 불쌍하게 됐네.

"저기요. 거기서 그러시면 안 돼요."

나지막하게 말했는데도

깜짝 놀라며 떨어지는 둘.

그렇게 놀랄 거면, 애초에 그러질 말든지.

"미, 미안하군.."

"크흠.. 못 보일 꼴을 보였군."

"아뇨 뭐, 두 분 같은 손님들은 많이 봐서요. 그래도 거기서 그러시면 제가 혼나거든요."

"그, 금방 들어가지. 미안하군."

부끄러운건가? 얼굴이 엄청 빨갛네.

그런데, 엄청 어려 보이는데... 설마...

아.

"이 앞에, 카운터 오피스 다니시는 분들인가봐요?"

"그, 그걸 어떻게.."

사원증. 바보야.

"아, 사원증..."

"어서 들어가지. 미안하네."

너무 안 미안해 해도 되는데.

어제 그 제비는 신경 끄라면서 욕까지 했는걸.

"...여기 말고 저기는 괜찮아요. 저 쪽은 사람 정말 안 오거든요."

"그, 그런가?"

"네. 제가 여기 아르바이트 1년 째라 잘 알아요."

얼씨구. 좋다고 바로 가는 것 봐.

'......'

부럽네. 나보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회사도 다니고. 멋진 유부남이랑 바람도 피고.



...젠장.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문다.

사장이 보면 또 온갖 염병을 하겠지만

이 정도는 괜찮잖아.




-----------------

철커덕.

힘을 줘서 잘 열리지 않는 문을 열자 깜깜한 원룸방이 나를 반겨준다.

이 작은 공간이 아지트처럼 느껴져 들떴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냉기가 가득한, 우중충한 현실을 곱씹게 하는 공간에 불과하다.

고된 아르바이트 후에 몸은 피곤하고 배는 고파오지만 텅 빈 속을 채우는 행위도 귀찮다.

딱딱한 벽에 등을 기대 담배를 물고 라이터를 킨다.







틱틱틱틱틱

"씨팔..."

입에 문 담배를 뱉어내고 해질대로 해진 매트리스에 몸을 던진다.

피곤해서 눈을 뜨기도 힘들었지만

니코틴도 알콜도 흡수하지 못 한 몸은 쉽게 잠에 들려 하지 않았다.

억지로 눈을 감고 있는 것도 바보처럼 느껴져 액정이 다 깨진 휴대폰을 꺼내 구인 사이트를 켠다.

건설업체 현장직... 남자만 구함...

보모... 35세 이상...

사무보조... 경력직만 구함...

"그놈의 경력직은..."

안 그래도 어두캄캄한 방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자니 눈이 아파온다.

그럴듯한 구인 광고라도 있다면 다행이었겠지만

오늘도 허탕이다.

스크롤을 죽 내리고 휴대폰을 꺼 던지니 자그마한 빛도 사라져 익숙한 어둠이 찾아온다.

"잠깐만."

머리맡에 던져둔 휴대폰을 황급히 다시 집어들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분명히 카운터 오피스라는 이름이 보였는데?


카운터 오피스, 단순 경리 사무원, 고졸 이상, 정규직...



아까 그 둘을 만나지 않았다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이름이었다.

조건도 썩 나쁘지 않고 경력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구인 기간은... 내일 아침부터잖아?

"......"

아까 그 잘나 보이는, 힐데였던가.

말끔한 정장을 입고 있었지. 사원증도 번듯했고.

"나랑 비교되는 여자였지."

어쨌든 지금은 찬 물 더운 물 가릴 때가 아니야.

"이력서를 분명 어디다 놔뒀는데..."

얼마 전에 뽑았다가 제출되는 일도 없이 쳐박아뒀던 이력서가
이렇게 쓸 일이 생길 줄이야.

이력서를 찾고 아침에 입을 정장을 꺼내두니 묘하게 가슴이 두근거린다.

여태 매번 퇴짜를 맞았지만, 이번만큼은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기대에 부푼 가슴으로 이불을 덮으니, 이번에는 금새 잠이 찾아온다.

언니... 행운을 빌어줘.





"안녕하세요. 경리 구인글 보고 온 유미나라고 합니다."

"아, 어서오세요. 이력서는 가지고 오셨죠?"

"네, 여기..."

"아아 아뇨. 이력서는 저 말고 저 분한테 드리세요. 힐데 대리님! 경리 면접 보러 오신 분이에요!"

"응. 지금 갈.."

커피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던 힐데는 면접을 보러 왔다는 여자를 보자마자 굳어버렸다.

저 여자앤 분명...

'서, 설마...'

유미나는 나름대로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지만

힐데에게는 자신의 비밀을 폭로하러 온 악마의 미소처럼 보였다.






"여긴 정말로 사람이 없네. 좀 어둡긴 하지만..."

"아까 그 여자의 말이 사실인가보군. 그런데..."

"걱정 마. 그럴 아이는 아닌 것처럼 보였으니까."

"난 직감이라는 건 믿지 않지만,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직감이 아니라... 그만두지. 하여튼 걱정하지 마."

"잠시 기다리게. 아까 그 여자가 우리의 비밀을 안다면서 협박이라도 하면 어쩌려..."

이상한 데서 노파심이 많은 구 부장의 답답한 모습에

힐데는 그의 넥타이를 확 끌어당겼다.

"그럴 애 아니라니까. 아까 하던 거나 마저 할까?"




그렇게 자신있게 말 한 결과가, 지금 힐데의 눈 앞에 있었다.

'...X됐다.'


-----------------------‐----‐----------

힐데는 이내 마음을 진정시키고

사람이 없는 작은 방으로 유미나를 데려갔다.

떨리는 손으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서

그녀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니

자신을 협박하려고 온 건 아닌 듯 했다.

"경리 경험은 있으세요?"

"아뇨. 경력 무관이라는 글을 보고 지원했습니다."

"음, 거주지는 여기에서 가까우시고..."






"수고하셨어요. 결과는 이번주 내로 나올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저기 죄송한데, 혹시 언제 결과가 나오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나요?"

"미안해요. 이번주 내라고 밖에는 대답을 못 해주겠네요."

"아니예요. 죄송하실 건 없죠.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으로 대화를 마치고 방을 나가려는 그녀의 등에 힐데가 급하게 말을 걸었다.

"저, 저기요. 어제 보신 건..."

"어제 본 거라뇨?"

"저기 그... 저랑 남성 분이랑 있던 거요."

"아. 전 그런 거 머리에 안 남겨두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하고 유미나는 이번에야말로 방을 나갔다.

"...거짓말 같지는 않은데."





"그래서. 어제 그 아르바이트생이 오늘 경리 면접을 보러 왔다고?"

"그렇다니까."

"세상 별 일 다 있군. 설마 우리를..."

"으응. 그런 건 아니야. 정말 우연이 겹친 것 뿐이겠지."

막 서빙된 생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킨 힐데는 시원시원한 말투로 대답했다.

"나는 영 이상하군. 아무리 우연이라도..."

"괜찮대도. 그보다 그 아이, 얘기해보니까 꽤 괜찮은 아이더라고."

"자네가 그렇게 말하다니. 나도 한 번 볼 걸 그랬어."

"나는 당신같은 성격, 싫어하지 않으니까."

"설마 내 성격을 닮았다는 뜻인가? ...그건 좀 섬뜩한데."

힐데는 오징어를 잘근잘근 씹으며 떨떠름한 표정의 부장을  바라보았다.

"설마. 뭐랄까... 그래. 당신이 늑대라는 느낌이면 그 아이는 강아지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고 해두지."

"말이 그렇지, 개같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그거야 뭐. 이제부터 하는 거 봐서 개같다고 할 수도 있겠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군."

"...지금 나 욕하는거지?"

무언가 설명하기 위해 맥주잔에 입만 대고 한참을 고민하던 구 부장은

끄응 하는 신음소리를 내며 맥주를 들이붓더니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경리로 일하게 된 유미나라고 합니다."

"어서 와요. 그 날 어쩐지 느낌이 좋았는데 이렇게 됐네?"

"그 쪽은 주시영 주임. 아, 말은 편하게 해도 되지?"

"아, 네. 편하게 해주시는 게 저도 편해요."

"그래. 나는 힐데 대리. 그 쪽 빈 자리가 이수연 과장님. 그리고..."

"구 부장일세. 잘 부탁하지."

"...아, 네. 잘 부탁드립니다."

자신을 보더니 눈빛이 흔들리는 유미나를 보고서

구 부장은 는 힐데에게 남몰래 다급한 손짓을 했다.

'아니라니까!'

입모양으로 말하는 힐데.

"크흠. 경리 업무는 시영 주임이 전담해서 알려주도록."

"네~ 미나 양, 따라와요."

"네. 잘 부탁드려요. 주시영 주임님."




----‐‐-‐------------------‐


"담배 태워요?"

"네. 근데..."

"담배냄새 배길까봐요? 걱정하지 마요. 페브리즈 한 다스는 사뒀으니까."

주시영은 산뜻한 미소로 담배곽을 툭툭 치며 말했다.

"그리고 설령 담배 냄새 배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해요. 미나씨 아침에 교육받은 것만으로 얼굴이 우중충한데 누가 뭐라하겠어?"

그러면서 주시영이 유미나를 끌고 간 곳은

건물의 옥상이었다.

"웬 일로 아무도 없네? 원래 여기 인기 많은 곳이라 한 명 쯤은 꼭 있거든요."

"좋은 곳이네요."

비록 빌딩 숲의 한가운데였지만 유미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이 곳에선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으니까.

잠시 하늘을 바라보며 감상에 빠진 그녀의 팔을 툭 친 시영은 뱀 문양이 있는 성냥갑에서 성냥을 하나 꺼내 불을 붙였다.

"어때요. 이래도 냄새 배긴다고 뺄 거예요?"

유미나는 그제서야 오전 내내 굳어있던 표정을 풀고 살짝 미소지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주시영은 그런 유미나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고는 자신도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 피웠다.

"흐아아... 뒤지게 좋네."

짝다리를 집은 채로 팔짱을 끼며 담배연기와 함께 내뱉듯이 말하는 그녀는, 좋게 보면 멋있어 보였고 나쁘게 보면 불량배 같았다.

"미나 씨. 내가 왜 여기 데려온 줄 알아요?"

"아... 아뇨. 잘 모르겠어요."

"좋네요. 괜히 아는 척 안 하고 모른다고 하는 거. 음... 그래요,  미나 씨 표정이 너무 안 좋아서. 좀 풀어주려고 온 거예요."

그 말을 하고 깊게 들이마신 담배를 내뱉은 주시영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건 단순한 호의가 아니에요. 조금 거칠게 말하면, 표정 좀 풀어. 라고 넌지시 말한 거죠."

"...죄송합니다."

"어머. 그런 소리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죄송해할 필요 없어요. 표정 풀라고 하면 풀면 되는 거고, 담배 피자고 하면 피면 되는 거예요. 이 곳은 그런 곳이야."

어느새 다 핀 담배꽁초를 옥상 구석의 담배화초에 비벼끈 주시영은 난간에 기대 유미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미나 씨 편하게 대할 생각도 불편하게 대할 생각도 없어요. 앞으로 여러 일이 있겠지만, 이거 하난 명심해둬요."

"......"

"일 관련해서는 미나씨를 좋아해서 하는 말도 없을 거고 싫어해서 하는 말도 없을 거라는 거. 뭐, 다른 분들은 그런 사적인 마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요."

"네... 명심하겠습니다."

"기껏 표정 풀어주러 왔는데 또 왜 그래요? 음... 그럼 이 말은 안 하려 했는데,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건 미나 씨에 대한 호의라는 거 꼭! 알아주세요. 그럼 이제 교육 마저 받으러 내려가요. 여기서 하루종일 뭉개고있을 순 없으니까."

"네,넵!"



---‐‐---------------------

"시영 선배, 자료 정리 시키신거 다 끝냈어요."

"응, 잘했어. 어디 보자, 지금 시간이..."

스마트폰 액정에 보이는 시계는 5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야근 안 해도 되겠네? 잘 했어. 적당히 뭉개고있다가 퇴근해."

"휴... 아침부터 그거 한다고 힘들었어요."

씁쓸한 미소를 보인 유미나는 외투를 집어들었다.

무언가 잘못된 걸 직감했을 때는, 막 문을 열고 나가려 할 때 주시영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였다.

"미나 씨. 이거 2분기 자료인데?"

"네? 분명  1분기 조사했는데..."

"미나 씨. 지금은 변명 할 때가 아니야. 외투 다시 걸어두고 자리에 앉아."

주시영은 바짝 긴장한 채 자리에 앉는 유미나를 보지도 않은 채 키보드를 빠르게 두들겼다.

"미나 씨, 웬종일 그거 했다고 했지? 그러면 9시 쯤엔 퇴근할 수 있겠다. 내가 파트 나눠서 메신저로 보내줄테니까 얼른 시작해. 담배는 끝나고나서 피고."

"저기 그런데..."

"9시에 퇴근할 수 있다는 건, 제가 미나 씨를 도와드리겠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대화 끝. 빨리 끝내고 가자고."

"죄송합니다..."

옆 자리에서 갑자기 말소리가 들리자 호기심이 일어 그 대화를 듣고 있던 힐데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시영, 7시에 퇴근하자. 나한테 반 줘."

"힐데 대리님?"

"시영 주임이 대화 끝이라고 하는 거 못 들었어? 머리 굴리면서 입 열지 말고 손 움직여. 나도 빨리 퇴근하고 싶으니까."

그 말에 유미나는 울먹울먹하는 얼굴로 키보드를 두들겼다.




"힐데 대리님 한 물 가신 줄 알았는데. 여전하시네요?"

"상사한테 못 하는 말이 없네. 얼른 가방 챙겨서 퇴근이나 해. 난 야근 좀 더 해야되니까."

"업무 있으신데 도와주신 거예요? 세상에나..."

"...아까 나한테 다 들리게 말해놓고선."

"그, 그럼 전 이만 신입 데리고 퇴근할게요. 애 너무 놀란 것 같으니까 진정도 좀 시켜주고요."

그 말에 힐데는 잠시 고민하더니 지갑에서 수표를 한 장 꺼냈다.

"맛있는 걸로 먹여. 쪼잔하게 굴지 말고."

그런 힐데를 주시영은 이상하다는 눈으로 빤히 쳐다보았다.

"오늘 많이 관대하시네요? 저한텐 한 번도 그런 적 없으신 것 같은데."

"말이나 못 하면 밉지라도 않지... 빨리 가서 신입이나 달래줘. 지금쯤이면 다 울고 나왔을테니까."

"네~ 그럼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바지차림으로 뛰어나가는 시영을 보고 한숨을 내쉰 힐데는 밀린 서류를 보기 전에 의자에 기대 생각에 빠졌다.

자신이 신입이던 시절 유미나와 비슷한 실수를 했을 때 아무 말 않고 도와주던 구 부장.

그 모습을 보고 자신도 그런 상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오늘 유난히 유미나에게 관대했던 것도 그 때 생각이 나서였다.

갑자기 그의 얼굴이 보고 싶어진 힐데는 서류더미 위에 놓여있는 스마트폰을 집어들었다.

'구 부장. 오늘 한 잔 할까?'

'류 부장과 낚시 중이라네. 자네도 오는 건 어떤가? 여기 물이 아주 좋다네.'


"......"

이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유미나를 데리고 회사에서 나온 주시영은 아무 말이 없었다.

무언가 말을 꺼내야하나 생각하면서도 입만 달싹거리던 유미나는 이내 포기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조용히 그녀를 뒤따라갔다.

"여보세요. 사장님. 오늘 거기 자리 있죠? 조용한 데로 두 자리 내줘요. 네. 네. 그럼요. 그럼 이따 봐요. 네. 고마워요."

웃는 얼굴로 통화를 끝낸 주시영은 유미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오늘 가는 데 엄청 좋은 곳이에요. 뭐, 최고급까진 아니라도 집에 가서 혼자 먹는 밥보단 좋을 거야."

기분 좋게 말하는 주시영의 말에 유미나의 얼굴이 조금씩 무너졌다.

"어? 아까 다 운 거 아니었어요?"

"죄, 죄송합니다. 이건..."

"죄송하긴 뭐가 죄송해. 이리 와요."

주시영은 부드럽게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회사 일은 회사 일. 밖의 일은 밖의 일. 그런 실수 누구나 한 번 쯤 하기 마련이에요. 그럴 때 오히려 자기 잘못 아니라고 뻔뻔하게 구는 애들도 있는걸?"

"......"

"아까 내가 그렇게 말한 거, 좀 서운했죠? 힐데 대리님도 그렇고."

"......"

"신입들은 그럴 때 바짝 안 쪼아주면 어쩔 줄을 모르거든요. 그래도 이런 상사들이 어딨어요? 야근하면서까지 일도 같이 해주고."

"...감사합니다."

"그래요. 죄송하기보다는 감사하기. 나는 죄송하다는 말 싫어해요."

죄송할 짓을 안 하면 되는 거거든.

하고 덧붙이고 싶은 시영이었지만

붉어진 유미나의 눈망울이 안쓰러워 그 말은 넣어두기로 했다.



"사장님!!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은 무슨. 오늘은 또 왜 왔어?"

"왜 오긴. 회 먹으러 왔죠. 조용한 방으로 잡아줬죠?"

"안 잡아줬다가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저 방 들어가."

"고마워요. 자, 미나 씨. 먼저 들어가. 난 뭐 좀 사올게. 아, 사장님! 맨날 먹는 그걸로요! 얼음컵도!"

"그런 메뉴 없어!"

풍채 좋은 사장님이라는 사람은 툴툴거리면서도 주방으로 향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방, 세팅이 끝난 테이블 앞에 혼자 어색하게 앉은 유미나는 정신 없었던 하루를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호주머니의 담배가 고팠지만 상사를 두고서 밥 먹기 전에 피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되돌아보며 앉아있으니

어느새 주시영이 한 손에는 얼음컵을, 한 손에는 커다란 사이다를 들고 들어왔다.

"어머. 담배라도 한 대 할 줄 알았는데. 그냥 있었네요?"

"아... 아니요. 그건 좀..."

"왜. 상사랑 밥 먹는데 담배 냄새 배기면 안 되니까?"

주시영은 피식 웃고선 사이다의 뚜껑을 따고 얼음컵에 콸콸 부었다.

"아. 미나 씨는 술이라도 한 잔 해요. 이거 힐데 대리님이 내시는 거니까 비싼 거 마셔도 돼요."

"그럼... 저는 맥주 한 병만 마실게요."

"사장님!! 여기 맥주도 하나요! 빨리 가져다주세요!"

"지금 가고있어!"

이윽고 문이 열리더니

어마어마하게 큰 회 접시가 들어왔다.

"오늘 사장님 인심 좀 쓰셨네요?"

"시끄러워. ... 그 쪽 아가씨, 맛있게 먹고 가요."

눈도 안 마주치고 말한 사장님은 문을 거칠게 닫고선 나갔다.

"이게 얼마만에 먹는거람? 미나 씨, 맘껏 먹어요. 난 어차피 많이 못 먹어."

긴장이 약간 풀려서인지 하루종일 굶었던 탓에 갑자기 허기가 몰려온 유미나는 회를 한 점 두 점 빠르게 해치워갔다.

주시영은 허겁지겁 배를 채우는 그녀를  조용한 미소로 바라볼 뿐이었다.


여자 둘이 먹기에는 좀 많은 양이었는지, 유미나의 맥주가 바닥을 보일 쯤에도 회 접시에는 아직 회가 가득했다.

맥주가 다 없어진 걸 보고서야 자신이 허겁지겁 먹은 걸 떠올린 유미나는 주시영의 눈치를 살폈다.

"많이 먹었어요? 맛있죠?"

"네... 혹시 저 때문에 못 드신 건 아니죠?"

"이렇게 많은데 무슨 말이에요. 나도 배불러 죽겠어요."

유미나는 텅 빈 사이다 페트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회를 먹느라 들리지 않던 음악소리가 귀에 들어올 때 쯤, 드르륵하고 문이 열렸다.

"아직 안 끝났지?"

"힐데 대리님?"

벌떡 일어서다 휘청이는 유미나의 팔을 잡아준 힐데는 외투를 벗고선 유미나의 옆에 앉았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오신 거예요?"

"니가 올 곳이야 뻔하지.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이 남겼어? 사장님. 여기 수저 하나만 더 갖다주실래요? 소주도 두 병 가져다주세요."

이내 수저와 소주를 가져온 사장님에게 인사를 꾸벅 한 힐데는 소주부터 따 잔에 따랐다.

"신입. 많이 놀랐지."

"네, 조금..."

"원래는 시영이가 계속 붙어줘야 할 시기인데, 하필 연말이랑 겹치는 바람에 바빠서말이야. 그러니까... 그, 뭐야."

힐데는 회 한 점에 소주를 들이키고선 말을 이었다.

"원래 실수할 시기고, 당연히 할 실수를 한 것 뿐이니까 신경쓰지 마."

"...알겠습니다."

"표정 풀고. 오늘은 마음껏 먹고 들어가서 푹 쉬어. 아직 9시 안 됐지?"

"이제 8시 반이요."

"아직 한참 남았네. 자, 신입. 이거 먹고 오늘 일은 잊어."

힐데는 젓가락질 한 번으로 회를 여러개 집고선 초고추장에 찍어 유미나에게 들이밀었다.

그 자상한 모습에 유미나는 또 울먹울먹거리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나 팔 떨어진다. 얼른."

"... 감사합니다."

입에 회를 잔뜩 물고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유미나의 모습은

그녀가 회사에 정식으로 입사해

훗날 유 차장이라고 불릴 때까지도 회식 자리에서 술안주로 쓰였다.






구부장은 구 관리국 관리자


내가 회사일을안해봐서

뭐 틀렸거나 이상한 부분있을수있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