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엘프를 귀향시키기로 했다 (2)

 

 

 

 

 

 

3.

 

다시 시간이 흘러, 녀석과 만나고 2주째가 되던 날.

 

우리는 도시에서 도시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어느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식량을 구하고,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정보를 모아야했다.

 

세상은 험난하고 길은 멀다……언제 어디서 어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죽을지

 

모르는 게 인생이다. 사람 목숨이란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정말이지, 불합리하다고.”


숙소로 돌아와 문을 열면, 침대에 누워있는 녀석이 보였다.

 

지난 2주 동안 잘 먹인 덕분인지……처음 만났을 때보단 상태가 좀 나았다.

 

살도 조금이나마 붙었고, 이젠 무어라 웅얼웅얼 말하려고 했다.

 

……그래봤자 목소리가 뭉개져서 전혀 못 알아먹겠지만.

 

“먹을 거 사왔다.”


“……웅얼웅얼…….”


뭐라고 하는 거야. 나는 무시하고선 부엌으로 향했다.

 

재료는 고작해야 채소 몇 가지에 돼지고기, 우유 조금이다.

 

그냥 이것저것 대충 사다가 먹이고 싶지만 이빨이 없으므로- 당장은 내가 이빨 없이도

 

먹을 수 있는 걸 만들어줘야 했다. 

 

고기를 먼저 볶고, 거기에 채소를 넣어 조금 더 볶는다.

 

그리고 거기에 우유를 붓고 졸이면- 스튜 비슷한 무언가가 완성된다.

 

맛은, 뭐 먹을 수는 있는 정도다. 맛있다곤 차마 말 못하겠다.

 

“엘프는 고기 못 먹는다는 소리 하지마라. 솔직히 안 사려다가 큰맘 먹고 샀으니까.”


“……웅얼웅얼…….”
 
“그러니까, 나는 못 알아먹는다고.”


숟가락으로 떠서, 호호 입김을 불어 식힌다.

 

녀석은 군말 없이 내가 떠다주는 스튜……비슷한 무언가를 우물우물 먹었다.

 

이러니까 꼭 아기를 키우는 아버지가 된 기분이 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빨은 어떻게 해야겠는데-”


“우윽!?”


그 순간, 녀석이 구역질을 하더니 침대에 토했다.

 

“우엑, 웩- 끄으윽-”


“아- 젠장.”


아직 이런 건 못 먹는 건가? 하기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지냈으니…….

 

녀석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무어라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페니, 낫! 페니, 나앗……!”


팔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한다……그렇군, 그런 거였나.

 

아마 예전에 지내던 곳에선 먹는 걸 토하거나 했으면 두들겨 팼을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 나빴을지도. 어느 쪽이건 어지간히도 한 모양이다.

 

“안 때려. 시트랑 이불을 맡겨야겠고……음식은 다시 만들어주마. 우유는 아직 못 먹나?”


“페니……낫……!”


“난 엘프어 몰라.”


아- 식재료부터 다시 사와야겠군.

 

나는 이불과 시트를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어이, 주인장.”
 
“엇, 네에…….”


숙소의 주인은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다.

 

그는 나를 무슨 위험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건지, 내가 말만 걸어도 이렇게

 

바짝 얼어붙어선 말을 더듬고 설설 기었다.

 

“내 동행인이 침대에 실수를 해서……좀 치워주겠나?”


“아이고, 네! 그래야죠, 물론입니다. 새 걸로 금방 가져올 테니 기다려주십쇼.”


“고맙소.”

 

나는 주인장에게 뒷일을 맡기고선 숙소를 나왔다.

 

우유랑 고기는 힘들고……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대체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엄마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지……하여간 고아란, 이래서 안 된다니까.”


나는 내 부모 얼굴을 모른다. 당연히 이름도 모르고, 만난 적도 없다.

 

철이 들었을 무렵엔……뭘 했더라? 하도 오래 전 일이라 기억도 안 난다.

 

기억나는 건 음식을 훔치다 잡혔을 때 죽기 직전까지 맞은 것과 7살 무렵에 처음

 

사람을 죽였을 때뿐이다. 그 외엔, 기억나는 건 배고픔과 추위 정도인가.

 

부모를 모르니 당연히 부모가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도 모른다.

 

“……저 녀석은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부모가 있었으니까…….”


그 때, 나는 땅이 가까워지는 걸 느꼈다.

 

틀렸다.

 

내가, 땅으로 추락-

 

 

 

 

 

 

4.

 

…….

 

정신을 차리니 처음 보는 장소가 보였다.

 

조용하고……건조하다. 누군가가 걷는 소리가 들렸고, 바깥의 창문으로 애들이 기웃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이 동네에서 운영하는 빈민 보호소 같은 걸지도 몰랐다.

 

“깨어나셨습니까?”


둥근 안경을 낀 중년 남자……아마도 이곳의 주인으로 보였다.

 

“여긴?”


“제가 운영하는 병원입니다. 그래봤자 혼자서 하는 곳이고, 환자는 많지 않습니다만.”


아아, 그랬군. 또 의식을 잃은 건가…….

 

손에 침을 뱉으니 분홍색 피가 섞여서 나왔다. 

 

“선생님, 이런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만-”


“혈적병. 알고 있소.”


“도움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혈적병- 그렇다. 이게 내가 지금 앓고 있는 병의 이름이다.

 

쉽게 말하자면 폐를 중심으로 몸 내부가 썩어 문드러지는 병이다.

 

고통은 거의 없다. 의사 말로는 신경부터 썩기 때문이라고 한다.

 

종종 각혈을 하고, 날이 갈수록 기절하거나 숨을 쉬지 못해 질식하기도 하며

 

때로는 심각한 발작을 일으킨다. 그리고 종국엔, 폐가 기능을 완전히 상실해 질식사한다.

 

전염성은 없지만 약도 없다. 불치병이다.

 

“얼마나 되셨습니까?”


“2년. 어쩌면 3년.”


“시간이 얼마 없겠군요.”


“운이 좋으면 반년……실제론 그거보다 짧을 것이오.”


혈적병은 일단 걸리면 죽는 수밖에 없다.

 

관리를 잘 받으면 10년까지 살 수도 있지만, 나는 떠돌이 용병이었다.

 

병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어 고작 2~3년밖에 안 지났건만 이 모양 이 꼴이다.

 

“의사로써 말씀드리자면, 최대한 잘 챙겨 드시고 몸을 따뜻하게-”


“그 이야기는 벌써 몇 번이나 들었으니 굳이 할 필요 없소. 사례금을-”


“괜찮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으니까요.”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좋아……아직은 괜찮다. 당장은, 적어도 당장은…….

 

“가족이나 보호자는-”


“없소. 한 평생 그런 걸 가져본 적이 없는 몸인지라.”


“유감입니다.”


“하! 유감은 무슨, 오히려 잘 된 일이오. 내가 죽어도 누구 하나 슬퍼하지 않을 테니.”


나 같은 인간쓰레기를 위해 슬퍼할 사람이 있을 리가 있겠나.

 

나는 작게 웃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보쇼, 의사……뭐라고 부르면 좋겠나?”


“로버트입니다.”


“그래, 로버트 씨……인과응보라는 게 있다고 믿소?”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나는 인간……언저리요. 쓰레기 중의 쓰레기, 그야말로 버러지 같은 놈이오.

 

숱하게 많은 악행을 저질렀고……용서받지 못할 짓을 수도 없이 했소.”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댁은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면 당장 여기서 내쫓을 거요. 누구라도 그럴 테지.

 

난 천벌 받아 마땅했고 또 이 병이야말로 그 천벌이오. 인과응보라는 것이겠지.”

 

나는 문으로 향했다. 그러자 의사가 말했다.

 

“조금 더 쉬셔야-”


“……내겐 해야만 하는 일이 있소.”


나는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뒤, 숙소로 돌아갔다.

 

아직도 피의 비린내가 입에 맴돌았다……그래도 아직은 괜찮다.

 

한시라도 빨리 녀석을 귀향시킨다.

 

마지막엔 모든 걸 밝히고, 녀석의 손에 죽는다.

 

나는 심판받고 마침내 속죄한다……고작 그런 걸 속죄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지옥이 무서운 건 아니다. 지옥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걸 왜 두려워하겠나?

 

내가 두려운 건……내가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아……으에…….”


“……뭐하냐?”


숙소로 돌아오니, 녀석이 부엌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대체 이게 뭐지? 스프……인가? 스프였던 것인지, 아무튼 뭐 그런 거였다.

 

“스……프…….”


“안 먹어.”


“……!”


이게 그렇게까지 충격 받을 일인가?


녀석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애초에 말이다, 이걸 스프라고 할 수 있는 거냐? 아니면 엘프들은 다 이런 꿀꿀이죽을

 

먹고 사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젠장.

 

나는 숟가락으로 스프를 퍼먹었다.

 

맛은, 기가 막혔다. 기가 막히게 맛없다는 의미로 말이다.

 

“맛없어어어어……!”


“…….”


“너는 앞으로 요리하지 마. 네가 먹을 거는 내가 만든다, 알겠냐?”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확실히 말귀는 알아듣는 건가.

 

“……피…….”


“아.”


그 때, 녀석이 내 입가에 묻은 피를 가리켰다.

 

나는 얼른 옷소매로 그걸 닦았다.

 

“별 거 아니야. 뭐냐, 그거다. 밥 먹다가 입 안쪽을 깨물어버려서 말이지.”


“…….”


“……킁.”


나는 녀석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녀석이 눈을 꾹 감고 몸을 움츠렸다.

 

……내게 이럴 자격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고향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넌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설령 이 목숨이 다하더라도 너는

 

내가 반드시 고향으로 데려간다. 그래,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말이지…….”

 

“…….”


내가 머리를 쓰다듬자, 녀석이 고개를 들어 나를 마주보았다.

 

아아.

 

그래, 이거다.

 

이 눈빛이-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것이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쫓아올 과거가.

 

나의 죄악이.

 

이 눈동자가-

 

 

 

 

 

 

 

 

 

왜 이게 베라를 갔는지 모르겠다. 소재빨 오지게 받네 그려.

아이반의 나이는 30대 후반, 알레이나(엘프)의 나이는 20대 후반.

얀데레는 조금 기다려라. 이번엔 경비병 때처럼 50편씩 안 쓰니까 금방 나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