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트 칸 술탄(Амет-Хан Султан) 1920년 10월 20일 ~ 1971년 2월 1일


아메트 칸 술탄은 30회의 적기 단독 격추와, 19회의 공동 격추로 총합 49기 격추를 기록하며 알렉산드르 포크리쉬킨에 이어 역대 소련 공군 에이스 7위를 기록하고 있는 인물이었으며 소비에트연방영웅훈장 2회 수훈, 레닌훈장 3회 수훈, 적기훈장 4회 수훈, 명예소련시험조종사 훈장, 소련국가훈장을 수훈했음


소련 공군 에이스 중에서는 특이하게 러시아인이나 여타 유럽인종이 아니라 크림 타타르인이었던 어머니와 라크인(코카서스의 소수민족)이었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임


그는 1937년에 학교를 졸업한 이후 철도 노동자로 일하면서 자보드스코에 비행장에서 비행술을 공부했으며 1939년에 카차 고등군사비행학교에 입학하면서 붉은 군대에 입대하게 됨. 그는 1940년 졸업 이후 122 전투비행연대에 배속되었음


독소전쟁이 발발했을때 그가 속해 있었던 제 4 전투비행연대는 로스토프나도누에 배치되었고 그는 1941년과 1942년 초반까지 폴리카르포프 I-153기를 타고 몇 회 출격했으나 별다른 전과는 내지 못했음


1942년 봄부터 그는 호커 허리케인으로 기종을 바꾸었고 3월부터 야로슬라블 상공에서 작전을 수행했음. 그리고 5월 31일, 그는 첫 번째 격추를 기록했는데 특이하게도 기총으로 격추한게 아닌 탄환이 다 떨어진 상태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Ju 88 폭격기에 충돌 공격을 가해서 왼쪽 날개를 절단한 후에 역시 충돌로 인해 비행 능력을 상실한 그의 기체에서 비상탈출하여 낙하산을 편 후 한 농가에 착륙하여 다시 연대로 복귀함. 그는 이 일로 나중에 레닌 훈장을 수훈함


1942년 여름까지 그는 호커 허리케인을 타고 총 9기의 적기를 보로네시 인근에서 격추했으며 그 이후에는 Yak-7b 전투기로 탑승기를 바꾼 후에 스탈린그라드에 배치됨.


스탈린그라드에서의 아메트 칸 술탄


스탈린그라드에서 그는 제 9 근위전투항공연대에 속해 있었는데 제 9 근위항공전투연대는 리디야 리트뱌크, 미하일 바라노프 등 유명한 에이스들이 있었던 비행단이었음. 그는 스탈린그라드 상공에서 다시 수 회의 격추를 기록했으며 한번 격추당하기도 했으나 비상탈출하여 살아남았음.


그는 1943년 초봄부터는 P-39 에어라코브라 전투기를 조종하여 로스토프나도누, 쿠반, 타간로그, 멜리토폴, 크림 등의 남부 전선의 상공을 비행하며 여러 격추를 다시 기록했으며 1943년 겨울에는 다시 한번 Ju 88 폭격기에 자신의 기체를 충돌시켜 격추를 기록했음. 이 일로 그의 별명은 '공중충돌의 왕'이 되었음.


전쟁 후반이 되면서 그는 라보츠킨 La-7기를 몰게 되었고, 쾨니히스베르크, 동프로이센, 베를린 상공에서 전투를 벌였음. 특히 쾨니히스베르크에서는 노르망디 - 니에멘 연대의 프랑스 조종사들과 함께 싸우기도 했음.


1945년 4월 29일에 그는 베를린 템펠호프 공항 근처에서 포케불프 Fw-190 전투기를 상대로 그의 생애 마지막 적기 격추를 기록했으며 그는 대전기간 내내 30회의 단독 격추, 19회의 공동 격추, 603소티, 150회의 공중전 참여를 기록했음.


시험 조종사로써의 아메트 칸 술탄의 모습


그는 전쟁 중간부터 심각한 우울증에 걸려있었기 때문에 전후에 모니노에 위치한 공군사관학교에서의 공부를 포기하고 1947년까지 폐인으로 살았으나 그의 친구들이었던 알렉산드르 포크리쉬킨, 알렉세이 알레류킨, 블라디미르 라브리넨코프 등이 설득하여 주코프스키 비행 연구소에서 시험 조종사가 되었음.


그는 I-320을 시험비행하기도 하고, 1949년 6월에는 소련 공중사상 최초의 완전 자동 공중급유를 수행했으며 KS-1 코멧 대함미사일을 소련 최초로 발사해본 사람이 되었음.


그는 특히 시험 조종사로써 비행하는 동안 조종사들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에 많이 동참했는데, 1958년에는 골로빈과 함께 차기 전투기에 장착될 사출좌석 시험용으로 MiG-15 전투기를 비행하던 중 사출좌석의 결함으로 기내에 화재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골로빈을 살리기 위해 탈출하지 않고 무사히 비행기를 불시착시킴.


1958년부터 1960년까지는 소련의 우주비행사 양성 계획에 동참하여 Tu-104기를 타고 유리 가가린을 포함한 많은 우주비행사들의 무중력 상태 훈련을 도왔음. 그는 그 공로로 1961년 9월 23일 명예소련시험조종사 훈장을 수훈함.


그는 그 외에도 소련 내의 소수민족 지위 격상을 위한 정치적 활동을 하기도 했음


안타깝게도 아메트 칸 술탄은 1971년 2월 1일 새로운 제트엔진이 장착된 Tu-16기를 조종하던 중 엔진 결함으로 인해 추락하여 같이 탑승했던 5명의 조종사와 함께 사망함.


아메트 칸 술탄은 장례식 이후 노보데비치 공동묘지에 묻혔으며 소련 해체 이후에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코카서스 등 여러 곳에서 그를 추모하는 기념물들이 설치됨


그의 무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