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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0]

1장  [1] [2]

2장  [3] [4] [5] [6]




3장 : 움직이기 시작한 '겸업' 프로게이머의 길



클라이언트 상주 SE, 정시 퇴근하며 게임 센터에 가다


대학 취직과 담당자분께 큰 도움을 받아 취직하게 된 회사는 작은 IT 기업이었습니다. 이 회사에 가기로 정한 가장 큰 이유는, 2장에서도 적었듯 복리후생이 좋았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거기에 더해, "이 회사라면 내 취미를 어느 정도 이해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입사 시험 2차 면접 때 일입니다. 자기소개를 하던 도중에, 저는 게임에 푹 빠져 있다고 확실하게 전했습니다. 시험관이었던 이사께서 "취미인가?"라고 여쭤보시기에, "전국대회에도 나가곤 합니다"하고 답변하니 무척이나 흥미있어하시더군요.


게임이라는 엔터테인먼트가 일반화되어 e스포츠 대회가 미디어에 소개되는 지금도, 이력서나 입사 원서의 '취미, 특기'란에 '게임'이라고 적는 걸 망설이는 분이 꽤 많다는 얘길 듣습니다. 제가 취직 활동을 하던 10년도 이상 전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겠죠. 게다가 그 시절 제가 게임에 몰두했던 정도는 "취미로 즐기고 있다"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 있었으니, 더욱더 이해받기 힘든 환경이었던 건 당연지사. 그만큼 입 밖으로 꺼내도 되는 걸까 하는 마음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나중에 회사 사람들에게 들켜 번거로운 일이 생기는 건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숨기지 말고 "이런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라며 처음부터 말해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이사께서 흥미를 보여주셨던 건 솔직히 무척 기뻤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 생활을 시작하면서, 자취하던 카시와시에서 도쿄의 본가로 돌아왔습니다. 2008년 4월에 입사하여 도쿄 니혼바시에 있는 본사에서 2개월가량 신입사원 연수를 받은 후, JR타마치역 앞에 있는 클라이언트사의 정보 시스템 부문에 배치되었죠. '클라이언트 상주 SE'라고 불리는, 클라이언트사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타입의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하게 된 겁니다.


처음 배치되고 4년 정도 가량은 무척이나 바빴던 걸로 기억합니다. 클라이언트사가 판매 관리 시스템을 쇄신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시작했기에, 저는 수주, 출하 시스템 개발을 담당하며 데이터를 이행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연말연시에도 풀가동하며 36시간가량 잠도 못 잔 채 일하는 경우도 있었죠. 결코 좋은 경험이라곤 할 수 없지만 'SE에겐 흔히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입사부터 몇 년 동안 바빴던 대신, 그 이후에는 비교적 느긋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시스템을 무사히 릴리즈한 후에도 저는 보수 담당으로 동일한 클라이언트사에 계속 상주하게 되었죠.  보수 작업이 주요 업무가 되면 업무는 순식간에 편해집니다. 본사에서는 배치전환 얘기도 나왔다고 하지만, 실제로 옮기는 일은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 시기에 본사에선 그런 사항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을겁니다. 제가 클라이언트사에 상주하고 있던 사이, 본사는 다른 회사에 흡수합병되고, 또다시 다른 회사와 경영 통합까지 되었죠. 명함에 적힌 사명은 바뀌어 갔고, 입사 시험 당시 '아담하다'고 느꼈던 회사의 규모도 점점 커졌습니다. 원래부터 '다른 회사보다 좋다'고 생각했던 복리후생은 더욱더 충실해지고, 조직도 체제도 크게 변화했던 겁니다.


그 사이에도 저의 환경은 거의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클라이언트에 상주하는 기간이 길어져, 클라이언트 측 사원들과의 관계가 친밀해졌습니다. 업무가 보수 메인이 되어 시간에도 여유가 생겼기에, 같이 술을 마시러 가거나 배드민턴을 하곤 했죠. 클라이언트 측 사원들도 엔지니어였기에 게임을 좋아하는 분도 여럿 계셔서, 그즈음부터 제가 게임 계열의 미디어나 TV에도 출연하게 되자 "전에 나온 거 봤어"라며 얘기를 걸어주는 분들도 종종 있었죠.


그런 상황이었으니 정시 퇴근을 해도 다들 "또 게임을 하러 갔겠구만"이라며 생각할 정도가 되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로 이해심이 깊은 직장이었습니다.


제가 축복받았다고 느꼈던 건 클라이언트분들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더욱더 행운이었던 것은 회사 직속 상사에 해당하는 소속 부서 과장님께서 골프를 상당히 좋아하셨다는 점이었죠. "게임하고 골프가 상관이 있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간단히 말해 "어떤 의미에서, 직업 이상으로 취미를 중시하는 분이셨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과장님 본인이 취미 때문에 유급 휴가를 쓰시는 분이었기도 했고, 선배 중에는 매년 "승급 시험이 있는데, 어떻게 할 텐가?"하는 권유를 받아도 "사양하겠습니다"고 거절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매니저가 되면 급여는 오르지만 그만큼 책임도 늘어나서 바빠지게 되죠. 그럴 바에야 취미인 밴드 활동을 우선하고 싶다는 게 승진을 거절한 이유였습니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직장 전체가 취미에 대해 무척이나 이해심이 깊은 분위기였단 얘기죠.


"어떻게 하면 게임을 계속할 수 있을까"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며 취직 활동을 했던 저에게 이는 정말로 이상적인 환경이었습니다. 입사한 당초에는 회사원이 된 이상 일을 하면서 공부하고, 기술을 몸에 익혀 승진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된 스스로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지만, 실제 직장은 달랐습니다. 맡은 업무를 책임을 다해 수행하고, 업무에 필요한 기술은 몸에 익혀야 하지만, 반드시 승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사나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일하는 방법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것도 인식하게 되었죠.



유급휴가를 내고 처음 나간 해외 대회, '최강'을 이기다


축복받은 환경 속에서, 제 생활에서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서서히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클라이언트사의 새로운 시스템이 궤도에 올라 일단락되었을 즈음, 해외 대회에 참가하기로 마음먹었죠. 그때의 게임 타이틀은 '얼티밋 마블 vs캡콤 3' (UMVC3). '아이언맨'이나 '스파이더맨' 등 마블의 캐릭터들과, '스트리트 파이터'를 대표로 하는 캡콤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대전 격투 게임입니다. 일본에서는 그다지 인기가 높지 않았지만, 북미에서는 열광적인 팬이 많았죠.


당시에 저는 이 게임을 열심히 플레이하며 꽤 강한 레벨까지 올라 있었습니다. 주위에서 "모처럼이니 해외 대회에 나가보면 좋을 거 같은데?"라는 조언도 들은 김에, 진심으로 해외 대회에 나가기 위해 휴가를 내자고 생각했던 거죠.


이윽고 상사에게 이야기하러 갔을 때는 용기가 꽤 필요했습니다. "거절당할지도 몰라", "화내지 않을까?"라고 내심 두근두근하면서, 단단히 마음먹고 상사에게 "해외 게임 대회에 나가기 위해 5일간 유급 휴가를 사용하고 싶습니다"고 말을 꺼내니, 상사는 "자기 유급 휴가는 마음대로 쓰도록 하게"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때까지 클라이언트사의 시스템 쇄신 때문에 줄곧 바쁜 업무를 소화했다는 걸 상사가 잘 알고 계셨던 덕분도 있겠죠. 또한 처음부터 "게임을 좋아한다", "저에게 게임은 소중한 취미다"라며 제대로 얘기했던 것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겁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너무나도 깔끔하게 OK 선언을 들어 제가 다 긴장이 빠져버릴 정도였죠.


그렇게 나간 제 첫 해외 대회가 2013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에볼루션 챔피언십 시리즈 2013'(EVO 2013)입니다. 성적은 공동 33위였죠.


그 정도로 마음졸이며 유급 휴가를 신청했는데, 일단 해외 대회에 한 번 나간 경험이 생기자, 그 다음부터는 해외 원정도 저에게 드문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어떤 대회의 친선전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그걸 본 다른 대회 주최자에게 초대받는 사이클이 굴러가기 시작한 거죠.


같은 해인 2013년 12월에는 캡콤이 주최한 '캡콤컵' 제1회 대회가 미국에서 개최되었습니다. 그 대회의 타이틀 종목 중 하나로 'UMVC3'가 있어, 팬 투표 결과 제가 초대를 받게 되었죠.


이 대회는 저에게 있어서도 인상적인 경험이었습니다. 'UMVC3' 종목에서는 당시 크리스 G와 필리피노 챔프라는 두 명의 선수가 최강이라고 불리고 있었죠. 그런데, 대회 전에 도전해 본 20선 친선전에서 제가 이들을 이겨버린 겁니다. 둘 모두에게 승리한 이 시합은 유튜브에서도 방송되었지만, 두 사람이 최강이라는 인식이 너무 강고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둘의 패배를 믿지 못할 정도였죠.


두 사람이 패배하는 영상을 본 사람들이 "이 네모라는 선수, 정말로 강한가?"라며 흥미를 느끼고 투표를 해 준 덕분에 제가 팬 투표 1위로 출전권을 획득했습니다. 캡콤컵 'UMVC3' 부문은 출전자 총 8인의 완전 초청제 대회. 게다가 출전자는 모두 팬 투표로 결정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무척 기뻤습니다.


이 때 해외 대회에 출전했던 건 나중에 프로게이머로서의 저를 만들어 준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아무리 직장의 이해를 받았다고 해도, 회사원이 유급 휴가를 받아 빈번히 해외에 나가는 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업무를 마치고 심야 비행기로 해외로 출발, 대회가 끝나면 바로 귀국하여 회사로 출근하는 아슬아슬한 스케줄을 짠다고 해도 하나의 대회에 나가는 데에는 적어도 2~3일은 필요합니다. 따라서 해마다 2~3회 정도 나가는 게 한계였죠. 하지만 그만큼 그 귀중한 경험을 살리고 즐기자는 마음은 강했던 때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몇 년 후, 겸업 프로게이머가 된 후에도 한정된 찬스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는 늘 중요하게 의식하고 있는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