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환상향을 살아간다 (22) (이전 화들도 읽어주세요.)

당신은 환상향을 살아간다 모음 (세부정보를 누르면 아나타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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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 환 ] 이 환상향에서 현재 거주중인 곳은 [ 예탄정 ] 입니다. 

[ 곽 환 ] 스테이터스입니다. 체력 [ 3500 / 3500 ] 기력 [ 3500 / 3500 ] 정력 [ 9000 / 9000 ] TSP [ 15000 / 15000 ]

[ 곽 환 ] 소질입니다. [ 솔직함 ] [ 악취둔감 ] [ 달변 ] [ 억압 ] [ 애주가 ] 

[ 곽 환 ] 은 대담한 페니스를 지니고 있습니다. ( 단약의 부작용인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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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자마자 씻지도 않고 잠자리에 기어들어간 당신이었지만, 식사하라고 부르는걸 무시할 순 없으니 일어나야겠지.

사실 잠을 자도 피로가 영 씻겨내려가질 않는 이런 날에는, 미친척 하루 종일 잠만 자는게 제일 행복한 것인데 말이다.

따뜻한 이불 안쪽에서 나가지 않으면 미요이도 포기해주지 않을까 싶지만, 앞으로 도장을 다니려면 익숙해져야겠지.


내려갈게. 라고 계단 아래쪽에 말을 하고는 잠든 사이 잔뜩 구겨진 옷자락을 손으로 잡아서 대충이나마 모양을 잡는다. 

타인의 시선을 과하게 신경쓴다 할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와 처음 만나게 된다면 외견은 분명 중요한 판단 기준이니까. 

외모는 불가항력적 종류라 하더라도, 일단 옷차림과 단정하게 정돈된 헤어 스타일은 필수적인 것이라 말을 해야겠고.


전신 거울 같은 귀한 것이 창고에 있을리 없는만큼, 배터리가 없어 방전된 스마트폰 화면을 거울 삼아 만지기를 5분여.

내려온다고 말을 해놓고서 내려오지 않는 당신에게 화가 나기라도 한걸까? 미요이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이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서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함을 생각하면, 지금 이상으로 성격을 긁는건 자제하도록 하자.


"어제는 일찍이 주무시러 들어가시지 않았던가요? 해가 중천에 뜰때 일어나셨는데도 아직까지 잠이 모자라 보이고요.

물론 오늘은 할 일들이 많으니까 제대로 잠을 깨고서 도와주셔야겠지만, 일단은 식기 전에 조반부터 들도록 하자고요.

특별히 오늘은 국물 요리가 아닌, 닭고기를 구워낸 것이니까 말이에요. 점주님이 드시고 싶다고 말을 하시기도 했고."


환상향에서 돼지와 소의 고기는 구경도 힘들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건 도저히 먹기 힘들 수준의 누린내라고 해야할까.

향신료. 고수 같은걸 잔뜩 올려도 도저히 지워지지 않는 누린내를 맡자면 왜 대항해 시대가 있었던 건지를 알 것 같다.

이런 맛없는 고기를 랍스카우트로 만들어 술로 넘긴다 하더라도, 그건 식사라기보단 사료에 가까운 것이니까 말이다. 


"어제였나. 고양이가 닭장을 덮쳐서 씨암탉이 모조리 몰살당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확실히 저렴한 가격이긴 해요.

물론 손님들에게 내놓을 수 있을지를 묻는다면 조금 애매한 양이긴 하지만, 셋이서 먹기에는 분명 충분한 양일테고요.

사실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먹기보단, 조금 더 간장에 재워뒀다 저녁에 화덕 같은 곳에다가 천천히 굽고 싶었지만요."


그것도 괜찮은 요리 방법 중에 하나기는 하겠지. 기름기가 쪽 빠지면 퍽퍽해지긴 하지만, 씨암탉이면 아마 적당할테고.

사실 꿀을 바르는 방법이 제일 좋기는 하지만 애초에 돈이 있어도 쉽게 구하기 어려운게 꿀이란걸 생각하면 애매하지.

환상향에서 단맛을 구경하기란 정말로 힘든 일이니까, 가끔 정신적으로 부침이 찾아올때 충전을 하기도 힘들어지고.


"사실 예탄정에서도 가끔 텐구의 손님들이 선물로 가져오는게 아니라면, 요리에 꿀을 쓰는건 정말로 드문 일이니까요.

아예 양념에 넣는 수준의 사치는 왠만해서는 생각하기 어렵지요. 물론 아주 가끔씩 고급 안주를 주문받는다면 모를까.

양념을 만드는 과정에서 꿀이 필요한 만큼의 사치스런 안주를 주문했던 손님은, 지금까지 두 명 정도가 전부였고요?"


그런걸 주문한 이들이 둘이나 된다는건 놀라운 일인걸. 하긴, 환상향의 경제란건 상당히 기형적인 형태를 하고 있으니.

물가가 하루마다 % 단위로 바뀌는건 예삿일이고, 사치재라고 할 수 있는 고급 식재료는 재료비만 해도 3만원이 넘지.

게다가 재료로 벌꿀이니 허브니 하는 같은 것들까지 들어가는데다가, 인건비에 술까지 더해지면 부담이 심하니 말야.


"환상향에서 평균적인 한 달 봉급이 50을 밑도는걸 생각하면, 끼니 한번에 인당 10을 넘기는 수준의 것은 사치지만요.

물론 어떤 쪽이던 특출난 재능이 있다면 100 을 넘기는 일도 왕왕 있다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정말 드물테니 말이죠.

듣기론 그런 일들은 정말 힘든 일이거나, 아니면 그만큼 중요한 일이지만 직접 하기엔 꺼려지는 일이란 의미니까요?"


그야 그렇지. 그렇지만 하청이라고 하더라도 작은 가게에서 주는 하청과, 히에다 같은데서 주는 하청은 다르니까 말야.

개가 되려거든 차라리 문안 인사를 받을 수 있는 정승댁 개가 되라는 말도 있었던가? 누군가의 개가 되는 일은 싫지만.

그래서 결국엔 요괴의 밑에서 꼬리를 흔들며, 매일같이 눈치를 살펴야 살아갈 수 있는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하는거고. 


"그렇네요. 저기, 아직까지도 그 생각은 아예 변함이 없는건가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환상향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던.

예탄정에서도 봐서 알겠지만 요괴들은 인간들보다 오히려 솔직한 면도 있으니까요...무리 안에 속한다면 분명 도움이.

그러니까 적어도 환상향을 살면서 부당대우를 겪을 확률은 많이 줄어들거라 생각하는데 재고해보실 생각은 없나요?"


들어서 손해가 될 종류의 말은 아예 처음부터 하지 않는다면 고마울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을 하는건 당신 혼자뿐일까.

당신이 환상향에서 살고 싶지 않은 이유는 둘. 하나는 요괴들, 다른 하나는 원래 살던 곳이 더 마음에 들고 익숙하니까.

굳이 익숙한 터전을 버리고 환상향에서 요괴들에게 꼬리를 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이 과연 행복한 삶인걸까?


"그런 의도로 한 말은 아니었지만..."


의도와 결과의 차이에 대해서 또 똑같은 말을 반복해야 하는걸까 싶지만, 어쨌거나 환상향에 정착할 의향 같은건 없어.

가뜩이나 도장에서 거주해야 하는것 때문에 신경질이 나는데 굳이 그 화제를 매일 꺼내서 긁어댈 이유 같은건 없잖아.

안그래도 이야기를 어떻게 꺼낼까 싶었는데, 지금 기회를 빌어서 말해두자면 아마도 다음 달에는 도장에 돌아갈거야.


"도장이요? 아아...원래 성덕도장인가. 저쪽의 명련사 근처에 있는데서 지내고 계셨다고 했지요? 하지만 갑작스럽네요.

분명 예탄정의 생활을 싫어하시진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뭔가의 문제가 있었다면 말로 해줬으면 좋을텐데 말이에요.

물론 벌써 결정을 내린것 같으니까 그걸 번복하라고 부탁하는 민폐를 끼칠 생각은 없지만 조금 섭섭한 기분이 되니까."


호감도 / 신뢰도의 하락을 알리는 상태 메시지를 들으면서, 흐린 표정을 하고 있는 미요이에게 뭔가 말하려던 찰나였다. 

영업 시간까진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누군가가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기에 대화는 끊겨버리고 말았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밖에 '영업 시간 아님.' 현판을 걸어놓지 않은 당신의 잘못도 있으니까 뭐라고 할 수는 없을테지.


"...오랜만이에요." 


팻말을 바꿔놓기 위해 문을 열자마자 눈에 들어오는게 마에리베리 한의 모습이라곤 아무래도 예상치 못했지만 말이다.

메리와 만나게 된다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를 고민했던 당신이지만,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버릴 줄은 몰랐으니까.

그렇기에 당신이 가까스로 호흡을 가다듬고 할 수 있었던 첫번째의 질문은, "왜 여기에?" 이라는, 애매한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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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즈린 씨라고 하던가. 쥐의 귀 같은 것을 머리에 달고 있던 분이 안내를 해주셨어요. 불평이 조금 많기는 했었지만요.

환상향에 어떻게 들어온 것인지를 물어본다면 사라진 당신을 찾기 위해서 '경계' 를 몇번인가 렌코와 함께 건너왔어요.

빠르게 사라지고 있던 종류의 경계였으니까, 렌코와는 잠깐 헤어져버리고 말았지만 방금 전에 마을 어귀에서 만났고." 


차분한 목소리. 요괴 같은 옛이야기 속의 것들이 살아 숨쉬는 위험한 이세계에 떨어진다는 황당무계한 경험을 겪고서

지금껏 살아왔음을 감안하면, 보통은 아주 피폐한 상태던지. 그게 아니면 최소한 PTSD 증세는 보일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메리가 보여주는 모습은 이세계의 표류자라 보기엔, 지나칠만큼 평온한 종류이기에 도리어 이질감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다행이네요. 선생님의 경우에는 렌코나 저처럼 이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요, 분명 위험했을테지요.

아, 렌코에게 이야기는 전해들었어요. 한창 뉴스에 나오던 열차사고에 휘말린 결과로 건너오게 되었단 이야기까지요.

전 그런줄도 모르고 정말로 선생님이 이젠 저를 아예 만나기 싫어서 잠적해버린걸까 하고, 한참 고민을 했다니까요?" 


짐짓 쾌활한듯 웃고있는 소녀지만.


"...맞다. 그리고 보니 선생님에겐 아직 제 능력에 대해선 이야기를 하지 않았네요? 그간 숨기고 있어서 정말 죄송해요. 

하지만 CCTV 가 어디에 있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의 사회적 인프라가 설비된 세계에서 선보이기엔 위험했는걸요. 

렌코의 능력과는 다르게, 제 능력은 보다 눈에 띄는 종류였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지만...환상향에선 괜찮고요."


이제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마냥, 뒷편에 '경계' 를 열어보이고 있는 저 소녀는. 


"이게 제 능력인 '결계의 경계를 보는 능력' 이에요. 원래는 결계가 있으면 그 건너편을 확인하는게 가능한 정도였지만

환상향까지 흘러들어오는 과정에서 여러모로 일이 있었으니까요...이능력도 자기 나름대로 발전을 한다는 것이겠죠?

이제는 어떤 물건이 있다면 그것에 관한 이세계를 볼 수 있고, 그 세계의 통로를 막은 경계를 조종할 수 있을만큼요." 


정말로, 당신이 알고 있던 연인. 마에리베리 한이 맞는 것일까? 


"...물론 지금껏 말하지 않았던건 죄송하지만, 렌코를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도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몰라서.

괜히 거짓말쟁이로 몰리게 된다면 서로 사이가 서먹해질까 신경이 쓰이기도 했고요. 애초에 경계 건너편이란, 선생님.

만약 상태가 좋지 않으신거라면 잠깐 앉았다가 이야기를 하는게 어떨까요? 저도 밖에 서있다 보니 꽤나 추워져서요."


기묘한 감정을 품은채로 일렁이고 있는 눈동자의 동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면, 왠지 속이 메스꺼워지는 것만 같다.

그래, 이것과 비슷한 감각을 느낀적이 있었다. 인간의 것이 아닌, 요괴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을때 이런 기분이었지.

인간의 공포심과 경외감을 양식으로 삼는 기생충인 요괴의 눈동자를 바라볼때 말이다. 토악질이 절로 치밀어오른다. 


"...몸이 좋지 않으신것 같으니까, 일단 들어가서 잠깐 쉬었다가." 


이제 그만 헤어지자. 마에리베리 한. 


"...네?" 


헤어지자고 말했어...렌코에게 사정은 전해들었고.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와 관계를 유지하긴 어려울것 같아. 

아니, 이건 단순한 핑계일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알 수 있어. 내가 고백했었던 마에리베리 한이란 소녀와,

지금 내 앞에서 메리를 흉내내고 있는 너를 동일 존재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말이야...틀렸더라도 상관없어.


"...일단 그것에 대해선 제가 잘못한게 맞지만, 그래도 천천히 감정을 가다듬고서 생각을 해본다면 분명 괜찮을거에요.

분명히 괜찮아져서, 방금 전의 말은 실언이라고 말을 하실거라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잠깐 안쪽으로 들어가서 쉴까요.

아니면 설마 저 말고 다른 연인을 만들었다거나 그런 일이 있었던 걸까요? 어쩐지 옷이 제대로 다려져 있기도 하고..."


침착함을 유지하려 하지만,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는걸 보면 당신이 이별을 통보하는건 예상을 벗어난 일이었던 걸까?   

아니...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참을 수 없는 충동 탓에 이별을 고한거라면, 그것의 책임 또한 오롯히 당신의 것이고.

스스로의 말의 무게를 낮출 생각이 아니라면 그것은 번복되어선 안된다. 설령 나중에 후회하게 될거라 해도 말이다.


"...왜?" 


아까는 당신이 했던 질문. 하지만 다른 뜻을 담은 "왜" 한글자.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는 뜻을 담은 단어에 대해서

당신이 돌려줄 수 있는 답은 침묵뿐이었다. 지금 당장 이별을 고하고서 관계를 떼어내지 않으면 안될것 같았다는 말을

어떤 양심으로 꺼내놓을 수 있을까. 만약 단순히 착각이 원인이라 하더라도, 이 메슥대는 기분만은 날 것 그대로인데.   


"...정말로요?" 


침묵만을 지키는 당신을 지켜보던 메리였지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정말로 진심인지를 물어오는 모습에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어서 "진심이 아니었다." 라고 방금 전의 말을 번복해야 할것만 같은 기분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감정 같은 것이야 이제 옅다 못해 없어진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스스로도 모르는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던 것일까.


"...정말로, 실수였는데." 


숨이 턱 하고 막혀온다. 감정적인 고통? 아니, 그런 말랑하고 멜랑콜리한 종류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죽음에 가깝겠지.

작게 흐느끼는 소리를 내면서도 당신이 선택을 바꿔주지 않을까 하고서 당신을 올려다보는 메리의 뒷편에서 불안하게

흔들거리는 경계. '스키마' 라 불리는 그것은 정말이지, 최악의 기분을 당신에게 느끼게 하는데 한점 부족함이 없었다.


"...이것 하나만 답해주세요. 다른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나요?"


시간을 멈춰놓고 도망쳐야할까. 그런 생각이 떠오를만큼 불안정하게 뒷편에서 흔들리는 경계를 바라보던 당신의 손을

꽉 움켜쥐고서, 마에리베리 한은 한결 일렁임의 정도와 색이 짙어진 눈동자를 당신의 시선과 일직선상에 놓고 있었다.  

어떤 답을 돌려줘야 할까. 좋아하는건 아니지만, 괜찮은 감정이 있는 상대는 있다고? 아니면 없다고 말을 해야 할까?


"만약, 제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던게 문제인 거라면." 


위험하다. 아주 잠시 핑곗거리를 생각한 시간이 문제였던 것일까. 이젠 숫제 일렁이는 수준을 넘어, 찢겨나간 수준으로

벌어진 경계의 안쪽에서 들려오는 낮은 그르릉 소리는, 처음으로 요괴에 의한 살육의 현장을 보았던 그 당시의 기분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기에 충분한 종류였다. 이능력의 폭주는 언제나 재난을 동반한다는건, 이능력 물의 약속이니까.


"차라리, 단순히 경계의 건넛편을 볼뿐인 능력이었다면. 그랬다면 좋았을텐데. 그랬더라면 선생님도 이해를 했을텐데.

지금의 선생님은 저를 괴물을 보는 것처럼 보고 있네요. 저는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그랬듯이 마에리베리 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선생님의 연인일텐데. 왜 선생님은 저를 괴물처럼 여기고 있는건가요? 어째서, 저를 그렇게 보시나요?"


점차 호흡이 가빠지고, 끝에 가선 알아듣지 못할 속도로 메리가 말을 할때마다 뒷편에 열린 경계는 크기를 키워가더니

이젠 사람 하나 정도는 가뿐히 들어가고도 남을만큼의 너비와 길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만약 저기에서 요괴 같은게

쏟아진다면 그날로 마을은 멸망하겠지...요괴가 아니라 단순한 영탄들이라고 하더라도 예탄정은 완전히 무너질테고.


"...아아, 이럴줄 알았다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들끓는 경계. 거기에서 붉은 동공을 가진 눈동자들이 속속들이 튀어나와 빛을 뿜어내기 직전.

당신은 시간을 멈췄다. 단약의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에 도장에 있었을 때와는 다르게 예측할 수가 있었으니까. 

그래, 적어도 멍청하니 그걸 쳐다보고만 있다가는 저기에서 쏟아질 에너지탄을 그대로 맞고서 죽어버리게 될거라고.


그렇다면 그러한 일을 막기 위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시간이 정지된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다.

만약 당신에게 스펠 카드 같은게 있었다면 모를까, 당신은 탄막은커녕 영탄 하나도 제대로 뽑지 못하는 요정 미만이니.

애꿎은 스키마의 콜렉션 안을 뒤지던 당신의 손에 잡힌 것은 고풍스런 종이 봉투. (占) 이란 한자가 적혀진 봉투 하나.


이게 뭘지, 괜히 열어선 안되는게 아닐지. 그럴걸 생각하기엔 상황이 급박하다. TSP 가 미친듯이 줄어들고 있었으니까.

지금까지는 전투상황에서 TSP를 사용한 적이 없었으니까 확인할 기회가 없었지만, 택시 미터기 올라가듯이 소모량이

올라가는걸 보면 식겁을 하지 않을래야 하지 않을수가 없다. 그러니까 일단은 지금 당장 이 봉투를 뜯어보도록 하자.


[ ...점술을 통해서 가야 할 길을 봐주겠소. ]


손톱을 이상하게 기른, 누가 봐도 요괴 같은 면상에 이상한 모자를 눌러쓰고 있는 누군가 연기와 함께 봉투에서 나왔다. 

게다가 점술을 운운하는걸 보면 평범한 이는 아니겠지. 그러면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그나마 조커 카드가 되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열어본 봉투에서 튀어나온 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사실 답을 알고는 있다. 잠깐 망설였을 뿐이지.


[ ...? ]


젖 먹던 힘을 다해,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점쟁이를 들어서 경계를 틀어막는다. 네덜란드에는 한스 브링커가 있다면 

환상향에서는 이름 모를 점쟁이 요괴가 역할을 대신해도 괜찮겠지. 운이 좋으면 살아남을 수 있을테고, 운이 없더라도

어차피 인간이 아니라 요괴. 그것도 시간이 정지된 상태니까 당신에게 죄를 물을 상대가 있을리 없다. 분명 그렇겠지.


[ 이, 이런 말도 안되는 폭정이라니...하쿠레이의 무녀라고 하더라도 인간을 방패로 삼지는 않았거늘 대체 무슨 악덕을!

이것은 뭔가 잘못되어 있다. 잘못되어 있단 말이다! 당장 이것을 내려서 제대로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ㅇ...a...a... ]


TSP 가 한 자릿수로 떨어지는 순간, 메리를 밀치듯이 바닥으로 엎드리는 것과 동시에 [ 시간정지 ] 의 상태를 해제한다.

셋. 둘. 하나. 속으로 숫자를 세던게 0에 달한순간 들려온 피륙이 터지는 소리는 마개가 된 요괴의 상태를 눈으로 보지

않더라도 예상할 수 있게 만들었고 말이다. 직감에 따라서 행동하지 않았더라면, 당신이 저런 상태가 되지 않았을까?


"...선생님." 


폭음에 먹먹한 귀를 손바닥으로 몇번 누르면서 몸을 일으키려던 당신을 붙잡은 것은, 울음이 섞인 메리의 목소리였다. 

지금 이것에 답을 하거나 하다못해 고개를 숙여서 눈을 마주친다면 기껏 통보했던 이별이 엉망이 될거란걸 알면서도,

고개를 숙여서 "왜." 라고 답을 돌려주는 것은 스스로의 성격이 무름을 증거하는 것일까. 아니면 감정이 남은것일까. 


"역시 꿈 속의 '저' 에게라도 넘겨주지 못하겠네요. 그야 그렇잖아요? 잔뜩 민폐를 끼쳐서 이별을 통보받은 상대에게도

결국엔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시는 분인데, 그런 성격이 나쁜...아는건 없으면서 아는척만 하는 상대에게 내어주기엔

지나치게 아까우니까 말이에요. 이별의 통보는, 조금만 더 생각을 해보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것에 대한 답을 내리기에는 아직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만 같다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당신은 메리가 계속 당신을

열렬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보지 못한 것으로 해두기로 했다. 폭음에 나와본 것인지 망연한 얼굴을 하고 있는 미요이에

무슨 일인지 기웃대는 이들까지. 지금의 것만 하더라도 하나같이 해명하려면 시간을 한참 잡아먹을 상황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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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연하지만 히에다에게 불려가서 소란에 대한 문책을 들었다.

2. 옥에 갇혔다. 소란에 대한 문책 정도로 끝날줄 알았지만, 일단 보여주기 식의 처벌이라도 필요하다던가

3. 미요이의 푸념을 한참 들어주는 것으로 끝날줄 알았지만, 그 푸념이 요괴들의 연회 자리에서도 이어질 줄이야.

4. ( 옥에 갇혀있는 / 자유인인 / 연회 자리에서) 당신에게 샤메이마루 아야라는 이름의 까마귀 텐구가 취재를 왔다.  

5. 댓글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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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분들이 읽어주시는 조회수, 댓글 하나하나가 큰 힘이 됩니다. 23 화에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피드백을 남겨주신다면 감사할것 같습니다. 댓글 의견과 감상들이 많이 늘어나서 글을 올릴 맛이 나네요. 감사하고 있습니다.

+ 분량 낭낭합니다. 전투씬을 쓰려고 했지만 아나타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일천해서 여기선 점쟁이 쉴드를 쓰기로 했습니다. 

++ 메리는 구상이 없으니까 제 머릿속에 있는 성격이나 대사가 곧 구상입니다. 불만이 있다면 쩌는 메리 구상을 써오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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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상코드 : 마에리베리 한 502f92 오쿠노다 미요이 e36792 상태창 2C82C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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