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허름한 상가에 위치한 사무소에는 철문 사이에서 사람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 마음이 놓였다.
 내가 가볍게 문을 두들기자, 말소리가 갑자기 사라지더니, 이내 발소리만이 울렸다.
 문 틈 사이로 눈이 보이더니, 이내 두꺼운 철문이 열리고 그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서 오이소. 상담 받으로 오셨지에?"
 그는 내가 입은 작업복을 보고 안심이 되어 문을 열어준 것 같았다. 대한제국에서 노동 쟁의는 불법이였고, 그것을 교육하는 곳이 합법적일리가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나처럼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언제 조용했냐는 듯 떠들고 웃으며 칠판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칠판 앞에 서 있던 후줄근한 차림의 남자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자자.. 다들 조용! 이야기 하던거 마저 이어갑시다."
 그러면서 그는 칠판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말했다.
 "자, 요즘 신문 같은거 보면 정부청사에서 경제부 장관이네 뭐네 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근엄한 표정을 지은 사진과 함께 뭐라고 합니까?"
 그는 신문에 나오는 사진 속의 경제부 장관의 표정을 흉내내며 말했다.
 "지금은 분배가 아니라 모아야할 시간이다. 그러니깐 우리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통을 나눌 시간이다.."
 그는 분필을 칠판에 던져버렸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분필이 땅에 떨어지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개소리 아닙니까? 그렇게 벌어먹은 돈으로 양진만은 뭐합니까? 공장 하나 더 세우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죽던 말던 신경도 쓰지 않잖아요? 기껏 우리 생각해주던 정당은 해산되었고. 참.. 암울합니다.. 그렇죠?"
 그는 웃으며 이야기했으나, 내용은 우울했다.
 "이건 우리가 근로기준법이 없으니 발생하는 일이죠. 일본이나 미국, 독일, 영국, FSC, 대발칸 등등의 세계 여러 국가에는 이런 법안이 있어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주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이상했다. 저 사람의 말에 따르면, 일본에 본사가 있고, 사장도 일본인 일본 기업의 공장에서 일하는 우리들은 왜 이런 보장을 받지 못하는걸까?
 내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내 손은 이미 높이 올라가 있었다. 내가 알아차렸을 때엔 이미 모두의 이목이 나에게 집중된 상황이였고, 나는 더듬더듬거리며 말했다.
 "저희 공장은 일본 기업이 본사이고, 사장도 일본인인데.. 왜 일본처럼 노동자의 권리가 보호되지 못하고 노조도 만들지 못하는 걸까요?"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그는 나를 쏘아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여기서는 없는 법을 안 지킨다고 처벌하지도 않고, 누가 욕을 하지도 않고, 오히려 이득을 보는데 어느 성인군자가 대우를 제대로 해주겠습니까?"
 그의 강의가 끝나고, 그는 의자를 하나 꺼내 와 앉더니 말을 꺼냈다.
 "아산 공장? 거기서 무슨 직책이십니까?"
 "중간 관리직을 맡고 있습니다."
 그는 내 말에 놀란 듯 눈을 파르르 떨며 적개심이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중간 관리자.. 돈도 일반 노동자보다 많이 받고, 근로 시간도 적고, 그러면서 노동자들 보고 일 더 하라고 소리만 지르면서 사람 다치면 나 몰라라하고 병원에 보내버리는, 그런 작자가 왜 여기 오셨수?"
 나는 침착하게 그가 가지고 있는 오해를 풀려고 했다.
 "아닙니다. 저는 절대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담당하는 조는 다른 조보다 빨리 퇴근했고, 제 임금을 나눠서 제 밑의 노동자들에게 나눠줬으며, 누군가 다친다면 제일 먼저 뛰어가 도와주고 병원비를 대신 내 드렸습니다. 저는.. 저는.."
 그가 내 말을 끊으며 말했다.
 "당신이 아산 공장의 그 유명한 중간 관리자입니까? 다른 관리자들과는 다르게 정이 많다는.."
 나는 그의 오해가 풀린듯 하자 반가운 마음으로 말했다.
 "네! 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혹시.. 저를 뭐라고 평가하던가요?"
 "호구요. 역사상 최고의 호구."
 그는 클클 웃으며 말했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여기 오는 사람들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아산 공장의 호구라고, 자긴 판잣집에 살면서 돈 벌 궁리는 안하고 월급 더 주고, 병원비 대신 내주고, 직원들 빨리 내보내서 사장한테 혼나고. 왜 그렇게까지 하는겁니까? 힘들지 않아요?"
 "저도 저 사람들처럼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이였습니다. 저 사람들의 힘든 점을 제가 뻔히 알고 있는데.. 제가 좀 힘들더라도 감수하고 도움을 주려 합니다."
 그러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나랑 같네요. 스스로 불나방처럼 힘든 길로 뛰어드는거. 어려운 일입니다.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으니.."
 그는 반말과 존대를 섞는 희한한 말투로 말을 이어가더니 나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통성명이나 하지. 이름은 아실 필요 없고, 선생님이라 불러요."
 나는 얼떨결에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김.. 김기준입니다."
 그렇게, 나와 그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