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쟁이가조금 나쁘게나오니 주의






























"저기, 악마..."

"응?"

집에서조차 잘 듣기 힘든, 묘하게 힘이 없는 얇은 목소리.

식탁에 앉아 한창 마늘을 까고있던 악마는 그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 곳에 언제나처럼 힘 없는 얼굴을 한 채 선 나비가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는 시선에 악마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그녀가 아무일도 없이 괜히 나왔을 리 없다는 생각을 한 악마는 손에 든 마늘을 내려두고선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 나한테 할 말이라도 있어?"

"...응. 오늘 저녁. 같이 먹으러 나가."

갑작스러운 나비의 말에 악마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 했다.

나비가 방에서 나와 말을 건 것도 신기한 상황에서 밖으로 나가자는 말까지 하자 악마는 그녀가 어디 아픈 건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악마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대답했다.

"오늘 아르바이트 나가야 돼서 힘들 것 같아. 다음에라도 시간 되면 같이 나가자."

"다음? 언제...?"

"어... 그건 모르겠네. 내가 나중에 말해줄게."

악마의 대답이 썩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나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선 볼 일을 다 봤다는듯 돌아선 나비는 콩닥대는 가슴에 손을 얹고선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발걸음으로 자신의 방에 돌아갔다.

방문을 열고들어가 방 안에 혼자가 되고나서야 살짝 참고있던 숨을 편하게 내쉰 나비는 침대에 조용히 걸터앉았다.

"......"

어느 일에든 잘 의욕을 내지 않는 그녀였지만.

악마와 같이 밥을 먹는다는 생각은 그런 나비도 조금은 의욕을 내게 만들었다.

어디로 가서 먹을지까지 생각하는 건 도저히 할 수 없었지만 악마에게 말을 꺼낸 것만으로 만족한 나비는 천천히 침대 위에 누워 베개를 끌어안았다.



"하아, 하아...!"

아까부터 내리기 시작하던 비는 더욱 거세져 이젠 몸에 닿는 빗줄가 아프게 느껴질 정도였다.

안 그래도 정신이 없었던 악마는 집 안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비가 없었던 것을 떠올리며 자신의 다리를 재촉했다.

이미 너무 늦어버렸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려는 그의 노력은 옷 안까지 비로 흥건해지고 나서야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쏴아아아아아아아

투둑, 투둑.

"......"

고장이 난 건지 희미한 가로등 아래.

나비는 힘없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리본이 풀렸는지 한 쪽만 묶여져있는 머리.

추워서 창백해진 얼굴.

물을 잔뜩 머금어 축 늘어진 새하얀 원피스와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는 모자.

그리고 갈 곳을 잃고 어쩔 줄 몰라하는 두 눈.


"나... 비."

"......"

혹시라도 나비가 들은 척도 하지 않을까 하는 악마의 걱정은 다행히도 쓸모 없는 것이 되었다.

하지만, 피곤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지쳐 보이는 눈 아래로 보이는 눈동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 것보다 악마의 가슴을 더 철렁하게 만들었다.

머리는 당장이라도 나비에게 가 우산이라도 씌워주라 말하고 있었지만, 나비의 눈동자 아래에 보이는 희미한 거부의 빛에 악마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열 걸음이 채 되지 않는 거리.

가깝다고 하면 가깝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멀어 보이는 그 거리에서 나비는 한참동이나 말없이 악마를 바라보았다.

받아내기 힘든 그 시선을 이겨내며 입을 열어보려 했지만, 나비가 지친 목소리로 입을 열 때까지 악마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기대해서 미안해."

짧은 말을 건넨 나비가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는 것도.

악마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