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밥상을 본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엄마는 어디서 돼지를 구한건지 삶은 돼지고기를 상에 차리셨다.
 그 뿐만이 아니였다. 돼지고기 옆에는 구워둔 생선이 있었고, 우리 집에선 이미 동이 나버린 김치나 젓갈도 차려져 있었다.
 나는 이 많은 음식이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해하면서도, 몇 년만에 받아보는 상다리가 부러질듯 한 밥상에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허겁지겁 상에 차려진 것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몇 년만에 먹어보는 고기는 지금껏 먹어온 산나물과는 달랐다.
 모두들 다 그렇다지만, 우리는 꽤나 많이 가난한 형편에 살았다.
 아버지와 오빠가 전쟁에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이후부터, 어려웠던 집안은 더욱 더 어려워졌다.
 엄마와 나는 매일같이 산에 올라 산나물을 캐와야했다. 그것 말고는 먹을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 산나물도 이미 다른 사람들이 다 캐어 가 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럴 때에는 엄마와 함께 시장으로 가 구석에 자리를 잡고 구걸을 했다. 그래도 돈은 별로 받지 못했다. 시장에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거니와, 우리처럼 시장에서 구걸을 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였다.
 그 사람들 중에서는 서로 구걸한 돈을 빼앗기 위해 싸우는 사람도 있었고, 남의 바가지에 든 돈을 슬쩍 훔쳐서 달아나는 사람, 그리고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앉은채로 죽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 광경들 하나 하나를 보며 날이 어두워지면 엄마와 함께 산에서 뜯어온 산나물을 입에 밀어넣던지, 아니면 아무것도 없어 굶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 오늘은, 몇 년만에 받아보는 진수성찬이였다. 그러니 내가 그 많은 음식들을 채 1시간도 되지 않아 다 해치운 것도 놀랄 일은 아니였다.
 몇 년만에 느껴보는 포만감에 행복해지며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런 나와는 반대로, 엄마의 표정은 어두웠고, 또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였다.
 나는 엄마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궁금해 슬쩍 물어보았다.
 "엄마, 무슨 일이라도 있어..?"
 그러자 엄마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했다.
 "그럼.. 이 많은 음식들은 어떻게 구했어? 숨겨둔 돈이라도 꺼낸거야?"
 "..."
 어두운 낯빛을 보이며 바닥만 쳐다보던 엄마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봤다.
 그리곤, 나지막히 중얼거리듯 말했다.
 "..미안하다."
 그리고서는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어 내 목을 졸랐다.
 생각치도 못한 일에 나는 목을 조르는 엄마의 양팔을 잡으며 무어라 말하려 하였다.
 그러나 입에서는 말소리가 나오지 않고, 켁켁거리는 소리만이 나왔다.
 희미해지는 의식으로 바라본 엄마의 얼굴에는 눈물이 번져 있었다.
 나는 살고 싶다는 본능적인 욕구에 휩싸여 엄마의 억센 팔을 떼어내보려고 용을 쓰며 발을 버둥거렸다.
 정신이 아득해지려는 찰나, 나는 가까스로 엄마의 팔을 비틀어 엄마의 손을 떼어내 밀었다.
 나는 목을 부여잡고 켁켁거리며 숨을 들이쉬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온 몸에는 열이 올라왔다.
 나가떨어진 엄마는 말 없이 누워 있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왜.. 왜..!"
 "..."
 "왜 이랬어.. 왜..! 난 살고싶단 말이야..!"
 그러자 엄마가 몸을 일으켜 말했다.
 "지금.. 지금 우리가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니..? 응..? 쌀은 이미 오래 전에 떨어졌고, 산나물도 귀하고.. 구걸을 해도 돈을 얻을 수가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래.. 응? 그냥 죽자.. 우리 죽어서 아빠랑 오빠 만나러 가자.. 응?"
 나는 눈물이 번진 얼굴로 일어나 소리쳤다.
 "싫어..! 난 어떻게든 살꺼야! 아무리 사는게 힘들더라도.. 난 살꺼야!"
 그 길로 나는 나를 부르는 엄마를 뒤로하고 우리 집을 나왔다.
 집에서 나와 정처 없이 걷다 왈칵 쏟아지는 눈물에 길에 주저앉아 울었다. 하나뿐인 딸마저 죽이려한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가기 때문이였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딸을 죽여서라도 이 힘든 인생에서 벗어나게 하려한 엄마의 마음에 화가 치밀어오르면서도, 동시에 이해하게 되고 연민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가 지려는 무렵,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이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나는 괜스래 드는 불안한 생각에 엄마를 불렀다.
 "엄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설마설마하며 안방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엄마가 목을 맨 채 있었다.
 나는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곤 안방으로 뛰어들어가 엄마를 끌어내렸다.
 이미 엄마의 몸은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엄마를 내리곤 엄마의 얼굴을 매만지며 애원했다.
 "엄마.. 제발 안돼요.. 제발.. 제발.."
 팔다리도 주물러봤지만, 결국에는 그 모든 것이 소용 없음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나는 엄마의 시신 옆에 쪼그리고 앉아 머리를 파묻은 채 서럽게 울었다.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와 오빠를 기다릴때마다 불안감과 그리움 때문에 울었지만, 그때는 엄마가 내 옆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제 엄마는 내 옆에 없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미치도록 무서워져 더욱 서럽게 울었다.
 그렇게 밤새도록 울다가 지친 나는 그대로 엄마의 시신 옆에서 앉은채로 잠에 들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오는 아침의 햇살에 눈을 겨우 떴다.
 일어나 주변을 돌아봤으나, 역시 어제의 그 일은 꿈이 아니였다.
 뉘어진 엄마의 시신을 보자 마음에서 울컥하는 것이 올라왔다.
 남편과 아들을 전쟁통에 잃고, 하나 남은 딸을 죽여야만하는 상황에 놓인 엄마의 처지를 이젠 이해하게 될 수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엄마의 시신을 옮겨 어딘가에 묻을 기력조차 없었다. 몸을 비적비적 일으키곤 안방 밖으로 나가 엄마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미안해, 엄마."
 그리고 안방의 문을 닫고 집을 떠났다.
 어디로 가야할지도,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하루종일 마을을 돌아다녔다.
 이제 거리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밥이 없어 떨어져가는 기력을 굳이 움직이면서 쓸 사람들은 없었기 때문이였다.
 할 일도 없이 주린 배를 부여잡고 마을의 강을 가만히 쳐다보다, 문득 어느새 날이 어두워져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날이 어두워지면 큰일이였다. 가끔씩 도적떼가 마을로 내려와 사람을 해치고 곡식을 빼앗는 일이 종종 발생했는데, 젊은 여자는 납치해 노리개로 쓰다 죽인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제서야 멍한 정신이 번쩍 든 나는 뭘 해야할지 생각했다.
 이미 집에서는 먼 곳까지 온 상황이였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위험했지만, 다시 집에 돌아간다해도 그 다음은 어쩔 것인가? 결국 집으로 돌아가도 도적떼가 온다면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나를 지켜줄 곳이 필요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가족, 아니 자기 자신이 혼자 살아가기도 버거운 상황이다. 누구에게든지 부탁을 해봐야 거절을 당할 것이 뻔했다.
 나는 어두운 거리에서 발을 동동 굴렸다. 혼자 맞닥뜨리게된 현실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눈물이 맺히며 당장이라도 울어버리려던 참에, 한 대궐이 눈에 들어왔다.
 어둑어둑한 다른 집과는 달리 대궐은 불도 밝고, 사람들도 북적이는 듯 했다.
 나는 무작정 대궐의 대문으로 가 문을 두들겼다.
 문을 연 것은 하인으로 보이는 사람이였다.
 그는 나를 쳐다보더니 대뜸 물었다.
 "이 밤중에 혼자서 돌아다니니.. 무슨 구걸이라도 하러 왔느냐?"
 "아..아뇨! 그게 아니라.. 저.. 혹시.."
 "혹시?"
 "일 시키실 종 하나 필요하지 않으세요..? 저 어떤 일이던지 다 잘 할 수 있는데.."
 빈말은 아니였다. 엄마와 오랜 시간 지낸 까닭에 아주 어릴때부터 집안일을 해왔기 때문이였다.
 그러나 하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우리는 더 이상 하인을 쓰지 않아. 그러니깐 귀찮게하지 말고 나가거라."
 나는 그가 닫으려는 문을 간신히 부여잡고 애원했다.
 "잠시만요! 제발.. 며칠만 쓰시다 시원찮으시면 버리셔도 좋으니깐.."
 "아, 글쎄! 우리는 더 이상 사람을 안쓴다니깐! 지금 연회 중이신데 왜 자꾸 영감님을 귀찮게.."
 "왠 소란이냐?"
 소리가 나는 쪽에는 흰 두루마기를 입은 한 영감님이 서 계셨다.
 문을 닫으려던 하인은 얼른 몸을 틀어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왠 아이가 찾아왔는데.. 자꾸 자길 써달라지 뭡니까, 그래서 내쫒으려 하는데.."
 나는 문을 비집고 들어가 영감님께 인사를 드리며 말했다.
 "제가 지금 몸을 둘 곳이 없어서 그런데.. 종으로 부려주시면 안될까요? 저 정말 일 열심히 할 수.."
 "아니, 글쎄 우리는 하인을 더 이상 뽑지를 않는다니깐? 사정은 딱하지만 우리가 도울 수 있는게.."
 흰 두루마기를 입은 영감님이 하인의 말을 멈추게 하시곤 말하셨다.
 "됐다. 사람 하나 쓰는데 뭘 그리 걱정하느냐. 이리 들어오거라. 하인들이 묵는 곳은 저기 있으니, 우선은 거기서 몸 좀 데우거라."
 나는 뛸 듯이 기뻐 그 말을 남기곤 비적비적 걸어가는 영감님의 뒤에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인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여종들이 묵는 방의 한 켠에 누운 나는 영감님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영감님이라 불리고 있었으나 나이는 내 아버지뻘 쯤 되는 사람이였고, 대궐의 크기 등을 봐선 굉장한 부자인 듯 했다.
 또, 하인들이 지내는 방에도 뜨끈하게 방을 덥힐 정도로 인심이 많은 분이시기도했다.
 또 한 가지, 방에는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들이 있었다.
 흰 옷을 덮고 눈을 감고 있는 한 처녀의 동상이나, 머리가 긴데 수염을 기른 한 남자의 그림, 또 처음 보는 말로 적힌 두꺼운 책과, 나뭇가지 두 개를 엇갈려놓은 장난감 같은 것까지.. 모두들 처음 보는 물건이였다.
 내가 그 물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된 것은 며칠 뒤의 일이였다.

 마당을 빗자루로 쓸고 있던 와중, 마루에 나와계시던 주인마님이 나를 부르셨다.
 "명옥아."
 "네, 마님."
 "이리 잠깐 와보거라."
 주인마님의 손에는 두꺼운 책이 쥐어져 있었다.
 "글을 읽을줄은 알지? 뭐라 적혀있느냐?"
 나는 두꺼운 책의 표지에 적힌 글씨를 읽었다.
 "성경..이라고 적혀있는데요?"
 "이제 펴 보거라."
 그 두꺼운 책을 펼치자 흰 종이를 깨알같이 작은 검은 글씨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놀란 나를 바라보며 주인마님이 말했다.
 "나도 처음에는 보고 놀랐다. 그런데.. 너 이게 무슨 내용인지 아니?"
 "아뇨.. 처음 보는 내용인데.."
 "음, 그래. 이게 기독교라고 하는 종교의 성서다. 요즘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넌 아닌가보구나?"
 기독교라고 하는 새로운 종교가 있다는 이야기 정도는 들었었다. 성당이나 수도원에 가면 공짜로 밥을 준다는 소문도 있었기에 한때 관심을 가졌었으나, 수도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선 포기했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마께선 웃으시며 말했다.
 "괜찮다, 차차 배우면 될터이니.."
 그러면서 나를 옆에 두시곤 성경에 적힌 구절 하나 하나를 읽어주시며 설명을 해주셨다.
 그렇게 몇시간이 흘렀을까, 해가 지기 시작하자 마님께선 그제야 알아차리신 듯 말했다.
 "이크, 벌써 해가 지는구나.. 너는 이제 밥을 하러 가봐야하지?"
 "네.. 그렇습니다."
 성경에 담긴 신기한 내용을 더 듣지 못해서 아쉬웠으나, 어쩔 수 없이 주방으로 가려던 찰나 마님이 나를 불렀다.
 "명옥아, 일요일마다 시간을 좀 내어주겠니?"
 "..시간이요?"
 "일요일은 성당에 가는 날이란다. 하인들 중에서도 원하는 사람은 같이 가는데.. 너도 가지 않으련?"
 나는 성당이라는 말이 귀에 들어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성당이라면 수도에 있다는 그 곳 아닌가? 성당에 간다는 것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수도에 간다는 것이기도 했다.
 내가 뛸 듯이 기뻐하며 그리 하겠다고 하자 마님께선 웃어보이시면서 말하셨다.
 "그래, 함께 가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듣고 오자꾸나."
 마님과 함께 성당, 즉 수도에 갈 생각에 힘들고 고된 일도 힘들기는 커녕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렇게 나는 주인마님, 그리고 영감님과 함께 매주 일요일 성당에 다니게 되었다.
 처음에는 프로이센이라는 나라에서 왔다는 그 선교사의 말도 알아듣지 못하니 성당에서 보내는 시간이 고역이였으나, 점점 마님과 함께 성경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이젠 성당에서 차분하고 조용히 기도를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기이하게 여긴 물건들을 품에 지닌채 다니게 되었을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그렇게 기도를 드리며 살아가는 날이 계속되었을 때였다.

 전쟁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원과 일본이 화령을 쳐들어왔다는 것이였다.
 사람들은 내전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며 피난을 떠나기 시작했다. 영감님의 가족과 우리들도 예외는 아니였다.
 대궐에서 짐을 챙기던 와중,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명옥아."
 나는 누가 나를 불렀는지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으나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명옥아. 나는 하나님의 군대를 이끄는 대천사 미카엘이다."
 나는 그 이름을 듣자마자 이 목소리가 성경에서만 나오던 신탁임을 깨달았다.
 나는 신탁을 들었다는 충격에 온 몸이 굳은채 서 있었다.
 "하나님의 명을 받고 너에게 신탁을 전하니, 이 땅에서 원과 일본의 군대를 쫒아내거라."
 그러곤 거짓말처럼 목소리가 사라졌다.
 나는 그 길로 영감님께 달려가 신탁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이상하게 들렸겠지만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신 영감님과 심각히 받아들이시곤 나의 의견을 물으셨다.
 "어찌하겠느냐..? 신탁을 따르겠느냐?"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네.. 신탁이 제게 명을 내렸다면.. 저는 거기에 따라야만 하겠죠.."
 그러자 영감님께선 아는 한 장군과의 연줄을 통해 나를 군에 입대하게 해주겠노라 하시며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우선, 거기에선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할거다. 여자인데다가 기독교를 믿으니.. 아마 그들 모두가 너를 배척할게다. 그래도 괜찮겠느냐?"
 "네.."
 "전장은 너의 생각과는 달리 더욱 끔찍한 곳이다. 그 곳에서 목숨을 잃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럼에도 가겠느냐?"
 "네.."
 나의 의지가 확고함을 알게 되신 영감님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하셨다.
 "명옥아, 한번만 안아보자꾸나."
 그렇게 영감님과 깊은 포옹을 나누며 나는 영감님의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몸 조심해서 올게요.."
 "..살아서 돌아오거라. 그게 내 마지막 명령이다."

 나는 홀연히 말에 몸을 싣고 대궐을 떠났다. 피난을 떠나시는 영감님은 자꾸만 나를 향해 뒤를 돌아보시며 가실 생각을 하지 않으셨다.
 나는 차오르는 눈물을 애써 감추며 앞만 보고 말을 몰았다. 이윽고 영감님께 꽤나 멀어져 영감님이 점처럼 작게 보일때가 되자, 그제서야 눈에 맺힌 눈물을 훔쳤다.
 그리곤 슬픈 생각을 털어버리기 위해 애쓰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신탁.. 내가.. 내가 신탁을 받았어.. 내가.."
 하늘은 전쟁이 났다는 것을 모르는 듯 애꿎게도 맑았다.

 ㅍㅇ) 잔 다르크를 모티브로 한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