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처음 찾게 된 것은 여느 때처럼 외래인이 한명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글쎄, 왜 굳이 외래인들을 찾냐고 묻는다면 새로운 신앙을 위해서지요.
환상향에서도 신앙은 중요한 것이니까요.
사실은 거기에, 혹시나 당신을 만나지 않을까라는 미약한 기대가 있었을지도요.
저 참 바보같지요?
당신 같은 사람이 이 곳에 흘러들어올 리가 없는데.
모든 것을 등지고 현세를 떠나는 사람의 마음에도 짙은 흔적을 남기는 당신이, 그 존재가 잊혀질 리가 없는데 말이에요.
“잠깐, 코치야?”
“다,당신...?”
“어... 내가 아는 그 코치야 사나에 맞는 거지...?”
“당신이 왜 여기에?”
그럼에도 기적은 있었나봐요.
그런데 당신이 어째서 잊혀진 자들의 땅에 흘러들어온 것일까요?
늘 밝고 주변에 여자든 남자든 사람들이 많던 당신이?
그 이유를 물어봐도 당신은 그저 쓸쓸히 웃으면서
“있지, 가끔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법이니까.”
라고만 말 할 뿐이었어요.
당신을 거의 납치하다시피 신사로 데려간 것이 얼마나 지났을 때였을까요.
당신이 제게 한 가지 부탁을 한 것은.
사실 그 부탁 들어주고 싶지 않았어요.
그냥 당신은 신사의 식객으로 지내도 괜찮은데.
저라도, 이 신사에 제 식객 하나 정도는 들일 수 있는데.
“아 코치야, 아니 그... 카제하후리...님이라 불러야 하나? 그게 아니면 현인신님이라고?”
“평소처럼 불러주세요. 당신과 나 사이인데요.”
“으음... 그런가? 알겠어 코치야. 나 부탁 하나만 해도 괜찮을까?”
사실은,...
당신이 내 이름을 불러주기를 바랐는데...
대체 얼마나 더 가까워져야 제 이름을 불러주는 것일까요?
“어떤 건가요? 당신 부탁이라면 다 들어드릴게요.”
“응? 하하.. 고마워. 사실 먹고 살려면 일을 해야 하는데, 매번 너한테 도움 받을 수도 없고, 나라도 일할 만한 곳을 추천해줄 수 있을까?”
계속 저한테 기대도 좋을텐데.
그렇지만 당신도 남자니까요. 그러니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겠지요.
당신은 주변에 폐를 끼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요, 당신을 언제나 먼 발치에서만 봤지만 사실 저는 당신을 잘 알고 있답니다.
그런 당신에게 마을의 술 만드는 곤베 아저씨를 추천해줬어요.
고집불통에 무뚝뚝하지만, 진국인 사람이니까.
그리고 겉으론 가벼운 척 하는 당신도, 내심 마음으로는 잘 맞을 거라고 믿으면서.
그리고 당신을 보낸 뒤 조금 시간이 지나서, 당신이 저를 찾아왔어요.
“첫 봉급을 받긴 했는데, 이런 저런 핑계로 많이 깎였어.”
“곤베씨가요? 그럴 리가 없는데... 만약 억울한 일을 당한 거라면 제가...”
“아니, 사실은 내 잘못이 맞아. 초심자니까 실수가 많았지. 오히려 내가 물어줘야 할 판이라니깐.”
사실은 그는 꽤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곤베씨가 못 미더워 하고 있었지만, 가면 갈수록 성실하고 진심인 당신이 마음에 들었다나봐요.
그래요, 사실은 저도 그런 당신의 모습이 전부터 마음에 들었어요.
그렇지만 저도 그걸 모르고 잊고 지냈더라면 조금 더 일상을 평온하게 지냈을텐데요.
그것을 자각한 순간부터, 순결해야 할 무녀의 마음이 흑심으로 더럽혀지고 있었단 말이에요.
신을 모시는 현인신으로서 부끄럽지만요,
“자, 그래도 여윳돈이 생겨서. 선물이야. 신님께 바치는 공물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하다못해, 그때 당신이 그 몇푼 짜리 브로치를 제게 건내지만 않았더라도.
당신을 이렇게 연모하게 될 일은 없었을 텐데요.
전부, 그건 당신의 탓이에요.
그 뒤로도 오랫동안 당신은 바쁜 와중에도 일 때문이든 개인적으로든 저를 찾아줬어요.
“사실 아는 사람이라고는 너밖에 없는 걸. 이 주변은 무서운 요괴아가씨들 뿐이고.”
“앞으로도 의지해줘요. 저 역시도 바깥세상을 기억하는 친구는 당신밖에 없으니까요.”
저 역시도 당신을 맞을때면 신님들에게 받은 이 장신구들 보다, 당신이 준 선물을 더 세심하게 착용하고 나갔답니다.
그리고 얼마 전 당신이 찾아왔었죠.
그날도 평소의 담화와는 별 반 다르지 않았답니다. 마지막 대화만 빼면 말이죠.
평소와는 다른 진중한 얼굴로.
“아, 코치야님.”
“뭔가요, 당신! 평소처럼 부르지 않고.”
“제가 좀 진지해서요.”
그리고 당신은 잘 밀봉된 작은 항아리 하나를 제게 내밀었죠,
“그건...”
“제가 직접 바치는 신주입니다. 그간의 감사함을 담아서 직접 만들었어요.”
오직 제게 바치는 신주라고 하더군요.
다른 분께 드리지 마시고 혼자 다 마셔주세요. 라고 당부까지 하면서.
그날 밤. 당신을 보내고 귀한 술을 조금씩 아껴 마시려다, 술의 맛 사이사이에서 미약하게 당신의 향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서 금방 다 비워버리고 말았네요.
그러나 이 술에는 중요한 것이 빠졌어요.
그에게는 달달한 맛을 표현하는 기교가 부족한 것 같아요.
물론 단맛의 조화도 역시 잘 섞여있긴 하네요.
그러나, 그것은 잘 흉내낸 기교일 뿐. 달기만 한 맛이니까요.
이 술에서 느껴져야 할 맛이란 삶 속에서 느껴서 결국 혀로 다가와야 할 은은하고 달달한 맛.
네, 사랑이네요.
그에겐 역시 사랑이 부족한거에요.
그에게도 아내와 가정이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 마침내 그라는 술이 거의 다 익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그 뒤로 며칠이 지났습니다.
다른 신주는 아직 많이 남아있었고, 그가 특별히 찾을 일이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평범한 잡담이라도 하러 온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오늘은 그를 평범한 마무리로 돌려보낼 생각은 없답니다.
그리고 그건 그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에요.
“코치야. 내가 여기 온지도 벌써 5년이 지났어. 이제 나, 혼자서 밥값은 해. 아니, 그 이상 하지. 여러 명 정도는 거뜬히 보살필 정도로 힘내고 있다고. 작지만 내 집도 생겼고 하니까 이제 남자한테 남은 건 딱 하나잖아.”
그리고 그는 머뭇거리면서, 부끄럽다는 듯이 말끝을 끌었습니다.
“아아, 그래서 말인데...”
아아, 카나코님, 스와코님 이건 꿈인가요?
나의 마음을 그가 먼저 전하기 전에, 그가 나에게...
마치, 기적같은 일이 제게 일어나려 하고 있어요.
안돼, 진정해야해.
그의 진심어린 마음을 맨 정신으로 받아들여야 하니깐.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 곧 마을에서 약혼녀랑 혼례를 올릴거거든. 그러니까, 길일과 축복을 부탁할 수 있을까?”
네...?
거짓말.
거짓말이에요.
이건 꿈일 거야.
이런 것 따위가 현실일 리가 없어요.
그대로 힘을 잃을 것 같은 충격에 겨우 몸을 가눴지만, 저는 겨우 입을 열어 그에게 물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 대체... 누구랑?”
“아, 내 스승님의 딸이야. 그, 너도 알잖아.”
안 돼.
“코치야가 소개해준 양조장의 어르신.”
그가 진국일거라고, 그래서 똑같이 진국일 사람끼리는 유대가 생길거 라곤 생각했지만.
“하하, 이제는 장인어른이라고 불러야 하나, 아무튼.”
이렇게까지 될 거라 생각한 건 아니었어.
“그 사람하고는 어쩌다 보니 서로 마음도 통하게 됐는걸. 친구처럼 지내다가 서로 좋아하게 되어버려서 말이야.”
친구?
친구라니요?
환상향에서 당신에게 친구는 없었잖아요.
바깥세상에 다 두고 온 것이 아니었나요?
이제야 당신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당신의 유일한 동반자로서 지내려 했는데.
그런데...
제 멋대로 딴년이랑 사귀어?
“코치야, 혹시 괜찮아? 몸 상태가 안 좋으면...”
“닥쳐요.”
“어...?”
제게는 5년간 불러주지도 않았던 이름을... 그년에게는 불러주셨나요?
그리고 당신의 이름도, 부르라고 허락했나요?
정말로 그랬나요?
절대로.
절대로 용서 못해.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은 전부, 전부... 당신 탓이니까..”
아아, 카나코님, 스와코님 죄송합니다.
저는, 역시 두 분을 모시기엔 너무나 더러운 카제하후리인 모양이에요.
“각오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