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게시판

일단 수업 내용은 정확하게는 정해주는 영화를 보고 주제를 정해 토론하는거였음


수업 초반에 학생들이 너무 죽어있길래 얘네들과 절대 다시 볼 일 없는 이과생으로써 좀 정신나간 소리 몇번 해서 장작 넣고 빠지고 몇번 했더니 교수님이 자꾸 나한테 그런 기대를 걸더라 


어떤 말을 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는데 나를 지목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매번 물어봤음



어쨌든 기억나는 토론이 몇개가 있었는데




1. 자유의지 토론



포레스트 검프인지 아니면 트루먼 쇼 인지 잘 기억은 안남. 아마 포레스트 검프였던 것 같음


사람에게 진정한 자유의지가 존재하는가 에 대해 토론했는데


다른 이과맨이 '사람의 사고와 행동이란 그 사람이 겪은 모든 일과 환경, 자극, 외부 영향의 총합이 내 유전자를 따라 만들어진 신체를 거쳐 출력되는 것이며 그 사이에 독립된 자유로운 의지가 개입되는 부분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얘기를 했음


이 말 한방에 찬성측이 아무도 제대로 반박을 못하고 


몇몇 애들은 훨씬 얕은 얘기만 하다가 끝나버렸음


남학생 한명이 '그 세포 크기 안에서는 그 뭐냐 슈뢰딩거의 고양이? 양자역학인가요? 불확실한 어떤 확률적 어떤 그게 있다고 하던데'(실제로 이렇게 말함. 사회학과) 


거기다가 내가 뇌세포같이 끊임없이 분자나 원자, 전자간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계에서는 불확정성 원리가 작용하지 않는다고 찬물 끼얹어서 토론이 5분만에 끝나버림





2. 현재에 충실한 삶 vs 미래를 보고 대비하는 삶



이건 아마 베를린 천사의 시 였을거임


명백한 경향성이 나타난건 아니지만 남학생이 반반


여학생이 현재에 충실한 삶 쪽에 조금 더 많이 찬성한 상태로 시작했는데


교수님이 나를 지목해서 이니시 열라고 시켰고 


나는 그때 도저히 안떠올라서 일단 보류했음


한참 토론하다가 한 여학생이 


'사랑같은걸 뭔가 미래를 보고 계산적으로 한다고 하면 싫을 것 같다' 라고 했는데


거기서 갑자기 이니시 걸게 생각나서 손 들고 얘기함


'그 현재에 충실한다는게 사실 사랑도 포함된다고 한다면은 그... 감정도 이제 시시각각 변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현재에 충실한다고 한다면... 바람을 피는 것에도 충실하게 된다'


여기서 남학생들은 빵터지고 여학생들은 몇명은 웃고 몇명은 야유하는 소리(그 여자 방청객들 어어어어어~~~~ 하는 그런 야유)에 끊김


그리고 여학생들 한 10명이 거기다가 조목조목 반박하고 교수님이 마지막에 나 지목해서 '할 말 있습니까?' 해서


'죄송합니다' 하고 끝남





3. 군 가산점제 토론



내가 속한 조가 맡은 영화가 '더 디어 헌터'였는데 


아마 이때 원래 정했던 주제에서 벗어나서 교수님이 그쪽으로 유도했던 것 같음


이 토론이 좀 특이했는데


이 수업이 성비가 거의 비슷하지만 여자가 좀더 많음 그래서 원래 남자가 의견피력을 좀 더 함에도 토론 참여는 대충 비슷비슷하게 함


근데 이 토론은 유독 여학생들이 거의 찬성이나 반대 의견을 내지도 않고 토론에도 거의 참여 안했음


남학생은 대략 찬성 8, 반대 2 정도였는데 여학생은 2명인가 3명인가 당당하게 찬성한 애들 제외하면 아무도 찬성 의견도 반대의견도 안냈음


그래서 남학생들끼리 이것저것 얘기하는데 교수님이 갑자기 여학생들을 지목하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더라


그러니까 여학생들은 우물쭈물하면서 대답 못하고, 뭔가 말 하려다가 흐지부지된 애들도 몇 있었음



아까 찬성한 여자애들 중 한명은 깔끔하게 자기 논리 폈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니까 당연히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거기서 처음으로 다른 어떤 여학생이 스스로 손 들고 뭐라 말 하려고 했는데 역시 말 하다가 흐지부지되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함



그런데 계속 여학생 지목해서 발표 시키는거 보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갑자기 손들고 '교수님 분위기가 너무 강압적인 것 같습니다' 라고 했음


교수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는데 다행히 화 안내고 수용해서 남학생들 토론 지목하는걸로 돌아갔음




이때 의견을 말하지 않고 우물쭈물한 애들은 다 반대였을까?


강압적인 것 같습니다 라는 말 안하고 계속 놔뒀으면 재밌는 꼴 볼 수 있었을까?


난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