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와 구도 자체가 막부군 vs 저항군이었던 이나즈마와 비슷해서 더욱 비교되는 스토리였음

민족과 신앙차이로 인한 갈등, 그걸 교묘하게 이용해 서로를 이간질 시키는 아카데미아(우인단)

그 과정과 내막이 치밀하고 설득력 있어서 몰입감도 좋았음

딱히 스토리를 깊게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번 수메르 스토리는 중간중간 컷신도 자주 나오고 눈이 즐거운 부분들이 많아서

지루함을 느끼지 않았을 것 같아


스토리의 완성도나 작은 쿠사나리 화신의 정체, 아카데미아의 진짜 목적 등은 이미 많이들 다뤘을테고

개인적으로 좀 더 생각해보니 이번 스토리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요소가 또 있었던 것 같았음


'자신이 진리라 믿어왔던 것이 부정당했을 때 인간은 어떻게 해야할까?'



처음에 봤을때는 당황스럽고 불쌍했던 세타르 가스라이팅 장면도 어찌보면 이번 주제의 첫 단추였던 것 같음

사막의 백성인 세타르는 아카데미아에 가담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고

반쯤 걸쳐져있는 그녀의 심리를 여행자와 나히다가 확실히 굳혀줌


사실 세타르는 애초에 아카데미아를 맹신하는 광신도도 아니고 태생부터 수메르 성에서는 무척 눈치보이는 사막 백성임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가 처음으로 접근하고 관찰하기에 아주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나 싶었음

나히다의 말마따나 그녀의 심리적 방어선을 살짝 무너뜨리기만 하면 여행자 일행의 계획을 상당히 진전시킬 수 있었으니까

물론 여기서 세타르가 도토레에게 발각되지 않고 순조롭게 이어졌다면 3.1 마신임무는 여기서 끝났겠지...





세타르를 구슬리는 계획이 좌절된 다음에 우리가 만나게 되는 인물은 바로 아카데미아의 대풍기관 사이노였음

사이노도 세타르와 마찬가지로 짙은 피부색을 가진 사막 출신 인물로 보이지만 그보다는 훨씬 아카데미아에서 지위가 높은 인물임

물론 우리가 사이노를 처음 만났을 때는 이미 사이노는 자발적으로 아카데미아를 의심해 떠난 입장이지만

어디까지나 사이노의 분노는 자신을 도구 취급한 현자들을 향한 것이지 수메르 전체에 퍼져있는 '일반적인 진리'는 아니었음



이후에 아루마을에서 사라진 학자들을 여행자와 추적하며 사이노의 심경이 확실히 변하기 시작함

도토레가 장악한 아카데미아의 학자를 의심할지언정 수메르 국민들 대부분이 믿고 있는 룩카데바타의 후광과 그에 가려진 나히다,

'작은 쿠사나리 화신은 위대한 룩카데바타가 죽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다' 라는건 수메르에 진리처럼 퍼져있는 얘기임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그걸 공표한 아카데미아의 고위직인 사이노 또한 그 신념에 의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음

하지만 여행자는 외부인 입장으로 편견없는 시선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봤고 그 과정에서 쿠사나리 화신과 접촉까지 함

미쳐버린 학자들이 안정을 되찾고 기적까지 일으킨 것이 쿠사나리 화신의 권능이었다는 것을 여행자가 직접 증명하는 셈이지



여행자의 태도에 거짓이 없다는 걸 알게 된 사이노는 이때부터 태도가 확실히 달라짐

여행자에게 매우 협조적이고 납치범이 실종자들을 미친 학자라 부르는 걸 참지 못하고 마을 지킴이라 부르라고 일갈하기 까지도 함


사이노가 게임 오픈하기 전부터 내정돼있던 수메르 대표 캐릭터로 지정된 이유도 어쩌면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음

현재까지로서는 수메르 플레이어블 캐릭터들 중에 가장 입장이 복잡한데다 사건의 중심에 서있는 게 사이노라고 생각함

사막 백성의 피가 흐르면서 아카데미아의 고위직이고 그 직책이 심지어 아카데미아에 반하는 자들을 직접 처벌하는 역할임

하지만 자신을 이끌던 진리와 신념이 거짓이었다면?

 

3.1 마신임무 막바지에 사이노는 아카데미아(우인단)에 대한 적개심이 한계에 도달했고

아마 이후의 스토리에서 직접 학자들과 도토레를 단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여행자와 동행하게 되겠지








마지막은 급진파 도금여단의 두목 라흐만

아카데미아의 선동에 넘어간 급진파 두목이면서 그 누구보다 적왕에 대한 신앙이 깊은 사람임

위에 두 사람처럼 사막과 수메르 성 어딘가에 걸쳐있는 게 아니라 라흐만은 뼛속까지 사막의 백성이기에 전혀 다른 시각을 보여줌


위의 대사에서 볼 수 있듯 라흐만은 수메르 성 사람이라면 무조건 적대하고 사막의 백성이라면 상당히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줌

알하이탐이 쩌는 말빨로 인질 교환을 요청했지만 그저 아카데미아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거절했으면서도

도금여단을 떠나 떠돌이 용병일을 하던 데히야가 보증을 선다고 하자 같은 사막의 백성이라는 이유로 바로 승락해줌

그 과정에서 오른팔을 선불로 지불하라는 협박도 하지만 그조차도 데히야의 배짱을 시험해보고 싶었을 뿐

처음부터 데히야를 다치게 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도 드러남


물론 이후에 바로 사막 인심을 보여주긴 하지만 핵심은 일단 인질 교환에 수락했다는 점

그리고 애초에 라흐만은 알하이탐 한 명과 실종자 몇명을 교환해주겠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다는 점임

졸렬해보일 수는 있지만 나름대로 머리 좋은 용병의 면모와 뿌리 깊게 박힌 풀의 백성에 대한 불신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었음


그리고 이후 여행자 일행과 라흐만은 적왕의 무덤에 들어가게 됨

적왕의 무덤인 건 분명한데 수상할 정도로 생명(풀)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고

알하이탐은 직접적으로 이 유적에 흐르고 있는 힘은 풀의 신의 기운이라고 상기시켜줌

물론 이때만 해도 라흐만은 '그건 신의 눈이 있는 너희나 할 수 있는 말이고 난 안믿어!' 이랬지만...


적왕을 모시던 신관의 유언을 보게 됨

적왕과 룩카데바타는 적대 관계가 아니었고 오히려 룩카데바타의 은혜로 사막의 백성들을 구할 수 있었다는 진실을 밝혀줌

사실 일개 신관의 유언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싶지만

여기가 사막 밖에서도 보이는 가장 큰 피라미드라는 점, 이름부터가 적왕의 무덤이라 불리는 유적인 걸 미루어 봤을때

그 유적 심장부에 으리으리한 관으로 묻혀있는 신관의 영향력은 매우 컸을 것 같음


아무튼 진실을 마주하게 된 라흐만은 거의 실성하게 됨

자신이 여태껏 진리라 믿어왔던 것을 한순간에 부정당하고 자신이 원수라 생각했던 풀의 신이 사실은 은인이었다는 것

이 파트가 정말 라흐만의 울분도 그렇고 가히 이번 버전 마신임무의 대단원에 걸맞는 연출이라고 생각했음


이 글 맨 처음에 얘기했던 주제인 '자신이 진리라 믿어왔던 것이 부정당했을 때'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자

이후 라흐만의 행보도 마신임무의 전개와 이 주제를 우리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해


자신의 신앙과 신념이 통째로 부정당했지만 라흐만은 실성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곧장 자신의 행동을 바로잡기 시작함

물론 라흐만이 진정하고 회복하는 것도 너무 빠르고 진실을 도금여단 전체에 알려 설득하는 것도 단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게

어색하지만 이번 마신임무의 완성도는 그런 단점을 충분히 커버하고도 한참 남을 수준이었다고 생각함







쓰다보니 글이 진짜진짜 길어졌지만 내가 주목하고 싶었던 건

세타르, 사이노, 마지막으로는 라흐만을 거쳐가며 서로 사막과 수메르 성에 가지고 있는 입장과 사상, 신념,

나아가서는 민족간의 갈등과 오해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저마다 다른 세 사람의 심경 변화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줬다고 생각해


이번 마신임무가 표면적으로는 정치극과 인종, 종교의 갈등을 중점적으로 다뤘던만큼

요즘 세간에서도 참 복잡해보이는 pc와 꼬라박을대로 꼬라박은 이나즈마 스토리와 비교해보면 참 많은 걸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