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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절요 권4 > 정종용혜대왕(靖宗容惠大王) > 정종(靖宗) 1년 > 5월 > 거란에서 첩을 보내어 조공할 것을 요구하다

5월. 거란(契丹)의 내원성(來遠城)에서 흥화진(興化鎭)에 첩(牒)을 보내어 말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귀국(貴國)은 본래 부용(附庸)이 되었기에 선제(先帝, 거란 성종)께서는 매번 넉넉하게 덕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세월이 오래되도록 오고감[梯航]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지난 번 죄인을 토벌하던 해부터 조정에 오는 예(禮)가 막히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미 흉악한 역도들을 제거하였으니 마땅히 조공을 계속해야 할 것인데 어찌하여 여러 해가 넘도록 옛 우호를 생각하지 않고 석성(石城)을 쌓아 큰 길을 막으려 하며 나무 울타리를 세워 기병(奇兵)을 방해하려 하십니까. 촉국(蜀國)의 안에 별도로 석우(石牛)가 다니는 지름길이 있었던 것을 알지 못하십니까. 이번 일이 있고 나면 심하게 꾸짖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금 황상(皇上, 거란 흥종)께서는 여러 성군들의 기반을 이어 세상의 모든 국경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남하(南夏)의 황제[帝主]는 의(義)를 사모하여 우호를 나누고 있으며 서쪽 땅의 여러 왕들은 길이 우러러 사모하며 납관(納款)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동해의 땅만이 아직 북극의 존귀한 황제에게 사신을 보내지 않으니, 혹 격노하시어 벼락을 내려치신다면 어찌 백성[黎庶]들을 평안히 할 수 있겠습니까. 어길 것인지 따를 것인지는 스스로 변통하십시오.”
라고 하였다.




고려사절요 > 고려사절요 권4 > 정종용혜대왕(靖宗容惠大王) > 정종(靖宗) 1년 > 6월 > 영덕진에서 거란 내원성에 첩을 보내어 답변하다

영덕진(寧德鎭)에서 거란(契丹)의 내원성(來遠城)에 첩(牒)을 돌려주며 이르기를,
“보내온 첩문에 이르기를, ‘지난 번 죄인을 토벌하던 해부터 조정에 오는 예(禮)가 막히기에 이르렀으나 이미 흉악한 역도들을 제거하였으니 마땅히 조공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삼각 생각건대 나라에서는 대연림(大延琳)이 반란을 일으켰던 초창기, 즉 대국(大國)에서 군대를 일으켰던 시기를 당하여 길이 막히자 사신을 중지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내사사인(內史舍人) 김가(金哿)는 동도(東都)를 수복한 것을 경하하였고, 호부시랑(戶部侍郞) 이수화(李守和)는 연이어 나아가 토산물[方物]을 헌상하였습니다. 선대왕(先大王, 덕종)이 승하하였을 때에는 합문사(閤門使) 채충현(蔡忠顯)이 명을 받들어[將命] 사망을 고하였으며, 선황제(거란 성종)께서 승하하셨을 때에는 상서좌승(尙書左丞) 유교(柳喬)가 급히 가서 장례에 참석하였습니다. 지금 황제(거란 흥종)께서 대통을 이으시자 급사중(給事中) 김행공(金行恭)은 사신으로 가서 조하(朝賀)하였습니다. 그러한즉 요동(遼東)을 평정하신 이래로 날마다 서로 이어졌는데, 어찌 조정으로 오는 예(禮)가 막히기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석성(石城)을 쌓아 큰 길을 막으려 하고 나무 울타리를 세워 기병을 방해하려 한다’라고 언급하였는데, 『주역[羲爻]』에서 요해처에 방비시설을 두는 것은 군주의 통상적인 규범이며 노국(魯國)에서 관문을 닫는 것은 식자들이 매우 경계하였던 바입니다. 그러므로 저 성채를 늘어세운 것은 우리의 봉토[提封]를 정비한 행위로, 대개 변방의 백성[邊氓]들을 안식시키고자 도모하였던 것일 뿐 황제의 교화를 저버리고 막으려 했던 것이 아닙니다.
또한 ‘오로지 동해의 땅만이 아직 북극의 존귀한 황제에게 사신을 보내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하였으나, 예전에 오고간 여섯 명의 사신이 상국(上國)의 안에 억류되어 있고 선주(宣州)와 정주(定州)의 두 성이 우리 강역 안으로 들어와 축조되어 아직도 반환되지 않았기에 바야흐로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폐하께서 국운을 열어 쇄신하시면서 민(民)과 더불어 다시 시작하셨기에 천자의 은택이 사방에 스며들고 천자의 곁에서 상소[章奏]가 연이어 아뢰어지는 때를 만났으니, 사신을 방환하고 아울러 침범된 땅을 돌려주시기를 간청하였으나 청한 것을 얻지 못하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만일 정성껏 진실대로 응답하셨다면 감히 즐겁게 조공하는 예(禮)를 게을리 하였겠습니까. 단지 은혜로운 명령에 달린 것이니, 어찌 번거롭게 책망하는 말을 하십니까.
또 이르기를, ‘혹 격노하시어 벼락을 내려치신다면 어찌 백성[黎庶]들을 평안히 할 수 있겠느냐’고 언급하셨는데, 엎드려 생각건대 지금 황상(皇上, 거란 흥종)께서는 작은 것을 아끼는 마음이 깊고 낮은 자의 말을 경청하는 재간이 광범하여 이에 화목하게 교류해야 할 지역을 돌보면서 반드시 은혜를 더하여 베푸실 것이니, 무고한 우리에게 어찌 크게 분노하시겠습니까. 보내온 가르침을 상세히 보니 아마도 농담을 하신 것 같습니다.”
라고 하였다.


http://db.history.go.kr/KOREA/item/compareViewer.do?levelId=kj_004r_0020_0020_0060_0030


요나라 황제가 보낸 외교문서에 대놓고 '농담을 하신 것 같습니다.' 시전


고대나 지금이나 외교적 수사에 얼마나 빙글빙글 둘러말하기가 들어가는지를 생각하면 저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