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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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가 가르쳐준 길을 따라 도착한 아모스 섬의 해변은 주인과 머큐리의 말 그대로였다.

아니, 그것과 자신의 상상을 합친 것 이상이었다.

에메랄드빛 바다, 잔잔한 파도. 거기에 식욕을 자극하는 음식 냄새까지.

그런데...

"여기는 왜 사람... 아니, 악마나 차일드가 아무도 없는 거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갑자기 옆에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메티스는 화들짝 놀라 나비의 팔을 붙들었다.

그 낯선 목소리와 메티스의 갑작스러운 행동에도 나비는 멍하게 둘을 바라볼 뿐이었다.

"제가 손님을 놀래켜드린 모양이군요. 부디 용서를... 저는 이 섬의 주인인 유노님의 집사, 오디세우스입니다. 이 해변에  여러분밖에 없는 것은 여러분의 주인인 그 악마님에 대한 제 주인님의 호의입니다."

"그 악마가 인덕은 있다는 것이다."

악마에게 어울리지 않는 용어를 쓰는 구미호를 무시하고서
오디세우스는 말을 이었다.

"이 곳에서 여행을 즐기셔도 괜찮고, 물론 인적이 많은 곳으로 가셔도 괜찮습니다."

여태까지 아무 반응이 없던 나비는 그 말에 조금 표정이 좋아진 것 같았다. 워낙 표정이 없어서 좋아진 건지 아닌지도 구분하기가 어려웠지만.

"혹시 불편하신 것이나 질문이 있으시다면 이 호출기를 눌러주십시오. 저나 다른 분이 금방 올 것입니다."

오시페우스는 작은 호출기를 하나씩 나누어주고선 발걸음을 돌려 사라졌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으음.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섬이라는 것이다."

구미호는 한 입에 먹기 좋게 차려져있는 음식들을 하나씩 집어먹으며 바다를 구경했다.

메티스는 먹느라 바쁜 구미호를 보며 한 번 웃고선 샌들을 벗고 바닷물에 발을 살짝 담가보았다.

처음엔 살짝 차가운 물에 발을 움찔했지만 들어왔다가 빠지는 걸 반복하며 자신의 발가락 사이를 간질이는 그 감각에 기분이 좋아진 메티스는 주변을 살펴보다가 모래 위로 그대로 누워버렸다.

햇빛에 적당히 달궈져 따뜻한 몸과 약간 차가운 발의 감각을 즐기던 메티스의 뒤로 나비가 조용히 다가왔다.

사실 메티스는 나비와 함께 오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말수도 적을뿐더러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도통 알 수 없어서 같이 있으면 생기는 어색한 분위기가 싫었다.

그래서 나비가 와서 가만히 쭈그려 앉아 있어도

메티스는 눈을 감고서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그러기를 몇 분이나 지났을까, 모래 위를 걷는 소리가 옆으로 다가오더니 풀썩 하는 소리에 메티스는 눈을 움찔거렸다.

그 소리가 뭔지 궁금해 실눈을 살짝 떠보니 나비가 자신과 같은 모양새로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

그런 나비가 조금 귀엽기도 하고 조금 성가시기도 한 메티스는 그냥 신경을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메티스! 나비! 이리 와서 이것 좀 먹어보란 것이다!"

다행히 구미호가 불러주는 덕에 그 어색한 분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지만, 메티스는 나비가 계속 신경쓰였다.



"후아... 둘러보는 것만으로 하루가 끝나버렸다는 것이다."

"으으...피곤해."

밤이 깊어서야 돌아온 메티스는 양말도 벗지 않고서 침대에 누워 뒹굴거렸다.

구미호는 양손으로도 모자라 카트에 잔뜩 실은 음식을 가져다두고서 메티스의 옆에 같이 나란히 누웠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나비도 힘이 들었는지 한숨을 푹 쉬며 커다란 소파에 앉아 눈을 깜빡거렸다.



침대에 누워 구미호와 장난을 치는 새 어느 정도 피로가 가시자, 메티스의 눈에 커다란 티비가 눈에 들어왔다.

"구미호. 우리 영화 볼까?"

"영화? 영화는 무서운 게 좋다는 것이다."

힘없이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있던 구미호도

메티스의 제안에 귀를 쫑긋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하는 거지?"

"그, 글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티비의 전원만 켜고 리모컨만 만지작거리던 둘의 옆으로 나비가 슬쩍 다가와서 손을 내밀었다.

"나비. 이거 할 줄 알아?"

그녀는 한 번 끄덕이고선 리모컨을 조작해 여러 영화를 골라 볼 수 있는 화면을 틀어주었다.

"오... 고맙다는 것이다. 메티스, 간식 가져올테니 영화 고르고 있으라는 것이다."

"응. ...나비, 혹시 보고 싶은 영화 있어?"

어느새 다시 소파에 앉은 나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낮에 그녀를 신경쓰지 않기로 한걸 떠올린 메티스는 그러려니 하며 첫 날 밤을 마무리할 영화를 신중히 골랐다.



그런 보람이 있었는지 메티스가 고른 영화는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무서웠다.

구미호는 몇 번이나 꼬리를 바짝 추켜세웠고

아예 방석에 얼굴을 묻은 채로 영화를 보던 메티스의 머리는 엉망이 돼있었다.

나비만이 처음 영화를 보던 표정 그대로 그저 화면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 정말 무서웠다는 것이다..."

"으, 응. 나도..."

"......"

배도 부르고 몸이 피곤한 상태로 영화까지 보고나자

셋은 슬슬 잠이 오기 시작했다.

악마의 부탁이었는지는 몰라도

큰 침대 하나, 작은 침대 하나가 있어 자연스레 구미호와 메티스가 같이 큰 침대에 누웠고 나비는 혼자 작은 침대에 눕게 됐다.

"그럼, 둘 다 잘 자란 것이다."

"응. 구미호도. ...나비도 잘 자."

"......응."

다음날 계획을 세운다는 계획도 잊어버리고서 셋은 그렇게 잠이 들었다.



"으음...."

새벽에 자신을 간질이는 구미호의 꼬리에 깬 메티스는 비몽사몽한 상태로 화장실에 갔다.

볼 일을 보고 늘어지게 하품을 보며 거울을 보자, 아까 영화에서 본 거울귀신이 생각났다.

잠이 확 깨며 콩닥콩닥거리는 가슴을 간신히 추스린 메티스는

차가운 물을 한 잔 마시고선 침대로 들어가 구미호를 몇 번 툭툭 쳐서 불러보았다.

"저기, 구미호. 자?"

"...."

구미호는 코까지 살짝 골며 도저히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잠을 못 이룰 때면 언제나 먼저 눈치채고 자신을 불러주던 에르제베트도, 깨우면 금방 일어나는 주인도 없는 이 곳에서

메티스가 쳐다본 것은 나비였다.

"......"

분명 자신을 쳐내지는 않겠지만, 기대기에는 너무 서먹한 사이였다.

아니, 서먹한 사이라고 하기도 힘들지. 애초에 별로 인연이 없으니까...

그렇게 한참을 구미호의 등에 붙어서 떨며 잠 못 이루던 메티스는 속으로 양을 천오백 마리나 세고 나서야 간신히 잠 들 수 있었다.






그 시각, 주피터는 주인과의 약속을 잊고

레드크로스와 밤낚시를 즐기고있었다.





"여보세요? 주인? 응. 응. 잘 도착했어. 방금 막 일어나서 아침 뭐 먹을지 생각중이었어. 근데 왜 주인이랑 주피터는 안 와? 응. 아... 빨리 와. 심심하단 말이야. 응. 알았어. 그럼 이따 또 전화할게."

짧은 통화로 악마와 주피터가 다음날에 온다는 걸 알게 된 메티스는 맥이 빠졌다.

'3박 4일 여행인데 3일째에 오는 건 뭐야...'

캐리어에 들어있는 수영복과 에르제베트가 억지로 챙겨준 그걸 떠올리면서 메티스는 입맛을 다셨다.

구미호와 노는 것도 재밌었지만 다 같이 노는 걸 기대하고 온 메티스는 기운이 쭉 빠졌다.

"메티스! 와서 아침 먹으라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 차려졌는지는 몰라도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아침식사의 냄새에 기운을 차린 메티스는 의자에 앉아 주인과 주피터가 없을 동안 무얼 할지 생각했다.

나비가 이제 막 포크를 집어들 쯤에 식사를 마친 구미호는 커피를 홀짝거리며 메티스의 팔을 꼬리로 탁탁 쳤다.

"메티스. 이따가 카지노에 가보자는 것이다."

"으응. 거긴 악마랑 차일드들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 구미호 혼자 다녀와."

"어제 그 집사에게 물어봤는데, 카지노에도 우리끼리만 놀 수 있는 별실이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분명 재밌을 거란 것이다."

그 말에 약간 혹한 메티스는 베이컨을 오물오물거리며 어떤 옷을 입고 갈지 생각했다.

나비는 그런 둘을 가만히 바라보며 턱받침으로 입가를 닦았다.



"그런데 아침부터 카지노가 열려있을까?"

"이 곳은 24시간동안 열려있다고 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비는 어디 있냐는 것이다."

"나비? 그러게. 어디 혼자서 쉬고있는 거 아닐까?"

나비의 부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둘은 아모스섬의 경치를 구경하며 카지노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다만 생각하지 못 했던 건 걸어가기엔 그 거리가 꽤나 멀었다는 점이었다.

하는 수 없이 호출기를 누르자 어딘가에서 큼직한 차를 끌고 오디세우스가 둘을 데리러 왔다.

마치 그런 일은 예상했다는 듯이 자연스레 둘을 카지노로 데려다준 오디세우스는 정중하게 인사를 남기고 다시 사라졌다.

"친절한 사람이네. 어떤 마음으로 저러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여기는 꽤 화려하다는 것이다. 분명 낮인데도 밤인것처럼..."

구미호의 말대로 카지노 내부는 햇빛을 완전히 차단한, 인공적인 조명만이 눈을 비추는 공간이었다.

"구미호 님과 메티스 님 맞으신가요?"

그 화려한 조명에 눈을 뺏겨 정신없이 구경을 하던 와중

차분한 목소리가 둘의 이름을 불렀다.

"......"

"......"

그 목소리의 주인은 표현하는 것도 민망할 정도로 외설적인 옷을 입고 토끼귀 머리띠를 한 차일드였다.

"이 쪽으로 오세요. 두 분을 위한 별실이 준비돼있습니다."

그 정신머리가 걱정되는 차일드는 둘을 그다지 넓진 않지만 룰렛머신과 테이블이 있는, 카지노라는 말에 충실한 방으로 안내했다.

"저는 두 분의 딜러가 될 클로토라고 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고객이 남성이었다면, 아니 여성이라 해도 평범한 악마나 차일드였다면 그 은은한 눈웃음에 이미 마음을 뺏겨버렸을테지만

메티스와 구미호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그런 손님이 드물긴 하지만 몇 번 겪어본  클로토는 둘의 무반응에 개의치 않고 딜러의 자리에 가서 가만히 섰다.

구미호는 그런 클로토는 안중애에도 없는지  어디 먹을 것이 없나 두리번거리고 있었고

자신의 몸의 두 배는 될 의자에 파묻히듯이 앉아있던 메티스는 클로토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클로토, 라고 했지?"

"네. 혹시 질문이 있으신가요?"

"여기선 뭐 하고 노는 거야?"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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