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님? 대통령 양진만입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대통령의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정부가 제출한 위헌정당해산 청구서의 위헌정당해산심판이 불과 몇시간 뒤였다.
 이 새벽에,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사법부의 수장이나 다름 없는 나에게 왜 전화를 걸었을까?
 "다름이 아니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내일 있을 심판, 인용 판결 해주시죠."
 예상했던 말이였다. 나는 예상했던 이야기였던 만큼, 준비한 답변을 꺼냈다.
 "헌법에 어긋나는지 재판에서 모두 밝혀내고 공정히 판결하겠습니다."
 "소장님, 사회민중당을 그대로 내버려두시면 대한공산당처럼 머리에 띠를 두르고 혁명을 일으킬겁니다. 9년 전의 그 악몽을 다시 반복하려 하십니까?"
 "임서경 도지사는 당시 질병으로 병가를 내 업무 수행이 불가능했습니다. 사회민중당을 해산한다면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무너집니다."
 "그게 대수입니까? 소장님, 민주주의가 우선입니까? 아니면 이 나라의 미래가 우선입니까?"
 그의 충격적인 말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정녕 이자가 민주국가의 대통령이 맞는가?
 "민주주의.. 그 민주주의가 대한공산당을 원내정당으로 만들었고, 정소월을 대구 시장으로 당선시켰습니다. 우매한 민중들이 우리 조국을 이끌어가야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나라는 우리 같은 엘리트와 황가가 이끄는 것입니다!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자들이 이끄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님, 저는 결단코 인정할 수 없습니다. 기각하겠습니다."
 "소장님, 창 밖을 봐주시죠?"
 나는 설마하는 마음에 창에 친 커튼을 걷어냈다. 그러자, 재판소 입구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차를 바라보고 수화기를 떨어뜨릴 뻔했다.
 이후 수화기에서 양진만 대통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장님, 저는 대한제국군의 군통수권자입니다. 그 점을 기억하시고 재판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전화가 끊겼고, 나는 어지러움을 느끼며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의자에 주저앉아 고통의 시간을 보낸 나는, 책상 위에 올려진 판결문을 찢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펜을 꺼내 적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