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게시판

판춘문예일지도 모르는 글이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한 때 저는 가톨릭 교회의 교리를 믿는 이들의 종이 되기 위하여 수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꿈꾸면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지요.

 마침내 수능을 보고, 물론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아니었습니다, 꿈에 나올셰라 그리던 땅에 발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곳에는 꿈과 희망이 가득하고 마찬가지로 신도들의 종이 되라는 성소를 받아들인 사람들도, 비록 인간의 육신과 감정을 지녔으나 그 본성이 선하고 주님만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곳은 지상락원은 아니었습니다.

 진세를 버렸어라 이 몸 마저 버렸어라 라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독기를 가진 사람이며, 결국은 한날 인간에 불과함을 깨닫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곳의 좋지 않은 모습을 알리고자 하는 글이 아닙니다. 교회의 오랜 전통은 쉬이 변하지 아니하는 법이고, 그것이 이방인에게 부조리로 보일지라도 이는 엄연한 내규이며, 규율이 쉬이 흔들리는 조직이라면 이는 광풍 앞의 민들레 홑씨와도 같은 것이오니 어찌 2천년을 버틸수 있겠습니까? 이를 탓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거리의 콘크리트 조각과 같은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그저, 제 영혼에 크나큰 상처를 입힌 한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그 또한 신의 부르심을 받아 양성받는 자였고, 그는 단연코 제 동기들 중 석학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제가 만나온 사람들 중 가장 추악한 내면을 지닌 자였습니다.


 우선, 그는 애초에 어찌 학교에 들어왔는가부터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학교가 요구하는 성적수준이 그리 높은것은 아니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입학 1년전부터 예비신학생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저는 필수 예비신학생 과정에서 그 사람의 얼굴을 처음 본 것은 하반기 경이었습니다. 이상합니다. 어찌 1월부터 다니지 않았는데 그는 입학자격을 얻을 수 있었습니까? 1년을 전부 참석해야만 입학요건이 주어지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그와의 갈등은 바위에 낙수처럼 성격차이로 갈라지기 시작했고, 결정적인 사건은 1학년 2학기의 일입니다. 저희는 기숙사에서 의무적으로 생활을 했는데 방에서 6명이 공동으로 지내는 생활을 했습니다.

 당연히 세탁물은 공동세탁을 해야했습니다. 같은방을 쓰던, 당일 아침 배식소의 정리담당이던 저에게 당시 세탁담당이던 그는 자신대신 세탁일을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1학년부터 부제들까지, 총 7학년이 사용하는 배식소의 정리는 그리 쉬운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오전 수업이 있으니 촉박한 시간에 쫒기는 일이었습니다. 당연히 거부할 수 밖에 없었지요. 아무리 함께 성소를 받은 가족과도 같은 관계일지라도 불가능한 일은 불가능한 것이니 말입니다.


 그 때부터 그는 저에 대하여 악의적인 소문을 동기들과 선배들에게 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단지 저의 심증만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닌, 동기들과 선배의 증언을 통해 제가 가장 늦게 알게 된 이야기 입니다.

 또한, 같은 위탁교육을 받는 교구였고, 석학이었고, 모범생으로 인지되던 그는, 그의 능력에 미치지 못하는 저에 대한 이야기를 진실로써 인식하도록 하는데 유효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점점 고립되어 가던 저는 정신병이 발병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을 떠나기엔 아직 전 우둔했지요. 그저 신께서 제게 내린 시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학년이 되고 기숙사의 반대편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천덕꾸러기와 비적격자의 사이에서 입에 칼을 물고 흔들리고 있었고, 그는 다른 동기에게도 저와 같은 슬픔을 겪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언젠가 3층 휴계실로 저를 불러 문을 닫고 창가 옆에 의자를 끌고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난 나를 위해 신부가 된다. 나를 위해 신부가 되는게 아니면 신부가 될 이유가 없다. 너(필자)는 대체 신부가 되고싶냐?


 또 동 학기 중, 오후 공강시간에 학교 뒷편으로 불러 이런 말도 했습니다. 


 내가 너(필자) 때문에 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너를 위해 내가 얼마나 위에 이야기 하는지 아느냐. 앞으로 잘 해라.


 이때 저는 모든걸 다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이 말을 듣기 수 일 전에 그가 저에 대해 하던 악마의 혀놀림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먹던 정신과 약을 한 달 치를 전부 털어넣고 씹어 삼키기도 하였고, 그럼에도 죽지 못하면서도, 그러면서 어리석고 어리석고 또 어리석어 백치와 같게 신부의 꿈을 버리지도 못하는,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결국, 교구동기중 프리무스에게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신은 저에게 안식을 주지 않았습니다. 당시 성소국차장 나준홍 바오로 신부는 이 이야기를 들은 프리무스에게 '그 사람'을 괴롭히지 말라고 이야기 했다고 들었습니다. 비단 제 사정 뿐만이 아니라 다른 양들도 늑대의 이빨에 피해를 입고 프리무스에게 도움을 구했던 것이었지요. 하지만 늑대는 영리하여 이미 자신이 빠져나갈 길을 닦아두고 오히려 저희를 늑대로 만들었습니다.


 병은 더 심해졌고, 환각과 환청, 발작으로 이미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되어버린 저는 결국 학교에서 강제로 휴학당했고, 그 동안 인간에 대한 불신과 좌절, 그리고 모멸감으로 수 차례 유서를 쓰고 찢고 쓰고 태우고를 반복하다 약물로는 아쉽게도 죽지 못했습니다.


 자살은 가톨릭의 금기입니다. 신이 주신 목숨을 끊는것은 구원을 포기하는 것이지요. 저는 신부 양성과정에서 완전히 방출되었고, 그제서야 어리석은 자는 사슬에서 풀려나 병이 낫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국 오랜 고뇌의 결론으로 신을 버렸습니다. 그는 석학이고, 그의 두뇌는 교회를 유지하고 진보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명석함이 인격적 파탄을 무시할 정도로 값진 것인지, 그것도 단순히 학자 양성이 아닌 하느님의 어린 양들을 이끄는 목자 양성에서 총명함이 그리도 중요한지는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전 정신과 환자입니다. 이 이야기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구별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한날 바닷물의 포말과도 같은 덧없는 거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신에게 버려지고 신을 버린 저는 이 슬픈 진실, 혹은 거짓을 누구에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곳의 누구도 저를 위해 증언하지 않을것입니다. 전 추방자이니까요. 교회의 영광을 위해 모든걸 바칠 준비가 된 이들입니다. 하지만 전 그저 기도할 뿐입니다.


 제게 버림 받으신 주여, 당신의 진의는 무엇이나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