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비천한 쥐인간으로 태어났다.

 

쥐인간. 과거 마신이 배출한 마력에 오염된 하수도의 쥐들이 변이를 일으켜서 생긴 종족. 인간과 엘프, 드워프들에게 끊임없이 사냥당하고, 마족들에겐 멸시받으며 소모품 취급을 당한다.

 

형편없이 쪼그라든 뇌는 파괴와 발작 외의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없고 기형적으로 비틀린 몸은 쉴 새 없이 발광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집중력과 인내심, 사회성 따위는 전무하며, 심장이 인간의 6배나 되는 속도로 뛰는 까닭에 수명이 짧아 평온한 삶을 살더라도 대다수가 3-4년 이내에 사망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녀는 한없이 인간 소녀에 가까운 용모를 타고났다. 머리 위에 쫑긋 솟은 회색의 두 귀와 솜털이 돋아난 긴 꼬리를 제외하면 그녀는 그저 귀여운 인간 소녀로만 보일 뿐이었다.

 

쥐인간들의 사회에서 돌연변이는 신의 계시로 생각되어 극진히 대접받는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천한 노예에게서 태어난 그녀는 부패한 하수도 속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던 쥐들에게 숭배를 받으며 차츰차츰 고위 사제로 성장해갔다.

 

그저 쥐들이 바라는 대로 살아가던 그녀는 하수도 속에 버려지는 수많은 쓰레기들을 보며 분노와 원망의 감정을 품기 시작했다.

가래톳과 가래침, 종기투성이의 사체, 유산된 아기와 썩어가는 가축의 분변. 생사여부에 상관없이 버려지는 모든 것들은 하수도 아래로 흘러들어왔다. 몇 년 동안의 연구 끝에, 그녀는 쓸모없는 쓰레기의 늪을 치밀한 기계 장치와 비옥한 역병의 생산지로 바꾸어 놓았다.

 

그럴수록 쥐인간들의 원한 섞인 독니는 더욱 날카로워졌고, 땅 아래에 있는 그들의 더러운 영토는 왕국 전역으로 거미줄처럼 뻗어나갔다. 왕국의 시민들은 하수도로부터 끝없이 올라오는 생쥐들의 행진에 절규하며 필사적으로 기도했으나, 방종한 본인들이 그들의 왕국에 막대한 후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녀는 쥐들의 군대를 이끌고 왕국의 도시들을 하나하나 역병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다. 치명적인 역병을 실은 투석기는 견고한 성벽의 속살을 안쪽부터 괴사하게끔 만들었고 톱날로 된 수레바퀴를 장착한 전차의 폭력적인 진격은 강철로 된 성문과 기사들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겼다.

 

승승장구하던 그녀는 점차 천대받던 마왕군 내부에서도 인재로 대우받기 시작했다. 버민 로드. 해충의 군주라는 뜻이 담긴 이명을 하사받은 그녀는 야심에 차서 정복 활동을 재개하려 했지만, 용사라는 인물에 의해 결집된 복병에 의해 대패하고 말았다.

 

한순간에 그녀는 정신이 나가기 직전까지 이르렀다. 단 한명밖에 되지 않는 인간과 그 일행에게 수천 마리의 쥐인간들의 전선이 밀려나가고 있다. 평범한 상식으로는 이해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내-내가 직접 가서 관찰하고 행동을 결-결정한다. 그 전까지는, 경거망동하지 말고 기-기다리고 있어라.”

분노를 삭이며 쥐인간 특유의 산만한 말투로 부하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린 그녀는 정체를 숨기고 용사라는 작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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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째-

 

“너, 도대체 정체가 뭐냐?”

용사는 한숨을 쉬며 바위 위에 앉아 그녀를 내려다봤다. 기습당한 그의 몸은 마족들의 피와 골수 덩어리로 얼룩져 있었다.

 

“나-나 쥐인간이다. 나, 차-차별당하다가 무-무리에서 탈출했다.”

“그러니까, 어째서 쥐인간이 날 도와주냐고 묻는 거잖아.”

“나, 사람 다-닮았다. 나, 스스로 사-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잠깐만,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데..."

그녀는 정신없이 소란스럽게 말하며 용사에게 몸을 가까이 밀착시킨다. 말캉말캉한 가슴이 몸에 닿고 뜨거운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얼굴이 가까이 오자 용사는 기겁하며 그녀를 밀쳐낸다.

 

“알았어! 알았다고! 너무 가까이 붙지 마! 믿어 줄게!”

그녀의 얼굴에 단숨에 화색이 돈다.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며 산만한 어조로 만세를 부른다. 벌써부터 힘이 빠진 얼굴을 한 용사는 식은땀을 흘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대신, 후드라도 좀 써. 나는 믿어줘도 마족들에게 가족을 잃은 마을 주민들은 믿어주지 않을 테니까.”

“아...고-고맙다! 이-잊고 있었어.”

그녀는 허둥거리며 용사가 준 로브를 머리까지 뒤집어썼다. 귀와 꼬리가 가려진 것을 확인한 그녀는 순수하고 밝게 미소지었다.

 

질린 표정으로 소녀를 바라보던 용사는 그녀의 역병 마법으로 처참하게 살해당한 마족들의 시신에서 코를 베어내 주머니에 넣고 마을을 향해 출발했다.

 

소녀는 산만하게 방방 뛰며 용사의 뒤를 따라갔다.


그녀의 붉은 눈은 산만하게 움직이며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