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제플린 1편-록과 당신의 이야기 5.1. And she's buying the... - 냥드립 채널 (arca.live) 


-내리막길로

1976년, 레드 제플린은 일곱 번째 앨범, 'Presence'를 발표해

(7집 'Presence' 의 앨범 커버)

이 시기는 레드 제플린 안에서도 힘든 일이 많았는데, 보컬 로버트 플랜트가 교통사고로 인해 휠체어 신새를 한동안 진 데다가 그의 아들도 세상을 떠나고, 존 폴 존스가 잠시 밴드를 탈퇴하는 등의 일이 있었어.

7집은 주로 블루스를 재해석한 헤비 블루스 곡들이었어.

수록곡 'Achilles Last Stand'

'Nobody's Fault but Mine'

76년, 그들의 음악과 생활을 다룬 영화 'The Song Remains the Same'가 개봉되고, 그 영화 사운드트랙이 동명의 이름으로 발매가 돼.

('The Song Remains the Same'의 앨범 커버)

좋은 앨범이었지만, 당시 인기를 끌던 또다른 전설적인 하드 록/헤비메탈 밴드이자 맞수 '딥 퍼플'이 'Made in Japan'을 발표하였기 때문에 비교적으로 저평가를 받았지.

하지만 수록곡 'Dazed And Confuzed'는 지미 페이지의 기타와 로버트 플랜트의 보컬에 의해 엄청난 포스를 자랑하지


1979년, 8집 'In Through the Out Door'가 발표돼.

('In Through the Out Door'의 앨범 커버 6가지 중 하나.)

당시 유행하던 뉴웨이브 적인 곡들이 주류고, 보컬 로버트 플랜트도 이전과 다른 목소리를 쓰지.

수록곡 'I'm Gonna Crawl' 플랜트의 아들 캐락에게 바치는 곡으로, 본햄이 꼽은 최고의 보컬 곡 중 하나지.


-역사가 되다.

1980년, 드러머 존 본햄이 갑작스래 사망하고 말았어. 지미 페이지의 저택에서 스크류 드라이버(보드카와 오랜지 주스를 섞은 칵테일)을 잔뜩 마시고 자다가 구토를 한 것이 목에 걸리고 만 거야. 본햄의 사망 이후, 다른 멤버들은 "본햄이 없는 레드 제플린은 의미가 없다."라며 밴드를 해체하지. 사람들은 의리있고 깨끗하다며 칭송했지만 사실 그것 말고도 레드 제플린의 음악을 잘 연주해줄 드러머가 존 본햄 밖에 없었기도 했어.

2년 후, 1982년 미발표곡 중 몇몇을 모아 9집 'Coda'가 발표되었어.

('Coda'의 앨범 커버)

당연히 통일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뛰어난 곡도 많아.

'I Can't Quit You Baby' 1집에 수록된 그 곡으로, 이 버전이 더 평가가 좋아.


'Bonzo's Montreux' 스위스에 갔을 때 녹음한 존 본햄의 드럼 연주곡이야.


밴드가 해체된 후 로버트 플랜트와 지미 페이지는 제프 벡과 함께 밴드 '허니 드리퍼즈'를 이끌기도 했고, 플랜트는 솔로로도 활동했으며, 지미는 배드 컴퍼니의 풀 로저스, 그리고 토니 프랭클린과 함께 '더 펌'이라는 밴드로도 활동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덥 퍼플, 화이트 스네이크의 보컬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앨범을 내기도 했는데 이 앨범, 'Coverdale And Page'는 초기 레드 제플린 스러운 감성이 들어있는 그야말로 최고의 평가를 받았어.

존 폴 존스는 세션계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고, 플랜트는 현제는 컨트리 계열 음반을 발표하곤 하지.


-재결성?

사실 레드 제플린은 1985년 그 유명한 라이브 에이드 공연에서 3명의 멤버와 밴드 제네시스의 드러머 필 콜린스와 함께 레드 제플린의 곡을 연주했는데, 이때문에 저렇게 넷이 레드 제플린을 재결성 한다는 루머가 돌았지. 물론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2007년에는 '아흐메드 에트레군' 추모 콘서트에서 존 본햄의 아들 제이스 본햄을 드러머로 레드 제플린 재결성 공연을 갖는다는 소식이 들렸고 공연이 이루어 졌지. 2008년에는 지미 페이지가 도쿄에 방문한 자리에서 새로운 월드 투어를 계획중이라고 발표하며 확정적이라 생각했으나, 그해 로버트 플랜트가 재결성 투어 및 2007년의 공연에서의 불쾌감을 이야기 했어. 플랜트 없이 밴드를 재결성 하려는 시도는 팬들의 반대로 무산되었으며, 보컬도 테스트 해봤으나 적합한 이도 없었지. 이때 보컬 후보 중에는 '에어로스미스'의 스티븐 타일러와 '얼터 브릿지'의 마일스 케네디도 있었어.

2012년 페이지와 플랜트 사이가 좋을 땐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14년에는 과거 앨범 리마스터가 발표되었지만, 플랜트의 "공연이 다시 열릴 가능성은 0에 가깝다." "페이지에게 지쳤다"같은 인터뷰로 재결성은 요원하지.


-평가

그야말로 하드 록/헤비메탈의 전설을 넘어 가장 위대한 록 밴드 중 하나야. 하드 록이라는 기조에서 블루스, 포크록, 중동과 인도 민속음악, 프로그레시브 록, 뉴웨이브 등 수많은 장르를 받아들이며 급변하는 음악의 흐름에 뒤쳐지지도, 매너리즘에 빠지지도 않았어. 쉽게 말해 너무 혁신적이지도 않았고, 고루하지도 않았다는 거야.


-인기

사실 레드 제플린은 언론에 의도적으로 노출 되는 것을 피했어. 하지만 멤버 각각의 역량 등에 의해 첫 등장부터 지금까지 가장 인기있는 록밴드 중 하나가 되었지.

70년대 총 앨범 판매량을 정산하면 퀸, 핑크 플로이드 등의 전설적인 밴드보다도 많은, 엘튼 존 다음가는 음반을 팔았어. 하드 록/메탈로 가면 독보적인 1위지. 현 세대에도 퀸, 비틀즈와 함께 젊은 세대에게 인기있는 밴드 중 하나인데다 유명인들 중에도 팬이 많아. 일례로 비틀즈의 존 레논은 'Stairway to Heaven'을 좋아하는 곡이라고 밝혔지.


-한국에서

레드 제플린이 인기를 끌던 70년대 한국은 다들 알다시피 독재 정권의 시대인 덕분에 크게 알려질 수 없었어. 하지만 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지. 한국에서 유명한 레드 제플린 팬이라면 부활의 록커 김종서나 영화감독 봉준호가 있지.


-표절

레드 제플린의 가장 큰 비판점이야. 이전에 언급했지만 롤링 스톤스의 키스 리처즈가 지미 페이지를 향해 훌륭한 기타리스트지만 훌륭한 작곡가는 아니라고 비판 한 적도 있고 지미 헨드릭스와 진저 베이커(밴드 크림의 드러머)는 아예 레드 제플린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해. 덕분에 레드 제플린의 별명 중에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커버 밴드'라는 멸칭에 가까운 별명도 존재하지.

흥미롭게도 원작자의 고소나 항의가 있을 때마다 지미 페이지가 신속하고 똑똑하게 대처를 했는데, 표절 시비가 길어져 언론의 주목을 받기 전에 크레딧을 원작자에게 주거나 일정 기여분을 받아내어 공동 작곡자로 변경 시키거나, 거액의 보상금을 원작자나 그 후순에게 주는 방식이야.

(대표적인 표절 의혹 곡들은 나무위키 참조)


-다음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