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고 다른 커뮤니티에 쓰다가 모종의 이유로 안 올리고 여기 올리는 거니까 말투는 이해바람.


저한테는 아직도 문득문득 소름끼치는 일인데 제가 이상한건지 모르겠어서 남한테도 잘 말하지 않는 경험담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쯤 일인데 그 날도 여름이라 엄청 더웠습니다. 평소처럼 동생이랑 방바닥에 누워서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었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까지의 일들을 잘 기억 못하는 편인데 그 날, 아니 그 순간 만큼은 십년이 더 지난 일인데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바람을 쐬다가 선풍기 뒤쪽으로 꾸물꾸물 바닥에 등을 대고 기어가서 선풍기 기둥 뒤에 얼룩을 보면서 이 얼룩은 사람 얼굴 같네 같은 잡생각이나 하고 있는데 동생의 목소리로

"○,○,○,(제 이름) 먹고싶다."

이렇게 또렷하게 들려오는 거예요.

동생을 쳐다봤는데 발을 제 쪽으로 하고 누워있어서 얼굴이 안 보였어요. 동생은 저를 이름으로 부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심지어 야라고도 안 부르는데. 왜 뜬금없이 저를 이름으로 한자 한자 강조하듯이 내뱉은 것이며 그 뒤에 어떤 맥락으로 먹고싶다가 붙은 건지 이해가 안 가서 저는 잠깐 벙쪄있다가 뭐라고 그랬냐고 되물었어요. 근데 동생이 아무 말도 안 했다는 겁니다. 장난치지 말라고 너가 방금 말한 거 아니냐고 추궁을 해도 정말 자기는 그냥 누워만 있었다고 왜 그러냐고 일어나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말하는데 저는 정말 또렷하게 동생 목소리가 들렸으니까요. 뭔 애가 장난을 쳐도 저렇게 치나 하고 안 믿으면서도 정말 제가 잘못 들은 건가 싶었던 것이, 대사 자체가 너무 비현실적이었어요. 대체 예닐곱살 여자애가 한살 차이 언니를 왜 먹고 싶다고 한 건지. 지금이야 일베하는 남동생이 여자형제한테 저런 말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동생은 그 당시에 컴퓨터 켜면 주니어 네이버에서 동물농장이나 옷입히기나 하던 여자애였고 그나마도 잘 안했어요. 집이 사업장이라 컴퓨터할 기회 자체도 별로 없었고... 꿈에 괴물 나왔다고 울면서 깨우던 앤데. 그때는 그냥 장난이든 아니든 그 당시 동생이 낯설고 이상해서 기억에 남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곱씹을수록 기분이 나빴던 그런 기억이었습니다.

그 후 동생과 약간 서먹해지긴 했지만 아무 일 없이 나이를 먹고 중학생이 되어 동생과 다른 방을 쓰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꽤나 흐른 뒤요. 그때는 집이랑 사업장도 분리되어서 저는 방과 후에 항상 집에 돌아와 제 방에서 mp3로 음악을 듣거나 컴퓨터를 하거나 만화책을 보거나 했는데요. 그날도 혼자 방에 있는데 갑자기 방 밖에서

"○○○!"

하고 동생이 묘하게 활기찬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크게 들렸어요. 집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저는 깜짝 놀라서 뭐야? 하고 튀어나갔는데 거실에도 동생 방에도 안방에도 동생이 없는 거예요. 집이 1층이고 부엌 창문이 열려있긴 했는데, 창문을 못 쳐다봤어요. 거기 동생이 있든 없든 그때는 그냥 쳐다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식은 땀을 한바가지는 흘린 것 같아요. 동생은 초등학생 때 그 일 이후로도 저를 이름으로 부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렇게 하이텐션으로 저를 대하던 애도 아니었고요. 아니 그냥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한테 그런 장난을 치는 애가 아니었어요.  

그대로 핸드폰도 없이 현관문 열고 나가서 밖에도 못 나가고 계단을 한참 올라가 앉아 동생이 아니면 어떡하지? 동생이 맞다면 어떡하지? 손톱만 물어뜯으면서 그러고 있다가, 나가서 해가 질 때까지 마냥 돌아다니다가, 엄마가 돌아왔겠다 싶을 때 쯤 집으로 돌아가서 동생한테 아까 집 와서 나 불렀어? 하고 물어보는데, 동생은 역시나 아니 나 집에 와서 언니 처음 보는데 하더라고요. 더 이상 캐묻진 않았습니다.
둘 다 환청을 들은 거라면 좋을텐데. 동생 멱살을 잡고 왜 자꾸 거짓말하냐고 소리지르고 싶을 만큼 또렷한 동생의 목소리였어요, 제가 들은 그 소리는...


그 뒤로 한동안 동생에게 말을 걸지도, 동생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했습니다. 티가 날 만큼 피했는데도 엄마만 너네 싸웠냐고 물어보고 동생은 그냥 아니 안 싸웠는데? 할 뿐 별 말도 없더라구요. 동생이 장난을 쳤다고 하기엔 그 정도로 서먹한 사이였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서먹한 사이더라도 형제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갑자기 달라진다면 보통 무슨 일 있냐고 묻지 않나요? 동생과는 그 뒤로도 별 말을 하지 않은 채로 둘 다 성인이 되었고 일부러 집과 떨어진 곳에 직장을 잡아서 지금은 저만 따로 나가 살게 되었습니다.

그 후 동생과 아무 접점도 어떠한 일도 없이 수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저는 지금도 여전히 동생이 무섭습니다. 정확히는 어느날 갑자기 집에서 동생의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릴까봐 무서워요. 


출처: https://gall.dcinside.com/horror/786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