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말하자면 보닌은 서울 모 대학교 경제학과 나왔음. 슈퍼 나이롱 뷔페충이라 학점 개씹창이었지만;

이건 당시에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께서 학생들한테 하셨던 말씀을 대충 재구성한 물건임.



야, 너희 왜 항상 대기업 비리가 모모과장 수첩이나 모모이사의 숨겨진 노트북에서 발견되는 지 아냐?


???


그거 사실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야.


????????


생각해 봐라, 대기업 애들이 얼마나 정보 감추기에는 도가 텄는데, 갑자기 모 과장 수첩이나 모 이사 노트북이 튀어나온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상하잖아.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그럼 지금부터 썰을 풀어주도록 하지. 수업보다 도움되는 이야기니 잘 듣도록.


예아! 수업 날로 먹는다!


니들 부모님이 우는 소리 안 들리냐.


됐고 썰! 썰을 풀어주십쇼 교수님!


썰을 푼다고 한 내가 잘못이지. 그래. 이야기를 시작하지.


만세!


이건 내가 예전에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일할 때 있었던 일인데 말야. 모 대기업에서 분식회계로 장난을 치다 걸렸는데 정황이 너무 확실해서 카바가 안되는 상황이었어. 증거를 인멸했다고 해도 닳고 닳은 전문가들 눈에는 가라친 자국이 다 보인단다.


(역시 돈많은 새퀴들 인성이란..)


그런 상황에서는 회계비리를 찾아 조지기 위해서 대기업에 회계감사가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감사가 보통 일이니? 그걸 하려면 기업이 거의 한 달동안 멈춰야 해. 그 동안 기업에 발생하는 손해가 얼마일지 생각해 본 적 있냐?


잘은 모르겠는데 대충 좆된다는 건 알겠습니다.


예를 들어 삼성이 한 달동안 회계감사 때문에 일을 못한다고 생각해 보자. 한 달 동안 맞춰 놨던 생산 일정, 회계 일정, 기획 일정부터 시작해서 분기계획이 통째로 절단날 수 있는 대형 사고란다. 재드래곤 입장에서는 회계감사 팀이 비행기를 몰고 본사에 들이박는 빈라덴 집단으로 보이지 않겠니?


그런 말씀 하셔도 저희 1학년인데요.


..좀 쉽게 해야겠군. 원래대로라면 A+받을 학점이 C+까지 처박힐 수 있는 중대 위기사항이 발생했다는 소리다.


빼..빼애애..빼애애애애애액! 비상사태! 비상사태! 비상사태 빼애애애액!


드디어 이해한 것 같아 기쁘구나.


눈물이 멈추지 않습니다 교수님


그러니까 평소에 좀 잘 해. 학기말에 성적표에 비내리는 거 보기 싫으면.


의지가 솟아오릅니다!


좋아. 그럼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지. 그 정도의 손해를 감당하는 건 기업으로서는 너무 큰 위험이다. 하지만 잘못한 건 사실이니 벌은 받아야 해. 이걸 피할 수는 없거든. 이 상황에서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정직하게 사죄한다?


1학년이라 아직 뇌가 청순하군. 정답은 [희생양을 던진다]다.


아니, 왜 일이 그렇게 되는 겁니까?


생각해 봐라. 벌을 피할 수는 없는데, 벌을 받으면 성적이 곱창이 날 거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상황에서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거래를 시도하는 거다.


좆간 월드..그 심연 속의 인성..


물론 빠따가 되는 놈도 그냥 빠따가 되는 건 아니야. 당연히 회사 차원에서 유무형의 보상이 뒤따른다. 아무렴 회사가 지은 죄를 자기가 그냥 덮어쓰고 죽을 멍청이가 어디 있겠니?


그래도 여전히 병신같은데요.


내가 당시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단다. 바깥으로는 꺼내지 않았지만.


잠깐, 설마 그 빠따라는 게..


수능공부를 헛한 머리는 아니구나. 그래. 그게 모모 과장의 수첩과 모모 이사의 노트북이다. 공식 감사가 끝나고 지들끼리 찾아와서 이러이러한 시나리오를 만들 테니 이 정도면 괜찮겠냐고 하더구나.


아아..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나면 뉴스가 나온다. '모모 과장의 노트북에서 분식회계의 결정적인 비리 발견'이라거나, '모모 이사가 떨어뜨린 수첩에서 결정적인 비리의 증거 발견'이라거나. 그 후에는 흘린 놈이 빠따로 좀 때려맞고 끝나는 거야. 일반인들은 사건이 터진 것에만 집중하지 거기까지는 관심이 없으니까.


대학 1학년들한테 왜 이런 심연 속의 이야기를 알려주시는 겁니까?


니들이 지금 보고 있는 챕터가 정보의 불균형이거든. 정보의 불균형이 일어나는 대표적인 예가 이런 경우란다. 알겠니, 제자들아?


더 이상 까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알면 됐다. 다음 시간에 나머지 진도를 나가도록 하지.



이번 건수를 보고 있으니 왜 이 대화가 떠올랐을까?


-본 대화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https://arca.live/b/lastorigin/229816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