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제는 생선이다.


나는 생선이 좋다.

뭐 취향이나 건강 상의 이유로 기피하는 사람도 많지만

어쨌든 나는 좋다고.



생선의 종류는 근해만 쳐도 다 세기 힘들 만큼 많고

알 만 한 생선도 여럿 있지만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생선을 꼽아 보자면






이 세 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



우선 이의 없이 대표 중 대표로 꼽을 만 한 대중어인 고등어.


고등어 하면 우선은 구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고등어를 생물 그대로 구우려는 자는 하수다.


시장 어물전을 조금만 뒤져 보면



이렇게 반으로 갈라 내장을 제거하고,

꾸득꾸득하게 반쯤 마른 고등어를 팔고 있다.


"말랐으니까 딱딱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 구이에 젓가락을 찔러 보면

터무니없는 착각이었음을 알게 된다.



수분이 날아가 한결 치밀해진 살결은

겨울의 투명한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숙성을 거친 풍부한 맛을 그 안에 담고 있다.


그뿐만이랴, 태양도 바람도 불어 날리지 못한

겨울 고등어의 자글자글 끓어넘치는 기름이

꼬리와 가장자리를 거의 튀기다시피 하며

입에 넣은 살점이 혓바닥 위를 즐거이 미끄러지도록 한다.


이 맛을 아는 자는 망설이지 않고

어느 새 배어 나온 기름이 고이기 시작한

뱃살을 한 점 집어 입에 넣는데,


씹는 즉시 과즙처럼 기름과 감칠맛을 뿜어내는

뱃살의 맛을 즐기고 있노라면

함께 입에 넣은 밥마저

어느 새 목구멍 너머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을 발라 먹고 나면

그걸로 끝일 것 같나?



잘 구워진 고등어는 껍질도 버릴 게 없다.

바삭하게 구워지고

살에서 흘러내린 기름을 흠뻑 머금은 고등어 껍질은

비닐 팩에 든 김 같은 건 '따위'로 만들어 버리는 상급 밥도둑이다.



구이를 실컷 먹어 보았다면, 회 또한 별미다.

산란기 전에 살과 기름이 통통하게 오른 고등어는

선도만 보장된다면 방어나 도미에도 지지 않는다.



그 기름진 살에서 오는 풍미와 향이 워낙에 강력하기 때문에

그냥 먹어도 초장을 찍어도,

김에 얹어 쌈을 싸 먹어도 맛이 죽지 않는다.


방어와 도미가 양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도련님이라면

고등어회는 뒷골목을 내달리는 무뢰한의 맛.

첫인상은 거칠지만, 사귈수록 먼저 찾게 되는 중독성 강한 맛이다.


다만, 가격만은 앞의 도련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갈치는 요즘 보기 힘든 생선이 되었다.

산 것이 보기 드문 만큼



싱싱한 갈치회 역시 산지에서나 가끔 맛볼 수 있는 음식이 되었고.

익혀도 죽지 않는 우아하고 담백한 맛이 특징인 갈치회는

섬세한 맛과 묵직한 질감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어

회를 즐기지 않는 이들에겐 다소 아까운 음식이다.



사실 갈치 요리 자체를 꺼리는 이들도 많다.

얄팍한 외관과 그에 어울리지 않는 촘촘한 가시가 그 원인인데,



지느러미가 붙은 양쪽의 가시를 입술로 빼내는 요령만 익히면

갈치는 오히려 고등어보다도 손쉬운 먹이다.

등뼈 부분에 두 줄로 붙은 두툼한 살은

갈비처럼 들고 뜯어도 좋고

뼈를 들어내 밥에 얹어 먹어도 좋다.


기름에 튀긴 갈치는 고향의 잔치 음식 이기도 하다.

가끔 마을회관 인근을 지나다가 고소하게 풍기는

갈치 튀기는 냄새를 맡게 되면

또 누구네 집 아들이 장가를 가나 보다 하는

소리 없는 소문을 알게 되는 것이다.


허나 그 무엇보다도 갈치의 참맛을 볼 수 있는 요리는 따로 있다.


(참고로 저 식당이 아니라 옆집임. 자료 사진이 이거밖에 없다.)


저 멀리 산방산이 내다보이는 한적한 제주도의 바닷가 마을.

은행 옆에 자리잡은 수수한 식당에 그 진미가 있다.



물 좋은 갈치를 토막내 나물(배추의 방언)과

가을의 늙은 호박을 넣고 끓인 갈치국.

초라한 그 외관과는 달리


평소

알지도 못하는 양념과 재료의 조합을 무심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백색과 황색, 그리고 약간의 청색.

담백한 3색의 조합을 간단하지만 또한 강렬하게 전한다.

얼핏 심심하게 보이는 이 국 한 그릇이야말로

미식이라는 이념에 가장 걸맞은 조리법이라 할 수 있을지도.



세상엔 평범하게 보이는 것일수록

의외로 많은 가능성을 그 안에 품고 있는 법이지.



참치 통조림보다는 짙은 바다의 맛을 느끼고 싶고,

생선을 사다가 자르고, 양념하고

부엌에 온통 튀어 오른 기름과 비린내를 배게 하긴 싫다면



꽁치는 젊은 원붕이들에게 훌륭한 고려 사항이다.


대충 4천원 근처인 꽁치 통조림과

냉장고 안에서 잊혀진 김치 한 컵.

이거면 최소한의 준비는 끝난다.



우선 김치를 냄비에서 약불로 달달 볶다가 물 넣고

꽁치 통조림을 다 넣던가 건더기만 넣던가

물 자작하게 남기고 끓이면 끝.



비린내를 없애려면 식초를 좀 넣거나

간을 더하려면 멸치 다시다나 액젓,

추가로 뭐 양파나 다진 마늘 같은 건 넣던가 말던가.

무엇을 해도 꽁치는 먹을 만 한 반찬이 나온다.



그 이유는 이 날씬한 고기가

의외로 몸에 가득 품은 기름기 때문이다.

꽁치 요리를 하다 보면

내가 언제 식용유를 부었던가? 할 만큼

기름이 듬뿍 나오는데,


이걸 더 잘 활용하고 싶다면

아주 약간의 노력만 더 들여 꽁치 조림을 만들어 보면 좋다.



고추장과 진간장과 다진 마늘.

비율은 상남자의 1 : 1 : 1

딱 밥숟갈로 하나씩이면 충분하다.




무나 감자 손질하기도 귀찮으니 양파만 썰어다 바닥에 깔고

꽁치캔을 세팅.

물은 통조림 국물 부었으면 안 부어도 되는데

탈까 불안하면 더 부어도 된다.



양파를 빼면 모든 재료는 익어 있는 상태이므로

양파에서 배어 나온 물이 거진 날아갈 때까지만

뚜껑을 열고 조려 준다.




그러면 이렇게 완성.

통조림 꽁치는 한 번 익혀서 기름이 좀 빠진 편인데도

흥건한 기름이 양파를 캐러맬라이징 비슷하게 만들어 놨다.

거기에 늘 먹던 김치양념과는 다른 짭짤한 양념은

김치찌개만 해 먹는 데 질렸다면 

한번쯤 만들어 먹어 보는 걸 추천한다.


내가 앞에서 구이니 회니 하는 것들을  

실컷 주워섬겨 놓았지만

사실 가장 평범하고, 서민적이라고 생각되는 조리법은

뭐니뭐니해도 조림이라고 생각한다.



냄비에서 조리할 수 있으니 기름이나 연기를 걱정할 일도 적고,

기본적으로 짭짤한 밥반찬이니 호불호가 갈릴 걱정도 없다.

게다가

조리하는 생선의 종류나 상태도 비교적 너그럽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요리가



바로 이것.

부리다이콘(ぶり大根)이라는 일본의 방어 무조림이다.


전갱이 구이인 아지노히라끼나


연어 구이인 야끼샤케와 함께


일본 가정식 생선의 3대장 타이틀을 보유한 대표 요리다.


일단 일본에서도 방어는 싸구려 생선이 아니다.


(이건 저번에 내가 먹은 거.)


생선회 좋아하기로 이름난 일본에서

살이 달고 기름진 방어는

그야말로 침을 흘리며 기다리는 생선 중 하나고,


크기, 지역, 잡히는 시기에 따라 이름을 가려 부를 만큼

참치 다음으로 귀한 취급을 받는 물고기다.


그 중에서도 방어 등 각종 해산물로 유명한 도야마(富山)현에서는 

결혼한 딸이 있는 시댁에

딸의 건강과 사위의 출세를 바라는 의미로

출세어(出世魚)라는 이명을 가진 방어를 

연말 선물로 보내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시댁에서는 받은 방어를 손질해 먹을 것을 나누고 나서

머리 등의 남은 부산물(아라, )을 처가로 다시 보낸다.


(딱히 생선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선물을 일부러 두 개 준비해서 보내고, 

하나는 돌려보내는 풍습이 꽤 널리 있다고.)


이런 풍습을 한가에시(半返し)라고 하는데

요즘은 살도 반쯤 남겨 보낸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이 아라의 본질은 살 발라내고 남은 서더리.

내놓고 호사를 부리며 먹을 식재료는 아니다.



먹을 부분도 적고 하니

마침 겨울에 만만한 채소인 무라도 큼직하게 썰어 넣고

간장을 넣어 짭조름하게 조리는 거다.




(해당 만화는 아카미네 시사 저, <오뎅과 저녁놀, 딸의 혼담>중)


격식 차리는 음식이 아니니 

아이들도 큼직한 방어 뼈다귀며 대가리를 

실컷 발라 먹을 수 있다.

추운 겨울에 따스하고 정겨운 음식과

나름 큼직하고 구수한 고깃덩어리를 마음껏 먹는 기쁨.


그 행복한 경험은 이 수수한 생선조림을 도야마를 넘어 

일본의 보편적인 가정식으로 퍼지게 만들었으며,



이렇게 티바트에도 진출하게 되었다.


음식이란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며,

음식에 대한 좋은 경험은 곧 그 맛을 살리는

대체 할 수 없는 조미료가 되어 주지.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갔을 때

먹고 싶은 큼직한 고깃덩어리 대신

토막난 생선 몇 마리만 사고 돌아온 적이 있을 것이다.



비린내 풍기는 검은 비닐봉투를 

행여나 옷에 묻을까

몸에서 멀찍이 떼고 걷던 언짢은 기분은


그 날 저녁 식탁 위에서 난로 위의 눈처럼 사라지게 된다.


뻘건 양념이 묻은 껍질에 젓가락을 꽂으면

윤기 흐르는 허연 속살이 드러나는 고등어조림. 


제철에 알이 꽉 찬 뱃살 한 점이면

쇠고기도 부럽지 않은 갈치조림.


맛도 좋고

가시가 무섭지 않으니

마음껏 베어물어도 좋은 꽁치조림.


허나 어디 생선이 이뿐이랴.

어물전에 나뒹구는 생선 중 조림이 불가능한 생선이 오히려 적을 터.



생물보단 굴비로 더 유명한 조기는

양념을 넉넉히 두어 조리면 

구수하고 깔끔한 맛이 쌀밥보다도 손이 가게 된다.



재미있게 생긴 병어는

잔가시가 적고 살이 많아

알면 이득을 많이 보는 생선이다.



납작한 가자미는 아는 사람들은 식해(食醢)로도 즐기지만

의외로 튀겨도 조려도 제 몫을 하는 국밥 같은 친구다.


추운 겨울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다 보면 

자연히 만사가 귀찮아지고

배달이니 무엇이니 늘 먹는 것들에만 손이 가게 되는 법이다.


허나 생선은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도

여러 지역의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식재료다.


간단한 양념만 준비하면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쉽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따끈한 조림으로

삭막한 식탁에 짭조름한 바다 내음을 불러들여 보자.



여담으로

조림에 감자를 넣느냐 무를 넣느냐 하는 걸로 고민하는 경우가 있는데


만든 당일 다 먹어치울 것이라면

양념이 빨리 배는 감자를,

하룻밤 이상 두고 먹을 거라면 무를 추천한다.

감자는 익히고 오래 두면 전분이 노화 되어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뇌절로 방어 관련 얘기 하나 더 하고 가자면


(이집은 아님. 자료사진 없더라.)


나중에라도 제주도에 가게 된다면

모슬포의 한치물회와 방어튀김은 꼭 먹어보길 바란다.

옛날에 벌초 하러 가다가 한 번 먹어 봤는데


물회는 그렇다 쳐도 어째서인지 튀김을

방어라고 기억하고 있다.


암튼 흰살생선에 따끈한 튀김을 차가운 물회랑 먹으면 궁합 개쩌니까

꼭 한 번 먹고 가라.


요약하자.


1. 생선 무조림의 정체는 일본의 방어 무 조림 부리다이콘.

2. 조림은 쉽고 맛있으니까 꼭 해 먹어 봐라.

3. 물회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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