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의 토스트에 백기를 들었다.
'구글'의 힘을 비롯해 쓸 수 있는 자료를 다 뒤져 보았지만
몇 가지 비슷한 이름의 음식을 찾았을 뿐,
홍합, 연어 등의 수산물이 듬뿍 올라가는 관계로
원신의 그것과 동일한 음식이라 보기엔 무리가 좀 많았다.
토스트 자체가 매우 기초적 레시피인 동시에
토핑 올리는 거에 일일이 이름을 붙일 이유가 없는 음식이다 보니
결국 왜 '어부' 토스트인지 만족할 만한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양파가 서구권에선 고대 이집트부터 먹어 온 대중적인 식재료였으며
요리 설명과 스토리 초기 페이몬의 대사에서 향기가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점을 보면
조리법은 식빵에 토마토 소스와 양파, 치즈를 올린 뒤 오븐에 굽는 것.
대략 이런 모습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치즈가 아니라 우유가 들어가는 건
2성 요리 치고 가격이 너무 비싸져서일 테고.
마침 이걸 가르친 사람이 피자 매니아인 진단장이기도 하고,
피자 토스트면 딱 초등학생 정도 연령인 클레에게 적당한 특제 요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왜 '어부' 토스트인지는
몰?루 겠다.
암튼 그래서 이번 회의 주제는 다른 음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원신을 시작하고 제법 이른 시간에 접하는 요리이면서
이름과 실제가 상당한 이질감이 느껴지는 요리.
몬드 감자전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중어로는 蒙德土豆饼(몽덕토두병)
일어 モンド風ハッシュドポテト(몬드풍 해시 포테이토)
영어는 Mondstadt Hash Brown(몬드슈타트 해시 브라운)
일어와 영어에서 공통적으로 해시 브라운이라는 음식을 가리키고 있다.
중어에서 토두병...그러니까 직역하면 감자떡으로 표기하고 있긴 한데
여기서 병(饼)이라는 한자는 일반적인 떡 말고도
전병(煎饼) 처럼 기름에 지지거나 빚은 곡물 요리를 칭하기도 하니
중어에선 저걸 떡으로 했니 이런 오해는 하지 말기를 바란다.
덤으로 토두병이라고 하면
중국에 한국 감자전과 매우 유사한 동명의 음식이 존재한다.
그러니까
우리와 마찬가지로 저쪽에서도
이 음식을 '튀김'이 아닌 '지짐'음식으로 보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겠다.
따라서 같은 한국의 지짐인 감자전으로 번역한 것도
나쁜 번역이라곤 할 수 없다.
다음으로 해시 브라운이란 음식을 보자면
다들 익숙한 패스트푸드점의 다진 감자튀김과 달리
서구권 식당에서는 이렇게 조리해서 내 주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익숙한 형태처럼 냉동 식품을 조리하는 경우도 많지만 말이다.
아무튼 근대 이상의 과거에 냉동식품이 유통되었을 리는 없으니
해시 브라운의 초기 형태는
튀김이 아니라 사진처럼 잘게 채썬 감자를 지져서 주는 음식이었다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
이렇게 다진 감자를 지지는 음식은
해시 브라운 말고도 유라시아를 통틀어 수많은 버전이 존재해.
앞에서 언급한 중국의 토두병과 더불어
스위스의 뢰슈티,
이스라엘의 라키,
(보면 알겠지만 올려 먹는거 외엔 별로 차이도 안 나 보인다.)
안 그래도 감자로 유명한 아일랜드의 박스티나
조금 뒤에 다루게 될 스웨덴의 라그뭉크까지
모두 해시 브라운과 같거나 매우 유사한 조리법을 가진 감자지짐들이야.
그러니까
이렇게 감자를 다져 지지는 종류의 음식을
'영미권'에서 부르는 이름이 해시 브라운인 거지.
그럼, 언제나 그렇듯이 뇌절 여행을 시작해 볼까?
이 감자는 보통 주식이라고 생각되는 쌀이나 밀과는
매우 특징이나 역사가 다른 음식인데,
의외로 감자는 처음부터 주식으로 쓰려고 들여온 작물은 아니었다고 해.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들여 온 감자는
초기에는 지위를 막론하고 정말 더럽게도 인기가 없었어.
그도 그럴 게,
밀에 비해 별로 맛이 없었거든.
거기에 칼로리는 낮으면서 혈당지수(GI)는 높은 편이라
물려서 많이 못 먹지만 또 배는 금방 꺼지는
백성들 입장에서는 선호할 이유가 없는 식재료였지.
그렇다고 높으신 분들 입장에서는 좋은 작물이었냐면 또 그것도 아닌 게,
감자는 기본적으로 씨앗인 밀, 쌀과는 달리
꾸준히 생육 중인 덩이줄기야.
씨앗은 외부 조건이 맞지 않으면 휴면 상태에 들어 환경에 강한 저항력을 갖지만
'줄기'인 감자는 아주 조금만 빛이 들어도 싹이 나고,
덥거나 습하면 아예 썩어버린다고.
이게 뭐가 문제냐면
돈 대신 농작물로 세금을 걷는 경우가 많았던 당시에
밀과 달리 감자는 유통, 축적이 너무나 힘들었어.
부의 축적이 곧 권력인 국가에서
감자는 걷어도 도시로 실어 나르다 썩어버리기 일쑤인,
영 쓸모가 없는 농작물이었다 이거지.
그래서 감자는 사람이 먹는 작물로썬 인기가 없었고,
단지 밀에 비해 생육 조건이 널널하단 점을 살려
가축 사료용으로나 재배되던 비인기 작물이었지.
허나 그러던 감자의 입지는 예상치 않은 계기로 인해 크게 바뀌게 돼.
1780년대 중반,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역이
이상 저온으로 인한 흉년에 시달리게 돼.
주식인 밀 등의 수확이 반의 반(지역에 따라선 또 반!) 토막이 나고,
심지어 프랑스에선 사태가 이 사태가 번지면서 혁명이 발발,
왕의 목이 달아나기도 하지.(1793년!)
이 와중에, 낮은 기온에서도 잘 자라는 감자의 생명력이 주목을 받게 돼.
프랑스의 영양학자 파르망티에,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 등이
기근을 구제하기 위해 식량작물로써의 감자를 적극적으로 전파했고,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감자가 널리 재배되는 위업을 이루지.
(위부터 앙투안 파르망티에와 프리드리히 2세.)
기근이 해결되고 나서도
유럽의 군주들은 감자의 새로운 쓰임새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메커니즘이 어떻게 보면 좀 씁쓸하지.
왕 : 얘들아.
백성들 : 네?
왕 : 내가 너희들한테 세금을 걷는데, 먹을 것도 안 남기면 안 되겠지?
백성들 : 네.
왕 : 그런데...너희 감자 잘 먹더라? 그럼 밀 없어도 감자 먹으면 되겠지?
백성들 : 네?
왕 : 앞으로 여기 매기는 세금은 밀로 거둘 테니까, 감자 맛있게 먹어~
백성들 : ...네?
당시에도 미래시가 있었던 건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보고 감자 보급에 꾸준히 저항했던 농민층도 있었지만
이미 아일랜드라는 성공 케이스를 본 각국의 군주들은 이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고,
비록 백성들의 식탁에서 밀과 쌀이 사라진 것은 절대로 아니었지만
그 하위호환으로 감자라는 음식이 식탁 아랫부분에 단단히 자리를 잡게 된 거지
(1885년. 고흐가 이 그림<감자 먹는 사람들>을 그릴 무렵에, 감자는 이미 서민들의 보편적인 식단이 되어 있었다.)
꼽기는 X나게 꼬왔지만
판이 결국 이렇게 짜여버린 걸.
인생꼬접을 할 순 없었던 농민들은 결국 유일한 해결책을 찾을 수 밖에 없었지.
어떻게든 감자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찾는 거.
농민들은 피나는 노력으로
더 폭신하고 달콤하며, 크게 자라는 감자의 품종을 개량해 나갔고
이는 현재도 미국의 러셋 버뱅크(Russet Burbank)나
영국의 마리스 파이퍼(Maris Piper) 등
요리에 널리 쓰이는 네임드 품종이 탄생하는 배경이 되었어.
(러셋 버뱅크)
(마리스 파이퍼)
한편으로는 감자를 밀처럼 맛있게 먹는 조리법이 연구되었지.
그 방법들 중 하나가
가정에서 흔히 먹는 주식인 팬케이크를 감자로 만드는 것.
감자를 가능한 한 잘게 다지고,
밀가루나 계란을 조금 섞어 기름에 지져.
그게 해쉬 브라운의 시작이었다.
난 이렇게 생각한다.
그럼 다시 시선을 옮겨
이 해쉬-아니 감자전이 특제요리인 늑대 소년을 보자.
야생에서 자라고, 육식을 선호하는 레이저에게
이 감자 팬케이크를 가르친 것은
페보니우스 기사단의 어여쁜 사서 누님이시다.
천재 마녀와 야생 소년.
성격적으로 전혀 겹치는 요소가 없는 두 사람이지만
이 둘은 사제 관계라는,
혈연을 제외하고 맺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관계로 엮여 있어.
나름대로 그 이유를 추정해 보자면
우선 수메르 출신이라는 누님의 캐릭터 스토리를 보자.
난 전부터 리사의 직책이 '연구자'가 아니라 '사서'라고
강조되는 것에 관해 의문을 품었었는데,
이 언급을 보면 리사는 창작물에 흔히 등장하는
'더 많은 지식'을 추구하는 탐구자 캐릭터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
사서는 이미 존재하는 지식을 지키는 자.
원신 내에서 최상급의 지성을 가졌다 여겨지는 리사지만
그녀의 역할은 의외로 밝히는 것이 아닌 지키는 것, 감추는 것이야.
앞에서 등장한 학자와 현자가
대체 무슨 지식을 접했길래 그 '광기'의 상태에 빠졌는지
이 자료만으론 알 수 없지만
그들을 목격한 게 리사의 성향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단 건
의심의 여지가 없지.
[다이루크에 대해...] 음, 다이루크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하,그럼 더 좋은 대화 상대를 알려줄께
또한 항상 느긋하고 사람들과도 무던히 지낼 것 같은 그녀지만
유일하게 다이루크에 대해서는 언급을 꺼리는 것도 주목할 만 해.
다이루크는 작중에서도 심연 교단과 우인단에 대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정보를 모은다는 묘사가 있고,
특히나 '진실의 은폐'에 관해서
자신의 모든 직책과 명예도 내다 버릴 만큼
혐오감을 드러내는 인물이야.
허나 지식은 곧 힘이며,
감당할 수 없는 힘은 그 사용자를 파멸시킨다.
이런 사상을 자긴 리사가 다이루크를 껄끄럽게 여기는 건
어쩌면 내 기분 탓 만은 아닐지도 몰라.
레이저 또한 리사를 만난 것은
그가 신의 눈을 얻고 난 다음이야.
'루피카'를 지킬 힘을 얻기 위해 신의 눈을 얻은 그지만
그걸 제대로 다루는 방법은 모르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청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고.
천성적으로 게으르고
추가 업무를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리사가
스승이라는 책무를 자발적으로 떠맡은 것은
준비되지 않은 힘(지식)이 초래할 수 있는 비극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기 때문이겠지.
레이저에게 가르친 요리가
감자 '팬케이크'인 점도 의미심장해.
팬케이크가 특기인 캐릭터는 이미 알지?
노엘의 이명은 [수여받지 못한 꽃]
그 자신은 어떤 권한이나 명예도 없지만
대상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돕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갈고 닦지.
신경 쓰는 대상이 오직 루피카로 한정되어 있고
잘 모르는 힘을 갑자기 손에 쥔 레이저에게
노엘의 순수한 선의가 목표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긍정적인 방향성은 될 것이다-
리사는 이런 교육 철학을 채택했을 가능성이 높아.
야생이 아닌 농경 민족의 요리인 감자전은 그 철학의 표현이고.
그러면
아까 마무리 짓지 못한
이 감자전의 '기원'에 대한 마무리를 지어 보도록 하자.
이미 언급했듯이
이 감자 팬케이크의 기원을 찾아가는 일도 쉽지가 않아.
감자 자체가 국가 주도로 광범위한 지역에 적극적으로 전파되었고
곡물 전병을 주식으로 먹는 지역이면
예외 없이 존재할 수 밖에 없으니까.
따라서,
나는 여기서 이 감자전이 품고 있는 마지막 단서에 주목했어.
바로 잼.
감자 전병은 분명 유라시아에서 보편적인 음식이지만
잼은 그렇지가 않지.
요즘이야 널리고 널린게 설탕이며 감미료지만
이게 진짜로 흔한 물건이 된 건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어.
하물며 이걸 말 그대로 들이부어서 만드는 잼이란
간단히 막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아니지.
따라서 이걸 주식에 곁들여 먹을 만큼 양산하려면
멀쩡한 과일을 당절임으로 만들 만 한
충분한 이득이 있어야 해.
구체적으로 말하면
보존 처리를 해야 할 만큼 신선한 과일이 귀한 환경.
그런 지역이라야 이해가 가지.
따라서 기후가 뜨거운 저위도 지역은 제외.
많은 국가와 국경을 맞대
민간 교역이 자주 일어날 만한 나라도 제외해야겠지.
과채류를 재배할 만큼 따뜻한 날이 드물고,
많은 국가와 국경을 맞대지 않는 고립된 나라.
찾았다.
링곤베리(Lingonberry).
월귤이라고도 부르는 이 생소한 식물은
춥고 척박한 지대의 토양에서 자생하며,
그나마 따뜻하다고 할 수 있는(최고 기온이 21도다!)
8월부터 10월 사이에 빨갛게 익어.
비슷한 시기에 수확한 링곤베리들은
대부분 잼으로 만들어지는데,
열매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유기산이
잼의 질감과 보존성을 높여 주지.
같은 작용을 위해 신 과일이나 펙틴을 첨가해야 하는
다른 잼들에 비하면
링곤베리는 그야말로 잼을 위한 과일이라고 봐도 부족함이 없지.
이렇게 만든 링곤베리 잼은
당연히 빵에 바르거나 디저트로 소비하기도 하지만
마치 한국의 김치처럼 주식 요리에 흔히 곁들여 먹기도 해.
셰트불레(köttbulle)라고 부르는 스웨덴식 미트볼과 더불어
순록 고기 요리와 블러드 푸딩(blodpudding)에도 당연하단 듯이 곁들여지며,
이 감자 팬케이크에도 함께 올라간다.
로라코르(rårakor), 또는 라그뭉크(raggmunk)라 불리는 스웨덴식 감자전.
기존 팬케이크의 위치를 계승하며,
전통적으로 과일 잼을 곁들이고
잣 등의 한대성 견과류가 자생할 만 한 북유럽의 요리지.
이것이 가장 유력하다고 여겨진다.
마침 레이저와 연관이 있는 늑대의 심볼도
북유럽 신앙에 많이 등장하는 상징이고
정확히 로라코르는 아니더라도
그에 근접한 요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거지.
비슷한 환경인 러시아에서도
우리 나라의 김장처럼
월동 준비로 과일 잼인 바레니에를 만드는 문화가 있으며,
이를 홍차와 함께 마시는 '러시안 티'가 유명하지.
...
이거 말고.
스네즈나야 여왕님이 타 주시는 홍차는 분명 안전할 거다.
안전할...거다.
그러니까 요약하자.
1. 몬드 감자전은 유라시아의 감자 팬케이크.
2. 구체적으로는 잼을 곁들여 먹는 스웨덴의 로라코르.
3.
이 글을 쓰기 전에,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던 나는
다시 한 번 어부 토스트를 조사해 보기로 했다.
피자 토스트라는 가설은 거의 확실한 것 같았고,
그렇다면 토스트가 아니라 피자에 방점을 두고 조사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 밋밋한 비주얼의 피자를 발견했다.
이름은 피자 마리나라(Pizza marinara).
선원(marinaio)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마리나라는
가난한 뱃사람들이 값싸게 배를 채우기 위해
도우에 토마토 소스와 마늘 정도만 올려
간단하게 만든 피자 토핑이다.
3. 어부 토스트의 정체는 마리나라 토스트.
지난 기사들도 보고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