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모 오히라는 캘리포니아에서 e스포츠가 탄생하던 순간 게임을 지배하며 스트리트 파이터의 첫번째 왕좌에 올랐다. 하지만 토모의 경력에 따라붙는 제일 큰 의문은 스트리트 파이터에서 사상 최고로 널리 손꼽히는 플레이어에 관한 것이었다. '토모는 다이고를 이길 수 있을까?'


일본의 다이고 우메하라는 e스포츠의 첫 글로벌 스타 중 하나였다. 1998년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3로 알렉스 바예를 꺾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 그의 여행은 가장 중요한 격투게임 프렌차이즈를 정의내릴 수 있는, 익히 유명한 세계적 라이벌리의 시작을 알렸다.


'더 비스트'로 알려진 우메하라의 아케이드 게임에 대한 집착은 1991년에 시작되어 그가 승리를 쌓아가던 10대 시절 내내 지속됐다. 다이고는 1997년 일본의 스트리트 파이터 챔피언이 되었다.


이 당시 일본과 미국의 격투게임계 사이에는 거의 소통이 없다시피 했다. 몇 년 전 토모 오히라가 지배하던 시절처럼, 각국의 격투게임 씬은 서로에게 물음표 같은 것이었다. 주요 국제 대회들은 아직 자리잡지 못했고, 두 대륙 간의 경쟁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1998년 월드 챔피언쉽은 스트리트 파이터를 넘어 큰 의미를 지닌 세계적인 경쟁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우메하라는 당시 격투게임 역사상 가장 기대되던 경기에서 승리하며 기나긴 지배의 경력을 시작한다.


다이고는 뱀파이어 헌터부터 스트리트 파이터 5까지 많은 게임들에서 높은 수준의 경합을 보여줬다. 그는 2004년 저스틴 웡과의 경기에서 스릴넘치는 승리를 거두며 세계 최고의 스트리트 파이터 플레이어이자 글로벌 e스포츠의 기폭제를 넘어 진정한 국제적인 유명인사로 거듭난다.




아마도 당신은 그 영상을 봤을 것이다. 다이고의 HP가 바닥까지 떨어졌고 웡은 이길 준비가 돼있었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블로킹을 통해 다이고는 패배의 문턱을 벗어나 승리를 쟁취한다. 캡콤의 세스 킬리언은 로드 브레슬라우에게 "다이고의 역전 영상 조회수가 2000만 번을 넘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출판사인 게임프로는 2004년 다이고 VS 웡의 그 순간을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스포츠의 한 시대를 정의할 수 있는 극적인 장면이라는 의미에서 1954년 월드 시리즈에서 윌리 메이스가 보여준 유명한 외야 호수비에 비교했다.


일련의 업적만으로도 다이고를 이 목록에 올리기에 충분해 보이지만, 이보다도 많은 것들이 있다. 그는 최근 2009/2010 EVO에서 익히 알려진 퍼포먼스를 반복해서 선보이며 세계 챔피언에 오른 것을 비롯해, 높은 수준의 플레이를 15년 이상 계속 보여주고 있다. 그는 토팡가 A리그와 토팡가 월드 리그에서 각각 2회의 우승을 거뒀고 캡콤컵 2015에서는 2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6만 달러의 상금을 장학재단에 기부했다.)


다이고의 이력에 필적할 수 있는 선수는 극소수이고, '더 비스트'급의 탈인간적 장수 플레이어는 그 누구도 없다.




토모 오히라에 대해선 예전에 쓴 글 참고 - https://arca.live/b/fightgame/24643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