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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햇살이 눈을 뜬 소녀의 머리맡으로 제 존재감을 과시하며 쏟아져내린다.

  

  갓 잠에서 깨 부스스한 소녀의 회백색 머리칼과 그런 머리 위로 뾰족 솟은 복슬복슬한 늑대 귀가, 창문 너머로 흘러들어오는 건조한 바람의 손길에 따라 흔들렸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버려, 아직 잠이 가시지 않은 소녀는 멍한 눈길로 웅웅 울려대는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넋으로 들여다보았다.

  

  밤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소녀의 생각보다도 많은 알람이 쌓여있었다.

  

  졸린 눈빛으로 알람을 읽어내리려던 소녀는, 맨 위에 떠 있는 모모톡의 알람을 보자마자 잠이 싹 가시는 것을 느꼈다.

  

  【스나오오카미 시로코님, 생일 축하드려요!】

  

  "아."

  

  최상단에 고정되어 있는 메시지를 필두로, 모모톡의 채팅과 알람을 가득 채운 생일을 축하한다는 한마디.

  

  말투를 포함해 이모티콘이나, 사진을 보내는 등 방법은 제각각이었지만 모두 소녀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쌓여있는 메시지를 읽어내릴 때마다 소녀의 서로 다른 색을 가진 두 동공이 반짝이고, 두 뺨이 선홍빛으로 물들었다. 

    

  『생일 축하해, 시로코! 하고 싶은 일이나, 받고 싶은 선물이 있으면 말해줘.』

  

  그리고 유독 따뜻하게 느껴지는 한 메시지를 읽어내린 시로코는 눈을 껌벅이고, 이윽고 눈을 반짝였다.

  

  반짝이는 눈동자와 함께 입가에 엷은 미소를 피워올린 소녀는 천천히, 가느다란 손가락을 움직여 그 문장에 답장을 보내기 시작했다.

  

  

  

  

  "흐어억, 하악. 하악."

  

  시로코가 보낸 문자를 읽자마자 필사적으로 달려온 탓에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이라면 시로코가 샬레로 오고 있던지라 중간에 만날 수 있다는 점. 직접 아비도스까지 찾아가야 했다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무조건 죽었겠지.

  

  저 멀리,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쫑긋거리는 회백색 머리칼 위의 늑대 귀,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유독 빛나는 호수처럼 밝고 맑은 푸른 눈동자를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시, 시로코. 멈, 멈춰… 쿨럭!"

  

  예정에도 없던 전력 질주의 결과, 몸에서 땀이 비처럼 쏟아졌다.

  

  거세게 뛰는 심장에 따라 흔들리는 초점 너머, 눈을 반짝이던 시로코가 목소리를 알아듣고 놀란 표정으로, 귀를 쫑긋거리며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과 늦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심하며 눈에 들이찬 땀을 한번 닦아내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멍하니 은행을 바라보던 시로코가 어느새 근처로 다가와 녹초가 된 몸을 부축해 주고 있었다.  


  "으음, 괜찮아? 선생님…?"


  "…죽여줘…"


  "아, 선생님. 안색이…"


  초췌하고도 갑작스러운 등장에 당황한 듯, 시로코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와중에도 내 모습을 살피며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세워주었다.


  그렇게 일단 넘어지지 않으려 시로코의 품에 반쯤 안겨 숨을 고르긴 했지만, 대책 없이 일단 달려온 건 마찬가지인 신세였다.


  숨을 가다듬고서, 시로코와 함께 공터의 벤치 한편을 향해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다.


  길게만 느껴지던 시간을 지나 벤치에 등을 기대고서야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지라 평소에 체력을 키울 생각은 있었는데.


  언제나 생각으로 그쳐서 문제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노노미한테 아령을 무게별로 받아오기라도 할 걸 그랬나.


  잡생각을 고개를 저어 떨쳐낸 뒤, 자연스레 옆자리에 걸터앉아 걱정하는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고 있는 시로코를 돌아봤다.


  두 뺨에 엷은 홍조가 피어난 엷은 홍조 위, 언뜻 마주친 눈동자에는 한눈에 알아보기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럼에도 눈에 들어오는 조금은 쑥스러워하며, 입을 움직이는 모습.


  "응… 선생님이 내 생일을 이렇게나 챙기려 해줄 줄은… 몰랐어."


  시로코는 그리 말하면서 메고 있던 숄더백을 뒤지기 시작했다. 쑥스러운 듯한 손길에, 전혀 그렇지 못한 익숙한 푸른 복면이 보자마자 식겁하며 손목을 잡아챘다.


  새하얀 손목에 손이 닿은 순간, 시로코의 동공이 크게 확대됐지만 그에 반응을 보일 틈은 없었다. 얼핏 잘못 나갔다간 당장이라도 저 복면을 쓰고 은행을 향해 돌진할지도 모른다.


  "시로코, 그, 생일 선물 말인데."


  시로코는 시선을 피하며, 수줍게 우물거리면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물론 그 내용의 어디에서 수줍음을 느껴야 할지는 의문일 따름이다.


  "응… 생일 기념 은행털이. 한 번 정도는, 선생님이랑 같이 해보고 싶었어. 그러니까, 생일 선물로. …안될까?"


  "응. 안돼."


  미련을 버리지 못한 손이 끝끝내 숄더백을 떠나지 못하는 것을 보자 시로코가 보낸 메시지가 뇌리를 스쳤다. 같이 은행털이를 하고 싶다는, 지극히 솔직한 바람.


  생일이기도 하니 맘 같아선 정말로 하고 싶은 대로 해주고 싶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더욱 들어줘선 안 된다. 한번 마음이 약해졌다간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시늉 정도라면… "


  "안돼. 저번에도 말했잖아? 대신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해줄 테니까. 범죄는 안돼."


  "으음… 미안, 선생님. 취미 같은 거라서, 선생님이랑 한 번쯤 해보고 싶었어."


  미안해할 게 뭐가 있을까. 생일인데도 학생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못해서 이쪽이 미안할 뿐인데. 물론 그게 은행털이인 이상 막아야 하긴 했지만.


  "모두랑 하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왠지 선생님이랑 단둘이 추억을 나누고 싶어서."


  아쉬움과 약간의 자책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와 말, 그리고 새하얀 손이 떨리는 걸 보자 생일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마음 한구석을 괴롭힌다.


  시로코에게 뭐라고 말해주기 위해 고개를 위로 돌리니, 늑대 귀를 눕히며 오묘한 표정으로 이쪽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푸르른 눈동자에 어떤 형상이 비치고 있었다.


  시로코는 그 순간에도 참으로 시로코답게, 은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은행이 아니라 단순히 나를 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가벼운 농담을 떠올릴 때 눈과 눈이 마주친 순간, 가볍게 웃고서 시로코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살짝 밀어낸 뒤 벤치에서 일어섰다.


  "은행 쪽은 그만 쳐다보고, 어디 놀러나 가자. 추억 하나쯤 만들러."


  몸을 일으키자 한바탕 땀을 흘려서 그런 건지 상쾌한 바람이 몸을 에워쌌다.


  몇 달 전, 시로코의 사이클 서포터를 해줬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었는데.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니건만, 요즈음 일이 많았던 탓인지 벌써 추억이라 느껴진다.


  그래, 취미에 함께 했던 일도 마음속에 추억으로 남았는데 시로코는 어땠을까. 그때 같이 아비도스로 걸어가며 이야기했던 시간도 시로코에게 추억이 되었을까.


  만약 추억이 되었다면, 생일이니만큼 최소한 그때 보았던 시로코의 웃음보다 더 해맑은 미소를 짓도록 해주자. 그 정돈 해줄 순 있지.


  생각을 정리한 뒤 뻐근한 몸을 달래려 기지개를 켜고 시로코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주었다.


  "가자, 시로코. 기왕이면 생일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러 가자."


  시로코는 내 말에 빙그레 웃으며 자기 손을 내가 내민 손 위에 포갰다. 부드러운 손길이 손등을 타고 전해져왔다.


  손을 꼭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쥔 시로코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햇빛에 푸르른 눈을 반짝였고, 바람이 새하얀 머리칼을 춤추도록 했다.


  "응, 그건 괜찮아. 선생님."


  그리고, 오히려 안심시키려는 듯이 따스하고 상냥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팔을 내려 마주 잡은 두 손을 허리춤으로 옮긴 시로코는 어딘가로 걸어가는 대신, 내 옆에 나란히 서 손을 꼭 쥔 채 빛나는 눈으로 올려다본다.


 "선생님이 달려 와준 것도, 지금 옆에 있는 것도. 이미 충분히 생일다운 일이니까. 느긋하게, 선생님에게도 즐거운 일을 해줘."

  

  "시로코."


  "그러는 편이, 더 즐거울 테니까."


  그렇게 말한 시로코는 만족했다는 듯이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지긋이 올려다볼 뿐이었다. 바람결에 머리를 흩날리며 귀를 쫑긋거리고 있었다.


  머릿속을 스친 생각에 시로코의 눈치를 보고 마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남은 한쪽 손으로 시로코의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그렇게 말해준 것도 대견하고 다 좋긴 한데.


  "그래. 그럼 한번 놀아보자. …근데, 시로코."


  "…응? 왜, 선생님?"


  "손 좀 놓아주지 않을래? 아무리 그래도 학생이랑 계속 손을 잡고 있는 건 좀… 그래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고개를 갸우뚱 기울인 시로코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슬그머니 시선을 아래로 옮긴 후 눈을 부릅떴다.


  귀를 쫑긋 세운 시로코는 황급히 내 손을 내팽개치듯이 놓아주었다.


  "어,  으음. 선생님, 그러니까 이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그랬다고나 할까…"


  "아니야. 음, 그냥 손 정돈 잡고 갈걸 그랬나? 생일이니까, 시로코 마음대로."


  "…응? 응. 그편이… 좋을 것 같아."


  부끄럽다는 듯이 슬며시 내민 손을 잡고, 표정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으나 시로코는 시선을 피하며 오른손을 가슴팍 위에 얹고 뭔가를 확인하는 듯 했다.


  "…? 뭔가, 이상한 기분이야."


  "그 기분도 언젠간 알 수 있을 거야, 시로코."


  그리 말하고 마주 잡은 손을 이끌며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지금 시로코가 떠올린 감정이 무엇인지 대답해 줄 수 없었다. 지레짐작 이전에, 선생이니.


  다행히도 시로코는 걸음걸이를 따라 걸으며, 정해진 행선지 없이 놀기 위한 걸음걸이에 동참해 주었다.


  "…응. 뭔가, 조금만 있으면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느낌이 들어."


  그렇게 시로코와 함께 손을 잡은 채 거리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간식을 먹거나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인형 뽑기를 하는 등, 특별할 것 없는 하루를 둘이 함께 보내다 어느덧 저녁이 가까워졌다.


  노을 아래에서 페로로 인형을 숄더백에 대롱대롱 내놓은 시로코는 나름 만족스러운 듯 틈이 날 때마다 인형을 들여다보았다.


  "시로코도 페로로를 좋아하는지는 몰랐는데."


  "…아아, 응. 이 오리? 이름이 페로로구나. 몰랐어. 선생님이 준 운동기구에 있던 오리라 아무 생각 없이 뽑은 건데… 응, 선생님이랑 얻은 인형이니까. 마음에 들어."


  무언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지, 한 박자 늦게 반응한 시로코는 숄더백을 내려놓고 내 옆에 주저앉았다.


  말투에도 웃음기가 뚝뚝 흘러나올 듯, 얼굴에 밝은 웃음을 띄운 시로코와 입꼬리를 올린 상태로 시선을 마주했다.


  "어땠어, 시로코?"


  "아, 응. 재밌었어. 선생님. 생일에 어울리는, 특별한 하루였어."


  "시로코, 혹시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


  조금씩 반응이 늦는 시로코에게 고민이 있는지 걱정이 돼, 손을 잡아주며 눈을 맞추며 말했다.


  "아, 음. 별건 아니야. 그냥… 마음이 뭔가… 답답해서…"


  그러나 대답을 끝까지 듣기 전에, 불현듯 핸드폰이 미친 듯이 울리며 시끄러운 벨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잠깐만, 시로코."


  대화의 흐름을 끊긴 것을 원망할 틈도 없이, 곧장 핸드폰을 집어 들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이 순간 가장 두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유우카?"


  『선~ 생~ 님~! 도대체 어딜 가신 거예요!? 이렇게 일을 쌓아두시고!』


  "아, 선생님…"


  난처한 상황이었다. 시로코와 생일을 보내주는 중인데 섣불리 끊었다간 유우카를 볼 낯이 없어지고, 그렇다고 계속 통화를 하기엔 시로코에게 미안해지고.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은 뒤, 가방을 뒤져 츠루기에게 추천받아 서점에서 산 로맨스 소설을 시로코에게 건넸다. 지금 당장은 이 이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미안, 시로코. 금방 통화할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줄래? 어, 음. 그, 심심하면 아까 산 그 책도 읽고 있어도 되고."


  말로도, 몸으로도 시로코에게 사과하며 다시금 핸드폰을 집어 들자 곧장 잔소리가 날아들었다.


  『선생니임~? 저랑 통화하는데 자꾸 누구랑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그, 잠깐 밖에서 처리할 일이 있어서 그랬지. 아주 중요한 일이라서 지금도 힘내는 중이야."


  『제가 선생님 일정도 모를 것 같으세요? 그런 일은 없는 거 알고 있거든요? 혹시 놀고 있으시다거나 그런 건 아니시죠?』


  "어어, 당연히 아니지. 설마 내가 유우카를 두고 그럴 리가 있나. 놀아도 다른 학생들이랑 같이 놀 성격인 거 알잖아."


  『어쨌든, 빨리 돌아오세요! 이대로 가다간 철야하셔도 다 처리 못 하신다고요! 나 참, 정말이지. 제가 없었더라면 어쩌시려고…』


  "그래그래, 유우카가 있어 줘서 참 다행이야. 항상 고마워. 늦지 않게 돌아갈게."


  그 말을 끝으로 통화를 끊고 핸드폰을 내려놓고 시로코를 돌아보니, 옆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책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시로코가 차츰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움찔―


  "…선생님…."


  방금과는 달리 묘하게 무거워진 것만 같은 목소리에, 무심코 압도되어 시로코의 손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절로 시선이 옮겨졌다.


  책을 덮은 시로코는 자연스레 책을 건넸고, 책의 표지에 적혀있는 책의 이름을 보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앓았다]


  "그렇구나, 이 감정이. 사랑."


  흘깃 올려다본 시로코의 눈동자는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속에는 얕은 열기와 물기를 가둔 눈동자로, 시로코가 바라보고 있었다.


  "사랑해, 선생님."


  시로코의 평소 목소리보다도 더욱 차가운 듯한 목소리. 원래라면 따스함을 품고 있었을 그 목소리는, 지금은 왜인지 차가움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목소리가 중요하지 않았다. 방금 시로코가 했던 몇 마디 되지 않는 말이 뇌리에 틀어박혀 마음을 괴롭게 만들었다.


  "…미안, 시로코. 선생님도 시로코가 좋지만, 아무래도 선생과 학생 사이에선."


  "응. 선생님을 오직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을 만큼, 사랑해."


  "뭣"


  시로코가 몸을 던져 품에 안겨들었다. 놔줄 생각 따위는 없다는 듯이, 꽉 죄이는 감각이 느껴졌다.


  "아까 선생님의 입에서 다른 학생의 이름이 나왔을 때, 가슴이 답답했어. 그전에도, 선생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을 때. 가슴이 답답한 이유를… 알겠어."


  어안이 벙벙해져 시로코의 입에서 충격적인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음에도 섣불리 반응할 수 없었다. 점점 얼굴을 가까이하는 시로코의 푸른 눈동자가, 가느다란 열기에 젖은 두 눈동자가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어쩐지 아까보다도 더 밝게 웃는듯한 시로코는 황홀한 연분홍빛 홍조를 피운 채로, 내 귓가에 입을 가까이하고 천천히, 아주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납치해서, 나만이 아는 곳에서, 서로 사랑하고 싶을 만큼 사랑해. 으음… 그래도 아비도스의 모두들 정도라면… 아니, 역시 안 될 것 같아. 선생님은, 나만의 것이어야만 해."


  슬며시 올라간 입가에서 흘러나온 숨결이 귓가에 닿는다. 내 품에 껴안긴 시로코는 이제 역으로 내 몸을 껴안고 있었다.


  일단 어떻게든 시로코를 밀어내기 위해 온몸에 힘을 주고 다리까지 써가며 밀어내보려 했지만, 단숨에 역으로 제압당하고 아예 몸에 올라타는 것을 허락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을 빼앗길까 봐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아. 이런 감정이 사랑이란 거구나. 이제야 알겠어, 선생님."


  "잠, 잠깐만. 시로코."

  

  "응,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말한건 선생님이야."

  

  그 시점에서 내 무덤을 내가 판 꼴이란 생각이 들었으나,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시로코를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려 애쓰며 화난 표정을 연기하며 시로코의 얼굴을 바라봤다.


  "어허, 선생님한테 그러는 거 아니야. 멈춰. 멈춰. 멈."


  애초에 학생을 힘으로 이기려는 생각은 헛된 것이니, 기대도 하진 않았긴 하지만.


  그래도 그건 좀 심하지 않니, 시로코야.


  "골라, 선생님. 나를 안을지, 나에게 안길지."


  "시로코? 우리 총은 내려놓고 얘기할까?"


  "응… 선택은 강자가 하는 거야… 선생님."


  그 말을 하면서, 외투를 벗기고 와이셔츠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 시로코에게, 신음을 흘리며 눈물을 흘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으음, 좋아해… 선생님… 더 안아줘…"




시로코 생일날에 쓰고싶었는데 너무 늦어버림

사실 마크하고 명조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