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상 잠에 든다면, 나는 그날 그 곳에 서 있다.


붉게 물든 마을에.


내가 놀러오면 항상 고구마 케이크를 만들어 주던 에이미 언니도, 내가 만든 대검을 멋지다며 들고, 휘두르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시던 찰스 아저씨도, 누구보다도 상냥하던 아버지도 전부 육편이 되어버렸다.


누군가는 산채로 반으로 갈렸다, 누군가는 내장을 꺼내져 본보기로 전시당했다. 다수의 여성들은 겁탈당하고, 유린 당한 후에야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기도 했다.


...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나는 과거, 평화로웠던 마을에 있다.


"저기, ■■. 오늘도 도서관까지 호위좀 해줄 수 있어?"

친숙한 소녀가 이제는 잊은 그 이름으로 나를 불러온다.


"...음... 그래. 뭐 그런다고 손해보는 건 없으니까."

그런 식으로 친구였던 소녀를 도와 모험을 떠나기도 하고...


"어이 ■■. 오늘도 쇠 좀 두드리다 가겠냐?"

"물론이죠. 오늘이야말로 더 날카로운 검을 벼려내겠어요."

"그 날카로운 검으론 무엇을 할 생각인데?"

"음... 일단 만들어두면 뭐가됐건 쓸 데가 생기지 않을까요?"

마을에서 둘째가는 대장장이. 찰스 아저씨를 도와 검을 벼려내기도 하고...


"아 ■■. 어서와! 오늘도 고구마 케이크 먹고 갈래?"

"제가 아직도 애도 아니고... ... 먹을게요."

"에헤헤... ■■도 솔직하지 못한다니까."

어딘가 바보같은 사서, 에이미 언니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며...



"오, 우리 ■■ 왔니? 오늘은 어떤 모험을 하셨을까?"

"응, 다녀왔어. 오늘은 말이지..."

......



제발... 떠오르지 말아줘...

나를 그 날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여긴 어디지.


아, 난 이곳을 안다. 10년전 그곳. 색의 거리다.

그리고 나는...


[탕!]

내 손에서 엄청난 총성이 울려퍼진다.

총성의 근원에서 엄청난 속도의 탄환이 발사되어, 악인의 무기를 저 멀리 날려보낸다.


"슬슬 항복하지 그래? 더 싸워봤자 네겐 아무런 이득도 없어."

"미안하지만, 이쪽도 먹여살릴 가족이 있거든! 그러니까 내가 이 일을 말아먹으면... 걔넨 싹 다 굶어 뒈지는거야!"


"하아... 네게 피해를 보는 사람들도 전부 먹여살릴 가족들이 있다는 걸 떠올려주시면 좋겠는데."

"정 다시 싸우고 싶으시면 가서 무기나 집어오든가. 시간은 충분히 줄 게. 대신 이번엔 이 탄환. 당신 심장을 꿰뚫을 거야?"


반 협박조로 말하며 나는 산탄총을 악인의 심장을 향해 겨누어보였다.

상대방도 그 협박에 기세가 꺾였는지 "두고 보라고!"라는 엄청 밍숭맹숭한 반응을 보인 후 부리나케 도망쳤다.


"...이제 나와도 돼. 상대방 갔어."

나는 산탄총을 어깨에 걸친 채 말했다.


"고마워 ■■■씨. 당신이 아니였으면 큰일날 뻔 했어..."

외발의 청소부가 나에게 감사를 표하며, 푼돈을 쥐어주려 했다.


"돈은 됐어. 그런 걸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라고."

"음... 대가를 하나 받자면... 다음부턴 나쁜 짓 좀 하고 살지 마. 그러니까 저런 잡배가 꼬이는 거잖아?"


 "그건 받아드리기가 힘든데 말이야... 우산에선 말이지. 이렇게 안 살면 먹고 살 수가 없다고?"

"난 그걸 바꾸고 싶어서 이렇게 싸우는거야. 무고한 사람들의 피가 단 한 반울도 이 대지를 적시지 않게 하기 위해. 서로 손과 손을 마주잡고 마주보게 하기 위해서 말이야."


"...하여간 당신도 괴짜라니깐."

"동감이야."




꿈은 점점 빨리지다가... 마지막에 와서는 다시 붉게 물든 마을로 돌아온다.


...


나는 마을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를 듣고, 여태까지 낸 적 조차 없는 속도로 달려나간다.

"허억... 허억... 허억... 제발... 늦지 말아야 해!"


그러나... 늦었다.

마을에는 이미 친숙한 사람은 단 한명도 남아있지 않은 채, 검을 든 모르는 이들뿐으로 가득채워져 있었다.

낫을 든 여자, 몽둥이를 든 사내, 단검을 든 신사, 가위를 든 아가씨


"..."

제발 이러지 말아줘.


"...어라? 저기 암컷 한 놈 더 있는데?"

철 지난 만우절 장난이라고 해줘


"이거 재미좀 더 보겠구만!"

제발 전부 너무 싸돌아다니기만 하는 나에게 경고를 주려고, 마을사람들이 준비한 몰래카메라라고 해달라고


"가자!"

제발...



"전부 따먹어버리자!"

"반으로 잘라버리자!"

"없애!"

"다리를 찢어버려!"

"내장은 나 주는거다?!"

"눈깔은 이 통에 전부 모으자고!"

"응대는 계속되어야 하니까요."

"붉게 물든 모습... 제게 보여주시겠어요?"


"그 아가리 닥쳐어!!!!!!!"


...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내 손에는 무수히 많은 피가 묻어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마을에는 그 누구도, 그 누구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날, 내 세계가 깨졌다.


그게 뭐야... 나 때문에 모두가 죽은거야?

내가 손을 내밀어서, 먼저 물어뜯어 죽이려고 하지 않아서 모두가 죽어버린거야...?

평화가 올 거라는 생각은 전부 허상이였던거야?

내가 뭣모르고 이상을 쫒아서 이런 일이 난 거야...?


"하하... 하하하하..."


"우웨... 우웨에에에에에에엑!"

구역질이 난다. 속에 있는 것을 모두 개워내고도, 이 역겨운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가... '소통'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전부 허상이었던건가.

손에 손을 맞잡을 수 있다는 것은 전부 이상이었던건가.


그런가... 결국 모든 것을 들어내고, 손을 잡아달라고 하는 것은 상처뿐이 불러오지 못했던건가.

그게 우산이니까, 그게 세상이니까?"


"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런 거였어!"

"..."


"..."


"으헤..."


그래, 이거면 된거야.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 채. 그저 거짓된 빈틈투성이의 자신을 보여주면 되는거야.


리스는 죽은거야. 그날, 손에 피를 묻혀버린 날에 내 손으로 죽여버린거야.


지금부터 내 이름은...




"..."

"허억!"


언제나처럼의 기상. 그곳에는 친숙한 사람이 서 있다.

그는 내가 일어나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말한다.


"좋은 아침이야. 메어"

"으헤... 오늘은 무슨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