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현은 여전히 쓰러져 있었다.
그에게서는 공포감과 분노가 뒤섞인 듯한 신음 소리밖에는 나지 않았다.
안영환은 장석현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정소월을 보며 말했다.
"제가 당신네들을 왜 불러왔는지 혹시 아십니까?"
정소월이 알 턱이 없었다.
사면된 이후에는 겨우겨우 사회민중당에 입당하여 형식적인 정치 활동을 해왔을 뿐이다.
그런 그녀가 무슨 수로 다시 큰 사건을 벌인단 말인가.  
"...전혀요."
"요새 인민공산당인가 뭔가 하는 빨갱이들이 지하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골치아픈 놈들이지요."
"네."
"그 놈들의 목적은 정부를 전복시키고 공산주의 국가를 탄생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그런데요?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그리고 그는 정소월 앞에 흉악하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보아하니, 그 세력의 배후에 당신네 일파가 존재한다는 소문이 돌더군요."
정소월은 당황했다.
자신은 더 이상 테러를 저지를 명분도 뭣도 없었고, 그 사건 때문에 인생이 이렇게 꼬여버렸는데, 
다시 테러를 저지를 만한 이유가 없었다. 
"아...으....아니에요! 이 사건은 저희와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어느새 장석현이 깨어나 말하고 있었다.
"용케도 일어나셨군요. 생명력은 참 질기구만. 어쨌든, 관련이 없다고요? 그렇다면 이 내역은 뭡니까?"
안영환은 한 문서를 둘 앞에서 꺼내어, 면전에 들이밀었다.
'인민공산당 자금지원명단'이란 제목에, 여러 사람들의 이름과 지원 액수가 적혀 있는 문서였다.
놀랍게도, 정소월과 장석현이라는 이름이 떡하니 적혀 있던 것이다.
"이게 공산주의 단체를 지원했다는 근거가 아니면 뭡니까?"
"저건 조작된 겁니다! 저희는 사건 이후로 공적이든 사적이든간에 특정 단체에 자금을 지원한 적이 없습니다."
"흐음, 그렇다면 어쩔 수가 없군요. 전기실로 데려가!"
안영환이 소리치자마자, 요원들이 정소월과 장석현의 손발을 묶고 전기실로 끌고 갔다.
요원들은 둘을 전기의자에 앉히고 꽁꽁 묶은 뒤, 전기실을 빠져나갔다.
"똑바로 대답해! 했어? 안 했어?"
"안 했습니다! 정말 안 했어요!"
그러자 안영환은 스위치를 눌렀다.
지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둘의 입에서는 비명소리가 새어나왔다.
아니, 비명밖에 지를 수 없었다.
"다시 말해! 했어? 안 했어?"
"정....정말이...에...요..."
정소월은 간신히 정신줄을 부여잡고 말하고 있었다.
"안...안...했다니까요!"
장석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안영환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압을 높인 뒤, 다시 스위치를 눌렀다.
"아아아아악!"
들리는 것은 전기 소리와 비명 소리. 그 둘뿐이었다.
"이래도 말하지 않을 건가?"
"정.........말......이.........에..........요"
정소월과 장석현은 혼절 직전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자신들은 결백함을 주장하고 있었다.
차라리 고문받다가 죽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안영환은 예상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좋아, 1차 테스트는 합격."
"...................예?"
장석현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어보았다.
"문서는 조작된 게 맞습니다."
"......그.....럼.............왜?"
"유도 신문이었지요. 추가적인 혐의가 있는지 밝히려 했을 뿐입니다."
정소월과 장석현은 너무 힘을 많이 써 말로 따질 수도 없었다.
그들의 동공은 풀려 있었고, 얼굴의 생기는 온데간데없었다.
"각설하고,  본론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정소월과 장석현은 잠자코 듣고 있었다.
"아까 말하셨지요? 사건 이후로 빨....공산 단체들과 연관이 없으셨다고?"
얼굴색을 싹 바꾸어 말하는 그의 모습은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협력해주어야 하실 일이 있습니다. 저 빨갱이 집단을 물리치는 선봉장이 되어 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저희가요? 하지만..... 어떻게요?"
"간단합니다. 하셨던 것처럼 정계에서 활동하시면 되지요."
"하지만 저희는...."
"아아, 그건 걱정 마세요. 민주자유당에 이미 귀띔을 해 놓았으니까요."
"....그럴 함량이 되지 못합니다...."
정소월은 거절의 의사를 완곡하게 드러냈다.
"그러시겠지요."
안영환은 전압을 더 올린 뒤 스위치를 눌렀다.
파지지직 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비명마저 지를 힘이 없었던 것이다. 
"어떠신가요? 하실 겁니까, 안 하실 겁니까?"
"....네..."
더 이상은 대꾸할 말도 없었다.
그저, 이 고통이 빨리 끝나길 바라는 마음밖에는 없었다.
그러자, 안영환은 입당 원서를 들고 와, 둘에게 들이밀었다.
"뭐 인적사항은 이미 입력되어 있으니, 그냥 도장만 찍으시면 됩니다."
정소월은 떨리는 손으로 도장을 받아 들었다.
시야는 흐릿해져 입당 원서에 쓰여 있는 게 잘 안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어찌하는가, 살 길은 이것밖에 없었다는 것을.
장석현에게도 마찬가지로 승인을 얻어낸 그는 고문실에서 나가기 전에 둘을 노려보며 말했다.
"조금이라도 미적지근하게 행동했다가는 다시 찾아올 겁니다."
그는 차갑게 고문실을 나갔다.
고문실 속에서는, 의식을 잃기 직전의 둘만 남겨졌을 뿐이었다.
 ".....으흑...... 누나, 우린 언제까지 이런 일을 계속해야 할까...."
"모르겠다....이것도 업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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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이의 이야기를 다룬 2차 창작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